소백산, 그 높은 산의 깊숙한 골짜기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자주 놀러갔던 고모네 집도 함백산 아래의 탄광 사택이었고 서울로 올라와 북한산 아래에 살았고 한때는 정릉과 미아리 사이, 꽤나 높은 곳에 거의 억지로 지어 올린 듯한 고층 아파트의 24층에 살았기에 일요일 아침이면 등산하는 사람의 형형색색 옷차림을 24층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며 내려다보곤 하였으되, 이런 불가피한 이주의 기록으로 산을 조금이나마 알았다고 감히 엄두를 낼 만한 용기를 나는 한 줌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산을 배우면서부터…
아, 물론 저 히말라야 고봉을 등정해야만 산에 대해 논설할 수가 있고 한 해에도 몇 차례 지리산을 종주해야만 거룩한 수준의 담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토의 70%가 산세 지형인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산에 대해 알 수도 없고, 그러니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령 시인 이성부라면 전혀 다른 경지다. 보편적 예술의 차원에서 시 그 자체를 지극히 높은 수준으로 성취해낸 시인이지만, 뭐랄까, ‘산악시’ 이런 분야가 있다면 아마도 최고의 경지로 산에 사무쳐 얻은 강렬하고도 깊이 있는 시의 한 세계를 이룩한 시인이 이성부다. 그는 시 ‘산을 배우면서부터’에서 이렇게 썼다.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때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이런 경지의 깨달음이란 얼마나 많은 육체와 정신의 힘겨운 소요에 의해 얻어지는 것일까. 내 알기로 이성부 시인은 말과 글이 수미일관했고 시의 풍경과 삶의 언행이 그리 어긋나지 않는, 시에 집중해 삶을 구하고 삶에 집중해 시를 얻은 그런 ‘진짜 시인’이다. 그가 산에 오르고 또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고 헤매고 오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산을 배우는’ 수행에 다름아닐진대, 그러므로 시인은 산을 오르고 정복해 야호! 소리 한번 시원하게 질러대는 그런 산행을 마다했다. 시인은 시 ‘쇠지팡이’에서 이렇게 쓴다.
앞서가는 사람 쇠지팡이 두 개
바윗돌을 스칠 때마다
내 머리 어지러워 주저앉아버리고
푸나무 건드릴 때마다 내가 아퍼
눈으로 신음소리를 낸다
씩씩하게 땅바닥 찍는 것을 보고
땅이 문 닫는 소리 저를 가두는 소리
온 세상 귀 막는 소리 나에게도 들린다
이 같은 경지에서 보면 나의 경우는 산에 올랐다기보다는 그저 산속 깊이 차를 타고 들어가 한나절 거닐다가 나왔다고 하는 게 좋을 텐데, 아무튼 잔인했고 지긋지긋했던 2014년을 보내면서 나는 산으로 가고야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