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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풍토병은 일상 자식 문제는 ‘금기어’

턱시도 입은 슈퍼맨? 외교관 세계의 거친 민낯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테러, 풍토병은 일상 자식 문제는 ‘금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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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 3분의 1이 險地

미국 뉴욕의 유엔대표부에 근무하던 김연식 서기관(당시 참사관)은 ‘대사관 창설’이라는 중책을 맡아 2013년 3월 혈혈단신으로 모잠비크 수도 마푸투로 향했다. 부부 외교관으로 함께 미국에서 근무하던 아내는 브루나이 대사관으로 발령받고 딸과 함께 떠났다. 본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모잠비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일을 도와줄 행정관도 뽑을 새가 없었다. 뉴욕 병원에서 급히 황열병 등 5가지 풍토병 예방주사만 맞고 현지로 향했다.

마푸투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푼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청사와 관저를 구하는 일이었다. 발품을 팔아 100군데 넘는 곳을 둘러보고 겨우 점찍은 청사의 임차료는 월 2만 달러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1만 달러로 계약했다. 당시 부동산 중개인은 그에게 “당신 인디언이냐. 가격을 어떻게 그렇게 마구 후려치느냐”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김 서기관의 말에서 그때의 고충이 묻어난다.

“현지 법률을 검토해 청사와 관저를 계약하고 본부에 요청해 통신시설을 설치하는 등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청사와 관저 수리 때는 공사 일정 등을 제때 안 지키는 현지 업자들과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재외공관을 창설하면 본국에서 건축전문가,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창설팀이 파견돼 청사와 관저, 외교관 사저까지 전부 세팅해놓는다. 그 후에 외교관이 부임한다. 우리의 국격(國格)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대사관 창설 준비와 함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문, 모잠비크 대통령 방한을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우리나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으로 지어진 병원 기공식에도 참석해 축사를 했다. 김 서기관은 “부임하자마자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초기 적응기를 건너뛴 셈이다. 너무 힘들어서 (공관 창설 업무를) 두 번 하라면 못하겠지만 외교관으로서는 좋은 기회이고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의료시설과 생필품 부족, 무더운 기후로 인해 창궐하는 풍토병 등은 험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괴롭힌다. 유창호 외교부 공보담당관(당시 참사관)은 2009년 에티오피아 대사관으로 발령이 났다. 아내와 함께 1세, 4세 자녀 둘을 동반한 그의 현지 생활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에티오피아는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 중 하나다. 막내에게 먹일 가루분유가 없어서 서울에서 파우치(외교행낭)로 공수해야 했다. 전기시설이 열악해 날이 어두워야만 전기가 공급되고, 물도 부족해 돈을 주고 물차를 불러야 했다. 무엇보다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이 탈이 날까 걱정이 많았다. 변변한 의료시설도 없었는데 다행히 한국계 미국인 의사 부부와 친해져 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환영받지 않는 나라’ 외교관

선진국에 근무하는 외교관이라고 안락한 나날만을 보내는 건 아니다. 3년 간 일본 고베 총영사로 재직하다 지난 8월 귀국한 이성권 전 총영사는 ‘환영받지 않는 나라’ 외교관의 고충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17대 국회의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상임감사,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다.

“3년 전 일본에 부임했을 때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일본 우익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고베 총영사관에는 연막탄, 히로시마 총영사관엔 벽돌을 던지는 테러도 발생했다. 영사관 직원에게 대놓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외교관이 환영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인적 외교’를 펼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일본의 미래 세대를 많이 만나 그들에게 한일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정립해주는 공공영역에서의 외교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이 전 총영사는 일본 대학생을 대상으로 올바른 한일관계에 대해 1년에 20여 회 강의를 했고, 이 강의를 들은 일본 모 대학 학부장의 부탁으로 1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외교관으로선 보기 드문 그의 활동은 현지 신문에 보도됐고, 그는 지난해 10월 해외한인매체 ‘월드코리안신문’의 ‘2014 베스트 공관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KOTRA 감사 때 50여 개 나라로 출장을 다니면서 험지 외교관들의 고충을 지켜보거나 전해 들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시아 같은 열악한 지역에도 자주 출장을 갔는데, 이라크 출장 때는 시내에서 자살폭탄테러로 40여 명이 사망했다. 그전에도 우리 대사관에서 700m 떨어진 호텔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대사관 창문이 깨지는 일이 있었다. 내가 갔을 때 대사관 직원이 그때 날아온 폭탄 파편을 보여줬다. 위험하고 열악한 지역에 단신 부임한 외교관들의 고생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다.”

2012년 8월 아프가니스탄 한국 지방재건팀(PRT) 부대표로 파르완 주에 파견된 유창호 담당관도 비슷한 체험담을 들려줬다.

“200여 명의 우리 군인을 비롯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요원, 경찰, 의료진, 직업훈련강사 등으로 이뤄진 팀원 450명이 함께 파견됐다. 처음에는 파르완 주에 있던 우리 군 기지에 머물렀는데 탈레반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해왔다. 겁을 줘서 몰아내려고 했던 거다. 나중에는 미군의 바그람 기지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수시로 로켓포탄이 날아들었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우리 팀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소로 몸을 피했는데, 나는 민간인이지만 연락관 임무를 수행하느라 군인들과 함께 작전실을 지켜야 했다.”

남상욱 전 대사는 네팔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내전을 방불케 하는 반정부시위를 겪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나서는데, 고용인이 사색이 돼 달려와 못 나가게 막았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사관으로 향했다. 비상연락망을 통해 교민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도랑에 총에 맞은 시체가 보였다. 왕정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왕궁 가까이 접근하자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근처 호텔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본인 한 명은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수도 카트만두 시내가 아수라장이 됐다.”

테러, 풍토병은 일상 자식 문제는 ‘금기어’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올바른 한일관계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성권 전 고베 총영사.(위) 모잠비크 켈리만에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사업으로 지은 중앙병원 기공식에서 축사하는 김연식 서기관.(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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