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창백하고 처절하게 가을이 묻어나는 노래

김정호 ‘하얀나비’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입력2015-09-23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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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병인 폐결핵으로 핼쑥하고 창백한 표정에 애조 띤 목소리로 시처럼 맑은 가사를 때론 읊조리듯, 때론 절규하듯 부르던 이 비운의 포크 가수를 우리는 오늘 문득 그리워한다. 그가 숙명처럼 지닌 어린 날의 상처가 처절하게 안타깝고, 너무 오랫동안 그를 잊고 살아온 미안함 때문이다. 그가 간 지 꼭 30년, 김정호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창백하고 처절하게 가을이 묻어나는 노래
    아득한 청춘 시절, 한때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을 꽤 알고 지냈다. 그도 젊고 나는 그보다 훨씬 젊을 때다. 1990년대 초반 나는 유학을 앞둔 일간지 경제부 기자였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당시 ‘모피아’로 유명한 재무부의 잘나가는 사무관이었다. 그와 나는 가끔 만나 소주도 마시고 카페도 들락거리며 그 시대의 고민을 얘기하곤 했다. 마산 진동 포구 이름을 따온, 강남에 있는 어느 ‘세꼬시’집이 단골식당이었고 이어 노래방과 단골 카페를 순례하는 새처럼 2차, 3차로 찾곤 했다.

    그는 여러모로 내공이 뛰어난 사람이다. 정치인, 경제관료로서의 능력과 업적은 내가 잘 알지 못하고, 또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인간적인 면에서 겸손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는 야구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졌다. 하기야 그는 야구 명문 마산중을 거쳐 부산고를 졸업했다. 그의 야구 사랑은 굉장하다. 술자리가 달아오르면 학창 시절 부산고 야구선수 중 자기한테 ‘줄빠따’ 맞고 엉덩이 안 터진 선수는 한 명도 없다고 자랑했다. 그때쯤이면 은근한 마초이즘까지 드러낸다. 공도 잘 찬다. 경제관료들이 연중 가장 설레며 기다렸다는 저 유명한, 아니 유명했던 경제기획원 vs 재무부 축구시합에도 단골로 뛰곤 했다.

    삶처럼 어둡고 음울한 색깔

    스포츠광답게 호기롭고 밝은 표정의 그가 노래를 부를 때는 유달리 청승맞고 슬픈 노래를 즐겨 불렀다. 더구나 그가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김정호의 손에서 나왔다.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곳에는/ 길 잃은 새 한마리 집을 찾는다…”



    조그만 카페에서 맨주먹으로 마이크 잡는 시늉을 하며 그가 부르는 첫 번째 노래는 어니언스가 불러 유명해진 ‘작은 새’(1974). 바로 김정호가 만든 노래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끝낼 때쯤이면 술집 안은 한순간 적요해지고, 잠시 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성(美聲)도 아닌 그가 청승맞은 노래를 유달리 잘 부르고 사람들이 이에 호응한 까닭이 솔직히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그 박수 속에는 요절한 가수 김정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섞여 있지 않을까 나름 분석해보곤 했다.

    김 · 정 · 호! 대한민국의 중년치고 이 가수의 노래를 듣고 가슴 먹먹해지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될까. 흑백TV 시절, 그가 눈을 감고 전선을 몇 번 감아 움켜쥔 마이크를 입에 댄 채 비감 어린 표정으로 노래를 부를 때면 시간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김정호의 노래는 그의 신산한 삶이 그랬듯이 대부분 어둡고 음울한 색깔을 담고 있다.

    “어둔 밤 구름 위에 저 달이 뜨면/ 괜시리 날 찾아와 울리고 가네/ 그 누가 만들었나 저 별과 달을/ 고요한 밤이 되면 살며시 찾아와/ 님 그리워 하는 맘 알아나 주는 듯이…”

    그가 1985년 작사 · 작곡한 ‘저 별과 달을’이다. 40대 중반 이후 세대라면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술에 취해 한 번쯤 불러봤을 노래다. 한국판 조르주 무스타키로 평가받는 이른바 ‘음유시인’ 김정호의 본명은 조용호다. 1952년 3월에 태어나 1985년 11월 서른셋, 가수로서는 절정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투병하다 마산결핵요양소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애잔한 노랫말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포크계의 ‘레전드’다. 1973년 ‘이름 모를 소녀’를 발표하면서 단박에 대중가요계의 샛별로 떠올랐고, 요절할 때까지 ‘작은 새’ ‘저 별과 달을’ ‘하얀나비’ ‘날이 갈수록’ 등 서정성 짙은 불멸의 곡들을 남겼다. 특히 ‘사월과 오월’ 멤버로 데뷔했다가 1973년 솔로로 나서면서 발표한 ‘이름 모를 소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의 386 또는 7080세대에게 인기를 누린 보컬 어니언스(임창제 · 이수영 듀엣)의 ‘편지’ 등 공전의 히트곡들도 김정호의 오선지에서 탄생했다. 투에이스(금과 은)가 불러 히트한 ‘빗속을 둘이서’도 그가 빚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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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가 결핵 치료를 위해 입원한 국립마산병원. 임화 등 수많은 예술인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적 情恨과 남도 판소리風

    그의 비장미 넘치는 노래 세계는 한국의 전통적 정한(情恨)을 품었고, 지역적으로는 남도와 깊은 연을 맺고 있다. 내력을 더듬어가면 서편제의 한 계보가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박유전의 법통을 이어받은 담양 출신 명창 이날치의 소리는 능주의 김채만에게, 김채만의 소리는 박동실에게 이어진다. 현대 판소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박동실이 바로 김정호의 외할아버지다. 박동실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에 능통했으며, 오늘날의 오페라단 격인 창극단을 처음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박동실은 6 · 25전쟁 때 북한으로 갔다. 이로 인해 김정호의 외가는 풍비박산의 고통을 겪었다. 그의 어머니는 외조부 박동실이 두고 간 모든 것을 저주하며 불태우고 행여 아들 김정호가 알까봐 노심초사했다고 전한다. 그녀의 삶 또한 신산하기 그지없다. 당시 호남지역 경찰 고위간부의 ‘제2 부인’으로 있으면서 김정호를 낳았고, 이후 친정인 담양으로 돌아와 평생을 살았다.

    이 과정에서 김정호가 서자로서 겪은 고통과 상처가 그의 노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지병인 폐결핵으로 핼쑥하고 창백해진 표정에 애조 띤 목소리로 시처럼 맑은 가사를 때론 읊조리듯, 때론 절규하듯 부르던 이 비운의 포크 가수를 우리가 오늘 문득 그리워하는 것은 그의 숙명 같은 어린 날의 상처가 안타깝기 때문은 아닐까. 그가 원래의 성(姓) 조씨를 버리고 엉뚱하게 김씨를 성씨로 택한 것도 이런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울한 유년의 상처가 이상향을 갈구하는 노래를 낳았다고 유추할 수도 있겠다.

    창백하고 처절하게 가을이 묻어나는 노래

    광주 북동성당 뒤편이 김정호 생가가 있던 곳이다.

    김정호 재조명 경쟁

    김정호의 외삼촌 박종선(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9호 아쟁산조 예능보유자) 씨는 “내가 아쟁을 타고 있으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좋아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국악을 무척 좋아했다. 조카는 국악을 배우지 않았어도 집안에서 타고난 끼가 몸속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김정호가 남긴 노래 대부분은 국악에 바탕을 뒀다. ‘바위섬’으로 알려진 가수 김원중은 “그의 대표곡 ‘하얀나비’는 도 · 레 · 미 · 솔 · 라(궁 · 상 · 각 · 치 · 우)라는 국악 음계로만 작곡했을 만큼 그의 음악은 남도 판소리에 뿌리를 대고 있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국악적 요소로 한국적 포크 음악을 고민했던 음악인”이라고 말한다.

    신세대들은 김정호의 노래를 영화 OST를 통해 접한다. 지난해 개봉된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는 개발시대 한국인들의 곤고한 모습이 시대적 배경이다. 돈 벌러 해외에 간 남편을 여의고 홀로 갓난아이를 키우며 갖은 고생을 하던 풍경들과 함께 주인공 여배우 심은경이 직접 ‘하얀나비’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인터넷에서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노래지만 심금을 울리고 눈물이 났다”는 신세대들의 글이 눈에 띈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 들어 김정호의 노래들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담양이 그 시작이다. 담양군은 수년 전부터 김정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재조명하는 세미나와 추모 음악회를 지역 명물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열고 있다. 담양 출신 가수 김원중은 “김정호는 담양 소리의 상징과도 같은 명창 박동실의 외손자이며, 담양 소리의 맥을 잇는 어머니 박숙자, 아쟁 명인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았다”며 김정호의 음악적 고향은 담양이라고 주장한다.

    담양 사람들은 내친김에 ‘김정호 음악의 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역 사회단체, 김정호와 인연이 있는 가수, 팬클럽이 참여하는 ‘김정호 노래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지난해에 구성돼 활동 중이다. 추진위에는 하남석, 이필원, 백순진, 임창제, 홍민, 채은옥, 소리새 등 추억의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추진위는 팬클럽 회원, 군민,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온 · 오프라인 모금운동을 벌여 기금을 마련해 담양군 메타세쿼이아 가로숫길에 노래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김정호를 숫제 담양의 인물로 굳힐 자세다.

    그런데 광주광역시가 이에 발끈하고 나섰다. 김정호가 광주에서 태어났고 수창초교를 다녔기에 누가 뭐래도 광주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담양군이 공세적으로 나오자 광주시는 서둘러 ‘김정호거리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수창초교에서 ‘하얀나비 김정호 거리가요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도의 정서를 대중가요에 접맥해 독특한 포크 음악을 추구한 김정호를 거리가요제를 통해 새롭게 조명하자는 게 목적이다.

    김정호와 그의 음악이라는 문화자산을 광주 도심 재생에 활용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북구 북동 북동성당 뒤 생가 터에서부터 수창초교, 롯데백화점까지 이어지는 1.3㎞ 거리를 ‘김정호거리’로 조성하고,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양동시장-김정호거리-대인시장-예술의 거리-무등산 등을 연결하는 문화벨트를 조성한다는 게 시의 복안. 김정호의 음악적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낙후된 옛 도심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가 2011년 가수 고(故)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 방천시장 부근 둑길 350m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조성해 성공한 데서 자극 받은 것으로 보인다.

    창백하고 처절하게 가을이 묻어나는 노래

    (왼쪽)김정호가 다닌 광주 수창초교.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오른쪽)‘김정호 기념 거리’로 조성되는 수창초교~롯데백화점 거리.



    창백하고 처절하게 가을이 묻어나는 노래

    (위)김정호의 외할아버지 박동실 명창이 판소리를 전수한 담양 죽녹원은 이젠 데이트 코스가 됐다. (아래)가사문학의 뿌리인 담양 명옥헌.

    또 가을이 온다

    이런 유의 ‘김정호 다시 보기’는 김정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굿 뉴스’가 된다. 모두들 저마다의 가슴속에 한 마리의 하얀 나비를 간직한 채 살아온 이들이 지금의 중년 세대다. 온갖 서러움, 어려움 속에서도 때가 되면 다시 필 것이라는 노랫말을 되새기며 지난 시절을 견뎌냈다. 그러나 김정호 생전, 그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지 않은 지자체들이 이제 와서 저마다 그를 이용하려는 듯한 세태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것은 그가 남긴 노래들이 너무 서럽고 슬프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노래를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이다. 그의 노래는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제가 된다. 우연히 그의 노래들을 듣게 되면 문득 생머리를 뒤로 곱게 묶은 수줍은 모습의 박인희가 생각나고 카펜터스, 나자리노, 엘 콘도르 파사, 스카브로의 추억 등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아, 또 있다. 매력적인 외모로 당시 한국 10대들을 사로잡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도 있고,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one summer night’, 고고장에서 단골로 틀어주던 ‘블루 나이트 요코하마’도 있다.

    그 많은 노래 중에 유독 잊히지 않는 것이 김정호의 노래다. 험난하던 시대, 하늘이 높아만 가던 늦가을,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학교 방송반에서 틀어주던 ‘날이 갈수록’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를 잊고 살았고, 이제 그가 간 지 꼭 30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유튜브의 흑백 동영상을 보면 그가 폐결핵으로 얼마나 고통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왜 즐거운 노래는 부르지 않은 걸까. 아득한 10대 시절,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금주의 인기가요’에 등장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늘 의문을 가졌고, 그가 폐결핵으로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가을이다. 기나긴 여름을 견딘 배롱나무가 여전히 묘한 색깔 꽃잎으로 저만치 가는 여름을 배웅하고, 나는 오늘 유튜브 흑백 동영상으로 그가 부르는 ‘하얀나비’를 듣는다. 그의 노래에서 가을이 묻어 나온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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