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피 마르는 소상공인…100조 원 금융 수혈 더 속도 내야

[금융 인사이드] 코로나 대출의 정치경제학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0-04-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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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마다 다른 신용등급에 ‘대출 혼란’

    • ‘준전시’ 상황에 뒤늦게 나선 금융위

    • 은행이 대출 부실 떠안는 건 매한가지

    • 스위스 사례 등 고려한 과감성 발휘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3월 27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코로나19 경영애로자금 대출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3월 27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코로나19 경영애로자금 대출 신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9일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50조 원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번 방안은) 필요한 대책의 일부일 뿐”이라며 “상황 전개에 따라 필요하다면 규모를 더 늘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5일 뒤인 같은 달 24일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앞서 밝힌 규모를 두 배로 확대한 100조 원 규모의 긴급 부양책을 내놨다. 기존 방안에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리고 자금시장에 대한 지원까지 포함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100조 원 중 58조3000억 원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기업 등에 대출해 준다. 나머지 41조8000억 원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자금이다. 

    며칠 뒤인 3월 30일 정부는 또다시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긴급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냈다. 전국의 소득 하위 70% 이하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100만 원(4인 가구 기준)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단 10일 만에 엄청난 규모의 지원책을 줄줄이 쏟아낸 건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많은 국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복잡한 신용등급 책정 시스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봉쇄령이 한 달 지속될 때마다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포인트 내려갈 것”이라며 “상당수 국가가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G20 정상들은 회의를 통해 과감한 대규모 재정 지원을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큰 흐름 속에서 부양책을 내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4월 6일 문 대통령은 이날 예정됐던 수석·보좌관회의를 취소하고 긴급하게 금융권 수장들과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김태영 은행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을 하는 분들께서 대출을 받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며 “이 부분을 각별하게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과실이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다른 고의가 없었다면 기관이나 개인에게 정부나 금융 당국이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4월 1일부터 실시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이 현장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행보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이날 “소상공인 지원과 긴급경영자금 지원에 병목현상이 있어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고 간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등 정부 차원에서 긴급히 추진한 대책이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의지가 강력했을지 몰라도 현장에서 계획대로 신속하게 진행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이스신용평가 1~3등급 소상공인 대출 가능”

    대표적으로 지적된 문제점은 복잡한 신용등급 책정 시스템이다. 이번에 시행된 소상공인 금융 지원 규모는 총 12조 원으로 시중은행에서 3조5000억 원, 기업은행에서 5조8000억 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소진공)에서 2조7000억 원이 나가게 된다. 금리는 연 1.5%로 현행 대출 이자와 비교하면 ‘초저금리’ 수준이다. 정부가 시중 대출 금리와 차이를 일부 부담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각 기관마다 대출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이 달랐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이는 대출자들이 한 곳에만 몰려 ‘병목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었지만 되레 부작용을 초래했다. 미리 나이스신용평가 등 전문 기관을 통해 본인의 신용등급을 확인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시중은행의 경우 통상 자체 신용등급을 활용해 대출을 집행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등급을 참고하되 각 은행의 거래 실적 등을 통해 등급을 정하는 식이다. 이 경우 나이스신용평가에서 2등급이 나오더라도 막상 은행에 가면 4등급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소득도 많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지만, 해당 은행 거래 실적이 없거나 신용카드를 잘 쓰지 않았다면 낮은 등급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지원책에서는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이 1~3등급이 돼야 한다. 이에 따라 나이스신용평가에서 확인한 등급만 믿고 은행을 찾았다가 발길을 되돌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반대로 본인의 신용등급이 낮겠거니 생각하고 소진공을 찾을 경우 예상외로 등급이 높게 나오면 역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소진공을 통해서는 4등급 이하인 경우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신용등급 1~6등급인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자영업자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기업은행은 신용보증재단 업무를 한시 위탁해서 대출해 주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에 따라 기존에 신용보증재단 대출이 있으면 추가 대출이 안 됐다. 

    이런 혼란이 어느 누구의 명백한 잘못으로 초래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규모 지원책을 마련해 시행토록 했고, 은행들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일원이 돼 업무 강도를 높였다.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급한 대로 너도나도 대출 창구로 달려갔다. 급박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혼란은 일어날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혼란이 빚어지자 금융위원회는 4월 8일 부랴부랴 참고 자료를 내고 “(은행) 내부 신용평가로 1~3등급이 안 되더라도, 나이스신용평가 등에서 1~3등급을 받은 소상공인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시중은행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기관마다 적용하는 신용등급이 달라 발길을 되돌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됐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실 제재 면책보단 부실 가능성 줄이기

    서울시가 4월 6일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민생혁신금융 전담창구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지점에 개설했다. 이날 서울 중구 우리은행 남대문시장지점에서 소상공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서울시가 4월 6일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민생혁신금융 전담창구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지점에 개설했다. 이날 서울 중구 우리은행 남대문시장지점에서 소상공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이는 평소 같으면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의 금융 시스템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며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야말로 ‘준전시 상황’이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왜 미리 신경 쓰지 못 했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문 대통령이 은행 수장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과실에 대해서는 정부나 금융 당국이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당부했지만, 이런 원칙이 은행들을 안심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 처지에서는 대출을 통해 부실이 생길 경우 이를 담당 직원을 비롯해 은행이 떠안아야 하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은행에는 과실에 대한 제재 면책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부실 가능성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원 규모나 정부의 행보는 ‘준전시 체제’인데 평소 은행들의 기존 대출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하려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면서 “준전시 체제답게 기존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과는 다른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긴급 자금 대출의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스위스의 방식을 참고해볼 만하다. 스위스의 경우 소상공인의 상환 가능 여부를 따지지 않고 대출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출 신청 뒤 돈이 나오기까지 통상 5일 정도 걸리지만, 스위스는 30~40분 만에 이뤄진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부실 대출에 대해 상환을 보증해 주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시중은행에 이자 보전만 해주는 우리나라 정부와는 ‘과감성’에서 차이가 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걱정한다. 어렵다고 해서 무작정 지원했다가는 국가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우려다. 물론 이런 걱정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지금은 평상시와는 다른 시스템을 운영해야만 하는 긴급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정부가 더욱 과감해져야 한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재윤 국회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장은 4월 6일 보고서를 통해 그간 나온 정부의 대책은 다소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규모 면에서도 그렇고 기존의 틀을 깨는 과감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 팀장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사용하는 재정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6.3%, 독일은 4.4%를 지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특히 각국은 기존 원칙을 깨는 방안도 속속 내놓고 있다. EU(유럽연합)는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 국가 채무는 60% 이내에서 관리하도록 정한 재정준칙 적용을 일시 중단했다. 독일의 경우 기존 부채 준칙보다 998억 유로를 초과한 재정지출 계획을 의회에서 의결했다.

    원칙 뛰어넘는 ‘과감성’

    정부의 지원 방안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올 들어 3월 말까지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불법사금융 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가량 급증했다. 하루 버티기가 막막한 이들에게 불법 사채의 그림자가 손을 뻗치는 셈이다.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사실상 차단된 자영업자들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만6000명에 육박한다는 집계도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어려운 이가 많았고, 앞으로도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많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벌써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자영업자의 가계수입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73으로 2008년 12월(68)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가계수입전망 CSI는 6개월 뒤 수입을 어떻게 내다보는지 보여주는 지수다. 수치가 100보다 낮으면 비관론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6일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추가 보강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기업, 국민들이 지금 당장 몇 개월간의 고비 계곡을 잘 견뎌내고 다시 일어서도록 하는 데 지금까지의 지원이 충분치 않아 최대한의 추가적 대책 보강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을 내비친 셈이다. 

    세계 각국은 지금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한다’라는 기조 아래 전대미문의 재정·통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더욱 속도를 내고, 더욱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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