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전현직 경제학회장 6人 “미국發 복합위기에 줄도산, 외자유출에 재정위기 우려”

  • 김우정 기자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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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5-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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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실 서강대 교수 “2차 美中 무역전쟁 번지면 대응책 없어”

    •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 “‘수출 봉쇄’ 파장 대비해야”

    •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 “외국 자본 대규모 유출할지도”

    •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 “‘소주성’ 추진 미뤄야”

    •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美 높은 실업률 재정위기 전이 우려”

    • 이인호 서울대 교수 “美 셰일산업 파산으로 금융위기 가능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화의 민낯을 보여줬다. 중국 지방도시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전 세계 금융시장과 제조업 공장을 위기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는 4월 14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0%로 예측했다.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1.2%로 내다봤다. 미국(-5.9%), 일본(-5.2%), 유로존(-7.5%) 국가에 비하면 양호하나 IMF 구제금융 당시인 1998년(-5.1%) 이후 최저치다. 5월 12일(현지시간)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향후 재차 내릴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는 뜻이다. 

    ‘신동아’는 전·현직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경제전문가 6명에게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시나리오에 대해 물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이라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여전히 높다고 짚었다. 경기의 V자형 반등은 어렵고 금융·재정위기 가능성마저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전쟁 악몽의 그림자

    한국은행이 4월 28일 발표한 ‘4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달보다 7.6포인트 내린 70.8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67.7)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성 최초로 한국경제학회장(제49대)을 지낸 이인실(64)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비 저하가 생산·고용 감소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다시 소비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2차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한국 경제에는 악재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13일(현지시간) 화웨이(華爲) 등 중국 통신장비의 미국 내 판매를 봉쇄하는 행정명령을 내년까지 1년 연장했다. 관련 행정명령은 미·중 무역전쟁 와중이던 지난해 5월 15일 발효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노골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제기하는 코로나19 책임 공방이 경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은 과거 미·중 무역전쟁으로 수출에 큰 타격을 받았다. 미·중 간에 무역협정을 이어나가 분쟁이 다소 무마되는 분위기였는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시 심각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그간 한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수출 다변화를 추진했지만 이들 나라도 중국과 시장이 얽혀 있기는 마찬가지라 대응이 마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정식(67)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44대 한국경제학회장)는 “국제 경제기구 등에서 한국 경제성장률을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게 평가하고는 있지만 한국의 특수한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점이 경제성장률 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는 국내 이동을 막아 내수시장에 가장 먼저 충격을 준다. 미국·일본과 같이 내수시장이 큰 나라는 경제성장률이 크게 둔화한다. 반면 한국처럼 수출이 발달하고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는 초기에 타격을 덜 받는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비례해 타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각국에서 ‘국경 봉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수출 봉쇄’로 이어질 것”이라며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수출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등으로 수출 의욕을 북돋워주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간 국내 코로나19 지원책은 중소기업 혹은 고용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통령이 수출 기업 대표와 만나 의욕을 북돋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호한 경제성장률 평가 큰 의미 없다”

    4월 17일 서울 마포고용노동플러스센터가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4월 17일 서울 마포고용노동플러스센터가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제16대 고려대 총장을 지낸 이필상(73)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현 상황을 ‘2차 대공황’으로 표현했다. 이 교수는 “1930년 대공황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8.6%였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E)가 5월 10일 발표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4%로 당시와 차이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성장률 전망치(-0.1%)를 받았지만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탓에 순식간에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특히 외환위기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수출이 줄어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경우 한국에 있던 외국 자본은 국외로 빠져나가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이 3월 19일 외환위기에 대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데 대해서는 “굉장히 잘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코로나19 위기가 단기에 끝난다면 600억 달러로 족하겠지만 위기 국면이 지속되고 있어 앞으로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조장옥(68)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46대 한국경제학회장)는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세계경제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특히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큰 타격을 입어 상황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폐업하는 소상공인들을 감안해서라도 내년에는 최저임금을 더 인상해선 곤란하다. 주52시간 근무제도 몇 년 미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실업난도 문제다. 5월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7만3000명 감소한 117만2000명을 기록했다. 고용지표가 선방한 것처럼 보이나, 통계 착시에 가깝다. 실업자 숫자가 줄어든 대신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구직활동 여부다. 비경제활동인구는 3월 51만6000명, 4월 83만1000명 증가했다. 통계 작성 후 최대 수치다. 구직을 포기한 채 그냥 쉬는 사람이 급증한 셈이다.

    셰일가스 산업發 금융위기 가능성

    코로나19발 저유가로 
미국 셰일가스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의 정유시설. [뉴시스]

    코로나19발 저유가로 미국 셰일가스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의 정유시설. [뉴시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불경기와 고용유연화에 반하는 경영 환경으로 기업들이 인력 충원을 꺼릴 공산이 크다”며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도입해 보니 기존 인력을 40%가량 줄여도 운영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도 변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발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미국을 지목했다. 김경수(67)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48대 한국경제학회장)는 “현재 세계경제에 최대변수는 미국의 재정적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재정난을 뛰어넘을 정도의 재정위기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미 당국이 유동성을 더 풀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를 의도적으로 낮춘 바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높은 실업률이 재정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5월 8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4월 미국의 실업률은 14.7%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3.5%를 기록한 실업률이 두 달 만에 4배 이상 급등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실업률이 심각한 상태”라며 “납세자 감소로 세수가 줄었는데 돈 쓸 곳은 많다. 미국 재정의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 경기 둔화에 따른 세계 교역량 감소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MF는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 교역량 증가율을 -11.0%로 낮췄다(1월 대비 -13.9%포인트 하향 조정). 코로나19가 6월에 종식되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회복하리라는 전망을 전제로 제시한 수치다. 

    김 교수는 “중국과 인도, 아세안(ASEAN) 국가들의 경기는 내년쯤엔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될 전망이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회복은 내년에도 장담할 수 없다. 수출시장이 줄어드는 데 따른 충격파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임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인호(63)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경제가 회복과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아직까진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만 하면 회복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도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잠시 소비를 줄이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국면이 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도산을 세계경제의 대표적 돌발 변수로 꼽았다. 셰일가스 산업 추이에 따라 미국의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미국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이 저유가로 고전하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데 30달러는 넘어야 셰일가스 업체 타산이 맞다.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줄어든 탓이 크다. 대부분 업체들이 금융권 대출로 사업 자금을 충당했기에 파산 시 부실채권이 늘어난다. 셰일산업 전체가 흔들려 위기가 금융권으로 옮겨가면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다.”

    위기 대응 위한 ‘실탄’ 아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꺼내 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한 ‘한국판 뉴딜정책’의 필요성 자체엔 공감했다. 다만 구체적 대책을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이필상 교수는 “이번 기회에 국내 산업을 미래 친화적으로 재편해 성장 동력을 갖춰야 한다. 인기 영합적 토목·건설 사업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김정식 교수는 “건설과 실물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저숙련 노동자 고용을 늘려야 한다.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교육·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면 부의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인실 교수는 “기술혁명이 어느 방향에서 발생할지는 기업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정부가 세부적 측면까지 간섭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인호 교수는 “한국판 뉴딜이 실제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될지는 모르나 기존에 경쟁력 있던 정보통신·의료 분야 등의 혁신을 통해 성장 동력을 찾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경제학자는 “정부가 경제위기 대응에 필요한 ‘실탄’을 아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수 교수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빠르게 높아져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보편적 복지 정책보단 고용 충격에 대비한 중장기적 취업정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후 산업 자동화로 일자리가 크게 줄 수 있어 노동자 취업 지원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장옥 교수는 “확대재정이 불가피하지만 내용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정부가 국가부채비율 상승을 민감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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