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동물萬事

동양 어벤저스가 벌인 왕좌의 게임 ‘사슴 사냥’

‘작은 사슴’도 못 잡은 한신, 끓는 물에 삶아지다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입력2020-05-31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중원을 차지하는 者, 황제에 오르다

    • ‘왕좌’를 의미한 사슴

    • 토사구팽의 주인공 한신

    • 사슴 사냥에 성공한 유비

    [네셔널지오그래픽]

    [네셔널지오그래픽]

    중국 고대문명의 토양이 된 황허(黃河)의 발원지는 칭하이(靑海)성 쿤룬산맥(崑崙山脈)이다. 칭하이성은 티베트고원(Tibet Plat) 북동부에 있는데 그 면적이 한반도의 세 배에 달한다. 중국 22개 성(省) 중 면적이 가장 크지만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하다. 이는 칭하이성의 평균고도(해발 3000m)가 백두산보다 높아서다.

    곤륜산, 그리고 어벤져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Marvel Studios]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Marvel Studios]

    황허 물줄기의 기원인 쿤룬산맥의 규모는 유별나다. 길이는 경부고속도로의 7배인 3000㎞에 달하고, 최고점은 해발 7167m 쿤룬산(崑崙山)이 찍는다. 쿤룬의 한국식 발음은 곤륜이다. 곤륜은 중국 무협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곤륜파는 대표적인 무림 정파(正派)다. 정파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무술 집단이다. 곤륜산은 무림 정파인 곤륜파(崑崙派)의 본산. 중국 무협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눈 덮인 설산 중 상당수가 쿤룬산 즉 곤륜산이다.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는 다른 공간에서 활약하던 여러 히어로를 같은 공간에 출연시키는 획기적 아이디어로 어벤져스(Avengers) 시리즈를 만들었다. 영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확고한 팬덤(fandom)을 확보한 아이언맨(Iron Man),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 스파이더맨(Spider Man) 등이 평화를 위협하는 범우주적 악당(villain) 타노스(Thanos)와 대립하는 구도로 구성돼 있다.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벤져스는 규모에 어울리는 흥행 성적도 거둬왔다. 2019년 7월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은 장장 10년 동안 흥행 정상을 지킨 ‘아바타(Avatar)’를 2위로 밀어내고 새로운 흥행 왕관을 차지한다. 

    수많은 영웅이 한꺼번에 등장해 거악과 싸우는 것은 미국 대중영화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동아시아 대중소설이나 영화도 비슷한 구도를 가진 작품이 많다. 동아시아 히어로들은 과학의 힘으로 중무장한 미국의 어벤져스와 분위기부터 사뭇 다르다. 첨단 장비나 슈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다. 오로지 평소 연마한 강력한 무공으로 적을 물리친다. 그들의 놀라운 무공에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경공술(經空術)도 있고, 맨손으로 장풍(掌風)을 내뿜거나 내공의 힘만으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믿기 어려운 수준의 고급 기술도 있다.



    어벤져스와 필적할 만한 동아시아의 무림 히어로 그룹으로는 소림(少林), 화산(華山), 무당(武當), 아미(峨嵋), 곤륜 등 아홉 개 정파(正派)와 개방(幇)이라는 한 개의 방(幇)으로 구성된 구파일방(九派一幇)이 있다.

    중원을 차지하는 者, 황제에 오르다

    무림 세계에도 타노스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진 거대한 악당이 등장한다. 사파(邪派) 또는 마교(魔敎)라고 불리는 거악이 등장하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 강호(江湖)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던 구파일방 고수들이 등장해 목숨을 걸고 이들과 싸운다. 

    고수들의 진가는 거악과 싸움이 끝난 후 발휘된다. 평화를 찾은 세상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와 평화, 일상의 작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퇴장해야 더욱 멋진 법이다. 

    쿤룬에서 발원한 황허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름진 충적층(alluvial, 沖積層)을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비옥한 토양을 중심으로 황허문명(黃河文明)이 꽃핀다. 중국인은 물산이 풍부한 그곳을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고 중원(中原)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허난(河南) 전역,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일부 지역이 중원이다. 

    중원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종주국인 주(周)의 근거지다. 주의 세력이 기울면서 중원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은 야심가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다. 중국 고대사를 보면 중원은 난세만 되면 영웅들이 각축(角逐)을 벌이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시대 배경인 후한(後漢) 때도 중원을 노린 영웅이 많았다. 환관 가문 출신의 지략가 조조(曹操)와 사세삼공(四世三公)의 후손 원소(袁紹)가 대표적이다. 출신만으로 인물을 평가하면 환관의 후손 조조는 명문거족 출신 원소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원가(袁家)는 4대(代)에 걸쳐 삼공(三公) 벼슬에 올랐다. 대단한 권세를 누린 것이다. 삼공은 특정한 관직을 일컫는 게 아니라 재상(宰相) 벼슬을 통칭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대한민국 공직으로 비교하면 총리,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이다. 

    그런데 원소에게는 반전이 있다. 대단한 조상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정실(正室) 출생 원술(袁術)과 달리 서출(庶出)이다. 따라서 가문의 후광만으로 원소가 모든 것을 이뤘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원소는 그가 이룬 업적에 맞게 재평가받을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왕좌’를 의미한 사슴

    조조와 원소는 중원을 차지하고자 경쟁했다. 승자 조조와 그의 후손은 역사적 소임을 다한 한(漢)을 대체한 위(魏)의 황제가 된다. 만약 원소 가문이 조조와의 중원 쟁탈전에서 이겼다면 ‘삼국지(三國志)’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다. 

    조조는 살아서 황제 노릇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황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사후 아들 조비(曹丕)에 의해 위왕(魏王)에서 무황제(武皇帝)로 추존된다. 조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중국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축록중원(逐鹿中原)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중원에서 사슴을 사냥한다”는 뜻이다. 이 해석만으로는 실제 뜻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사자성어 중에는 이렇게 은유(metaphor·隱喩)가 포함된 게 많다.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본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축록중원의 사슴(鹿)은 덩치 큰 발굽동물 사슴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그 답이 있다. 왕의 자리, 즉 왕좌(Throne·王座)가 사슴이다. 따라서 야심만만한 영웅들이 왕좌를 차지하고자 서로 경쟁하는 게 축록중원의 본뜻이다. 

    사슴이 왕좌를 상징하는 건 중국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 신라(新羅)는 삼국을 통일한 한반도 최초 통일국가다. 천년왕국 신라의 왕들은 금으로 만든 화려하고 멋진 왕관(crown·王冠)을 썼다. 그런데 임금이 머리에 무거운 왕관을 쓴 것은 단순히 멋을 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왕관은 왕이 가진 절대적 지위와 권위를 상징한다. 아무리 권력이 강한 신하도 감히 왕관을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신라 왕관을 자세히 보면 동물의 신체 부위를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름 아닌 수사슴의 화려한 뿔이다. 축록중원의 사슴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렇듯 사슴은 왕권을 나타내는 심벌(symbol)이다.

    축록중원, 토사구팽의 주인공 한신

    사슴뿔 형태를 띠고 있는 신라 금관(왼쪽)과 영화 ‘초한지’에서 토사구팽당하는 한신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Stellar Megamedia 배급사]

    사슴뿔 형태를 띠고 있는 신라 금관(왼쪽)과 영화 ‘초한지’에서 토사구팽당하는 한신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Stellar Megamedia 배급사]

    장기(將棋)는 동양의 대표적 두뇌 게임이다. 서양의 체스(chess)와 자주 비교되는데, 장기는 어느 천재의 번뜩인 창의성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장기는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 초(楚)와 한(漢)의 전쟁 기록이며 역사다. 

    초와 한이 중원의 사슴을 놓고 싸운 것은 진(秦)의 몰락에서 비롯됐다. 진시황(秦始皇)에 이어 중원의 주인, 즉 사슴을 차지하고자 경쟁한 영웅은 초의 항우(項羽)와 한의 유방(劉邦)이다. 그런데 두 영웅에 뒤지지 않는 세력을 가진 숨은 영웅도 있다. 

    초한대전에서 소외된 영웅은 한신(韓信)이다. 공식적으로 한신은 한왕 유방의 수하가 맞지만 당시 한신의 세력은 항우와 유방에 비견할 만했다. 준(準)독립적 군벌이라고 볼 수 있다. 한신은 항우나 유방처럼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미처 뜻을 펴기도 전에 유방에 의해 세력이 해체되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한신은 역사책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야사(野史)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신은 권력, 왕좌를 상징하는 사슴을 잡지 못해 죽임을 당한 비운의 주인공으로 회자(膾炙)된다. 결국 항우와 한신을 차례로 제압하고 중원이라는 사슴을 차지한 유방만이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또 다른 사자성어에서 한신은 항우라는 큰 토끼를 사냥한 후 자신의 주인인 유방에 의해 솥단지에서 삶아지는 가련한 사냥개로 등장한다. 목표를 달성한 후 이용 가치가 없어져 주인에게 배신당하거나 버려지는 운명을 의미하는 존재인 셈이다.

    괴통이 한신에게 제안한 사슴 사냥

    대장군 정도 되면 그 밑에서 책략을 내는 책사를 두게 된다. 대장군 한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괴통(通)이라는 꾀돌이 책사는 주군인 한신에게 한왕 유방의 수하로 만족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이는 자립(自立)을 의미했다. 나쁘게 말하면 역모를 일으키라고 고언한 것이다. 

    역모는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목을 내놓아야 한다. 대장군 한신에게 역모를 건의한 괴통도 그런 각오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제안이 한신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개국공신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을 배반한 역적이 돼 삼족이 멸하기 때문이다. 괴통은 그런 위험천만한 제안을 한신에게 한 것이다. 

    괴통이 한신에게 분립을 건의한 것은 400년 후 제갈량(諸葛亮)이 유비(劉備)에게 건의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와 상당 부분 흡사하다. 괴통이야말로 천하삼분지계의 최초 설계자 혹은 입안자라고 할 만하다. 

    2000년 넘게 흐른 지금의 시각으로 분석하면 괴통의 책략은 실현 가능했던 것 같다. 그는 중국 땅에 큰 사슴 한 마리가 아닌, 작은 사슴 여러 마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 작은 사슴의 주인으로 유방, 항우 그리고 한신을 생각한다. 괴통이 이 말을 꺼냈을 때 한신은 춘추전국시대 기준으로 위(魏), 조(趙), 대(代), 제(齊)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세력은 충분했다. 결단만 남았다. 한신의 의지만 있으면 새로운 나라가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회를 걷어찬 한신의 운명은 비참했다. 목숨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다. 

    한신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정치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하면 움켜쥐고 있던 작은 권력도 지키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화는 자신은 물론 주변에까지 미친다. 권력에는 눈물이 없다. 한신은 이 같은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한신이 채택하지 않은 천하삼분지계는 제갈량에 의해 부활한다. 제갈량의 계획은 중원에는 조조, 강동에는 손권(孫權)이 제업을 다졌기 때문에 제후의 리더십이 매우 취약하던 형주(荊州), 익주(益州)를 차지해 중국을 셋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제갈량도 중국의 사슴을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로 봤다.

    제갈량이 제안한 사슴 사냥에 성공한 유비

    유비. [미국 보스턴 미술관]

    유비. [미국 보스턴 미술관]

    그렇다고 제갈량에게 중원 수복의 의지가 없던 것은 아니다. 중원 수복은 사슴 세 마리를 한 마리로 묶는 것을 의미한다. 제갈량도 중원을 차지하지 못한 채 바둑판의 한 귀퉁이 같은 파촉(巴蜀)만 확보해서는 중국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았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주변 상황 변화를 살피면서 중원으로 진출하라고 첨언했다. 제갈량이 생각한 상황 변화는 흉노(匈奴), 오환(烏桓) 같은 유목민이 위의 국경을 침공하는 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비 사후 제갈량은 수차례 군사를 일으켜 위를 상대로 북벌(北伐)에 나섰으나 국력이 약한 촉한(蜀漢)이 위를 정벌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제갈량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촉한의 국력을 일찍 고갈시켜 버린 무리한 군사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촉한이 좁은 땅에 웅거(雄據)만 했다고 해서 멸망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제갈량의 제안으로 작은 사슴 사냥에 나선 유비의 군세는 전성기의 한신에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될 만큼 미미했다. 그런 보잘것없는 세력으로 유비는 제갈량의 계책을 실천했다. 촉한(蜀漢)이라는 독립국을 세우고 황제로 즉위한다. 유비가 한신과 달리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작은 사슴이라도 포획했기 때문이다. 유비가 한신보다 위대한 점은 이렇듯 과감한 추진력과 판단력을 갖춘 것이다. 

    천하삼분지계가 한신에 의해 기각된 후 괴통은 더는 주군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역모를 수용하지 않은 주인을 계속 섬기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괴통이 떠난 뒤에도 한신은 언행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야심을 드러내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일이다. 이러한 어중간한 행보가 한신의 수명을 줄였다. 한신은 결국 유방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대장군 한신은 군사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정치판 분석 능력이 부족했다. 정무적 감각이 유방에 못 미쳤다. 이미 큰 세력을 구축한 한신에게 필요한 능력은 전쟁에서 이기는 기술이 아닌 정치판을 읽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한신이 자신의 부족한 정무적 능력을 자각했다면 괴통 같은 꾀주머니 책사를 주변에 계속 남아 있게 해야 했다. 

    한신은 죽음을 앞두고 괴통의 책략을 따르지 않은 점을 후회한다. 이 같은 한탄이 유방 부부의 귀에 들어간다. 얼마나 졸장부(拙丈夫)인가. 입방정은 옛 부하인 괴통의 목숨을 위협한다. 괴통은 결국 유방의 포로가 된다. 하지만 괴통은 어리석은 옛 주인인 한신과 달랐다. 그는 목숨을 잃지 않았고, 옥살이도 하지 않았다. 석방된 것이다. 괴통은 한신과 달리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중심을 잘 잡았다.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논리 정연하게 유방에게 자신의 처지를 변론했다. 그가 펼친 논리는 대략 이랬다. 

    “진이 무너지면서 울타리 안에 있던 사슴이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전국의 영웅들은 진이 보유하던 사슴을 잡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그런 영웅 중에는 유방도 있었고, 항우도 있었다. 그리고 한때 주인으로 모셨던 한신도 있었다. 나는 한신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신하 신분이었다. 그러니 주인의 성공을 위해 천하를 삼분하자는 계책을 낸 것이다. 하지만 주인인 한신이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옛 주인은 죽고 나는 새로운 황제의 포로가 됐다. 모시던 주인을 위해 책략을 낸 것일 뿐인데. 어떻게 이것이 죄가 될 수 있느냐.” 

    거듭 읽어도 틀린 곳이 없다. 괴통을 죽이고 싶어도 이런 식의 논리를 펴는 상대를 이기기는 어렵다. 결국 괴통은 정연한 논리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물론 유방이 괴통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한신이라는 엄청난 시한폭탄이 제거됐기에 괴통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은 괴통을 살려둠으로써 민심을 얻으려 했다. 천하를 통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한 시점에 자신의 넓은 도량을 알린 것이다. 유방이야말로 중국이라는 사슴을 잡을 자격이 있는 사슴 사냥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