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미-중 코로나 백신 '속도' 경쟁에 도전받는 백신 안전성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6-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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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신 리더십 확보, 방역 실패 논란 잠재우기….

    • ‘코로나 발원지’ 중국 vs ‘확진자 1위’ 미국, 자존심 싸움

    • 고립주의 확산 여파로 ‘백신 국가주의’ 움직임

    • “바이러스 전쟁 이기는 나라가 세계 질서 주도한다”

    • 설익은 백신, 대재앙 초래할 수도

    앤소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5월 12일 상원 코로나19 관련 청문회에서 의
원들의 질의에 화상으로 답하고 있다. 그는 이날 “코로나 백신이 개발돼도 다 효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고 경고했다. [신화=뉴시스]

    앤소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5월 12일 상원 코로나19 관련 청문회에서 의 원들의 질의에 화상으로 답하고 있다. 그는 이날 “코로나 백신이 개발돼도 다 효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고 경고했다. [신화=뉴시스]

    세계 최고 강대국임을 자부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체면을 구긴 두 나라가 있다. G2로 불리는 미국, 중국이다. 코로나19 현황을 알려주는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5월 17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50만 명을 넘어섰다. 이중 9만여 명이 숨졌다. 감염자와 사망자 수 모두 세계에서 가장 많다. 

    중국은 최근 코로나19 발생이 소강세에 접어들었다. 같은 날 현재 확진자 수 8만여 명, 사망자는 4000명대다. 하지만 중국에는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오명이 붙었다. 초기 질병 관련 정보를 외부에 투명하게 알리지 않아 세계적 대유행을 초래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두 나라가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달 탐사’를 놓고 벌인 힘겨루기를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들이 특히 주력하는 부분은 개발 속도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일상생활 통제에 따르는 피로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백신 개발을 통해 자국 경제 정상화를 꾀하고 ‘방역 실패’ 논란을 잠재우며 ‘백신 리더십’을 통해 국제 사회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심산이다.

    동물실험 생략, 임상시험 단계 축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6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16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5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가운데 현재 임상시험 단계에 돌입한 것은 모두 7개다. △중국 3개(캉시눠·군사의학연구원, 중베이징커싱(시노백), 우한생물제품연구소) △미국 2개(모더나, 이노비오) △영국 1개(옥스퍼드대) △범유럽 1개(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텍·상하이 푸싱 파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속도를 내고 있는 쪽은 미국이다. 제약사 모더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3월 16일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건강한 18~55세 남녀 45명을 대상으로 6주 동안 임상 1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모더나는 보통 인체시험에 앞서 약물 안전성을 점검하고자 실시하는 동물실험마저 생략했을 만큼 백신 개발 시간 단축에 몰두하고 있다. 



    모더나는 또 이 약물을 임상시험 완료 이전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긴급처방허가’ 절차도 밟고 있다고 밝혔다. 긴급처방허가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 등 안전상 이유로 긴급하게 백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당사자 동의와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미리 백신을 주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중국도 3월 20일 우한 시민 108명을 대상으로 인민해방군 연구진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1상을 시작하며 백신 개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3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학자들을 상대로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고 주문한 지 2주 만이다. 중국 또한 비상 상황에 일정 범위 내에서 임상시험 필수 단계를 생략할 수 있도록 규정된 자국 의료법을 활용해 개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성 효능보다는 속도 경쟁 몰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3월 2일 베이징 중국 군사의학연구원을 방문해 연구진과 얘기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3월 2일 베이징 중국 군사의학연구원을 방문해 연구진과 얘기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뉴시스]

    중국은 백신 개발 등 실용분야뿐 아니라 코로나19 병원체 자체에 대한 기초연구에도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를 접했고 관련 연구 또한 가장 먼저 시작한 중국 학자들의 논문은 최근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과학 분야 저명 학술지에 잇달아 게재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4월 20일 코로나19 관련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감염 이후 면역 형성 과정이나 면역 지속 등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어서 (유행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백신 또는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코로나19에 대한 기초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이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는 자타공인 중국이다. 

    한편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지도부가 과학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손 놓고 있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는 4월 말 “내년 1월까지 3억 명에게 투약할 분량의 백신을 만들겠다”는 내용의 이른바 ‘작전명 초고속(Warp Speed)’ 프로젝트를 만들고 책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최고 감염병 전문가로 통하는 앤소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백신 개발에 적어도 12∼1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8개월로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개별 기업이 경쟁적으로 백신 개발에 뛰어드는 것을 지양하고 연방정부 자원을 활용해 가장 유망해 보이는 백신 후보만 추려 임상시험을 하도록 지원하는 등 효율적 관리에 나서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한편 총리, 왕세자 등 국가 주요 지도자가 줄줄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역시 체면을 구긴 영국도 최근 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매트 핸콕 영국 보건부장관은 4월 17일 옥스퍼드대의 백신 임상시험 시작 사실을 발표하며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각국 정부가 주도해 경쟁적으로 백신 속도전을 벌이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에는 10~15년에 이르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가장 빨리 개발된 것으로 평가받는 에볼라 백신도 출시까지 5년이 걸렸다. 2003년 유행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관련 백신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올해 말’ ‘내년 초’ 하는 식으로 시한을 정해 경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박혜숙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백신이 과학적 설계와 평가 없이 개발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 실용화하려면 일정 시간이 걸린다는 걸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준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CEVI)융합연구단 팀장도 “백신을 너무 성급하게 만들어서 만에 하나 부작용이 생기면 백신이 아닌 독을 접종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백신 국가주의의 위협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각국 정부와 학자, 제약기업이 똘똘 뭉쳐 단기간에 안전하고 유효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상황에서 국제적 백신 수요를 충당하려면 수십억 회 투여 분량을 생산해야 한다. 상당 기간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이때 분배 순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분열과 갈등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 한정된 백신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길은 고위험집단부터 접종하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세계 각국이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워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상식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에 본사와 공장이 있는 유명 제약사 ‘사노피’ 최고경영자는 5월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개발자금을 지원한 미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블룸버그통신 기자에게 “미국 정부가 사노피의 코로나19 백신 연구에 가장 먼저 자금을 지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만큼 가장 많은 양의 백신을 선주문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은 사노피의 백신 개발 프로젝트에 3000만 달러(약 360억 원)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에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트위터에 “코로나19 백신은 세계의 공공재여야 한다”는 글을 남겼고,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도 긴급 논평을 내고 “코로나19 백신 접근 기회는 공평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세계 각국은 마스크 등 개인 보호 장구와 의약품, 진단키트 등을 놓고도 경쟁을 벌인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중저소득 국가들은 최소한의 방역 인프라조차 마련하지 못해 애를 먹은 게 현실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를 막고자 국가별로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드러난 현상을 미뤄보면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다. 


    [GettyImage]

    [GettyImage]

    한편 우리나라는 현재 여러 연구자와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돌입한 물질은 없는 상태다. 5월 6일 송대섭 고려대 약학대 교수와 정대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동물임상을 실시한 결과, 중화 항체 형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 서브 유닛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 동물 효력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학자가 국제 저명 학술지에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논문도 많지 않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팀이 코로나19 발생 초기 확진자 28명을 분석해 작성한 논문을 4월 7일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게재한 것 정도가 전부다.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 삼아 앞으로 감염병 관련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공목적 백신 개발 펀드를 시범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바이러스 변이에 대비한 범용 백신 개발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 관련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한동안 유행과 완화를 반복하다 겨울철 다시 대유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 안전하고 유효한 백신 개발과 분배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앤소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5월 12일 상원 코로나19 관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화상으로 답하고 있다. 그는 이날 “코로나 백신이 개발돼도 다 효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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