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인문기행] 선문대할망과 제우스의 고향

제주도와 크레타 ‘7가지 닮은꼴’

  • 김원익 ㈔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입력2020-06-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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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과 대륙 경계…문명 꽃피울 최적지

    • 수탈과 억압의 역사, 자유를 꿈꾸는 섬

    • 제주방언처럼 독특한 크레타어에 자부심

    • 신들의 천국, 구렁이와 뱀 숭배도 비슷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섬. [GettyImage]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섬. [GettyImage]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위도 33~43도)와 그리스(위도 35~42도)는 위도상 비슷한 곳에 있다. 그리스 크레타섬은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그리스 본토 최남단에 있고,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처럼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면적은 크레타섬(8303㎢)이 제주도(1849㎢)의 4.5배가량 된다. 제주도의 남서쪽에 마라도가 있다면, 크레타 남서쪽에는 가브도스라는 섬이 있다. 그래서일까. 제주도와 크레타는 마치 전생에 자매나 되는 것처럼 서로 빼닮았다.

    ① 힐링의 요람과 미로(迷路)

    우선 제주도와 크레타는 관광 천국으로 ‘힐링의 요람’이다. 크레타는 한 해 전 세계에서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숫자만 보면 작년 관광객 1500만 명이 넘은 제주도에 비해 턱없이 적지만, 크레타 산업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높다. 

    또한 고대 크레타에는 ‘라비린토스’라는 미로(迷路)가 있었다. 라비린토스는 신화적으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던 감옥을, 현실적으로는 크노소스궁전의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많은 방을 의미했다. 

    제주도에도 그에 필적하는 미로가 있다. 제주도의 상징이 된 총연장 약 425km의 올레길이다. 라비린토스가 고대 크레타인의 풍요로운 삶을 상징했다면, 올레길은 현대인의 각박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치유의 길이다. 그래서 제주 올레길은 고대 크레타 라비린토스의 화신이다. 

    제주도 김녕에 아시아 유일의 ‘미로공원’이 있는 것도 제주와 크레타의 연관성을 더해준다. 미로공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주를 상징하는 바람, 여자, 돌을 주제로 만들어진 미로는 약 5㎞에 달하고, 돌하르방의 모습을 띤 현무암으로 만든 석축 미로는 약 2.3㎞로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이 밖에도 미로공원은 동서로 뻗어 있는 제주도의 형태, 제주인의 신앙 대상인 뱀, 제주의 자랑 조랑말, 제주도를 서양에 처음 소개한 하멜의 난파선, 고인돌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공원 내에 지어진 박물관에서는 그리스신화의 괴물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를 특수 장치를 통해 보여주고, 도자기·미술품 등 관련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② 문명을 꽃피우는 최적의 장소

    크레타섬의 고대 문화 유적. [GettyImage]

    크레타섬의 고대 문화 유적. [GettyImage]

    두 섬의 공통점은 또 있다. 지리적으로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예로부터 “경계에서 꽃이 핀다”라는 말이 있듯이 두 섬은 남쪽 해양 문명과 북쪽 대륙 문명을 중계할 수 있는 경계 지대에 놓여 있다. 기원전 3000년경 크레타가 남쪽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찬란한 해양 문명을 일구어내고, 기원전 1400년경 최전성기에는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 그것을 전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지리적인 장점 때문이었다. 

    제주도도 선사시대에는 분명 이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파묻혀버린 제주도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선사시대 찬란한 문명을 만든 크레타의 과거사로 보면 제주도는 장차 동북아시아의 경제와 문화 허브로 부상할 것이다.

    ③ 고난의 섬

    두 섬은 고난으로 점철된 섬이다. 제주는 탐라(耽羅)라는 독립국가로 시작했지만, 고려에 통합된 뒤 몽골, 왜, 심지어 본토에 의해 수탈의 대상이 되다가 광복 이후에는 4·3항쟁으로 씻을 수 없는 고초를 당했다. 

    크레타도 소위 크레타문명이라는 서양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 문명으로 시작하지만, 본토의 미케네문명에 의해 정복당한 뒤 로마, 베니스공화국, 오스만튀르크의 폭정과 억압에 시달리다가 1898년 독립을 쟁취해 잠시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 1913년 다시 그리스에 병합되는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인간에게 시련은 시련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련에는 보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스신화에서도 햇병아리 영웅들은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영웅다운 영웅으로 변모한다. 가령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 등 다른 영웅들에 비해 엄청난 시련을 겪었고, 죽은 뒤에는 신들의 왕 제우스에 의해 신의 반열에 올라선다. 시련의 바닥을 친 크레타와 제주도는 이제 상승과 도약이 남은 희망과 미래의 섬이다. 

    시련의 미학은 크레타와 제주도, 그 아들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시련은 문화예술의 거름이자 자양분이다. 문화예술인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는 뜻이다. 시련의 섬 크레타의 아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세계적인 문호로 존경받는 것도, 세계적인 화가 엘 그레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작곡가이자 민주투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디세우스 엘리티스가 크레타 출신인 것도 이런 사실을 방증한다. 

    추사 김정희가 시련의 섬 제주도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마무리한 것도,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 서양화가 강요배, 그리고 아버지가 제주 출신인 음악가 양방언을 각각 제주도의 카잔차키스, 엘 그레코, 테오도라키스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심연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제주도의 아들딸들은 앞으로 문화예술계의 수면으로 힘차게 부상할 수밖에 없다.

    ④ 말(言)에 대한 자부심

    제주인과 크레타인은 ‘육지 것’과는 다른 섬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뿌리 깊게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강한 자부심에서 드러난다. 제주어에는 ‘육지어’와 달리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사용하던 아래아(ㆍ), 반치음(ㅿ), 순경음 비읍(ㅸ)과 단어들이 꽤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한글의 원형과 제작 원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육지어’와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물론 제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1950년대 전후에 태어난 사람뿐 아니라 ‘제주어 가수’가 생길 정도로 제주어를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많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강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크레타인들도 제주인들처럼 크레타 고유의 방언을 즐겨 사용한다. 시골에서는 아주 젊은 세대임에도 여전히 크레타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1950년대 이후 태어나 현대 그리스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크레타 방언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크레타인들은 본토인들이 그런 자신들을 완고하다고 여겨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본토인들과 자신들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의 선조인 고대 크레타인들이 만든 ‘선상문자B’(線狀文字B, 기원전 15~12세기경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가 그리스어의 뿌리라는 사실에도 깊은 자긍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⑤ 자유에 대한 열망

    자유에 대한 열망도 비슷하다. 크레타 출신의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크레타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렇게 말한다. 

    “크레타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결정적인 시기에 크레타인으로 태어났다는 우연을 통해서,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는 삶보다도 고귀하고, 행복보다도 감미로운 선인 자유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 등장하는 제주민란의 주인공들, 방성칠·이재수 등도 카잔차키스의 ‘미할리스 대장’의 주인공처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국가 혹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억압과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초개처럼 버린다.

    ⑥ 선문대할망과 제우스, 신들의 고향

    크레타와 제주도는 ‘신화의 고향’이다. 제주도는 1만8000여 신이 살고 있는 그야말로 ‘신들의 고향’이다. 제주 신화는 크게 일반 신화, 당 신화, 조상 신화로 나눌 수 있는데, 신화마다 수많은 신의 내력과 행적이 실려 있다. 

    크레타도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딕테산에 있는 이른바 ‘제우스의 동굴’이 바로 그곳이다. 크레타의 제우스의 동굴은 제주도의 시조인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라는 삼신인이 모흥혈에서 솟아나, 벽랑국(碧浪國)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세 공주와 혼인식을 올리고 신혼살림을 차렸다는 혼인지(婚姻池)의 세 갈래 동굴을 연상시킨다. 

    특히 제주도 신화에는 ‘선문대할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할망’은 ‘할머니’의 제주 방언으로, 그리스신화의 기간테스만큼이나 엄청난 거구였다. 그녀가 빨래를 할 때면 엉덩이는 한라산을 깔고 앉고, 한쪽 발은 관탈섬에 놓고, 다른 한 발은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놓은 채,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사용했을 정도라니 그 키를 짐작할 만하다. 

    할망이 언젠가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치마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흙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땅으로 떨어진 흙이 쌓여 현재 제주도에 산재하는 360여 오름이 생겨났다. 그런데 할망은 왜 치마에 흙을 담아 날랐을까. 태초에 그 흙으로 현재의 제주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스신화의 가이아처럼 세계 각국 신화의 태초에 등장하는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 모신(母神)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⑦ 숭배의 대상인 뱀과 구렁이

    뱀 여신상.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뱀 여신상. [크레타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크레타에서는 양손에 뱀을 든 여신상이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뱀 여신은 가슴을 풀어헤친 채 양손에 뱀 두 마리의 몸통을 잡고 두 팔을 쳐들고 있거나, 뱀 두 마리를 양 팔목에 친친 감고 두 팔을 앞쪽으로 뻗은 두 종류가 있다. 고대 신화에서 뱀은 여신들의 수행원으로서 성물로 숭배됐다. 

    제주도 신화에도 ‘육지’와는 달리 구렁이나 뱀에 관한 신화가 아주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육지에서도 아득한 옛날 구렁이나 뱀을 집을 지켜주는 성물(聖物)로 여긴 적도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오랫동안 구렁이나 뱀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 구렁이나 뱀을 얼마나 신성시했으면 ‘칠성본풀이’ ‘월정 본향당’ ‘토산 여드렛당’ 신화의 주인공이 모두 뱀의 모습이었을까. 이들 무속 신화의 내용은 모두 사람들이 처음에는 구렁이나 뱀 신을 홀대했다가 불운을 겪게 되지만,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들을 잘 모셔 복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제주도 한림읍에 201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그리스신화박물관’이 생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신화박물관은 내부 공간을 창조관, 올림포스관, 신탁관, 영웅관, 휴먼관, 사랑관, 그리스 마을 등으로 나눠 관람객들이 그리스신화를 총 7가지 테마에 따라 그림, 조각, 영상 등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하며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제주의 그리스신화박물관은 유럽 여러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돼있는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유명 명화와 조각품을 200여 점이나 원형에 충실하고 꼼꼼하게 재현해서 전시해 놓고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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