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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 편의점 칼럼] 유시민의 사과에는 ‘사람’이 있었을까

가짜의 현란한 반성과 ‘공화국의 저승사자’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봉달호 편의점 칼럼] 유시민의 사과에는 ‘사람’이 있었을까

  • ● 北 보위부 반탐과 공작원 이춘길의 탈북
    ● 최말단 행동대장의 사죄 “용서를 바라며”
    ● “檢이 盧재단 계좌 사찰했다”는 선동
    ● 일견 잘 짜인 미문 속의 자기 과시(誇示)
    ● 운동 어설피 배운 사람들로 난장(亂場) 된 정부
    ● 얼치기 위선자들에게 영영 능욕당할 세상 아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

내가 한때 몸담았던 북한인권단체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하지 않았다.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거나 신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북한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외부에서 보고 느낀 자유의 기운을 북한 내부에서 직접 실천하도록 돕는 일이 ‘북한 민주화’라는 목표에 더욱 부합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 한 번 심각한 예외가 있었다. 함경북도 보위부 반탐과 소속 공작원 이춘길(1970년생) 씨를 한국에 데려온 일이다. 북한 보위부는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기구로, 그중 반탐과(反探課)는 간첩 검거를 담당하는 부서다. 북한 입장에서 간첩,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투사들을 잡아 죽이는 부서가 바로 반탐과다. 그 가운데 이춘길은 ‘납치조’ 공작원이었는데,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탈북자나 선교사, 반북(反北) 단체 활동가들을 체포해 북한에 끌고 가는 일을 전담했다. 2000년 중국에서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간 김동식 목사 사건도 그 납치조에서 한 일이다. 말하자면 인간 백정, 악질 중 악질이다. 

탈북자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은 하지 않던 단체가 ‘탈북자를 납치하는 사람’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하다니, 어쩌면 생뚱맞은 일탈이다. 유대인은 구출하지 않으면서 아우슈비츠 처형 기술자는 사지에서 건져준 격이다. 그것도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목표로 한다는 단체가 말이다.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내가 속한 단체에서 조직적 결정에 따라 한 일은 아니고 거의 내 독단으로 처리한 일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똑같은 결정을 하겠지만, 절차를 밟아 조직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뒤돌아 반성하는 일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을 이제 와 공개하는 배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춘길 씨가 지난해 이맘때 사망했다. ‘공화국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린 사람, 그렇게 많은 생명을 앗고 숱한 가족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존재도 생로병사의 순리를 비켜 갈 순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춘길 씨를 데려오는 과정, 그가 남·북한에서 한 일을 되돌아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정치 사회적 풍경과 겹쳐 떠오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한 권의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사건

이춘길은 국정원도 거부한 공작원이었다. 1999~2002년 사이 그는 수차례 선양, 칭다오,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찾아가 한국 망명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네 죄가 있는데 어찌 감히 대한민국으로 가려 하는가.” 선양 주재 총영사관에서 조사받을 때 취조관은 그렇게 말했다 한다. 이춘길은 결코 고위급 탈북자가 아니었고, 공작원으로서도 사실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최말단 행동대장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 정보기관 활동에 이래저래 손해를 끼친 부분도 많으니 당시 정부 담당자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게 그는 이쪽저쪽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신세가 됐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한국에 올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내게 e메일을 보냈던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e메일을 받았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 자기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인데 과거에는 탈북자를 잡아들이는 일을 했고 어쩌고저쩌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았다. 우리 단체가 탈북자를 데려오는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북한 보위부가 언제나 우리 단체 구성원들을 노리고 있었으니 그들의 역공작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무시하려 했는데 행간에 어떤 진실성이 느껴졌다. 저 사람도 사람인데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몇 차례 e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나는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단체 대표에게만 간단히 보고한 상태였다. 

그 뒤 이춘길이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는 한 권의 소설로 써도 될 만큼 드라마틱한 사건이 많았다. 영사관을 통해 정상적으로 입국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위조 여권을 갖고 비행기에 올라타는 수법이 동원됐는데(베트남 등 제3국 루트가 개척되기 전에는 많은 탈북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입국했다), 그 과정에 위조 사실이 들통나고 비행기가 연착되고 브로커가 체포되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이 잇따랐다. 삶만큼 파란만장한 우여곡절 끝에 그는 끝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 와서도, 보통 탈북자들은 관계기관에서 2~3개월가량 조사 절차를 거친 후 사회에 나오는데 그는 1년 가까이 조사받았다. 영구 수감(?)되는 것 아닌가 안절부절못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제대로 안착하지 못해 또 어찌나 말썽을 부렸던지…. 

여기에 그런 내용을 세세히 밝히는 것은 지면 성격상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내가 느낀 점은 어쨌든 그도 하나의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그도 사람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했고, 남한에 와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비로소 제정신을 찾기 시작했다. 술 마시면 자식들 사진 보여주며 한껏 자랑을 늘어놓는 ‘딸 바보’ ‘아들 바보’로 살다가 저세상에 갔다. 죽을 때까지 가족을 걱정했다. 

거창하게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惡)의 평범성’을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악’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에도 그 나름의 배경과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런 일들을 겪으며 절감하게 되었다. 구조로서의 악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의 조각은 어쨌든 사람이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굳이 비싼 인생 수업료까지 치르며 깨달았느냐고 한심하게 여길 독자가 많겠지만, 내가 그렇게 아둔한 사람이다.

그는 대체 누구에게 사과했나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1월 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사과에 대해 “유 이사장은 구체적인 거짓말을 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누가 허위정보를 제공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1월 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사과에 대해 “유 이사장은 구체적인 거짓말을 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누가 허위정보를 제공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화제를 돌려보자.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1년이 넘은 지난 1월 22일 사과했다. 간단히 사건을 소개하면 이렇다. 2019년 12월 24일 유 이사장은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노무현재단 은행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개인 계좌도 들여다봤을 것으로 짐작한다. 내 뒷조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했고 “내 처의 계좌도 다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살다 보면 누구든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으며, 유시민의 처지에서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상당수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주장은 이른바 ‘검언유착’ 프레임을 공고히 했고, 어떤 사람을 구속하거나 또 어떤 사람은 한직에 물러나게 만든 유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됐다. 또 그에 반대하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몰아세우는 논거로 쓰였다. 누가 누구를 ‘사찰’했다는데, 민주사회에서 그만큼 강력한 프레임이 어디 있겠나. 의심과 확신을 넘은 ‘선동’이다. 

결국 그의 말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현행 법규상 수사기관이 수사 목적으로 특정 계좌를 조회하게 되면 최장 1년 이내에 당사자에게 사실을 통보해 줘야 한다. 1년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면 얼마든 조회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유시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는 그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수차례에 걸쳐, 2020년 7월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까지, “한동훈 검사가 있던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계좌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구체성을 더해 주장했다. “내가 있지도 않은 일로 의심하고 비판해서 억울하다면 사실을 확인해 나를 혼내면 된다”라고까지 말했다. 결국 그는 1년이 지나서야, 계좌 조회 사실 통보의 최장 시한인 1년이 훌쩍 지나서야, 마지못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사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른바 ‘사과문’을 읽으며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과문인데, 특정한 사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보통 사과문이라면 누구누구에게 죄송하다는 구체적 지칭과 함께 피해(가해) 사실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데 그의 사과문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의 허위 주장은 구체적인 사람 몇 명을 곤경에 빠뜨렸고, 여러 차례 특정인에 대한 인격 모독을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서는 일절 한마디도 없다. 그저 ‘검찰 모든 관계자들께’ ‘후원회원 여러분께’ ‘시민 여러분께’라고 대상을 뭉뚱그려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사과한다. 모든 사과문이 ‘누구에게 사과한다’고 개별적일 필요는 없다지만 그는 대체 ‘누구’에게 사과한 것일까? 정말 사과하는 마음은 있던 것일까?

달랑 에어컨만 켜놓은 휑한 방

북한 보위부 반탐과 소속 공작원 고(故) 이춘길 씨가 자신의 공작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신동아’ 2003년 1월호에 쓴 사죄문.

북한 보위부 반탐과 소속 공작원 고(故) 이춘길 씨가 자신의 공작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신동아’ 2003년 1월호에 쓴 사죄문.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나 나는 이것이 유시민이 지닌 사고의 일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종종 그런 느낌을 가졌다. 똑똑하긴 한데, 그의 머리에는 과연 ‘사람’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주위에 살아 숨 쉬는 개개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을까? 물론 그는 ― 나아가 ‘그들’은 ― ‘사람’을 말한다. “사람이 먼저”라고 줄곧 외치고, 언제나 자기들은 사람을 위한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무엇 아닐까? 

유시민의 사과문은 일견 잘 짜인 미문이다.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의 뒷받침이 없는 의혹 제기는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합니다”라고 짐짓 절절한 표현을 담고 있고, 현명한 지식인(?)의 풍모를 내보인다. 

뒤이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라면서 성찰하는 태도마저 엿보인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기본을 어긴 행위였다”고 반성한다. 꼭 그렇게 삐딱하게 볼 필요 있느냐고 탓할 사람이 있겠지만, 늘 그렇듯 유시민은 사과 속에서도 과시가 느껴진다. ‘자기’는 있는데, 구체적 ‘인간’이 결여돼 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에어컨만 켜놓은 휑한 방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춘길은 한국에 입국하기 전 월간 ‘신동아’를 통해 육필 수기를 발표한 적 있다(2003년 1월호). 그 수기는 이렇게 사죄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헐벗고 굶주리는 2300만 민족을 구원하려는 일을 하다가 저에게 잡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총살형을 당한 박진만, 김덕성, 황만길, 박분옥, 강창남, 강성남, 김진구, 류영범 등 많은 님들의 영전에 용서를 바라며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한낱(?) 고졸 출신 북한 보위부 반탐과 납치조 하부 조직원도 이 정도 반성문은 쓸 줄 안다. 

이번 유시민의 사과문 가운데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는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를 폭로했다 사직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정권 사람들은 자신들을 절대 선(善)이라 여기는 것 같다’고 표현한 대목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절반만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정리는, 자신을 절대 선으로 여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절대 악’으로 박제한 데 있는 것 아닐까. “저놈들은 나쁜 놈들이니까 죽어도 괜찮아”라거나, “아무리 우리가 무능하고 부패했다 한들 저놈들보다는 낫다”는 인식 말이다. 그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 일탈을 얼마든 합리화한다. 오늘도 현재진행형, 지독한 현재진행형이다.

밑도 끝도 없이 ‘입’만 천하장사

현 정부를 흔히 ‘운동권 정부’라고 한다.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 청와대라고 말한다. 나는 이것도 절반만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을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로 난장(亂場)이 된 정부”라고 정의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공부했으면, 주체사상을 원론적으로 제대로 살펴봤다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저렇게 부족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저렇게 부족할 수도 없다. 솔직히 면면을 살피자면, 옛 운동권에서 이론가나 조직가, 이른바 ‘핵심’이었던 사람 가운데 현 정부에 입각한 사람은 없다. 죄다 어중이떠중이, 행동대장 출신들로만 가득 차 있다. 오늘의 행태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말이 나왔으니, 최근 어떤 1997년생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노맹’이 무슨 대단한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던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에 깜짝 놀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은수미 성남시장 등이 속해 있던 그 조직,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노맹은 망나니 조직이었다. 그 시절 운동을 한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남들 집회하고 있으면 옥상에서 사이렌 울리면서 ‘사회주의 쟁취하자’ 유인물 뿌리는 게 전부인 조직이었다. 유인물 내용에도 아무 알맹이가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사회주의’, 그게 전부였다. 유인물 뿌려 사회주의 새 세상이 될 것 같으면, 세상 어느 누가 사회주의혁명을 이루지 못할까? 

사노맹은 노동자 동맹이라면서 조직에 노동자도 거의 없었고, 현장에 노동조합 하나 제대로 만든 적 없다. 그저 망상에 가득한 사람들의 집단이었다고 해야 할까. ‘입’만 천하장사였다. 그런데 그것이 그 시대를 살지 않은 후대들의 눈에는 ‘민주화운동’으로 보이는구나, 역사는 이렇게 왜곡되는구나, 참담함마저 느꼈다. 그 조직에 속했던 사람들이 요즘 하는 경박한 언행을 보면, 역시 인간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존재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고개를 든다. 

유시민의 경우 또한 그렇다. 그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하는 ‘전과(前科)’는 사실 민간인을 프락치로 오인해 교내에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에서 비롯했다. 그 무슨 대단한 지하조직 활동을 했다거나 이념 전파를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스스로 명문(名文)이라 자랑하는 ‘항소이유서’의 출발이다. 처음부터 유시민의 관념에 ‘사람’이란 것이 존재했을까? 자아 이외에 타인이란 개념은 심성의 굴곡마다 존재했을까. 역시 그것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의 삶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궤적이 그렇다. 

1997년생 청년과 사노맹에 대한 대화를 나눈 즈음, 1954년생 노동운동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문득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 “사노맹에 현장 조직이 있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다 아는 걸 왜 물어보냐는 듯 허탈하게 웃더라. 사노맹과 관련한 몇 가지 ‘어처구니없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반평생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조직 활동에 전념했던 그분은 지금은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낸다. 가끔 손자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해 주는 것이 요즘 가장 큰 행복이란다. ‘진짜’는 그렇게 살고 가짜는 현란한 사과문을 발표한다. 

밝히자면 2003년 이춘길 씨를 한국으로 데려오던 때 상당한 액수의 비용이 소요됐다. 필자의 지인이 그 비용을 전액 댔다. 월급쟁이 살림 뻔한데, 적금을 깨 그 많은 돈을 선뜻 내주었다. ‘탈출 비용’에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수혜자인 이춘길 씨에게도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그 뒤로 자신이 이춘길을 데려왔다고 어디에도 자랑하지 않았다. 지금껏 ‘왼손이 한 일, 오른손이 몰라야 한다’며 살고 계신다. 오늘도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가 내게 돈을 건네며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람 목숨, 살려야 하지 않겠어?” 나는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끝으로 고(故) 이춘길의 명복을 빈다. 만 쉰 살. 세상과 이별하기엔 꽤 이른 죽음이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인 사람 이름 앞에 ‘고인’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언제나 먹먹한 경험이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이 사람아.



신동아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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