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57년 후 울려 퍼진 세 발의 총성[황승경의 Into the Arte]

영화 ‘콜리니 케이스’

  •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1-07-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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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살 소년의 아버지를 총살한 마이어 회장

    • 아들의 절규 “법이 바뀌면 정의도 바뀌는가”

    • 독일이 부역자들에게 준 면죄부 ‘드러 법’

    • ‘진실은 드러난다’는 심오한 정의의 메시지

    • 나치 후손이 쓴 베스트셀러 원작, 살아 있는 감동

    영화 ‘콜리니 케이스’ 포스터.

    영화 ‘콜리니 케이스’ 포스터.

    파브리치오 콜리니(왼쪽)와 카스파 라이넨. [콘스탄틴 필름 제공]

    파브리치오 콜리니(왼쪽)와 카스파 라이넨. [콘스탄틴 필름 제공]

    지난 4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던 윤호중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당선되며 위원장직을 사임하면서 법사위원장 선출을 놓고 다시 여야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1년 전,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여야가 맞붙었다가 결국 야당의 반발 속에 상임위원장을 모두 여당이 차지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법사위원회는 국회 개별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체계와 자구를 다시 심사해 본회의에 올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치국가에서 법사위원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법사위원회 내부 합의도 중요하지만, 통과냐 계류냐 기로에 선 법안은 위원장의 의사봉 3번 ‘땅땅땅’으로 결정된다.

    구성원 내부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법이 과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공정한 처벌을 위한 잣대가 될 수 있을까. 힘과 권력을 견제하는 법의 이면을 고발하며 법이 심판하지 못한 정의를 57년 만에 직접 구현하는 ‘콜리니 케이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1년 독일 베를린의 호텔 스위트룸에서 대기업 MMF 회장인 예안-밥티스테 마이어(만프레드 자파스카 분)가 잔인하게 살해된다. 살인자는 총을 3발이나 쏜 것도 모자라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을 신발이 망가질 때까지 있는 힘껏 걷어찬다. 피해자의 살점이 사방으로 튄 살인 현장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언론은 독일연방공화국 훈장까지 받은 저명한 대기업 회장이 대낮에 총살당한 사건을 집중 보도한다. 이 대형 사건은 3개월 된 신참 국선변호사 카스파 라이넨(엘리아스 엠바렉 분)에게 배당된다.

    법은 정의의 편인가?

    [콘스탄틴 필름 제공]

    [콘스탄틴 필름 제공]

    라이넨 변호사는 법정에서 마이크를 켜는 것도 잊어버리고, 피고와 면담하는 데 법복을 입는 실수를 연발하는 초보 변호사다. 참혹한 살인자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몬테카티니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 파브리치오 콜리니(프랑코 네로 분).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수나 있을지 관객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라이넨 변호사는 피해자인 마이어 회장과 개인적으로 남다른 인연이 있어 재판을 피하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어서 변호사로 선임된다. 사실 마이어 회장은 손자 필립의 친구인 터키계 라이넨 변호사를 물심양면 후원해 준 은인이었다. 덕분에 그는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묵비권으로 말문을 닫아버린 콜리니와 마주한 라이넨 변호사는 연거푸 살해 동기에 대해 묻지만 콜리니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마이어 회장에 대해 “2살 때 집 나간 아버지 대신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주신 분”이라고 이야기하는 변호사를 향해 콜리니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생뚱맞은 말만 할 뿐이다. 그러고는 변호사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다시 말문을 닫는다. 라이넨 변호사는 빨리 자백을 받아내려 하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콜리니 때문에 고심이 깊어간다. 한데 대면하면 할수록 콜리니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빠져들고 점차 심경의 변화를 맞는다. 특히 살인 무기인 ‘발터P38’은 히틀러가 자살할 때 사용한 권총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자동권총이다. 반동도 세고 구하기도 힘든 구닥다리 발터P38은 살인에 적합하지 않다. 증거물을 유심히 바라보던 라이넨 변호사는 마이어 회장이 서재 깊숙이 숨겨둔 같은 기종의 총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발견한 그 총이었다.



    마이어 회장의 변호사인 리하르트 마팅거(하이너 라우터 바흐 분) 교수의 회유와 마이어 집안과의 사적 인연을 뿌리치고 라이넨은 정의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다. 콜리니의 고향 이탈리아 몬테카티니로 날아가며 라이넨은 진실에 한 걸음 가까이 간다.

    히틀러 추종자의 후손, 작가 폰 시라흐

    영화 ‘콜리니 케이스’는 페르디난트 폰 시라흐(57)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변호사이자 소설가로 두 분야에서 모두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시라흐의 뿌리를 보면 이 소설이 더욱 눈에 띈다. 그의 조부 발두허 폰 시라흐(1904~1974)는 히틀러 추종자로, 히틀러 유겐트(나치 청년 조직)의 대장으로 나치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다. 종전 후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조모 헨리에타의 아버지, 즉 작가의 외증조부 하인리히 호프만(1885~1957)은 히틀러의 전속 사진사이자 절친한 친구로 나치 정부 핵심 참모였다. 히틀러의 여인인 에바 브라운을 히틀러에게 소개해 준 이도 호프만이었다.

    조상의 이력에 대한 작가의 고뇌 어린 속죄일까. 독자는 현장감 있는 전개와 빠른 흡입력에 몰입돼 원작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마르코 크레즈페이트너(44) 감독은 원작의 깊이를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하며 거듭되는 반전 속에 감동의 울림을 선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독일과 이탈리아와 이 살인사건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난해 이탈리아의 로마 정치사회경제연구소(EURISPES)가 펴낸 ‘이탈리아 2020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민의 19.8%는 파시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솔리니는 독일의 히틀러와는 결이 다르다. 히틀러는 1922년 정권을 잡은 무솔리니의 친위대, 소년단, 의상, 인사법, 레토릭, 연설법 등 일거수일투족을 답습했다. 이를테면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히틀러 나치즘의 ‘원조격’이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군사 분야에서는 한없이 무능했다. 전쟁에서 패전을 거듭하며 후퇴만 되풀이하다가 급기야 1943년 7월 시칠리아까지 연합군에 내줬다. 무솔리니는 곧바로 실각한다. 무솔리니가 없는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자, 독일은 1943년 9월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살로 공화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운다. 이탈리아 반도는 두 동강이 나서 남쪽은 연합군이, 북쪽은 독일군에 점령된다. 이탈리아인들은 무솔리니라는 잔인한 독재자가 사라지면 천국이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또 다른 지옥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1960년 개봉한 빅토리오 데 시카 감독,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두 여인’은 연합군 측 프랑스군인 모로코 부대에 처참하게 윤간당하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유대인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 가족의 아우슈비츠행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1938년 히틀러와 동맹을 맺은 무솔리니 정권은 독일의 반유대인법을 가져와 이탈리아 거주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빼앗기는 했지만 유대인을 타국 수용소로 보내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1943년 9월 이후 독일이 이탈리아 북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자, 유대인을 태운 많은 화물열차는 아우슈비츠로 향하게 된다.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마이어 회장의 손녀 요한나(오른쪽). [콘스탄틴 필름 제공]

    마이어 회장의 손녀 요한나(오른쪽). [콘스탄틴 필름 제공]

    이제 영화 속 파브리치오 콜리니의 인생이 멈춘 1944년 6월 19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예안-밥티스테 마이어 회장의 개명 전 이름은 한스 마이어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로 1943년 9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이탈리아에서 복무한다.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이 독일군이 자주 드나드는 피사의 한 카페를 습격해 독일군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이어는 “레지스탕스를 숨겨주는 동조자들까지 모두 척결해야 한다”며 ‘지도 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한 지명을 고른다. 그러고는 밤 10시에 병사들을 이끌고 50km 떨어진 몬테카티니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오붓하게 저녁 일상을 즐기는 조용한 시골 마을 주민들은 난데없이 침입한 독일군에 의해 모두 광장으로 끌려 나온다. 무작위로 희생자를 찾던 한 독일 병사는 당시 열 살 소년을 보복희생자로 선별한다. 이를 막은 마이어는 소년에게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묻고는 그 소년이 가리키는 아버지를 희생자 대열에 대신 합류시킨다. 무고한 민간인 20명은 차례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총살당한다. 아버지 차례가 되자 더욱 울부짖는 열 살 소년에게 마이어는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알려주겠다”고 속삭인다. 이 열 살 소년은 57년 후 독일군 장교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똑같이 이 말을 읊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26세 독일장교는 이렇게 한 동네 전체를 초상집으로 만들어버렸고, 열 살 소년의 인생은 그날 멈춰버렸다.

    잠시 재판은 휴정되고 마이어의 손녀 요한나는 라이넨 변호사에게 자신의 할아버지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이는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도피해 철저하게 숨어 살던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혀 이스라엘 법정에서 한 항변과 같다. 전범으로 유대인 수용소 이송 실무책임자였음에도 그가 법정에서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말은 “상부의 명령을 따라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아이히만을 비롯한 독일군 장교들의 모순적인 자아도취 논리는 영화 ‘아이히만 쇼’(2015)와 ‘한나 아렌트’(2012)에서 잘 나타난다.

    법정 방청객이 동요했지만, 마이어의 변호사인 마팅거 교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곧 새로운 반격을 시작한다. 1968년 콜리니는 누나와 함께 마이어 회장을 독일 검찰에 형사 고소한 적이 있고, 이듬해 독일 검찰은 “수사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수사를 중단했다. 즉, 이탈리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논의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고, 파브리치오는 무고한 사람을 처참하게 죽인 셈이 된다. 마팅거 교수의 웃음에 라이넨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살인사건의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과거 독일군의 잔악한 악행까지 덮어지며 모든 것이 끝난 듯해 보였다.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법정에 선 파브리치오 콜리니와 그를 변호하는 라이넨 변호사. [콘스탄틴 필름 제공]

    법정에 선 파브리치오 콜리니와 그를 변호하는 라이넨 변호사. [콘스탄틴 필름 제공]

    교도소 면담실에서 변호사와 다시 마주한 파브리치오는 1968년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콜리니 남매는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마이어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가족은 골수에 맺힌 한을 품고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살아왔는데 독일 법원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 냈다. 과연 이것이 법의 정의냐고 묻는 파브리치오의 절규를 들은 라이넨 변호사는 정의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는 1968년으로 돌아가 산더미같이 쌓인 당시 자료 중에 한 사람을 찾아낸다. 에두아르트 드러(1907~1996). 대표적인 나치 법무부 고위 관료로, 배고픔에 음식을 훔친 자에게까지 사형을 구형한 적이 있는 극단적 성향의 냉혈 법조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단죄받을 줄 알았던 그는 용케 처벌을 피해 1951년 연방 법무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1954년부터 1969년까지 형법 개혁을 담당했는데, 그는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들이 법적으로 만료될 면책 조항을 만들었다. 어이없게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았다. 그는 나치 정부의 지시를 이행한 군인들의 범죄는 ‘과실치사’로 구형된다는 형사법을 관철시켰다. 과실치사 공소시효는 20년이기 때문에, 이 법은 수많은 전범에게 면죄부를 줬다. 즉 1969년 독일 검찰이 마이어 수사를 종료한 것은 마이어의 유무죄 때문이 아니라 법 개정으로 인한 공소시효 만료 때문이었다. 1968년 5월에 시행된 일명 ‘드러 법’ 탓에 불과 몇 개월 차이로 남매의 고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나치전범이 미꾸라지처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을까. 이로써 법정에 서는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던 학살자들은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콜리니의 복수, 심오한 정의의 메시지

    라이넨 변호사는 마이어의 변호인인 마팅거 교수가 당시 법무부 수습변호사로, 드러의 행정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참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팅거 교수를 증인으로 불러 세워 1969년을 기준으로 삼은 그 법이 정의로운지 되묻는다. 과거에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법정의 냉소적인 기운에 마팅거 교수는 1968년 ‘드러 법’이 잘못된 법질서였음을 실토하고 지금의 국제법에 따르면 마이어는 전범으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가해자 징벌을 위한 합법적 통로가 모두 막혀버린 콜리니는 직접 정의의 심판대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진실을 감췄지만 마이어 회장은 법보다 무서운 정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파브리치오의 복수가 면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심오한 정의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날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독일 정치인들은 종종 일본과 비교된다. 그래서 우리는 전후 독일이 나치 전범들을 확실하게 심판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친일파를 그대로 등용했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나치 전범 일부는 사회 엘리트로 남아 입맛대로 법을 제정하고 집행했다. 그들은 이 법으로 모든 범죄가 묻힐 줄 알았을 것이다. 얽히고설킨 인간사에서 과거사를 무 자르듯 단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 또한 후세에 냉혹하게 평가될 것이다.

    #황승경 #콜리니케이스 #나치 #정의 #신동아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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