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00로 XX’ 한 줄 주소는 정체성과 욕망의 교차로

[책 속으로]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2-01-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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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이야기
    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496쪽, 1만8000원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9. 기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건물 주소다. 우편이나 배송을 받을 때 쓰는 한 줄 문구에 지나지 않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우선 홀수인 건물 번호는 이 건물이 도로 기점에서 바라볼 때 왼쪽에 놓여 있음을 말해 준다. 거리 이름 ‘충정’은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대한제국의 대신 충정공(忠正公) 민영환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충정로 인근 주한 프랑스 대사관 자리에 그의 별장이 있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서울시가 그의 행적을 기려 이름 붙였다. 주소에는 경제적 가치도 들어 있다. 만일 이 건물이 매물로 나온다면 서울지하철 충정로역과 서대문역 사이에 있는 ‘더블 역세권’이라는 위치가 돈으로 환원될 것이다.

    이처럼 책 ‘주소 이야기’는 주소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자 작가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다양한 지면을 학술적이고 흥미로운 글로 채워왔다. 이번 책은 저자가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에 주소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이후 전 세계 독자로부터 주소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해 듣게 되며 저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거리 이름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내용을 짐작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영국 런던을 비롯해 인도·독일·미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직접 방문해 주소가 어떻게 공중보건 및 빈곤 문제와 연관되는지, 주소 변경에 어떤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는지 등을 자세히 살핀다. 영국에서 ‘교회(church)’나 ‘예배당(chapel)’ 같은 단어가 주소에 들어간 지역에 사는 이들의 신앙심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등 주소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이야기도 한 챕터를 차지한다. 길(路) 중심의 서구권 주소 체계와 구역 중심인 우리나라 주소 체계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이 차이가 공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부동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주소를 사고팔 수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 사례를 소개하며 특정 주소를 획득하는 일이 사회적 계급과 지위를 얻는 일과 같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 출간된 책 ‘대치동’(저자 조장훈)이 떠오른다. ‘주소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면 부동산과 학벌에 관한 한국 사회 욕망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지역을 통해 다룬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소 #도로명 #욕망 #부동산 #신동아


    권력과 풍수: 땅으로 읽는 과거·현재·미래
    김두규 지음, 홀리데이북스, 268쪽, 1만8000원

    “부동산 투자와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입지·입지·입지’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얘기다. 최근 투자처를 고르고자 풍수를 공부하는 이가 늘고 있다.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트럼프가 대표 사례다. 김 교수는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山主人, 水主財)” 같은 풍수 원리를 바탕으로 구체적 방법을 소개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인플루엔셜, 320쪽, 1만6000원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1948년 태어났다. 파리정치대 교수를 지냈고,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르노도상’과 ‘메디치상’을 석권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손꼽히는 그가 ‘노년’이라는 삶의 무게에 굴복하지 않고 멋지게 살아갈 방법을 제안한 책. ‘포기를 포기하라’ ‘루틴으로 생활의 뼈대를 바로 세우라’ ‘죽는 날까지 사랑하라’ 등 구체적 조언을 담았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492쪽, 2만5000원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는 일흔이 넘은 1546년, 교황으로부터 성베드로 성당 건축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불과 얼마 전 “나는 노인이고, 죽음은 내게서 청춘의 꿈을 빼앗아 간다”라는 시를 썼을 만큼 정신과 육체의 쇠락을 느끼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도전’을 통해 얻은 것을 미국 워싱턴대 미술사 석좌교수인 저자가 정리했다.



    스토리의 기술
    피터 거버 지음, 김동규 옮김, 라이팅하우스, 388쪽, 1만7000원

    저자 피터 거버는 컬럼비아픽처스 사장, 소니픽처스 회장을 역임한 미국 콘텐츠 업계 ‘큰손’이다. ‘배트맨’ ‘레인맨’ 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미국 UCLA에서 30년 넘게 스토리텔링을 강의한 그가 ‘사람을 사로잡는 이야기의 비밀’을 풀어낸 책. 저자는 “콘텐츠 비즈니스는 감정 전달 게임이며, 스토리의 기술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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