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동훈에 망신당하는 野, 구원투수 81세 朴?

꺼지지 않는 불씨, 박지원이 사는 법

  •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3-09-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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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2년생 현역, 바이든과 동갑내기

    • DJ 정권 실세, 박근혜 탄핵 주역

    • 정치 9단 vs 꼼수에 능한 모략가

    • 공천 부담에도 저격수 필요한 野

    • 차기 대선 킹메이커 역할론 솔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해피격’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9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뉴스1]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해피격’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9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뉴스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광고 카피다. 대학 강의실에서 들어선 노신사.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탓에 교수인 줄 알았는데 이윽고 대학생 같은 젊은 교수가 등장한다. 배움과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는 역발상을 강조한 아이디어였다.

    현실에서는 장유유서를 전복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는 유독 더 그렇다. 높은 나이는 풍부한 정치 경륜과 지혜로 포장된다. 청년정치의 빈곤은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고령화를 상징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년정치의 장식품으로 소모됐다. 다만 정치인의 나이에도 예외는 있다. ‘다선 중진’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배제의 대상이다. 존중은 없다. 총선 때마다 세대교체의 압박은 무시무시하다. 물갈이 비율은 50% 안팎이다.

    “올드보이의 노욕이다.” 모든 분야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여의도는 철옹성이다. 올드보이 전성시대다.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 권토중래를 노린다. 여론은 따갑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면 안 된다는 인식 탓이다. 물론 권력의지는 나이와 상관없다. 여야 올드보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다. 1942년생으로 만 81세다. 고령에도 재선 도전 논란을 빚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동갑이다. 현실 정치에서 은퇴할 나이다.

    박지원 전 원장의 열정은 끝이 없다. 40·50대 현역 초·재선 의원 못잖다. 때로는 오뚝이처럼 때로는 잡초처럼, 질긴 정치생명을 선보였지만 노욕이라는 비판은 걸림돌이다. ‘정치 9단’ 박 전 원장은 총선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명할까. 가능성은 반반이다.

    盧·李·朴·文 거쳐 尹 정부까지

    2002년 10월 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동아DB]

    2002년 10월 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동아DB]

    박 전 원장의 정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현대 한국 정치 산증인이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50세 나이로 금배지를 단 이후 30년 이상 정치 일선에서 활동했다. 74세의 한덕수 국무총리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까지 보수·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중용된 것 이상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쳐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현역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모두 겪었다. 당과 정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당정청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출발은 DJ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미국 뉴욕 한인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였던 박 전 원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미국에서 평생의 정치 스승인 DJ를 만났다. 이후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나선 DJ를 물심양면 후원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귀국한 이래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경기 부천 소사에 출마했지만 김문수 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게 패했다. 1997년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에는 정권 실세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중용되면서 동교동계 가신 그룹의 질투와 견제를 받을 정도였다.

    최대 시련기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DJ정부 시절만 해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2인자였지만 끝없는 정치적 추락이 이어졌다. 대북송금 사건의 여파로 옥고를 치렀고 건강도 악화됐다. 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12월 특별사면 이후 이듬해 4월 18대 총선에 무소속 출마했다. DJ의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당선됐다.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19대 총선, 국민의당 소속으로 20대 총선에 나서 연달아 이겼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민주당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지내는 금자탑을 세웠다. 2016년 말 국정농단·탄핵사태 당시에는 “탄핵 열차는 출발했다”는 명언을 남기며 정치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야권 대주주인 친노·친문과는 악연과 화해를 반복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송금 사건의 여파와 늦어진 특별사면을 둘러싼 앙금 탓이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자웅을 겨뤘다. ‘김대중 vs 노무현’의 대리전으로 불린 전대 혈투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겼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과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 싹쓸이에 성공하면서 문 전 대통령을 최대 위기로 내몰았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지원에 나서 ‘문모닝’으로 불리면서 저격수 역할을 했다. 아침 회의 시작 때마다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대선 이후 문모닝에서 굿모닝으로 대전환이 이뤄졌다. 화해의 계기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최고조였다. 박 전 원장은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일원으로 문 전 대통령을 특별 수행했다. 결국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위기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북·미 대화 중재와 남북관계 개선에 전력을 기울이던 문 전 대통령이 그를 국정원장으로 파격 발탁한 것이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의 숨은 주역이던 박 전 원장으로서는 금의환향이었다. 박 전 원장은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금귀월래’ 창시자에서 촌철살인 패널로

    정치인 박지원의 미덕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지런함’이다. 박 전 원장의 성실성을 과거 DJ도 인정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는 매일 새벽 5시면 DJ의 자택인 동교동으로 출근해 주요 현안과 업무를 보고했다. 전날 수십여 잔의 폭탄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는 후일담도 유명하다. ‘금귀월래(金歸月來)’라는 표현 역시 박 전 원장의 성실성을 증명하는 단어다. 현역 시절 매주 금요일 목포 지역구로 내려가 지역 현안과 민원 등을 처리한 뒤 월요일 새벽에 서울 여의도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서울과 거리가 먼 영·호남 상당수 의원들이 중앙정치에 매몰돼 지역구를 소홀히 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박 전 원장은 말과 글을 잘 다루는 정치인으로 프레스 프렌들리하다. “국회의원은 기자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정치인은 가족이나 지인이 아니라 기자와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 등 대표 어록은 초선 의원들의 바이블이다. 또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라는 명언으로 과거 여야 관계가 험악할 때도 촌철살인의 유머를 잊지 않았다. 그 덕분에 여야 어떤 정치인보다도 언론플레이에 능했다. 여의도에 상주하는 정치부 기자들은 정보가 부족할 때마다 ‘박지원’을 찾았다. 기자들의 백콜 요청에도 적극적이었다. 시니어·주니어 가리지 않고 격의 없이 대했다. 박 전 원장은 수많은 취재진과 정보를 둘러싼 밀당 게임에서 본인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정치에도 능수능란했다. 가끔 오발탄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과녁에 적중했다.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이다. 시간만 맞는다면 섭외를 좀체 거절하지 않는다. 본인 수첩에는 공중파 3사, 종합편성채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지역방송 일정까지 빼곡하다. 이에 거의 매일 TV와 라디오에서 박 전 원장의 얼굴과 음성을 접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특강 요청도 쉴 새 없이 밀려든다. 국내외 정치 현안에 대한 정치인 박지원의 분석과 전망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박 전 원장은 ‘청문회 저격수’로도 유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주당 원내대표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박 남매’로 맹활약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요직을 거치며 다진 두터운 인맥과 뛰어난 정보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를 이끌어냈다. 유명 어록도 남겼다. 고위 공직 후보자가 되기 위해 위장취업, 세금탈루, 병역기피, 부동산투기 4대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풍자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청문회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막상 본인의 국정원장 청문회 당시에는 보수 진영의 복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모든 장점을 종합하면 박 전 원장은 한마디로 ‘정치 9단’이다. 반대로 야박한 평가도 없지 않다. ‘정치 9단’은 지나친 과대평가라는 것이다. 정치철학이나 신념을 내세운 정석(定石) 정치가 아니라 얕은 꼼수에 능수능란한 모략가 스타일이라는 평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패기 없는 초·재선, 원로 귀환 토양

    총선 국면에서 ‘다선 중진’은 애물단지다. 기성 정치에 대한 높은 국민적 불신 탓이다. 늘 물갈이의 대상이다. 당선이 손쉬운 정치적 텃밭에서 3선 이상을 지내면 압박에 시달린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영남, 민주당은 호남이다. 공천이 곧 총선 당선증과 마찬가지인 지역이다. 수요는 넘쳐나면서 경쟁이 치열하다. 4선 또는 5선 정치인들은 ‘용퇴’라는 이름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 압박은 심해진다. 거의 유일한 탈출구는 수도권 또는 험지 출마다. 민주당은 역대 총선을 거치며 그 나름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전북에서 4선을 지낸 정 전 의장은 정치 1번지 서울 종로를,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 전 총리도 대구 수성을을 택해 승리했다.

    21대 국회 임기는 한국 정치사에서 초·재선의 목소리가 가장 약한 시기로 꼽힌다. 소장파로 불린 그룹들은 강성 팬덤의 영향력 앞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나 민주당 시절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와 같은 비주류 개혁 그룹은 소멸했다.

    패기 없는 여야 초·재선을 보고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의정활동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이거나 대중 정치인으로 비약적 성장을 보이는 젊은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과거 영광을 뒤로하고 너도나도 올드보이들이 뛰어들고 있다. 민주당만 해도 박 전 원장을 비롯해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이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만만치 않다. 친박 좌장으로 불린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출마설도 끊이지 않는다.

    올드보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놓고 논란은 분분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드보이 기준이 애매하다. 선수로 이야기해도 나이로 이야기해도 문제”라면서 “민주주의라는 것 모두 유권자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의회 정치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비율이 50% 안팎에 달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올드보이의 빈번한 등장이 소선구제 때문이라는 나온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올드보이 논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건 노장청의 조화”라면서 “소선거구제 특성상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혐오가 심할수록 올드보이의 교체가 역설적으로 어려워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구관이 명관이다”

    9월 6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 본청 앞 천막을 찾았다. [뉴스1]

    9월 6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 본청 앞 천막을 찾았다. [뉴스1]

    박 전 원장은 1942년 6월 전남 진도 태생이다. 한때 전남 목포 출마설이 돌았지만 박 전 원장은 최근 전남 해남으로 주소를 이전한 뒤 22대 총선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다만 노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박 전 원장은 내년 총선 출마는 ‘올드보이의 노욕’이라는 비판에 대해 자신은 “스마트보이”라고 반박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에 동의했다. 최 원장은 “과거 올드보이의 판단 기준은 나이와 선수였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특히 고령화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물학적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야를 넘나든 킹메이커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로 들면서 “정치 9단이라는 다소 노회한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박 전 원장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젊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거들었다.

    문제는 민주당 공천 여부다. 박 전 원장은 정치인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경험했다.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갈이 파동을 고려하면 공천 문턱은 매우 높다.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여야를 대표하는 올드보이를 당선이 손쉬운 텃밭에 공천할 경우 개혁공천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특히 총선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수도권 선거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저격수 한 명이라도 아쉬운 마당에 흑묘백묘론이 부상할 수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망신당하는 민주당의 전투력을 돌이켜 보면 박 전 원장의 쓰임새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만 86세대의 정계 은퇴론마저 불거지는 상황에서 한 세대 앞선 박 전 원장의 공천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공천이 어렵다면 최선의 선택지는 무소속 출마로 당선된 이후 민주당에 복당하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마지막 정치 인생을 고향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점과 고령층 유권자
    에 대한 소구력을 감안할 때 박 전 원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은 높은 편”이라면서 “무소속 출마 여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과 박 전 원장의 윈-윈 효과는 험지 출마가 전제될 때다. 보수의 심장부인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나 서울 강남 3구 등이다. 험지 인재난을 해소하고 바람몰이가 가능하다. 다만 박 전 원장의 총선 출마지역은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박 전 원장의 페이스북에는 해남·진도·완도에서의 활동상이 빼곡하다.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다.

    박 전 원장은 난관을 뚫고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관건은 22대 총선 성적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진 원장은 “박 전 원장이 민주당 공천과 관계없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선을 디자인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총선 이후 이재명 대표가 차기 주자로 살아남으면 총력으로 도와줄 것이고 아웃된다면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차재원 교수는 “박 전 원장이 무소속으로 살아온다면 할 수 없지만 민주당이 공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박지원·정동영·천정배보다 젊은 세대인 586 교체론도 힘을 받고 있는데 민주당 공천은 어렵다. 박 전 원장을 호남에 공천하면 5% 안팎의 박빙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5석 안팎을 날린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신동아 10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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