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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년, 매우 예외적 ‘민주당 전성시대’

[최병천, 겹눈으로 보다] 역대 총선 결과로 해부한 한국 정치 구도

  •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입력2023-10-1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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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힘 46.3% 민주 40.7% 地形

    • 민주당 총선 전적은 3승 6패

    • 탄핵 에너지, 文 정부 거쳐 소진

    • 금태섭·양향자 신당 전망 비관적

    • 정의당 어려워진 근본 이유

    2020년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제21대 총선 개표 상황실. 민주당은 국회 전체 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얻으며 압승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0년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제21대 총선 개표 상황실. 민주당은 국회 전체 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을 얻으며 압승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6년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이 된다. 2016년 10월 ‘최순실 태블릿PC 사태’가 터진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다. 이후 민주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모두 대승한다.

    2024년 4월 총선이 열린다. 민주당 쪽 사람들은 2016~2020년의 정치 구조를 ‘원래’ 그런 것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이 시기는 매우 예외적인 ‘민주당 전성시대’였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DJP연합이다. 김종필은 박정희와 함께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사람이다. 진보 쪽에서는 김대중이 ‘야합’했다고 공격했다. 만일 그때 김대중이 DJP연합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 아직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에서 정권교체가 자주 있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이다. 김대중이 김종필과 정치연합을 한 이유는 한국 사회가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단한 데 있다. 돌이켜 보면, 김대중의 판단이 맞았다. 현실 정치 구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정치적 태도와 선택이 달라진다. 한국 정치 구도는 어떠한가. 정치 구도를 있는 그대로 볼 방법 중 하나는 ‘역대 선거 결과’를 살펴보는 것이다.

    ‘너무 튀는’ 2020년 총선 제외하면…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 분기점이다. 6월 민주항쟁이 있었고,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2023년 현재까지, 9번의 총선이 있었다. 9번의 총선을 살펴보면, 한국 정치 구도의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표-1]은 1987년 이후 9번의 총선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의석수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괄호 안 비율은 의석 점유율이다. 정당명을 일일이 다 보여주면 산만하기에 ‘국민의힘 계열’과 ‘민주당 계열’로 표기했다. 당시 시점에서, 제3당도 별도로 표기했다. [표-1]을 중심으로 9번 총선 결과가 주는 시사점 및 특징을 정리해 보자.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민주당 계열의 총선 전적은 3승 6패다. 2004년, 2016년, 2020년에 1당이 됐다. 원내 과반은 두 번이다. 2004년(51%), 2020년(60%)이다. 반면, 국민의힘 계열은 6승 3패다. 국민의힘 계열도 원내 과반은 2회다. 2008년(51%)과 2012년(51%)이다.

    둘째, 의석 점유율 동향이다. 의석 점유율은 세 가지 방식으로 뽑았다. ①1988년 총선~2020년 총선까지 9회 평균, ②2000년 총선 이후 2020년 총선까지 6회 평균, ③2000년 총선 이후 2016년 총선까지 5회 평균을 뽑아봤다. 이를 정리한 게 [표-2]다.

    굳이 세 가지 방식을 뽑는 것은 ‘편향’을 줄여보려는 자구책이다. ②2000년 총선 이후 6회분을 뽑는 이유는 9회 평균이 ‘너무 올드한’ 예전 데이터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③2020년 총선을 빼고 5회 평균을 뽑는 이유는 2020년 압승이 ‘너무 튀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도 뽑아보고, 저렇게도 뽑아보는 셈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①9번의 총선에서 국민의힘 계열의 평균 점유율은 44.9%(135석)다. 9번의 총선에서 의석 점유율 40% 미만은 딱 한 번이다. 2020년 총선이다. 2020년 총선을 논외로 하면, 40%대 초반 3회, 40%대 후반 3회, 원내 과반 2회를 했다. 반면 9번의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의 평균 점유율은 38.4%(115석)였다. 의석 점유율이 40% 미만은 4회다. 20%대 중반 3회, 30%대 초반 1회, 40%대 초반 3회, 원내 과반 2회를 했다. 2000년 총선 이후에는 민주당도 ‘양당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②2000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까지를 포함한 6회 평균을 보면, 국민의힘 계열과 민주당 계열은 초박빙 구도다. 국민의힘 계열은 44.3%(131석)다. 민주당 계열은 43.9%(130석)다. 2020년 총선이 포함됐기에 ‘탄핵 에너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경우다. 탄핵 에너지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거의 대부분 소진됐다. 그 결과물이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이다.

    ③2020년 총선을 제외하고, 2000년대 이후 5회 평균 결과를 별도로 뽑아봤다.(*[표-2]) 국민의힘 계열은 46.3%(139석)이다. 민주당 계열은 40.7%(122석)이다. ③번의 의석 점유율이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기본 지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제3당의 성공과 실패

    셋째, 제3당에 관한 부분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금태섭·양향자 신당 등이 출현했다. ‘제3당 실험’이다. 이들의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역시 9번의 총선 결과를 되돌아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쉬운 것부터 살펴보자. 9번의 총선에서 제3당+무소속 등을 포함한 정치적 지분은 16.7%였다. 평균 의석은 50석이다. 여기에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모두 포함됐다.

    2000년대 이후부터 뽑아보면 제3당의 정치적 지분은 어땠을까. [표-2]에서 ②번과 ③번을 살펴보자. 2000년대 이후 2020년 총선을 포함한 6회 평균은 11.8%(35석)다. 무소속 등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2020년 총선을 제외할 경우, 2000년대 이후 5회 평균은 13.0%(39석)이다. 제1당과 제2당의 의석 합계는 90%에 달한다. 제3당의 정치적 지분은 매우 협소하다.

    제3당의 성공 조건과 지속가능성을 살펴보자. 다시, [표-1]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 일정과 상임위원회 배정 등 교섭권이 있는 정당을 ‘원내교섭단체’라고 한다. 국회법에 명시돼 있다. 원내교섭단체 기준은 20석이다. ‘교섭권 있는’ 제3당이 되려면 20석을 넘어야 한다. 20석이 제3당의 성공 조건이다.

    1988년 총선 이후 현재까지 20석이 넘는 제3당(제4당 포함)은 딱 4번 성공했다. 4회 중 3회는 2000년 이전이다. 1988년, 1992년, 1996년 총선이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1988),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1988), 정주영의 통일국민당(1992),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1996)이다. 김영삼, 김종필, 정주영은 이들의 이름을 빼놓고 한국 현대사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인물이다.

    2000년대 이후로 좁히면, 제3당이 성공한 경우는 딱 한 번이다.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가 주도하던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선전하며 38석을 얻었다.

    정리해 보자. 결국 제3당의 성공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대선후보급 인물이 있는 경우다. 둘째, 지역 기반이 단단한 경우다. 대선후보급 인물이 아닌 사람이 주도해 제3당이 20석 이상을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국은 여러모로 ‘양당제’ 국가다.

    재밌는 것은 제3당 중에서 2회 연속 원내교섭단체에 성공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즉 1987년 이후 등장한 모든 제3당은 ‘1회용’ 성공에 머물렀다. 왜 그럴까. 1988년 총선에서 제3당이 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제4당이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이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3당 합당을 했다.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3당을 주도한 ‘대선후보급’ 인물은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보상받으며 집권당에 합류하게 된다. 한국에서 제3당은 그만큼 어렵다.

    진보정당과 ‘무상 시리즈’ 확산

    결론적으로, 제3당이 성공하려면 ‘대선후보급 인물’이 주도해야 한다. 지역 기반이 분명해야 한다. 현재 금태섭·양향자 신당의 전망이 비관적인 이유다.
    넷째, 진보정당에 관한 부분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에 창당한다. ‘교섭권 있는’ 제3당에는 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당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는 제3당이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처음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비례대표 8석, 지역구 2석, 합계 10석을 배출한다. 이후 분당, 합당, 재창당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진보정당이 점유한 의석 비중은 얼마나 될까. 비례대표와 지역구 합계 기준으로, 2008년 5석, 2012년 13석, 2016년 6석, 2020년 6석을 배출한다. 2004년 총선부터 최근까지 5회 평균 8석을 배출했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 정치는 ‘무상 시리즈’가 지배했다. 무상 시리즈의 원조가 진보정당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을 살피는 게 중요한 이유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내세웠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약 100만 표를 받았다. 2004년 총선에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핵심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한국 정치 20년은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史)’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버전의 부유세’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신설한다. 이명박 정부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수용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었다. 진보정당 정책의 일부를 채택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표방했다.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종부세 확대, 양도세 확대, 임대차3법, 탈원전 등을 수용한다.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주장한 것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1기 정부’였고,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2기 정부’였다. 진보정당이 주장하던 정책은 대부분 실현됐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정의당이 어려워진 근본 이유다. 진보정당은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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