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잘나가는 현대차, 왜 한국에서만 욕먹을까

[Deep Dive]

  •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leehg@ddu.ac.kr

    입력2024-02-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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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쌍쉐’ 추락으로 국내 점유율 70% 돌파

    • 세계 3위, 대한민국 1위

    • ‘제네시스’ 경쟁력으로 수입차 공세 방어

    • 디자인 상향 평준화·사용자 편의성 강점

    • 자국민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

    • 사회적 책임 다해야 국민기업 등극

    지난해 12월 26일 출시된 현대차그룹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G80 모델. [제네시스]

    지난해 12월 26일 출시된 현대차그룹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G80 모델. [제네시스]

    지난해 10월 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개최한 ‘2023 기아 EV 데이’에서 공개한 전기차 청사진. 왼쪽부터 EV6 GT, EV4 콘셉트, EV5, EV3 콘셉트, EV9 GT 라인. [기아]

    지난해 10월 12일 경기 여주시 마임비전빌리지에서 개최한 ‘2023 기아 EV 데이’에서 공개한 전기차 청사진. 왼쪽부터 EV6 GT, EV4 콘셉트, EV5, EV3 콘셉트, EV9 GT 라인. [기아]

    지난해 12월 18일 자동차 조사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약 73.3%에 달한다. 2021년에 비해 4%포인트가 늘어났다. 어느새 70%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같은 기간 수입차 톱5 브랜드(벤츠·BMW·아우디·테슬라·볼보) 점유율이 9.7%에서 13.3%로 늘어난 것을 보면 결국 현대차·기아(이하 현기차) 점유율 상승 주요 원인은 국내 중견 3사 르노·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쉐보레, 이른바 ‘르쌍쉐’ 부진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르쌍쉐를 이제 ‘르케쉐’라고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러기엔 르쌍쉐라는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굳어졌다. 한국 ‘마이너 자동차 3사’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각인된 탓이다. 같은 기간 이 3사 점유율은 17.1%에서 8.5%로 추락했다. 반토막이 났다. 이들이 잃어버린 8.6%를 현기차와 수입차 브랜드들이 대략 절반씩 나눠 가진 셈이다.

    현기차 국내 점유율은 2014년 이후 꾸준히 60%대를 유지해 왔는데, 2023년 들어 성장 폭이 더 커졌다. 수입차를 제외하고 국내 브랜드 차끼리만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11월 수입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5사(현대차·기아·르노코리아·쉐보레·KG모빌리티)의 총판매량은 13만2321대다. 이 가운데 현기차가 92.5%인 12만2380대를 차지했다.

    또 수입차 시장점유율이 15%를 넘지 못한 원인으론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경쟁력이 꼽힌다. 제네시스의 국내 완성차 시장 점유율은 약 10%에 달한다. 제네시스 단일 모델만으로도 르쌍쉐를 능가하는 것이다.



    맘에 안 드는 점 있어도 그나마 최선

    이쯤 되면 ‘현기차는 왜 국내 고객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잘 팔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관점을 조금 바꿔본다면 정확히는 ‘현기차는 잘 팔리면서도 왜 욕을 먹을까’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가 있다. ‘흉기차’. 한국에서 현기차를 조롱하는 단어다. 사실상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국내 소비자를 이른바 ‘호구’로 대한다는 의미도 있고, 안전성 등 품질 면에서 떨어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여기에 강성 노조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도 한몫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이처럼 욕을 하면서도 현기차를 선택한다.

    ‘가성비’가 좋아서 현기차를 산다는 말이 있지만 신차 가격을 비교하면 르쌍쉐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이젠 싸지도 않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고급 모델은 수입차 브랜드와 비교해도 더 비싼 것도 있다. 물론 중고차 감가 방어가 다른 경쟁사 차량에 비해 좋다거나 정비 인프라가 좋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이유만으론 현재 현기차의 인기를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비자가 현기차를 구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매하고 싶어서’다. 강성 노조, 독과점, 빈번한 차량 가격 상승 등 논란이 일 때마다 현기차에 대한 악감정이 생기지만 정작 차량 구입 시엔 이성적 판단에 따라 스스로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에 결국 현기차 구매로 귀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점은 ‘소비자는 왜 현기차를 구매하고 싶은가’와 ‘현기차는 왜 욕을 먹는가’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의 이유를 살피자면 디자인 상향 평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부임할 때 독자적 디자인 경쟁력을 강조하며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책임자이던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피터 슈라이어 체제에서 ‘K5’ ‘G90’ 등 현기차의 굵직한 대표 모델들이 만들어졌고, 현대차그룹은 해외 유수 디자인 어워드에서 잇달아 수상하는 쾌거를 이어가고 있다. 수입차 대비 디자인 면에서 크게 뒤지지 않게 된 것이다.

    동급 대비 다양한 차량 옵션과 더불어 실내 디자인의 미려함과 사용자 편의성도 장점이다. 또 블루핸즈(현대차)·오토큐(기아) 등 전국적으로 구비돼 있는 서비스센터에서 편리한 애프터서비스(A/S)가 가능하다.

    ‘1등 기업’ 욕해야 조회수·구독자 늘어

    이제 후자의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답은 ‘서운함’이다. 현재 현기차가 자리 잡도록 인내하고 기다려준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고, 오히려 역차별하는 듯한 태도에 분노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동차 관련 인플루언서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1등 기업’을 욕해야 조회수·구독자 수를 늘릴 수 있고, 이로부터 수익을 얻는 구조로 인해 현기차가 부당하게 타깃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콘텐츠 제목이 자극적이면 조회수가 높아지는 상황을 이용해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해도 유독 현기차만 비난한다는 것이다. 또 판매 대수 대비 불량률이 낮다며 “억울하다”고도 말한다. 필자는 한때 한국소비자원과 업무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매번 현기차의 품질 문제가 첫 번째 과제가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판매 대수 대비 불량률은 타사가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만 매를 맞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현기차가 국산차의 ‘맏형’이기 때문이다. 판매 대수가 많으니 현기차의 불량으로 인해 고통받는 운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철저히 품질에 신경 쓰라는 의미의 회초리인 것이다. 숫자만 본다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불량률 1위’ 회사가 더 비판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게 더 논리적일지도 모르지만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우선 고려한다.

    또 과거 현대차그룹이 수출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살펴 이유를 짚어본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감내한 기다림의 대가가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1970년대 포니가 미국으로 첫 수출됐을 때 재미교포들은 바다 건너 구만리 길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조국의 기업이 만든 자동차라는 이유만으로 거주지에서 수천㎞ 떨어진 대리점까지 가서 포니를 구입했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현대차의 첫 독자 생산 모델이자 국산 자동차 최초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 [동아DB]

    현대차의 첫 독자 생산 모델이자 국산 자동차 최초 독자 생산 모델인 포니. [동아DB]

    지금의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과거를 잊고 거만해졌다는 게 일부 소비자들의 주장이다.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수출을 시작한 지 50여 년이 흘렀다. 이젠 전 세계 자동차 기업 3위에 달하는 국내 1등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국민을 ‘잡아놓은 물고기’로 생각하는 듯 투자에 인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원래 생선 몸통이 아니라 대가리를 좋아하신다’고 착각하는 아들과 무엇이 다른지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가에 달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외엔 싼값에 팔고, 국내에서 수익을 벌충하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참아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성공을 거뒀다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국토부 결함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곳은 ‘레몬법(Lemon Law·반복적 고장이나 수리 미흡으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동차와 같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 대한 보상법)’과 같은 소비자 보호 관련 사항 혹은 리콜에 대한 부분을 결정하는 위원회다.

    이곳에서 현대차그룹과 같은 제조사들은 대개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레몬법과 같은 법률은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라며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보다 더 소비자 중심의, 더 엄격한 각종 규제를 가하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바짝 엎드린 자세로 외국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노력한다. 2015년 발생한 현대차그룹의 ‘세타-Ⅱ엔진 리콜 사태’만 봐도 그렇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선 리콜 및 보증기간 연장 등 철저한 A/S를 해주면서도 “국내 소비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다가 거센 여론의 역풍을 받고서야 태도를 바꾼 바 있다.


    1월 3일 경기 광명시 기아오토랜드 광명공장에서 열린 ‘2024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월 3일 경기 광명시 기아오토랜드 광명공장에서 열린 ‘2024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이젠 국내에서도 해외 소식을 실시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는 시대라는 점이다. 국내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수출 초기엔 국내외 규정 차이를 감안해 내수용·수출용에 다른 부품을 사용하는 것과 안전장치의 성능 차이 등을 눈감아 줬다.

    기업이 성장해 국내외 동일한 스펙의 자재를 사용하는 단일 생산 체제로 변했음에도 소비자 보호에 관해선 여전히 자국민을 차별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물론 현대차그룹의 주요 타깃 시장은 해외다. 현대차그룹은 생산 물량의 80%가량을 수출한다. 내수는 전체 생산량의 20%에 불과하다. 결국 회사 수익이나 생산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수출 대상 국가의 자동차 관련 안전 규정과 소비자 보호정책이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의 성장을 위해 고통을 분담해 온 국내 소비자들로선 차별에 서운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옵션 끼워 팔기’도 문제다. 국내 소비자들이 차량을 구매할 때 자주 성토하는 사안이다. 사실상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독점한 것이기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 결국 소비자가 꼭 필요한 옵션만 선택하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러 가지 품목을 한꺼번에 구매해야 한다. 향후 이로 인해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내 자동차 다양성이 점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욕을 먹지만 잘 팔리는 이유’는 ‘욕을 아직 덜 먹어서’일 수도 있다. 아직도 소비자 대다수가 현기차를 아끼며 기다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해서 모두가 진심으로 욕하기 시작하면 필히 소비자 중심 원칙에 입각한 자동차 정책 변화가 동반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현대차그룹은 극복을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진정한 국민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기업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 단기간 실적에 도취돼 자국민에 대한 고마움을 잊는다면 오랫동안 지금처럼 성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생존 및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지만 더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기본이란 기업을 키우는 데 희생해 온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의 재벌들은 국민의 지지와 희생을 양분 삼아 성장했기에 국민에게 보답할 의무가 있다. 이 점에서 현대차그룹은 아직도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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