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참을 수 없는 조국 사태의 천박함

[함운경의 생업전선]

  •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입력2024-02-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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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부심이던 민주화, 입시 부정 조국 옹호 전락

    • 누가 태극기를 조롱하는 말로 사용하는가

    • 태극기부대나 민주화부대를 좋은 의미로 쓰자

    사람들이 1980년대 후반에 한국 사회가 민주화됐다는 것을 무엇으로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할 때가 많았다. 직선제를 주장해서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게 됐으니 대통령선거를 민주화로 기억할까. 민주화된 것과 안 된 것과의 차이를 어떻게 느낄까. 나는 우리나라가 민주화됐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을 보면서 처음 느꼈다. 길거리 유인물 나눠주기라 신기하지 않은가.

    나는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징역 6년 6월을 선고받고 감옥 안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출소했다. 징역처럼 변화가 없는 삶을 오래 살면 맨 먼저 사람 이름을 많이 잊어버린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도 평소 쓰지 않으면 상황에 맞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외부 세계와 단절이 길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에 나섰던 함운경 당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동아DB]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에 나섰던 함운경 당시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동아DB]

    누가 민주화를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나

    1988년 2월 말 출소하자마자 3·1절 기념집회가 열린다며 탑골공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니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나갔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도 했다. 대통령선거라는 어마어마한 집회를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출소 후 처음 가보는 집회를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탑골공원으로 걸어가는데 정문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을 봤다. 길거리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유인물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길에서 마음 놓고 유인물을 나눠주다니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 유인물은 삐라 뿌리듯 뿌리고 도망쳐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문 앞에서 차분하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인물을 나눠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세상이 바뀌었구나, 민주화가 됐구나. 그래서 나는 민주화를 길거리 유인물 나눠주기로 기억한다.

    오늘날 길거리 유인물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두시위를 한다고 놀라거나, 대규모 확성기로 떠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도 없다. 지금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1987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이런 것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헌법에 있다고 저절로 지켜지는 게 아니었다. 그런 자유는 필요한 사람들이, 절실한 사람들이 싸워서 쟁취한 성과라고 보아야 한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민주화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를 먹고 자랐다. 지금은 당연히 누리는 권리 중 어느 것 하나도 저절로 생긴 것은 없다.



    우리나라 민주화는 야당 정치인 김영삼·김대중 두 걸출한 지도자가 앞장서고 학생운동이 행동력을 뒷받침하고 광범위한 국민의 호응에 힘입어 이루어진 일이다. 사람들의 기억이 오래되고 지금 활약하는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많다 보니 학생운동이 모두 다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83년 김영삼의 목숨 건 단식투쟁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등 군사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맞서 싸우겠다는 용기를 보이지 않았다면 누가 나설 수 있었을까. 필리핀의 베니그노 아키노가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암살당했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귀국을 강행했다. 비타협적인 야당 정치인의 결기가 합법적 공간을 열었고, 학교에서 주둔하던 경찰병력이 철수하면서 대학 내 민주화 열기는 뜨거워졌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삶의 현장인 노동현장과 농촌으로 뛰어들었다. 연극 영화 출판 등 문화계에도 광범위한 인적 풀을 공급했다. 그리고 한 세대로서 동질감을 갖고 한국 정치에 뛰어들어 상도동계, 동교동계로 불렸던 야당 민주투사들을 대체해 나갔다. 얼마나 빛나는 서사인가. 탄압과 억압을 뚫고 역사의 승리를 거머쥔 동시대의 자부심은 많은 사람이 찬사와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집은 것은 2019년 조국 사태였다. 그 시대 민주화 경험을 공유한 많은 사람이 입시 부정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죄가 없다는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서 서초동에 몰려갔고 적반하장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뺏어야 한다는 데 동조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자부심이었던 민주화가 입시 부정 조국 옹호로 전락했다. 서초동 촛불로 기세를 올렸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민주화 이면에 가려진 추악한 모습을 본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자녀입시 비리 및 감찰무마 등’ 관련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자녀입시 비리 및 감찰무마 등’ 관련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란의 혁명가와 종교 정치지도자들이 이슬람식 생활을 강조할 때 그들의 아들 딸들은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고 타락한 서구 문화에 빠져 있었다. 이란 종교·정치 지도자들의 아들딸들이 인스타그램에 자신들의 호화 생활을 뽐내는 사진을 실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과 조롱거리로 삼았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지도자들이 국민은 전쟁으로 몰아넣고 자신과 자녀들은 호화 생활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태극기부대란 말이 있다. 조롱의 뜻이 담긴 단어다. 그러나 얼마나 억울하겠나. 일평생 전쟁과 전쟁이후 참혹한 현실에서도 자식들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면서 1960∼70년대를 보낸 사람들이다. 자식 세대가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인정하기는커녕 국가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발 뻗고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용하는 언어가 시대에 맞지 않은 반공과 과거 회귀적 말들이니 태극기부대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태극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태극기가 조롱하는 말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민주화부대란 말도 생기고 있다. 조롱 섞인 말로 쓰인다. 민주화란 말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말인가.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매주 탄핵에 나서자고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입시 부정도 죄가 안 된다고 감싸고, 자기 편이면 온갖 범죄 혐의도 용서되고, 인권을 부르짖던 입으로 종합편성채널기자를 감옥에 집어넣고 거짓말로 조리돌림하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서고 있고 가두를 점령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화부대란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화가 왜 조롱의 대상이 돼야 한단 말인가. 목숨 바쳐 민주화운동 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도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는 데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생긴다.

    태극기·민주화가 제대로 인정받기를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며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동아DB]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동 일대에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며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동아DB]

    지금 70∼80대는 1950년 6·25전쟁 전후에 태어났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 우리나라가 후진국이었다. 세계에서 맨 끄트머리에 있는 나라에 태어난 셈이다. 전쟁 폐허의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했다. 우물에 가서물을 길어야 했고 뜨거운 물로 목욕하려면 장작을 패서 불을 지펴야 했다.

    필자와 같은 50∼60대는 앞선 선배들의 노력 덕에 개발도상국이 됐을 때 태어났다. 1960년대에 태어나서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돗물이 보급됐고 연탄불로 식사 준비를 했다. 당연히 목욕하려면 목욕탕에 가든지 연탄불에 물을 끓여야 했다.

    지금 20∼30대는 1990~2000년대 태어날 때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었다. 아파트건 단독주택이건 수도꼭지만 돌리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세계 최고의 도시 런던이나 뉴욕과 마찬가지인 그런 도시에서 태어났으니 보고 자란 게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부족함도 없고 외국에 견주어서 꿀릴 것도 없다. 오히려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을 보고 자랐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세상 경험이 완전히 다른 세대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말 빠르게 발전한 나라다. 그래서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두 동시대에 살고 있다. 후진국에서 태어난 사람,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 선진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역사적 경험이 다르니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세대를 조롱의 단어로 폄하하고 그것도 자랑스러운 단어가 조롱거리로 쓰인다는 것이 나는 너무 가슴 아프다. 앞선 세대의 좋은 경험과 기억이 전달되고 존중받는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극기부대나 민주화부대가 좋은 의미로 쓰였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려면 앞선 세대의 공과 과를 제대로 보고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잘못은 잘못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태극기부대를 이해한다. 내가 앞 세대를 부정하거나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민주화운동을 해온 사람이고 그걸 자부심으로 갖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민주화운동이 좋은 이름으로 남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민주화운동이란 이름 아래 숨겨진 반(反)대한민국 사상과 운동에 대해 드러내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 잘못된 경향이 파렴치한 입시 부정 옹호, 인권탄압에 대한 반성 없는 적반하장과 같은 파렴치한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줘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남들은 몰라도 나는 홀로 기분이 좋아 웃으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머리 길다고 바리캉으로 강제로 머리를 밀던 경찰의 장발 단속 없는 세상이 된 것은 기분 좋은 일 아닌가. 기분 좋은 일로 기억되는 그런 민주화운동이 됐으면 좋겠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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