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삼성물산 주가 한 달 만에 48.8% 급등한 까닭

자사주 소각 + 정부 정책 + 행동주의 펀드 3박자에 ‘덩실덩실’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4-03-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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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9일 장중 17만1700원 터치, 합병 이래 최고점

    • 경영권 방어 위해 아껴둔 자사주 3년간 전량 소각

    • 행동주의 펀드, 배당 확대·자사주 매입 요구

    • ‘승리’보단 ‘압박’ 목적, 분쟁=주가 부양

    [Gettyimage, 삼성물산]

    [Gettyimage, 삼성물산]

    삼성물산 주가가 17만 원을 넘겼다. 2월 19일 장 중 한때 17만1700원을 찍었다가 17만400원에 마감했다. 주가가 17만 원대에 올라선 건 2015년 9월 이래 8년 5개월여 만이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기일이 그해 9월 1일이었으니 사실상 양사 합병 이래 최고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1월 말까지만 해도 11만 원대이던 주가가 불과 3주 만에 17만 원대로 치솟은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주가 급등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회사 측이 1조 원 규모의 자기주식소각 계획을 내놨고, 발표(2월 26일)가 임박했던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증시 저평가 해소책)’도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에 편승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역시 주가를 밀어 올린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 제안을 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승패는 둘째치고, 표 대결이 성사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삼성그룹 오너 일가와 주요 경영진에 적잖은 압박이 될 거란 점이 주가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만년 저평가 ‘미운 오리새끼’, 백조 되다

    삼성물산은 코스피 시장에서 주가가 박스권에 갇혀 있기로 유명한 종목 가운데 하나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지주사 격’ 회사로서 만성적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지주사 디스카운트’에 시달리는 곳이다. 상사와 건설, 패션, 리조트, 바이오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지만 재계에선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로 보는 인식이 가장 강하다.

    국내 재계 1위 삼성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체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전 계열사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는 오너 일가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 순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네이버 금융]

    [네이버 금융]

    이에 삼성물산은 주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은 모습을 보여왔다. 호실적을 내더라도 ‘반짝’ 상승에 그쳤고, 코스피가 전례 없이 3000선을 넘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도 17만 원 선을 뚫지 못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지배구조 관련 불확실성도 주가 할인 요소로 꼽혔다. 삼성물산 주가는 2015년 합병 이후 8년간 23% 하락하며 52% 상승한 코스피와 상반된 궤적을 그렸다. 순자산가치(NAV) 대비 할인율이 60%를 넘나들며 대표적 저PBR(주당순자산가치)주로 인식됐다.

    이젠 달라졌다. 주가가 1월 18일 11만5400원(종가 기준)으로 연저점을 찍은 이후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2월 19일 17만1700원까지 치솟았다. 정확히 한 달 만에 48.8%가 오른 셈이다. 3월 18일 종가는 15만 원이다.

    이제 경영권 안정됐으니 소각해도…

    삼성물산은 1월 31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연간 주주환원 정책을 확정했다. 올해가 지난해 초 새로 업데이트한 배당과 자사주 정책을 본격 시행하는 첫해기 때문이다. 정부가 2월 말 발표를 예고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선제적으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지난해(결산 기준) 주당 배당금을 보통주 2550원, 우선주 2600원으로 책정했다. 배당정책 내에서 최대 지급률을 적용한 금액이다. 자사주는 보통주 780만7563주와 우선주 전량(15만9835주)을 소각하기로 했다. 보유 중인 자사주(2358만2524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로 약 1조 원어치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2월 ‘차기 3개년(2023~2025)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기존 배당정책이던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환원(최소 주당 배당금 2000원) 외에 보유 자사주 전량(3조 원 규모) 분할 소각이 포함됐다. 당시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 수의 13.2% 수준이었다. 이때까진 5년에 걸쳐 전량 소각할 계획이었으나 매년 1조 원씩, 3년 안에 끝내기로 일정을 당겼다.

    그간 삼성물산은 자사주 매입·소각에 유독 소극적 자세를 취해왔다. 보유 물량 대부분이 과거 삼성에버랜드, 제일모직 시절 매입한 것이다. 2015년 합병 후 사들인 주식이 전무할 정도다. 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자사주도 일부 들고 있었다. 옛 삼성물산 보유 제일모직 주식의 자사주와 합병으로 인한 단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물량 등이다.

    지난해 9월 30일 기준 삼성물산 주요 주주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지난해 9월 30일 기준 삼성물산 주요 주주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소각도 마찬가지.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마다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2022년 초 ‘주식농부’로 알려진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이사가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냈을 때도 그랬다. 당시 박 대표는 지분 0.15%를 보유한 주주였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능가하는 최고의 주주친화책으로 환영받는 이유다. 삼성물산은 전체 발행주식의 13%가 넘는 자사주를 계속 들고만 있었다. 그간 소각한 주식은 합병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한 물량이 전부다. 현행법상 이렇게 확보한 주식은 5년 내 소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선 그룹 지주사 역할 탓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 특성상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함부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처지에서 자사주는 평소 의결권이 없지만 필요시 백기사에 넘겨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혹시 모를 경영권 분쟁을 예방 또는 대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보탬이 된다. 자연히 소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자사주 전량 소각 계획을 발표하자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 회장 등이 안정적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서 경영권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행동주의 펀드 “자사주 소각으론 부족”

    3월 삼성물산 정기 주총 상정 안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3월 삼성물산 정기 주총 상정 안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행동주의 펀드의 ‘흔들기’도 주가를 밀어 올린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재계에선 외부 세력의 공격을 비롯한 경영권 분쟁이 주가 급등의 원인이 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 KCGI의 공격을 받은 한진칼의 주가가 2020년 4월 17일 10만9500원(종가 기준)까지 치솟았던 게 대표 사례다. 그보다 한 달 전인 3월 19일엔 4만1050원이었다.

    안다자산운용과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매니지먼트(CLIM),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는 2월 2일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서를 보냈다. 여기엔 NAV 대비 할인율이 65%를 넘는 저평가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주주환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의 합산 지분율은 1.46%다.

    요구 사항은 크게 배당금 증액과 자사주 매입이다. 지난해 결산 배당금으로 보통주 한 주당 4500원, 우선주 한 주당 4550원을 지급하라고 제안했다. 회사 측이 책정한 금액(보통주 2550원·우선주 2600원)보다 2000원 가까이 더 많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 약 7400억 원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사로부터 받는 세후 배당수익 100%에 영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잉여현금흐름(FCF)의 25%(삼성바이오로직스 제외)를 배분하면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5000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도 요구했다. 삼성물산 연간 FCF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주식으로 환산 시 약 386만1000주(지난해 12월28일 종가 12만9500원 기준)다. 현재 실시하는 자사주 소각만으로는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분명치 않다는 명분을 댔다.

    이들은 “작년 초 새로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은 주가와 NAV 간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능력 측면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해당 정책 발표 이후 주가는 코스피 대비 5.1% 추가 하회했고, NAV 대비 할인율은 67%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소각이 주가 부양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매입까지 병행하라는 압박을 넣은 셈이다.

    삼성물산이 해당 주주 제안을 3월 주총에 상정하면서 양측의 표 대결이 성사됐다. 현실적으로 주식 보유 기간과 지분율 등 주주권 행사 요건을 충족하면 회사 측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6개월 이상 주식을 1% 이상 보유한 주주는 주주 제안을 행사할 수 있다. 주총 6주 전까지 서면 등의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된다. 주주 제안은 제1-2-2호에 증액 배당안, 제3호에 자사주 취득안 형태로 올라갔다. 배당안은 회사 측과 행동주의 펀드의 의안이 서로 충돌해 주주들이 하나를 골라야 하게 됐다.

    행동주의 펀드發 주가 부양 시도 지속 전망

    양측은 주총을 앞두고 다른 주주 설득에 팔을 걷어붙였다. 표 대결이 확정된 만큼 행동주의 펀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회사 측은 이를 막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의결권 위임장 확보에 나섰다.

    행동주의 펀드 측은 “배당 증가는 자본 배분에 대한 주주 기대에 부합하고, 회사의 중장기 방향에 기반이 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자기주식 매입 역시 EPS 및 내재가치를 모두 향상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삼성물산은 소액주주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일반 주주 관점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마련한 의안이 더 주주 친화적으로 느껴져 솔깃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매긴 주당 배당금이 이사회의 그것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데다, 대규모 자사주 취득 역시 주가 부양에 긍정적이다.

    삼성물산은 ‘경영상의 부담’을 내걸고 의결권 위임을 요청했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대규모 현금이 유출돼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골자다. 회사 측이 주주 제안을 기반으로 산출한 전체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 원으로 지난해와 올해 FCF 예상치(100%)를 넘긴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은 대내외 경영 환경을 고려해 수립한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을 크게 초과한다”며 “이 정도의 현금이 유출되면 미래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재계에선 행동주의 펀드 측의 지분율(1.46%)이 공개됐을 때부터 사실상 승기를 잡기 어려울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최대주주인 이 회장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3.92%(지난해 9월 말 기준)인 상황에서 표 대결이 펼쳐지더라도 우위를 점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군으로 평가되는 KCC 몫(9.17%)까지 합치면 대주주 측 지분율이 43%를 웃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행동주의 펀드 역시 승리를 기대해 주주 행동에 나선 건 아닐 거란 해석에 힘이 실렸다. 삼성물산을 압박해 향후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것. 이들의 목적이 ‘승리’가 아닌 ‘압박’ 자체에 있다는 뜻이다. 세를 확장하고 존재감을 과시할수록 회사 측에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 측과 일곱 차례 면담을 실시하고 이들의 요구를 이사회에서 11회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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