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종 34년, 최근 다시 인기 끌어

• 2000년대 후반부터 박물관 인기 전시품

• 한 대당 5000만 원 들여 사들이기도

• 녹아 있는 현대사, 젊은 층 감성 건드려

2017년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극장에 걸렸다. 긴박하고 비극적이었던 1980년 5월 광주의 상황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평단에서도 꽤 좋은 평을 받았다.

영화에는 두 명의 택시 운전사가 나온다.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간 김만섭(송강호 분)과 광주에서 일하는 황태술(유해진 분). 영화 속에서 김만섭은 브리사 택시를 몰았고, 황태술은 포니 택시를 몰았다.

브리사와 포니. 모두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승용차다. 브리사는 기아산업이 1974년 12월부터 생산한 자동차로, 일본 마쓰다의 파밀리아 차량을 들여와 부분 변경한 것이다. 기아산업이 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품을국산화하기도 했다. ‘하루 유지비 2000원의 경제형 세단’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1975, 1976년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만 해도 ‘국민 승용차’였던 셈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니에 자리를 내주었다. 포니는 1975년 12월부터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다. 당시 포니의 기세는 엄청났다. 포니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1990년까지 생산됐다.

2023년 재조명한 ‘포니의 시간’

단종된 지 34년 된 포니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 6~10월 서울 논현동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포니의 시간’이란 전시를 열었다. 포니 5종(포니1, 포니왜건, 포니픽업, 포니3도어, 포니2)이 전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내놓았던 포니쿠페 콘셉트카를 실물로 제작한 것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장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실제 포니를 본 적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꽤 많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당시 현장을 찾았을 때, 일본인 단체 관람객도 보였다. 1970년대 기하학적 디자인의 단순 명쾌함, 낯선 듯한 독특함이 젊은 감성을 건드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시는 기본적으로 현대자동차가 옛 브랜드를 통해 자사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그러나 전시는 상업적 홍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단순히 포니 자동차만을 선보인 것이 아니라 포니가 인기를 누리던 1970~80년대의 일상과 문화에 관한 자료도 함께 전시했다. 포니의 제작 과정에 얽힌 일화와 이를 보여주는 자료, 당시의 포니의 신문광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잡지 등등, 포니를 통해 1970~80년대를 만나는 기회였다.

특히 서울의 대형 영화관 앞 풍경을 담은 영상이 흥미로웠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 ‘마지막 황제’(1988년 국내 개봉), ‘구니스’(1986년 국내 개봉) 등의 영화 간판이 걸려 있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도로에는 택시가 즐비한데 대부분 포니다. 당시 포니 택시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포니 승용차가 어떻게 우리 일상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최초의 국산 승용차

현대자동차는 1968년 설립됐다. 초창기 열악한 여건 속에서 유럽 모델을 가져와 조립 생산하던 현대자동차는 1973년부터 독자 모델 개발을 추진했다. 국산 자동차를 꿈꾸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원대한 포부였지만 많은 이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어려움 속에서도 방법을 찾았다.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았고 엔진과 변속기 기술은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 전체 생산과정에 대해선 영국에 자문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대자동차는 독자 모델 개발을 결심한 지 1년 만인 1974년 6월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그리고 1975년 12월 드디어 포니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1976년 1월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으면서 내구성이 좋았고 국산화율 90%로 애프터서비스도 수월해 곧바로 인기를 끌었다. 해치백 스타일에 각이 진 기하학적 디자인도 호평을 받았다. 그 덕분에 판매 첫해에만 시장점유율 43%를 기록했다. 1976년 7월엔 에콰도르로 포니를 수출했다. 이어 978년에는 40개국에 1만 대를 수출하는 성과를 냈다. 포니는 1990년까지 생산됐고 한국 승용차의 대명사로 20세기 후반 한 시대를 풍미했다.

포니(pony)는 조랑말이라는 뜻이다. 그럼, 포니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했을까. 당시 현대자동차는 승용차 한 대를 부상으로 내걸고 5주 동안 신문광고를 통해 이름을 공개 모집했다. 응모작은 6만 통 가까이 됐다. 응모작 가운데 아리랑·도라지·무궁화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고, 포니라는 이름은 100여 명이 제출한 것이었다고 한다. 귀엽고 친숙한 그러면서도 역동적인 포니의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다,

1976년 1월 시판이 시작될 무렵의 신문광고를 보자. “우리 힘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차 포니 탄생” “80마력의 강력한 쌔턴 엔진, 연료 소모가 적은 뛰어난 경제성, 견고한 차체” “아름답고 경제적인 포니” “아름답고 갖고 싶은 포니” “우리 분수에 꼭 맞는 차”…. 광고 문구에서 드러나듯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는 포니와 함께 시작했다. 포니가 있었기에 마이카 시대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없어서 못 구하는 현대 유물

그런데 ‘포니의 시간’ 전시 이전에도 사람들은 이미 여러 번 포니를 불러냈다. 포니가 여러 박물관에서도 인기 전시품이라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9년 포니 픽업(뒷좌석을 없애고 화물칸을 만든 차량)을 한 대 구입해 박물관 야외에서 전시한 바 있다. 근현대 생활사와 산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은 수장고에 잘 보관돼 있다.

2011년 울산 남구에 울산박물관이 개관할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울산박물관은 20세기 울산의 상징물을 전시하고자 했다. 연구진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가 직접 생산한 자동차가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한국 자동차 국산화의 시발점인 포니가 가장 적합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현대자동차를 빼고, 포니를 빼고 어떻게 한국 자동차산업의 수도 울산의 20세기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포니를 구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 남아 있는 포니 자체도 드문 데다 소유자들이 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다. 울산박물관은 외국에 수출된 포니를 구하려고 알아봤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은 1980년형 자주색 포니 한 대를 5000만 원에 구입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신형 고급 세단 제네시스의 가격이 한 대당 4000만~5000만 원 수준이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자동차는 네덜란드에서 포니 한 대를 구입해 2011년 박물관에 기증했다. 1981년 생산돼 네덜란드로 수출한 포니였다. 엔진 등 주요 부품이 출고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2017년엔 한 기업인이 1986년형 포니2를 직접 몰고 와 울산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기증자는 울산 지역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최영수 씨였다. 당시 그는 “한국과 울산의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포니2를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기증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포니 픽업 한 대를 더 기증받아 울산박물관은 현재 4대의 포니를 소장하고 있다. 이런저런 노력과 주변의 도움 덕분에 울산의 상징물, 현대자동차의 뿌리를 제대로 보유하고 있다.

2012년 서울 종로구에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도 1982년형 포니가 전시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포니 앞은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다. 특히 장년층 관람객들은 저마다 포니에 대한 추억을 하나둘 풀어놓는다. 2022년 3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관람객 설문조사를 통해 인기 전시 유물 10점을 선정해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포니가 수위권에 들었다. 포니 외에는 국내 최초 국산 라디오(1959년산 금성 라디오 A-501), 1960년 4·19혁명 당시의 여고생 일기, 1983년 이산가족찾기 피켓 등이 함께 선정됐다.

이 밖에 서울 노원구 서울생활사박물관, 경기 용인시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에서도 포니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9년 옛 서울북부지방법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분관인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조성했다. 이 박물관은 포니, 브리사를 한자리에서 함께 전시하고 있다. 포니와 브리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영화 ‘택시운전사’의 김만섭과 황태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압축성장 흔적

포니는 이렇게 곳곳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고 유명 브랜드가 속속 탄생했다. 단종된 차량은 자연히 잊혀져간다. 그런데도 오래된 포니에는 관심이 몰린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자동차 마니아나 호사가들의 복고 취미일 수도 있고, 올드카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자동차산업의 성장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또한 포니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레트로, 뉴트로 트렌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트로는 추억을 의미하는 Retrospect의 준말로, 흔히 복고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엔 과거의 추억이나 유행을 불러내 다시 향유하고 소비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그 때 그 시절 그대로를 똑같이 즐기며 그것을 통해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뉴트로는 New와 Retro의 합성어로, 기존의 레트로를 창의적이고 새롭게 수용하고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지금의 젊은 세대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과거의 흔적이나 콘텐츠)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일종의 ‘신상품’으로 받아들여 향유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과거의 것을 똑같이 재현하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레트로, 뉴트로 콘텐츠의 대상은 주로 ‘최근의 과거’ 또는 ‘가까운 과거’이다. 수백 년 전 조선 시대 이전이 아니라 20세기 한국 문화와 일상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즐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가까운 과거는 1970~80년대를 중심으로 한 20세기 중후반이다.

뉴트로는 수십 년 전 과거의 흔적을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다. 태생부터 디지털과 함께한 젊은 세대에게 수십 년 전 아날로그의 흔적은 신선하고 낯선 대상이다. 그런데 그 오래되고 낯선 것을 젊은 세대가 일상 속에서 열심히 즐긴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젊은 층 특유의 소비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다소 오래된 듯한 1970년대의 포니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2023년 ‘포니의 시간’ 전시에서 콘셉트카 포니 쿠페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레트로 뉴트로의 주요 대상이 되는 20세기 중후반은 분단과 전쟁, 독재, 압축성장과 산업화, 민주화 등을 겪은 격변의 시대였다. 그 흔적이 지금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 포니는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젊은 층의 감성을 건드림과 동시에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 지니고 있는 독특한 근대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970~80년대를 만나는 법

현재 도로를 달리는 포니 승용차는 10여 대, 픽업은 100대 정도라고 한다. 운전자들은 포니를 사랑하는 올드카 마니아일 가능성이 높다. 그건 개인 취향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포니의 역사와 내력 등에 대한 관심은 레트로·뉴트로 트렌드와 맞물려 있고, 그렇기에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다. 그 관심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선다.

지난해 ‘포니의 시간’ 전시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홍보물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 집 첫 자가용.’ 포니를 추억하는 사람 열이면 열 빼놓지 않는 문구다. (…) 포니가 길 위에 새겨놓은 추억의 온도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벚꽃이 만개한 경주 보문단지 길 위에서, 신혼여행 중인 제주도 중산간 국도에서, 아들 군 입대를 위해 찾은 논산훈련소 앞에서, 명절 귀향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차 공간이 따로 없던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에는 항상 포니가 있었다.”

포니는 히트 상품이었지만 당시에는 승용차는 어느 정도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위의 홍보물 문안은 다소 과장된 대목도 들어 있다. 그럼에도 포니에는 1970~80년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이카의 순수함, 적당한 사치에 대한 욕망, 포니 택시 운전사의 일상과 노동,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의 쓰라린 기억까지 포니, 조랑말에 담겨 있다. 포니는 영화 ‘1987’에도 나오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다. ‘1987’에서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이희준 분)는 포니2를 운전했다.

이렇게 우리는 포니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1970~80년대를 기억하고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 포니보다 더 상징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상용품이 또 어디 있을까. 어느 사전을 보니 조랑말(포니)을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말의 한 품종. 몸이 작고 튼튼하다. 인내력이 강하다.” 현대자동차 포니와 참 잘 어울리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이제 포니를 명작이라 불러도 충분하지 않을까.

_{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