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다. 나른한 베개. 나는 벼락처럼 은총을 입었고
친구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다. 화분 밑에 열쇠를 숨겼다. 인간이라는 것은 계속해 추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꿰맬 곳 없는 호주머니를 쥐고 열차를 탈 때. 추웠다. 사람들의 완벽한 안경. 흠잡을 곳 없이 잘려 나간 머리칼. 추웠다. 내 가방은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아. 옆에 앉은 사람의 신발 끝은 스퀘어. 그 사람은 내게 지구가 평평한 것을 믿느냐고. 몸도 낱장의 지도처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열차는 멈춰 서며 역의 이름을 두 번씩 읊었다. 낡고 지친 다이어리에 새롭게 성경을 적어야 한다. 눈을 돌리고 돌려 자전을 완성해 대화에서 벗어나도록
세 번째 손톱 매니큐어는 늘 벗겨져 있다. 손과 손을 겹쳐도 사라지지 않는 빈틈. 자고 일어나면 자라는 손톱. 연속적인 우연이라는 삶의 긴 이름
목 밑이 간지러웠다. 무언가 자라나듯이. 지퍼를 올릴 때처럼 드르륵 무언가 닫혀버린 느낌으로 우연이 채워지고 있는데. 신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알아챘구나. 너는.
내 목 안에 깊숙한 손이 딱총나무 한 그루를 꺼내준다.
더 이상 깨지 않았다. 딱총나무는 슬플 때 웃기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빛나는 잎. 멀어지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비인간적으로 나무는 잘 자랐다. 자신만의 구획이 있다는 듯이
[Gettyimage]
● 2023년 문학동네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