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헛발질, 민주당 붕괴 원인 아니라 결과
인천 계양·부평, 경기 하남 공천의 의미
민족주의·검찰-언론개혁 의제는 여전해
임종석 날린 자리 누구로 채웠냐가 문제
독재 잔재 청산? 반공만큼 철 지난 의제
대안은 없는데 새 인물 ‘스펙’은 떨어져
[Gettyimage]
부평과 계양은 하나의 생활권이다. 예전에는 인천 도심에 들어가는 택시는 따로 할증요금을 받을 정도로 별개의 정체성을 지닌 지역이기도 하다. 경인선 부평역을 중심으로 공장이 들어서고,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지금의 시가지가 형성됐다. 대우자동차(현 한국GM) 부평공장과 부평국가산업단지, 호남 출신 이주민들이 부평·계양 정치의 핵심 키워드다. 이번에 컷오프(공천배제)돼 탈당한 홍영표 의원(부평을)은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이고, 계양을에서 5선을 한 송영길 전 의원은 부평에 사무실이 있는 인천택시노조에서 활동했다. 노회찬을 배출하고 민주노동당 건설에 기여한 전설적 노동운동조직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도 부평을 기반으로 한다. 호남과 호남 출신 이주민의 정당이던 민주당의 역사, 학생운동에서 출발해 진보 운동을 하다 2000년대 민주당으로 편입된 80년대 학번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던 민주당식 개혁과 진보 어젠다가 부평-계양에 집약돼 있는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홍 의원(1957년생) 지역구에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1963년생), 바로 옆 부평갑에 YTN 노조위원장 출신인 노종면 씨(1967년생)를 공천했다. 2년 전 이재명 대표(1963년생)는 송 전 의원(1963년생)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천 지역의 이주민과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삼던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통일·민족주의와 언론이라는 민주당의 전통적 ‘개혁 의제’를 내세운 또 다른 86들이 차지한 양상이다.
하남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남은 경공업 제품이나 원예 작물 등 서울 시민을 위한 상품을 만들어주고, 서울서 일하는 중하층 노동자에게 값싼 주거지를 제공하던 곳이었다. 이번에 하남을 선거구가 신설되는 미사강변도시는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결과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30~40대 통근자 가족 비중이 높다. 검찰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1958년생)과 백범 김구의 증손자인 김용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1986년생)가 민주당 강세일 수밖에 없는 이 지역에서 공천을 받았다. 인적 청산은 이뤄졌지만 검찰·언론 개혁과 통일·반일 민족주의 기조는 오히려 더 뚜렷해진 것이 이재명표 공천의 본질이다.
공천은 권력투쟁, 문제는 ‘새 상품’
이재명(왼쪽 두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7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현장을 방문, 예정지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다. [신원건 동아일보 기자]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2024년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비명계에 대한 숙청과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은 전통적 공천 갈등이라 볼 수 있다. 민주당은 스스로 주류가 됐다고 선언할 만큼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이다. 당 안팎에는 오랫동안 활동한 인물이 가득 차 있다. 또 차기 대선 최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는 국회 내 자파 세력은 많지 않고, 그에 대항해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경쟁자가 없다. 과거 보수정당에서 나타났던 대규모 학살 공천은 필연적이다. 이 대표 쪽에서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배제된 사람 중 상당수는 2004년께부터 국회의원이었던 ‘고인 물’이다. 서울 중·성동갑 선거구에서 컷오프된 임종석 전 의원의 경우 2012년 사무총장을 맡아 친노·386 공천 작업을 도맡은 인물 중 하나다.
문제는 무리하게 친명계를 꽂아놓고, 비명계를 찍어내는 공천 방식이 아니다. 새롭게 진입한 친명계가 이전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인물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래된 상품을 치우겠다고 가게를 헤집어놨지만, 정작 들여온 새 상품이 이전과 별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품질이나 디자인을 놓고 보면 이전보다 더 못해 보인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전 상품은 경쟁업체의 주력 상품에 밀린 상황에서 대대적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친명계 인물들의 현재 모습은 이재명 파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에서 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이후 세대에서 적합한 능력과 경력을 갖춘 정치 엘리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데 가깝다.
상위 중산층이 독주하는 정당의 의제
2003년 11월 11일 당시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창당식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가 대독되는 동안 노 대통령의 모습이 대형 화면에 나오고 있다. [동아DB]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2022년 선거 패배의 원인을 더 단결하지 못해서라고 진단한다. 문재인 정부와 친문들의 정치적 과오에 책임을 묻는 것도 논리적 귀결이다. 검찰 독재에 반대하는 노선을 강화하되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고, 당의 응집력을 높이는 게 정권교체의 방법이 된다.
독재 잔재 청산은 반공만큼이나 철 지난 의제가 됐다. 많은 민주당 정치인은 12·12 군사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흥행에 환호했다. 그런데 1987년 시점에서 6·25전쟁(1950)은 37년 전 일이고, 올해 시점에서 12·12는 35년 전 일이다. 유권자 처지에서 민주당이 반독재 민주화를 우려먹는 건 1980년대 반공을 내세워 민주화 세력을 공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낡은 이념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나날이 핵 능력을 키워가고, 영구 분단 방침을 천명한 데다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통일이나 그에 뒤따르는 동북아 균형 외교도 설 자리를 잃었다. 민주당 정치인들도 유튜브를 참언론으로 치켜올려 주는 시대에 언론개혁 의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잘 교육받고 좋은 기업에 다니고 서울이나 경기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화이트칼라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주장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설득력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그들이 분배 강화, 기회의 공정을 주장해 표를 얻기도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저성장 속에 복지 강화에 대한 지지는 약해지고 있다. 민주화로 집약되는 세계관이 사실상 파산한 상황에서 노선 변경 없는 인물 교체만 고집하는 게 이재명표 공천이다.
왜 한총련 의장은 전대협 의장 대체 못 했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출범식을 하루 앞둔 1993년 5월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전야제 행사를 열었다. [동아DB]
바로 다음 세대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사뭇 다르다. 5기(1997) 의장으로 몇 년 전부터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한 강위원 전 당대표 특보는 광주 서구갑에 출마했다가 경선 도중 포기해야 했다. 직접적으로는 2003년 저지른 성희롱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2018년 광산구청장 출마 당시 2차 가해까지 이어진 것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더 본질적 이유는 낮은 지지율이었다. KBS광주방송총국이 지난해 12월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강 전 특보의 지지율은 12%로 3등에 그쳤다. 송갑석 의원(27%)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만 18세 이상 유권자 503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면접 방식으로 한국갤럽이 실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지율이 한참 열세인데 성폭력 이력이 불거졌을 때 이를 수습할 정치적 자본이 있을 리 없었다.
학생운동은 1991년 5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죽음을 계기로 발생한 대규모 시위(5월 투쟁)를 기점으로 급격히 내리막을 걸었다. 1990년대 본격화한대의민주주의와 중산층의 시대에서 학생운동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점차 급진화·주변화됐다. 남북한의 격차가 확실히 벌어졌고, 소련 등 동유럽이 무너졌다. NL계열 학생운동은 한총련을 결성해 대응에 나섰지만, 1996년 연세대에서 8·15범민족대회를 강행하면서 벌어진 20일간의 학교 점거(연대 사태)로 몰락하게 됐다. 전대협 세대와 달리 한총련 이후 세대는 인적 네트워크 등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훨씬 적었고, 민주노동당 또는 통일·노동운동 단체 등 민주당 밖 영역에서 활동했다. 전대협 이후 세대가 이룬 최대의 정치적 성과는 민노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온 박용진 의원(성균관대 민중민주·PD 출신)이나 온건 노선을 주창하며 서울대 등에서 활동한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출신의 박주민 의원일 것이다. 뚜렷한 노선이나 두터운 인적 기반 대신 개인기에 의존해 성공한 사람들이다.
시민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참여연대(1994년 창립) 등 1990년대 등장한 시민단체는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진보 진영의 결과였다. 시민단체를 만든 86들이 민주당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활발히 정치권에 진입하는 건 필연적이었다. 민주당도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고, 참신하지만 역량 있는 인물들이 있는 시민단체를 주된 인력풀로 삼았다. 민주당이 주류가 될수록 시민단체의 정당성이나 영향력이 줄어드는 건 필연적이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겨레21’ 기고에서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서울 성북을에 공천을 받은 김남근 변호사는 “참여연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9년에는 공정거래위원장 하마평에 오를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막후 실세였던 김 변호사가 언제든 받을 수 있었던 초선의원 자리를 굳이 선택한 배경으로는 참여연대의 영향력 약화를 꼽는다. 김 변호사 공천이 발표되자 그의 참여연대 내 역할이 아니라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의 최초 폭로자라는 게 집중 부각됐다.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20년 집권 외치던 정당의 현주소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기존의 민주당에서 크게 이탈한 이들이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중 동원 방식, 적폐청산으로 대표되는 각종 개혁 의제는 이재명 대표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진짜 문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민주당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친문들이 갖추고 있던 정치적 노련함이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신동아 4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