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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등장 운동권發 ‘역사 전쟁’, 왜?

“북한 정통론 기반…외세·친일파가 건국 왜곡했다고 인식”

  • 민경우 민경우수학연구소장

선거 때마다 등장 운동권發 ‘역사 전쟁’, 왜?

  • ● ‘토착왜구’ ‘죽창가’ 이어 등장한 ‘美 점령군’
    ● “외세와 친일파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왜곡 인식
    ● 핵심은 ‘북한 정통론’…주체사상과 北에 우호적
    ● 민족 내부 투쟁 중요…동학농민운동, 김구 위상 강화
    ● 이승만 외교파, 갑신정변 개화파가 묻힌 이유
    ● 반독재투쟁은 민주화 넘어 친일 제거하는 사상운동
    ● 친일파가 만악 근원…청산되지 못한 낡은 유산
    ●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하는 노력 필요할 때
1996년 5월 26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5000여 명이 연세대에서 ‘5·18 미국개입 규탄 및 미국의 공개사과 촉구대회’를 연 뒤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DB]

1996년 5월 26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5000여 명이 연세대에서 ‘5·18 미국개입 규탄 및 미국의 공개사과 촉구대회’를 연 뒤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DB]

대선이 시작되면서 다시 역사 전쟁이 다시 불붙는 듯하다. 최근 광복회 회장 김원웅이 한 고교생용 강의 영상에서 “미군은 정렴군, 소련은 해방군”이라고 하더니 유력 대선주자 이재명도 “대한민국은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해방전후사에 대한 386들의 특별한 생각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지난해 8월 15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지난해 8월 15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국회사진기자단]

2019년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내년(2020년) 총선 때 반일 프레임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배포했다가 원장 양정철이 즉각 유감을 표명했고, 조국은 ‘죽창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6·25전쟁 영웅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거나, 현충원의 친일파 무덤을 파내야 한다고 주중한다. 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은 ‘토착왜구’ 프레임에 걸려 총선에서 낙마했다. 선거 때마다 작동하는 친일 프레임, 왜 운동권 출신들은 선거 때마다 ‘역사 전쟁’을 소환할까.

1970~80년대에는 광범위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 이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을 ‘386’이라 부른다. 386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해방전후사(史)와 관련한 특별한 생각을 발전시키며 파란을 일으킨다.

해방전후사에 대한 386의 메시지는 외세의 타율적인 해방으로 외세와 친일파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이 왜곡됐고, 현재 조성된 만악의 근원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 진행된 반독재투쟁은 민주화를 넘어 근본적으로 친일 잔재를 제거하는 포괄적 사상운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386의 역사관은 선악을 중시하고 실천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특별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소농에 기반한 중앙집권적 권력과 경직적인 사상체제를 유지해 왔다. 분단과 6·25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신분 질서가 급격히 동하되며 상인과 군인 집단이 전면에 부상했다. 박정희와 이병철이 이를 상징했는데, 이들 집단은 실용주의적 색채를 갖고 있었다.



반면 386의 역사관은 선악을 분명히 하고 선악의 근원을 근본적인 시원과 뿌리로부터 규명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어 주자 성리학과 유사했다. 386을 대표하는 주사파가 농업 전통을 중시하고 품성이나 작풍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86 역사관의 또 다른 특징은 복고적·종교적 성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베이비붐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한국은 전쟁 때문에 베이비붐세대가 나타난 시기가 다소 늦었지만 크게 보면 한국의 386은 68세대(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을 주도한 대학생들과 이에 동조해 시위와 청년문화를 이끌던 유럽과 미국 등의 젊은 세대)와 맥을 같이한다.

68세대는 항생제·농업혁명 등의 영향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교육받은 청년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관여한 운동은 다분히 문화적이고 관념적 형태를 띠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히피와 마약 등 탈문명적인 성향을 띤 반면, 중동 이슬람은 종교적·복고적 색채를 가졌다.

친일파의 남한 vs ‘김일성의 항일 전력’ 북한

1987년 8월 19일 오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 학생 3500여 명은 충남대 운동장에서 전대협 발족식을 열었다. [동아DB]

1987년 8월 19일 오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 학생 3500여 명은 충남대 운동장에서 전대협 발족식을 열었다. [동아DB]

한국의 386은 불행히도 위 두 갈래 길 중 중동 이슬람 쪽에 가까웠다. 386은 1970년대 초·중반 서구 지향적인 대학생 문화 대신 반(反)서구 내셔널리즘에서 활로를 구한다. 그들은 전통 농업사회와 거기서 배태된 도덕과 품성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를 배경으로 1980년대 후반 주체사상이 출현하는 것이다.

1986~1997년 주사파 학생운동이 전성기를 누렸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식 때 연인원 수만 명이 동원됐다. 주사파를 상징하는 핵심 논리는 ‘북한 정통론’이다. 친일파가 득세한 남한과 항일 전력을 가진 김일성의 북한으로 분단돼 결과적으로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이 주사파의 핵심 논리다. 남북한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뿌리로 주체사상과 북한에 우호적인 생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결국 주사파는 해방전후사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배경으로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386과 그 아래 세대는 사회에 무난히 진입했지만, 386은 학생 시절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했다. 사상이란 오묘한 것이다. 청년기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갖게 되면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1990년대 한국 경제는 급격히 발전·팽창했지만 30대가 된 운동권 청년들은 여전히 친일파가 만악의 근원이며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술자리나 결혼식 피로연 등에 가면 이런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청년 시절 함께 부르던 노래를 추억하며 과거를 기억하곤 했다. 그럼에도 이런 장면이 대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은폐됐다. 그들은 사회에 나갔지만 아직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문화는 어느 정도 폐쇄적인 집단 속에 유폐됐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집단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과거 중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선별적으로 남기고 문제가 되는 내용은 교묘히 은폐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운동은 민주주의운동이면서 주체사상과 같은 급진 이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후자는 사라지고 전자만 남았다. 급진 이념에 기초한 공안(公安) 사건 또는 북한과 연관된 의문의 사건들은 공안기관에 의한 조작이거나 진실을 가리기 어려운 미제의 사건으로 사라졌다.

역사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근대사에서 갑신정변과 같은 개화파보다는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저항운동이 주류로 부상했다. 반일 운동에서 점차 김구의 위상이 강화됐는데, 이는 김구가 이승만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친일파 청산을 지상과제로 둔 역사관은 친일파의 뿌리를 조선 후기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1990~2010년대 한국은 역사보다는 경제와 과학에 중심을 둔 역동적인 사회였다. 2010년대가 시작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영화 ‘암살’ ‘밀정’ ‘봉오동 전투’ ‘대장 김창수’

개인적으로는 2010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934년생인 어머니는 평안도가 고향인 이산가족으로, 전쟁과 분단으로 얼룩진 구세대를 상징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와 함께 월남한 친지들은 단 한 분도 문상 오지 못했다. 그들 모두가 돌아가셨거나 거동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화 세대가 실질적인 사회의 주역임을 의미한다. 1990~2010년 나름 자제하던 민주화 세대가 더는 인내할 이유가 없어졌음을 상징하기도 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패하고, 반일·통일을 주제로 한 영화도 쏟아졌다. ‘암살’ ‘밀정’ ‘봉오동 전투’ ‘대장 김창수’ 등 역사 영화물은 독립운동 중에서 일제의 만행을 강조하고 무장투쟁을 중시한다. 이 과정에서 김구와 김원봉 등이 특별한 지위로 격상된다. 1200만 명이 본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안옥윤 역)은 이정재(염석진 역)를 암살한 후 이렇게 말한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김구와 김원봉, 배신과 밀정,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해산 등을 통해 영화는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수행해야 함을 단언한다.

거의 비슷한 주장이 대통령 문재인에게 있다. 그는 대선을 앞둔 2017년 1월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21세기북스)에서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이덕일 역사학자가 ‘노론의 나라’라는 책을 썼지요. 조선시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 세력이 일제 때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反共)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 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라며 친일파 청산을 강조한다.

“가짜 보수를 물러나게 해야 하고…이명박근혜 정부의 핵심 역할을 한 새누리당 인물들과 지식인들은 다 가짜 보수이죠, 그 가운데 혹여 일부 덜한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집단 전체가 보수를 사칭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진보, 보수가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야당은 공존해야 할 보수가 아니라 친일파에 뿌리를 둔 반혁명 세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의 논거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신념이었다. 세월호, 박근혜 탄핵, 대선, 적폐청산, 검찰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 퍼레이드’ 또한 그러했다. 이들 사건을 관통하는 기저에 깔린 신념 체계의 상당 부분도 역사였다.

역사를 정치에 동원하는 과정

역사를 정치에 동원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사실에서 멀어져 점점 신비화됐다. 조선을 근대화하고자 했던 기억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 틈을 비집고 전봉준의 동학운동 같은 저항운동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현재 서울 종각역 사거리에는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이 있다. 2018년 4월 세워진 동상의 자리가 조선후기에 죄인을 관장한 전옥서(典獄署) 터다. 386들에게 전봉준이 중요한 것은 일제하 저항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 시기에 의미 있는 저항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극적인 인물은 김구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는 외교파와 항쟁파의 대립 속에 분열됐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이 외교론을 대표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와 이승만을 격하하기 위해서는 중경(重慶) 임시정부와 항쟁파가 유효했음을 보여줘야 했다. 이 과정의 끝에 김구와 중경 임정이 있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사파였던 나는 분명 그랬다.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동료가 그러했다.

김구의 무장투쟁은 윤봉길·이봉창 등의 의거가 대부분이고 정규군 사이의 제대로 된 교전은 거의 없었다. 1940년대 초반 결성된 조선광복군도 그러했다. 조선광복군의 경력은 다른 군대와 비교해도 그러했다. 1920년대 만주에서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가 벌어졌다. 이는 반일 무장투쟁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였다. 1930년대 이후 무장 저항은 1930년대 초반 동만주 김일성의 조선인민군, 1940년대 초반 조선광복군, 1940년대 연안 지역의 조선의용군이 있다. 이 중 가장 교전 경험이 많던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과 함께 싸웠던 군대로, 조선의 관점에서는 다소 애매한 존재다. 조선인민군은 1930년대 초반 게릴라 전쟁 정도를 수행했다.

이렇게 보면 중경 임정과 조선광복군의 위상은 애매해진다. 386의 역사관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386의 역사관은 미국을 포함해 외세가 아니라 민족내부의 역량과 투쟁에 의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민족 내부의 투쟁이 미약했다면 386의 역사관은 뿌리로부터 흔들린다.

1945년 해방이 자율적인지 타율적인지는 매우 중요한 의제다. 해방이 자율적이라면 민족 내부의 투쟁과 역량이 중요해지는 반면, 타율적이라면 미소 강대국과의 협상과 외교론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진다. 386의 역사관은 자율적 해방에 방점을 두고 이를 저해하는 외세와 친일파에 정치적 과녁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은 해방에서 국제적 환경이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고, 민족 내부의 노력과 투쟁도 결집했다. 하지만 민족 내부의 역량은 단일한 정치, 정부, 군대에 의해 통합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정치세력이 산재하는 양상이었다. 이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반일무장투쟁은 주로 김구, 중경 임정, 조선광복군을 중심으로 재구성돼야 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일운동이 신비화됐다고 보는 이유다.

유튜브를 보면 김원봉이 항일을 선동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멋진 장면이다. 그러나 김원봉의 부상은 1948년 등장한 정부와 6·25전쟁과 충돌한다. 민족 내부의 투쟁을 과장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건든 것이다. 결국 대규모 미군의 개입에 의해 대한민국과 정부가 있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로 북한 내각 노동상에 올랐다가 1958년 숙청된 약산 김원봉. [뉴스1DB]

독립운동가로 북한 내각 노동상에 올랐다가 1958년 숙청된 약산 김원봉. [뉴스1DB]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하는 노력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집권당 후보의 서울·부산시장 선거 참패로 386을 뿌리로 하는 역사 전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집권여당을 패배로 몰아간 주역은 다름 아닌 20대 남성이었다. 그들은 통일·민족 문제에 대해 386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미국보다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반드시 통일할 필요가 있는느냐 반문하기도 한다.

미·중 갈등 양상도 우려스럽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지역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친일파가 아니라 6·25전쟁이 중요해진다. 그럼에도 386의 낡은 이념을 반영하는 생각들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2019년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거론하고, 김원웅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주장한다. 유력 대권주자 이재명도 ‘미군 점령군’ 관련 발언 또한 심상치 않다. 유튜브에서는 ‘민족정기’ 운운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다닌다.

그것은 현실을 반영한 냉정한 역사 인식이 아니라 30~40년 전을 배경으로 한 미처 청산되지 못한 낡은 유산이다. 마땅히 사라졌어야 할 잔재들이 유령처럼 살아남아 좀비처럼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다.

낡은 사상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진지한 시도가 진행될 때 극복되는 법이다. 구시대가 역사를 뿌리로 구성돼 있는 만큼 새로운 역사관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진행해야 한다.

#386 #운동권역사인식 #친일파 #김구 #신동아



신동아 2021년 8월호

민경우 민경우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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