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8250만 달러 낙찰 ‘가셰 박사의 초상’ 행방 묘연

[명작의 비밀] 잇달아 일어나는 名作 테러·도난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학대학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2-12-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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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종교 지키겠다며 훼손 이어져

    • 복수하겠다며 국보에 불 지르기도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안전할까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가셰 박사의 초상’. 일본에 같은 이름의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1990년 8250만 달러에 낙찰된 뒤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가셰 박사의 초상’. 일본에 같은 이름의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1990년 8250만 달러에 낙찰된 뒤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2022년 5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케이크 테러, 2022년 7월 영국 런던 내셔녈갤러리 ‘건초 마차’(존 커스터블 작) 순간접착제 테러, 2022년 7월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프리마베라’(산드라 보티첼리 작) 순간접착제 테러, 2022년 10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국립미술관 ‘한국에서의 학살’(파블로 피카소 작) 순간접착제 테러, 2022년 10월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미술관 ‘건초 더미’(클로드 모네 작) 으깬 감자 테러, 2022년 10월 런던 내셔널갤러리 ‘해바라기’(빈센트 반 고흐 작) 토마토 수프 테러….

    예술품이나 문화재에 대한 테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부쩍 빈번해졌다.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모나리자’와 ‘해바라기’를 테러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지구”를 외쳤다고 한다. 왜 예술품을 상대로 테러하는 것일까. 테러범들의 의도는 무엇이고 주로 어떤 작품이 테러를 당하는 걸까. 테러와 도난의 차이는 무엇이며, 테러는 그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테러부터 도난까지 다사다난한 모나리자

    5월 29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에 한 남자가 케이크를 던져 박물관 관계자가 작품을 보호하는 방탄유리를 닦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5월 29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에 한 남자가 케이크를 던져 박물관 관계자가 작품을 보호하는 방탄유리를 닦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드농관의 ‘모나리자’ 앞은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2022년 5월 29일, 그 인파를 뚫고 한 장애인 여성이 ‘모나리자’ 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장애인인 그를 위해 길을 터주었다. 그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리더니 ‘모나리자’ 보호 난간을 뛰어넘어 그림을 향해 케이크를 던졌다. 입에는 장미꽃 한 송이를 물고 있었다. 그는 경비원에게 제지당해 끌려 나갔고 그 과정에서 가발이 벗겨졌다. 여성 장애인을 가장한 남성이었다. 그는 끌려가면서 “지구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구를 망친다”고 외쳤다. ‘모나리자’는 방탄유리로 씌워져 있어 해를 입지는 않았다. 잠시 후 다른 경비원은 유리에 묻은 케이크를 열심히 닦아냈다. 수많은 관람객은 희대의 진풍경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술품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일까. ‘모나리자’의 수난과 테러는 한두 번이 아니다. 1911년 8월엔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절도범인 이탈리아 청년은 “이탈리아 사람이 그린 작품이 왜 프랑스에 있느냐.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자신의 후원자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한 것이다(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에게 돈 받고 팔았다는 얘기도 있다). 범인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모나리자’를 미술상에 팔아넘기려다 덜미를 잡혔고, ‘모나리자’는 1913년 12월 31일 무사히 루브르박물관에 돌아왔다.

    이후 1956년 한 볼리비아인이 ‘모나리자’에 돌을 던져 테러를 가했다. 1974년엔 일본 여행 중 테러를 당했다. 당시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장애인 관람을 금지하는 박물관의 방침에 불만을 품은 한 관람객이 ‘모나리자’의 보호용 유리에 페인트를 뿌린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루브르박물관은 ‘모나리자’를 방탄유리로 보호했다. 2009년에는 프랑스 시민권을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 여성이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에 찻잔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나리자’ 테러를 보니 테러 이유도 참으로 다양하다.



    신념 때문에 죄 없는 문화재만 수난

    10월 14일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 활동가 둘이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던진 뒤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 및 가스 개발 사업을 취소하라고 시위하고 있다. [저스트 스톱 오일 트위터]

    10월 14일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 활동가 둘이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던진 뒤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 및 가스 개발 사업을 취소하라고 시위하고 있다. [저스트 스톱 오일 트위터]

    고흐의 ‘해바라기’ 토마토 수프 테러는 2022년 10월 14일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 발생했다. 명작이 즐비한 내셔널갤러리이지만 그중에서도 ‘해바라기’의 인기는 단연 두드러진다. 그날 두 젊은 여성이 ‘해바라기’에 깡통 토마토 수프를 끼얹었다. 이어 자신의 손에 접착제를 바르고 그 손을 벽에 붙인 뒤 “당신은 예술과 삶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며 “그림의 훼손을 더 걱정하는가, 지구와 환경 훼손을 더 걱정하는가”라고 외쳤다. 그들은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 활동가였다. 이 단체는 영국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석유와 가스 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왔다고 한다. 상황을 요약하면, 지구환경을 위해 화석연료 생산을 중단하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은 것이다. 다행히 유리 액자 덕분에 작품은 훼손되지 않았다.

    ‘저스트 스톱 오일’ 활동가들은 석 달 전인 2022년 7월에도 내셔널갤러리에서 ‘최후의 만찬’ (레오나드로 다빈치 작) 복제품과 ‘건초 마차’ 그림 테두리에 접착제로 손바닥을 붙이는 행동을 저질렀다. 그들은 시위라고 주장하겠지만 그건 분명 위험천만한 예술 테러다.

    2022년 10월 9일엔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XR)’ 회원들이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순간접착제를 손에 바른 뒤 피카소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에 그 손을 붙이는 행동을 저질렀다. 그들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했다. 2022년 10월 23일엔 독일 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 회원 2명이 포츠담 바르베리니미술관에서 모네의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뿌렸다. 이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이 우리 모두를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 테러, 문화재 테러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탈레반의 바미안 석불 파괴다. 2001년 3월 탈레반 최고지도자는 “아프간에 있는 모든 불상은 우상숭배 금지에 어긋나는 것이고 따라서 모든 불상을 율법에 따라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로켓포를 동원해 아프가니스탄 곳곳의 불상을 파괴했다. 그 결과, 세계 최대 규모 간다라 양식 바미안 석불은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문화재 테러, 일종의 중독 행위

    예술 테러, 문화재 테러는 이렇게 편견과 독선, 무지와 맹목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니 예술 테러에 국경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에서도 예술 테러, 문화재 테러가 종종 발생한다. 사적 삼전도비에 대한 페인트칠 테러가 대표적이다. 삼전도비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승전을 자랑하기 위해 한강 나루터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송파동)에 세운 것이다. 높이는 3.95m. 2007년 2월 초 서울 송파구 주택가에 있던 삼전도비 표면에 짙붉은 스프레이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됐다. 누군가 붉은 스프레이를 뿌려 삼전도비 몸체의 앞뒷면에 ‘철거 병자 370’ ‘X’라고 써넣은 것이다.

    며칠 뒤 붙잡힌 범인 백모(당시 48세) 씨는 경찰 조사에서 테러 동기를 대략 이렇게 밝혔다고 한다. “370년간 치욕의 역사에서 청나라에 노비로 끌려간 선조와 일제에 징용노예, 학병, 성노리개로 잡혀간 조상의 피맺힌 통곡소리를 듣는다. 현재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치로 자칫하면 병자호란과 식민 시절처럼 외세 침략을 받아 무고한 백성이 고통받는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페인트를 칠했다.”

    다행히 삼전도비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수리를 통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실은 삼전도비 표면을 훼손하지 않고 글씨를 없애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래서 페인트 글씨를 문질러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녹여 없애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한 달간의 작업 끝에 붉은 글씨를 지우는 데 성공했다.

    삼전도비에 대해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삼전도비는 치욕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화재다. 그렇다 보니 여러 차례 훼손이나 테러의 위협을 받아왔다. 태생적 운명이라고 할까. 1895년 고종은 “굴욕적인 비를 보고 싶지 않다”면서 한강에 빠뜨리도록 했다. 1913년 일제가 이 비를 건져 올렸다. 이 비를 드러냄으로써 한국인을 욕보이려 한 것이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지역 주민들은 이 삼전도비를 보기 싫다며 땅속에 묻었다. 1963년 홍수 때 이 비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치욕의 삼전도비를 눈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삼전도비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비를 없애버린다고 해서 병자호란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니, 그 비를 바라보며 제대로 성찰하고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2007년 다시 한번 페인트 테러를 당하고 말았으니, 삼전도비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쯤 되니 예술 테러, 문화재 테러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테러를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려 한다. 무언가 자신의 불만을 세상 사람들에게 표출하고자 한다.

    페인트 글씨 테러를 저지른 범인 백씨는 경찰에서 “삼전도비에 ‘청와대로’ ‘국회로’ 등의 글씨를 추가로 써넣을 생각이었다. 경기 파주시에 있는 인조의 무덤도 훼손할 계획이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백씨는 삼전도비를 훼손하기 한 달 전 경남 함양군에 있는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도 넘어뜨려 망치로 훼손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백씨라는 사람은 문화재 테러 중독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영국의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의 행동에서도 이 같은 중독성이 발견된다. 예술 및 문화재 테러는 이렇게 중독성이 강하다.

    복수하고자 숭례문 불 질러

    2008년 2월 10일 국보 숭례문이 불타고 있다. [동아DB]

    2008년 2월 10일 국보 숭례문이 불타고 있다. [동아DB]

    예술 테러는 중독성뿐만 아니라 감염력도 세다. 비슷한 생각으로 비슷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수법으로 테러를 따라 하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유럽 환경단체들의 최근 행동이 대표적이다. 테러의 감염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우리에게도 발생한 바 있다. 예술품이나 문화재에 불을 지르는 것은 최악의 테러다.

    2008년 2월 10일 밤, 한 시민의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이 났다(지금은 국보, 보물 등에 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숭례문 문루 1층과 2층 대부분이 불에 타버렸다. 불을 지른 사람은 놀랍게도 70대 노인 채모 씨였다. 그는 “토지 보상가가 너무 적어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이보다 앞서 수원 화성과 창경궁에서도 방화가 발생했다. 2006년 4월엔 창경궁의 문정전에 채씨가 불을 질러 문 일부를 태웠고, 한 달 뒤인 2006년 5월엔 세상에 불만을 품은 청년 취객 안모(당시 24세) 씨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서장대에 불을 질러 건물이 소실되고 말았다. 문화재 방화의 감염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사례다.

    예술 및 문화재 테러는 불만을 표출하는 행위의 하나다. 개인적 불만도 있고 사회에 대한 불만도 있다. 불만을 표시하고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 주변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예술품이나 문화재를 테러하는 것은 타인의 주목을 끌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데 테러 대상이 유명하고 빼어난 작품이라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명작을 테러하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그런 행위를 한 것이라고 강변하겠지만 그 또한 결국은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문화재 도난·테러 위험 높아

    절도는 테러일까 아닐까. 절도도 물론 예술 테러의 범주에 들어간다. 다만 테러와 절도는 다소 차이가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절도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테러는 무언가 자신의 메시지(불만)를 표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도난은 다소 애매하다. 애매함의 대표적인 경우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도난 사건이다. 뭉크가 그린 유화 ‘절규’는 모두 4점. 2점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미술관, 1점은 오슬로국립미술관, 1점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의 ‘절규’가 1994년 2월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기간에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 당시 한 낙태 반대 운동단체가 “낙태 실태에 관한 영화를 TV로 방영하면 그림을 되돌려주겠다”고 밝혔다. 3개월 후, 오슬로 외곽의 한 호텔에서 종이에 싸인 채 발견돼 미술관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10년 뒤 ‘절규’는 또 도난당했다.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이던 2004년 8월, 뭉크미술관에 복면 무장 괴한들이 들이닥쳐 전시실 벽에 걸린 ‘절규’와 또 다른 뭉크의 작품 ‘마돈나’를 떼어낸 뒤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고 이 영상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명 미술관의 경비가 저렇게 허술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충격이었다. 도난 직후, 한 낙태 반대 운동단체가 “노르웨이 정부가 낙태 금지 정책을 발표하면 그림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두 작품의 액자틀은 오슬로 거리에서 부서진 채 발견됐고, 2년 뒤인 2006년 두 점 모두 미술관이 회수했다. 이 사건은 돈을 위한 단순 도난인지, 정치적 주장을 위한 퍼포먼스식 테러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뭉크미술관 측이 정확한 전모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1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절규’ 도난 사건에는 유사점이 참 많다.

    외국에서 예술 테러가 이어지자 한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은 최근 쓴 칼럼을 통해 문화유산의 최고 명작 가운데 하나인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2점(모두 국보)의 안전 문제를 제기했다. 2021년 11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은 ‘사유의 방’을 조성해 두 반가사유상을 한자리에서 노출된 상태로 전시해 오고 있다. 그전까지는 한 점씩 교대로, 유리 진열장 속에서 전시했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혹시 모를 테러에 잘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 테러의 중독성을 생각해 본다면, 신 이사장의 지적은 적절하다.

    행방 묘연 ‘가셰 박사의 초상’

    고흐의 그림 중에 ‘가셰 박사의 초상’이 있다. 모두 2점이다. 한 점은 일본에 있고, 한 점은 프랑스 오르세박물관에 있다. 일본에 있는 작품은 오르세박물관 소장품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 달러(1780억 원)에 낙찰됐다. 당시 미술품 경매 최고가 신기록이다. 낙찰자는 일본의 다이쇼와(大昭和) 제지회사의 사이토 료에이(齋藤了英) 명예회장.

    이 작품은 낙찰 후 곧바로 일본 도쿄로 옮겨져 한 갤러리의 비밀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1996년 사이토 회장은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그림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증폭돼 왔다. 일본 밖으로 팔려나갔다는 얘기, 사이토 회장이 “내가 죽으면 작품을 불태워 버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얘기 등등. 모두 근거 없는 소문이지만 그래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고흐가 죽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초상화 ‘가셰 박사의 초상’.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여라도 이 작품에 무슨 이상이 생겼다면, 아 그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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