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안철수 덕에 이겼나? 안철수 탓에 질 뻔 했나?

[여의도 머니볼⑥] 尹 뽑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은 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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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2-03 14: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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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해입니다. 대선도, 총선도, 지방선거도 없습니다. 대신 최근 여의도에서 가장 뜨거운 판이 하나 있는데요. 3월 8일 치러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입니다. 아무래도 관심은 누가 여당의 대표가 되느냐에 있겠죠. 1월 25일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구도는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간 2파전 양상으로 정리가 된 모양새입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가 김기현‧안철수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당대회의 룰(rule)은 당원투표 100%로, 흔히 ‘민심’이라 불리는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당원 대상 여론조사는 불가능합니다. 각 정당이 자신들의 당원명부를 사설 여론조사업체에 줄 리가 없죠. 최근 여론조사는 모두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수행한 결과입니다. 흐름은 파악할 수 있겠지만 당원의 전반적인 여론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지지층에 당원이 포함돼 있을 수는 있으나, 지지층이 곧 당원은 아니기 때문이죠.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왜 安을 非尹이라 부를까?

    그런데 이상한 대목이 있습니다. 흔히 언론과 정치권에서 김기현 의원을 ‘친윤’(친윤석열) 후보로, 안철수 의원을 ‘비윤’(비윤석열) 후보로 칭합니다. 당사자가 확인해준 적은 없습니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당 대표로 김 의원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중론이기도 하고요.

    이와 같은 정서의 밑바탕에는 당내 저변에 자리한 ‘윤석열-안철수 대선후보 단일화 역효과론’이 있습니다. 대선 이후 만났던 여권 인사들은 “단일화 피로감으로 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다수가 이재명 후보로 이동해 질 뻔 했다”거나 “단일화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초래해 대선에서 자칫 질 뻔 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단일화가 아니었다면 0.73%포인트보다 더 큰 격차가 났을 거란 인식이 스며있는 거죠. 여권을 취재하는 상당수의 기자가 최소 한번 씩은 접해봤음직한 주장일 겁니다.



    초대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대선 때 거론됐던 ‘윤석열-안철수 공동정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안 의원이 대선후보일 때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 때의 사람들이 그대로 다시 다 돌아왔다”(2022년 4월 13일)고도 했고요. 정권교체의 한복판에 있던 안 의원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 그룹 사이에 널따란 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런 사정 때문일 겁니다.

    과연 대선후보 윤석열은 단일화 상대 안철수 때문에 경쟁후보인 이재명에게 질 뻔 했을까요?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줍니다.

    유재성 계명대 교수가 2022년 5월 11일 동아시아연구원(EAI)을 통해 발표한 워킹페이퍼 ‘부동층과 이동 투표자의 특성과 투표 선택’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연구는 선거 사전/사후 설문조사를 통해 구성한 패널 데이터를 활용했는데요. 선거 전에 1차 조사를 하고, 선거 후에 1차 조사 대상자에 한해 다시 조사를 하는 방식입니다. 단발성으로 묻고 끝내버리는 여론조사보다는 투표 변화의 추이를 알기에 훨씬 적합한 방식이죠. 특히 단일화로 인한 효과를 가늠하는 데 유용한 분석 틀이 됩니다.

    대개 선거를 평론하는 분들은 부동층, 그러니까 스윙보터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합니다. 유 교수에 따르면 부동층과 이동 투표자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부동층은 ‘선거 캠페인 기간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고민한다고 추정되는 유권자’이고요. 이동 투표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다가 캠페인 기간에 지지 후보를 변경, 이동하는 유권자’입니다.

    유 교수에 따르면 부동층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이재명 후보를 윤석열 후보보다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2022년 대선에서 공식 선거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는 부동층 응답자가 33.36%로 나타났는데요. 이들은 최종적으로 이재명 54.55%-윤석열 45.45%의 비율로 투표했습니다. 부동층은 이재명 후보를 선호한 거죠.

    이동 투표자와 지속 투표자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된 대선에서 더 주목할 사람들은 이동 투표자입니다. 20대 대선에서 선거 기간 중 지지 후보를 변경‧이동한 유권자는 전체 투표자의 28.75%였습니다. 이동 투표자와 구분하기 위해 유재성 교수는 ‘지속 투표자’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지속 투표자는 75.16%, 이동 투표자는 24.85%였습니다.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지속 투표자는 69.77%, 이동 투표자는 30.23%였고요. 무슨 말일까요. 이 후보보다는 윤 후보로 ‘갈아 탄’ 유권자가 더 많았다는 겁니다.

    다음 내용이 재밌는데요. 1차 조사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 중 60.6%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택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를 택한 비율은 33.1%에 그쳤고요. 이러다보니 윤석열 투표자의 14.64%가 기존의 안철수 지지자였던 반면, 이재명 투표자의 8.48%만 기존의 안철수 지지자였습니다. ‘윤-안 단일화’가 윤 후보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근거죠.

    즉, 정리하면 이재명 후보는 선거 막판 부동층을 설득해서 자신의 표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고 윤석열 후보는 안철수 지지자를 흡수하거나 단일화 효과를 누렸다는 게 유 교수의 연구 결론인 겁니다. 이재명을 택한 부동층보다 윤석열을 택한 이동 투표자가 더 많았던 덕에 최종적으로는 윤 후보가 간발의 차로 승리한 것이고요. 유 교수는 아예 이렇게 못을 박았습니다.

    “윤석열 후보로 지지를 변경, 이동한 투표자는 주로 안철수 지지에서 변경, 이동한 투표자로 나타났기에, 윤석열 후보의 대선 승리는 후보 단일화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윤석열 후보 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대목은 간접적으로만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 교수의 글에는 윤석열-이재명 후보 투표자의 정치인 호오도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각 후보의 투표자별로 좋아하는 정치인의 순위를 매긴 거죠. 이 조사에서는 두 대선후보와 안철수 후보, 문재인 전 대통령 등 네 사람의 정치인에 대해 10점 만점으로 호오도를 물었습니다. 점수가 10점에 가까울수록 호감도가 높다는 얘기죠.

    매우 흥미롭게도 윤석열 투표자의 정치인 호오도는 안철수(7.04)-윤석열(6.24)-문재인(3.22)-이재명(2.49) 순이었습니다. 저는 잘못 봤나 싶어 이 대목을 몇 차례나 다시 읽었는데요. 차기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찍었다는 유권자들이 윤석열보다 안철수에게 더 호감을 표했다는 의미인 겁니다. 윤석열 투표자에게 가장 호의적인 인물은 안철수인데, 그 사람이 후보직에서 사퇴했으니 그 다음으로 좋은 윤석열을 택한 거죠. 유 교수는 이를 두고 “자연스러운 표의 이전”이라 표현했고요. 이재명 투표자의 정치인 호오도는 이재명(5.38)-문재인(5.26)-안철수(4.52)-윤석열(2.21)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이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죠.

    당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거늘…

    ‘윤-안 단일화’가 없었으면 윤석열 정부는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 말고도 이 조사는 많은 걸 알려줍니다.

    우선, 지금의 보수는 독자적으로 대선에 이길 힘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의도 머니볼 5편에서 데이터로 입증한 바이지만, 현재의 정치 질서를 설명하는 표현은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주류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은 비주류 시민단체처럼 행동하고, 주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민의힘은 모든 패권을 쥔 것 마냥 타협 없이 독주한다는 점이죠. 둘 다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꼴인데요.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집권 초부터 대선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울타리를 넓히기보다 검찰을 중심으로 한 관료 집단과 옛 정부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비칠수록 이동 투표자의 반감은 강해질 겁니다. 현재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이동 투표자의 이탈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요. 울타리를 높게 친 정치세력에 마음을 열 울타리 바깥 유권자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전당대회를 둘러싼 논란도 악재 중 악재입니다. 윤 대통령의 유명한 표현, 즉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를 빌자면 당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가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대표 선출 과정에서 ‘윤심’ 논란이 불거지고 2선으로 후퇴했다고 알려졌던 장제원 의원이 한동안 전면에 나섰는데요. 이동 투표자의 눈에는 여권에 자꾸 폐쇄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비칩니다.

    대선을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를 종합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가장 지지 기반이 취약한 대통령이라고 말입니다. 실은 집권 전이건 집권 후건 취약한 기반을 보완해줄 그룹이 이동 투표자입니다. 이동 투표자의 시각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는 새해 들어 차곡차곡 감점 요인만 쌓고 있습니다. 여권 핵심부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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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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