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화난 노무현, DJ 전방위 압박

국정원 현안보고엔 ‘대북송금’ 없었다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입력2003-02-24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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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은 DJ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임해왔다. 그러나 양측 신뢰에 금이 갈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마무리됐지만 한때 노-DJ 진영을 갈등으로몰아넣었던 사건의 발단은 대선 직후 두 사람의 화기애애했던 청와대 회동에서 시작됐다.
    화난 노무현, DJ 전방위 압박

    국정원 보고누락으로 한때 노무현 대통령과 DJ 사이에는 냉기류가 형성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23일 청와대에서 만난 두 사람

    지난 2월14일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성명을 계기로 의혹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한나라당의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 폭로로 시작된 대북송금 사건은 사실관계 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로 넘어갔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김대통령까지는 아니라도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 임동원(林東源) 청와대통일외교안보특보 등 핵심 관련자는 사법처리해야 국민적 의혹과 분노가 풀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국민여론과 한나라당의 적극적 공세가 계속되는 한 노무현 정권 초기, 권력과 야당 간의 허니문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특검제 하자” 이상수의 공격

    여기서 의문 하나. 지난 초가을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의 줄기찬 공세가 있었음에도 대선 후보 시절, 그리고 당선자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대북송금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나라당과 언론의 폭로공세에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노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말도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노대통령측은 야당이 대북송금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제 주장에 맞서 정치적 해결을 주장해왔다. 그러던 1월말, 인터넷 매체가 여권 관계자의 입을 빌려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대출자금으로 받은 4000억원 가운데 2240억원(2억달러)을 북한에 송금했다는 사실확인성 보도를 한 직후 여권의 태도는 달라졌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추가해명 거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김대통령이 직접 나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민주당을 장악했다.



    2월4일 아침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은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조사는 정쟁화할 가능성이 있고 일반 검찰수사는 검찰의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특검제를 수용해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며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제 수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날 발언에 앞서 이총장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난 것으로 알려짐으로써 그의 특검제 발언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민주당 신주류측의 김 전 대통령을 향한 공세도 눈여겨볼 만했다.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진실을 밝히고 국민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DJ가) 추가 해명을 안 하면 특검으로 가게 되고 결국 다 밝혀진다”고 말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대북송금 방법이 적절했는지, 김대중 대통령 보좌진의 오도(誤導)는 없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몇 사람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마치 한나라당 의원총회를 방불케 하는 발언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도 밝혔듯 김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계승자다. 그는 지난 대선기간 햇볕정책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대그룹을 통한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거나 “정치적 해결만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노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돌연 김 전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들끓는 국민여론을 의식한 행동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말 인터넷 매체가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 대북송금이 사실이었음을 보도한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주변에서는 노대통령이 적지않게 당황하고 분노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인수위 한 관계자의 전언.

    “2월초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을 비롯한 신주류측에서 DJ의 직접 해명과 특검제를 주장한 것은 그만큼 노대통령 진영의 격앙된 감정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분명 그 시기 DJ와 노대통령 사이는 갈등관계였다. 동지 사이라면 서로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 노대통령은 남북문제에 관한 한 DJ가 이룬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보수층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려고 했다. 그런데 대북송금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야 알았다. 노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연히 화가 나지 않았겠나.”

    노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현대를 통한 대북송금 의혹의 실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문제가 정권 초기 돌파해야 할 최대 장애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여러 경로로 사실 확인 작업을 벌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측이 배신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DJ와 노대통령 두 사람 사이에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한 계기가 있었다는 것. 여권의 한 고위 소식통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지난 12월말, 당선 직후 김 전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을 당시 두 사람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대화 도중 김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북 전문가 한 사람을 노대통령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이 그 주인공. 국정원 3차장은 북한 파트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탁월한 사람으로 평가했고 만나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차장은 국민대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를 아는 사람은 “교사 출신이어서인지 언변이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앞서의 여권 소식통은 “적절한 비유와 예시를 드는 능력이 뛰어나 논리적 사고를 즐기는 김 전 대통령도 그의 보고를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월초 대통령직인수위가 문을 연 직후 노대통령은 김 전대통령으로부터 추천받은 김차장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사실상 노대통령과 김차장 두 사람만의 독대자리였다고 한다.

    김차장을 발굴하고 키운 사람은 임동원 전특보. 임 전특보가 국정원장이던 시절, 김차장은 대북정책 담당국장으로 남북정상회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따라서 그는 임 전특보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의 전과정을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그의 비중은 한나라당에서도 ‘인정’해주고 있다. 지난 2월11일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 의원은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4월9일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위원장에게 북한에 송금할 돈을 모을 것을 지시, 5월31일 정상회담의 남측 선발대가 방북하기 전까지 급한 대로 1억5000만달러를 조달했다”며 “이것이 이모씨를 통해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는 모 은행 김정일 계좌 6개로 나뉘어 송금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면서 “2000년 3월8~10일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이 싱가포르에서 송호경 아태위원회 부위원장과 3차례 접촉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북송금과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준비와 진행과정에 김차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박지원 임동원씨 외에 김보현씨를 대북송금사건과 관련 핵심인물로 거론하면서 출국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盧, 국정원 정보보고 안봐

    김차장을 따로 만난 노대통령의 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어떤 경위인지 김차장은 현대그룹의 대북송금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를 누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차장이 노대통령과 따로 만난 직후, 인수위 주변에서는 “김차장도 대북송금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언론에서 대북송금 사실을 여권 관계자의 말을 통해 보도했고 청와대가 침묵으로 사실상 이를 시인함으로써 결국 노대통령 진영만 상황을 잘못 보고 있었던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김차장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에 문의했으나 국정원측은 “김보현 차장이 당선자 시절 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는지는 정보기관의 업무특성상 확인해줄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김차장 외에도 신건 국정원장이 업무보고차 노대통령의 당선자 집무실을 방문했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대북 비밀송금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난2월 초 노대통령과도 가까운 인수위의 한 핵심인사는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 노당선자의 국정원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른 어떤 정부기관 보다 국정원 내부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하다는 소문을 우리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 보기에 참 어이없는 짓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한 노대통령의 싸늘해진 시선은 인수위 시절 국정원의 아침 정보보고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통상 아침 7시반쯤, 국정원 과장급 2명이 인수위원회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 내정자실을 찾아와 전날 작성한 정보보고서를 건넨다. 비슷한 시각 또 한 군데 정보부서인 경찰 정보보고서도 두 명의 경찰 간부의 손에 들려 문실장실에 접수된다.

    문비서실장 보좌관이 일단 이를 수령해 1차로 검토한다. 비서실장 보좌관은 1차 검토에서 문실장이 꼭 봐야 할 정보에 대해서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주의를 환기시킨다. 잠시 후 문실장이 국정원과 경찰의 보고서를 읽은 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자 집무실로도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문실장이 보내온 보고서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노대통령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정보, 즉 대북관련 정보만 일부 보고를 받을 뿐, 국내 정보는 읽지 않는다는 것. 한 측근 인사는 “노대통령은 과거부터 정보기관의 정보에 그다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칫 사전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사람과 사건의 진면목을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간부의 보고를 계기로 노대통령과 김 전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이런 갈등이 두 사람 사이를 근본적으로 갈라놓은 사건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월14일 김 전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현대그룹의 북한 송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함으로써 일단 모든 부담은 김 전대통령이 지고 가는 모양새를 갖췄기 때문이다.

    임동원에 호감 나타내

    이런 외형 외에도 노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관한 평소 소신에 비춰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려는 의지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노대통령은 1998년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6년 만에 국회에 진입했다. 당시 노무현 의원은 김 전대통령이 아태재단 이사장 시절 발간한 ‘3단계통일방안’에 관한 자료집을 꼼꼼히 챙겨 읽었다고 한다. 당시 노의원의 소속 상임위는 교육위원회였다. 상임위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김 전대통령의 통일방안을 꼼꼼히 탐구했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 이때부터 노대통령은 대권출마에 뜻을 두고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나눠가진 부담

    당시 아태재단 사무총장으로 있던 임동원 전특보가 사실상 이 자료집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자료집을 탐독할 무렵 노대통령은 임 전특보에 관해 언론에 공개된 자료도 두루 읽어보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노대통령은 임 전특보를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호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단순한 인간적 호감이 아니라 그의 통일·대북정책에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대북관은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4년여 전부터 이렇게 형성됐고 그 과정에 임 전특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보현 차장은 바로 그런 임 전특보에 의해 발굴되고, 김 전대통령과 박지원 전실장 등에게 소개된 인물이었다.

    이처럼 근본적인 신뢰관계 때문인지 노무현-DJ 간의 갈등으로까지 비쳤던 국정원 보고누락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노대통령의 ‘정치적 해결’ 제안을 김 전대통령측이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월14일 김 전 대통령은 전격적인 대국민 사과방송을 통해 북한 송금사실을 인정하며 해명에 나섰는데 며칠 전부터 인수위측은 다방면으로 김 전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2월11일 “여론은 특별검사제를 원하는데 청와대는 (사건의 전모를) 공개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니 답답한 일”이라며 사견을 전제로 “이번 주 내로 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정치고문인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의원도 이날 KBS, SBS 라디오에 잇따라 출연해 “필요하다면 (DJ가) 국회에서 이 문제를 직접 증언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며 ‘선 정치적 해결 모색, 후 수사 착수’ 방안을 제시했다. 민주당 김상현(金相賢) 고문도 “김대통령이 재임 중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정치적·도의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전방위 공세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며 해명 거부 의사를 밝히며 버텼으나 2월13일 밤, 김 전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노대통령측 의견을 받아들여 국민에게 직접 해명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북정책에 관한 부담을 나눠 갖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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