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이끌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해답은 박 당선인의 용인술에 있을 것이다. 박 당선인은 지역안배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핵심 측근들과 검증된 전문가들을 중용하는 쪽으로 인사 방향을 잡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와 관련해 여권 내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파워그룹으로 꼽히는 50명에 관해 알아봤다. 박 당선인 측근들에 따르면 박 당선인의 알려지지 않은 인재풀은 훨씬 풍부한 편이라고 한다. 다만 이들 50명은 지난 대선에서 박 당선인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인 만큼 1차적인 주목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와 가장 가까운 거리”
이들은 크게 전·현직 의원, 학자·전문가, 외부 영입 인사, 호남 출신, 원로, 실무진 등 여섯 범주로 분류된다. 이 중엔 박 당선인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지만 그동안 언론에는 노출되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최외출 영남대 교수(전 대외협력부총장)가 대표적이다. 최 교수는 움직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한다. 캠프 내부에서도 그와 접촉한 사람은 몇 안 된다. 대선 기간 중 그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인 건 박 당선인의 고(故) 이춘상 보좌관 영결식 참석 때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최 교수는 후보 비서실 기획조정특보를 맡아 막후에서 선대위 업무를 조정했다. 박 당선인의 생각과 의중을 대신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유력 인사들도 최 교수와 만난 뒤 선대위에 합류했다. 최 교수를 박 당선인의 대리인 정도로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인요한 연세대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박근혜 선대위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는데 인 소장을 영입한 인물이 최 교수였다. 추석 직전인 9월 25일 박 당선인이 강원 화천군 감성마을로 소설가 이외수 씨를 만나러 갔을 때 이를 사전에 조율한 인물도 최 교수였다. 박 당선인 방문에 부정적이었던 이외수 씨는 최 교수를 만난 뒤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이 씨는 나중에 “최외출 특보와 잘 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2년 10월 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최 교수가 등장했다.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은 당시 “정수장학회의 대선 개입 사건이 보도됐을 때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이 최외출 특보와 대책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처장이 최 특보와 이틀 사이에 8차례 통화를 했다고도 했다. 당시 ‘정수장학회 파문이 일어나자 최필립 이사장과 최외출 특보가 동시에 잠적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 측은 과로로 잠시 휴식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6년 ‘새마을장학금’ 1기생으로 뽑혔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마니아’가 됐다고 한다. 교수가 되고 나서 장학금 동기생들과 ‘새마을장학회’를 만들었고 새마을운동을 학문으로 정립했으며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작업에도 뛰어들었다. 또 영남대에 ‘새마을연구센터’를 만들어 원장을 역임했다. 박 당선인으로선 선친의 유업(遺業)을 계승·발전시켜온 최 교수에게 호감을 가졌을 법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