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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때는 ‘민주주의 위기’ 尹 때는 ‘리더십 위기’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위기의 바이든보다 더 열악한 윤석열 100일 통치

  •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文 때는 ‘민주주의 위기’ 尹 때는 ‘리더십 위기’

  • ● 지지율 20%대 尹, 30%대 바이든
    ● 도널드 트럼프인가 조지 W 부시인가
    ● 바이든의 실패, “미국은 두 개의 나라”
    ● 反트럼프 연합군과 反이재명 연합군
    ● 정치 양극화 구조에선 중도 포지셔닝해야
    ● 검찰 · 관료 의존이 능력주의? 위험한 발상!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 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 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차마 이재명을 찍을 순 없어서 윤석열을 찍었는데 잘 할까요?”

“글쎄요, 아직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최소한 1년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6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인들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내비친 복잡한 심경이다. 바라던 정권교체가 됐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는 속내를 토로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7월 말, 이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집권 세력은 자중지란에 빠졌고, 출범 2개월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다. 다시 선거를 치른다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미국에서 지인들과 나눴던 대화나, 그 이후 전개 상황과 너무도 흡사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당시 대화를 나눈 미국 지인들 역시 트럼프를 찍을 수는 없어서 바이든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새 행정부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을 가졌다. 바이든이 취임한 지 18개월이 지난 현재,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바이든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0%대에 머물고 있고, 민주당 지지층에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공히 공화당에 내줄 것이라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만일 오늘 투표한다면 바이든보다 트럼프를 찍겠다는 미국 유권자의 비율이 오히려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등장했다. 현재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다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尹, 한국의 트럼프인가

미국과 한국, 진보와 보수 정부, 정치적 베테랑과 신인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과 윤석열은 왜 비슷한 길을 가고 있을까.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나 전쟁 같은 불운한 상황 탓인가. 혹은 정치적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 때문인가. 그도 아니라면 지도자의 무능력과 정치력 부재에 따른 리더십의 위기인가. 또는 이들의 항변대로 전임 대통령인 트럼프와 문재인이 남겨놓은 짐이 너무나 큰 탓인가?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이러한 질문을 놓고 미국 상황과 비교하면서 해법을 고민해 보자.

윤석열을 바이든과 비교하기 전에, 미국 공화당의 전직 대통령인 트럼프, 부시와 먼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선 기간 해외 언론이나 세미나에서 종종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윤석열은 한국의 트럼프인가’였다. 아마도 정치 경험이 일천하고, 반(反)페미니즘, 반(反)중국 이미지가 강해 나온 질문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를 연상케 한 윤석열의 능력주의, 타협과 조정보다 결단과 추진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트롱맨의 이미지, 직설적 화법과 반(反)다원주의적 언행 등이 두 지도자 간의 유사성을 연상케 한 근거였다.

하지만 트럼프와 윤석열은 차이점이 더 도드라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다자주의적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일본·한국 등 전통적 동맹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압박을 가했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존중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또 법과 원칙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았던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의회를 점거한 이른바 1·6 의사당 폭동 사태에 대해 정죄하기는커녕 아직도 부정선거로 패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윤석열은 법률가 출신답게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이단아라고 불리며 보수 주류 세력으로부터도 배척당했다. 이에 비해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찰총장까지 지낸 윤석열은 한국 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다. 굳이 비교하자면 윤석열은 트럼프보다는 조지 W 부시와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조지 W 부시와 비슷한 尹

중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부시와 윤석열은 각각 최고 대학인 예일대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부시의 아버지 역시 대통령을 지냈고 윤석열의 아버지는 연세대 응용통계학과(경제학 전공) 교수를 지냈다. 그럼에도 부시와 윤석열 모두 인생 초반 굴곡을 겪었다. 부시는 음주운전 등 알코올 문제가 있었고 첫 번째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해 낙선한 적이 있다. 윤석열은 9번째 도전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검사 시절 좌천을 거듭한 경험이 있다. 부시와 윤석열은 이처럼 어려움을 이겨낸 스토리와 소탈한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다.

트럼프와 달리 대통령으로서의 부시와 윤석열은 보수 주류의 인재풀에 크게 의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부시는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국방장관이던 딕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또 포드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를 국방부 장관에 재기용했다. 외교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 등 후버연구소의 네오콘 인맥도 부시 정부를 뒷받침했다.

외교안보 정책은 동맹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전통 노선을 따랐고, 세금 감면 등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을 펴며 한국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고,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전임 정부의 색채를 지우는 Anything but Clinton(ABC)을 추구해 갈등을 고조시켰다.

윤석열 정부도 비슷한 인맥 구성과 정책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외교안보팀을 보면 의회의 대표적 외교통인 박진 의원을 외교부 장관에, 박근혜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권영세 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를 국가안보실장에, 이명박 정부 안보 실세로 불리며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를 국가안보실 1차장에 임명했다. 이들의 면면이 강경 보수 성향을 띠었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석열 역시 부시와 마찬가지로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 북한 등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ABC를 연상케 하는 Anything but Moon(ABM)의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경제 분야에선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기재부 출신 정통 관료들을 중용했다. 이와 동시에 규제 완화, 혁신, 법인세 인하 등 시장 친화적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구성과 정책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임기 초반부터 고전하고 있는 윤석열은 실제론 바이든 행정부와 유사한 경로를 갈 가능성이 크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바이든과 달리 부시는 9·11 테러 이후 반(反)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지지율이 한때 90%에 육박했고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윤석열은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 국내외적 상황도 그렇고 지난 10여년 간 심화한 정치·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바뀐 정치 지형 면에서도 그렇고 바이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집권 세력의 결집력이나 리더십이 현저히 약화했다는 점도 두 사람이 공히 처한 환경이다. 따라서 지난 18개월간 바이든 행정부가 보인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향후 진로에 소중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임기 초부터 지지층 흔들리다

트럼프, 문재인 시기의 화두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면 지금의 화두는 ‘리더십의 위기’다. 특히 어렵게 정권교체에 성공한 바이든과 윤석열이 왜 임기 초부터 고전하고 있는지 미국과 한국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대통령 모두 각국 대선 사상 가장 비호감 이미지가 짙은 후보 간의 대결에서 박빙의 차로 승리했다. 또 대선 직후 치러진 미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와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각각 여당이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normalcy)’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은 현재 빗나가고 있다.

우선 미국을 보자. 여론조사·정치 분석 웹사이트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ealClearPolitics)에 따르면 올해 6월과 7월 시행된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해 평균을 낸 결과, 응답자의 75%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8%에 그쳤다.

또 다른 여론조사·정치 분석 웹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 Eight)에 따르면 1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볼 때 바이든의 지지율은 최저 수치인 38.6%를 기록하고 있고(같은 시점 트럼프의 지지율은 42.1%) 흑인이나 라틴계 등 전통적 지지층에서조차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선거에서 바이든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젊은층(18~29세)의 지지율은 대선 당시 60% 선에서 최근 30%대로 내려앉아 반 토막이 났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아니, 외려 그 속도나 낙폭 정도는 미국보다 훨씬 더 심한 편이다. 한국갤럽이 7월 26~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특히 30, 40대의 긍정 평가가 각각 17%로 연령별 최저였고, 여권의 텃밭인 대구·경북(TK) 지역에서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7%포인트 더 높게 나와 미국과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단지 미국에선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이유가 ‘경제 문제’였다면 한국은 ‘인사 문제’로 차이점을 보였을 뿐이다. 그러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국의 유명 시사 잡지인 ‘더 스테이츠맨’은 7월 20일자 ‘왜 바이든은 실패했는가?’라는 특집기사에서 그가 고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불운, 무능력, 내부 분열, 미국 정치의 구조, 정적의 무분별함이 합해져 바이든 정부의 미래뿐만 아니라 공화국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A combination of bad luck, ineptitude, internal divisions, the structures of US politics and the ruthlessness of their enemies has put not only the future of the Biden administration but the republic itself in danger.)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의 불운(bad luck)은 차치하고라도, 이 기사가 지적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정적의 무분별함(ruthlessness of their enemies)은 구조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무능력과 내부 분열은 정치 리더십의 문제다. 이 기사가 바이든을 실패로 규정한 점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분석은 한국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준거를 제공해 준다.

첨예화한 정치 양극화

우선 구조적 요인을 살펴보자. 갈라치기의 명수였던 트럼프 행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미국 내 정치 양극화는 첨예화했다. 지난 대선만 해도 애리조나,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세 개 주의 선거인단 결과에 따라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던 박빙 승부였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일부에선 아직도 승복하기를 꺼리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양극화 구조에선 누가 대통령이 되건 지지율을 50% 이상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1930년대 나온 ‘뉴딜’이나 1960년대 등장한 ‘그레이트 소사이어티(위대한 사회)’ 등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거대 정책이나 프로젝트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21세기 뉴딜이라며 바이든이 야심만만하게 추진했던 빌드백배터(Build Back Better)는 처음부터 의회 통과에 난항을 겪었으며, 낙태 문제 등 사회 이슈에서도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미국판 편집자인 에드워드 루스(Edward Luce)는 “미국은 서로 대화가 안 되는 두개의 나라가 됐다”(America is two nations barely on speaking terms)고 일갈한 바 있다.

두 번째는 내부 분열과 무능력으로 점철된 정치 리더십의 문제다. 바이든은 반(反)트럼프 연합군의 사령관 격으로 대선에선 이겼지만 그다지 호감 있는 후보는 아니었다. 외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 색채가 강한 후보가 주목을 끌며 약진했지만 본선 경쟁력에서 바이든에 밀려 후보가 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의 연대는 느슨해졌고, 민주당의 진보·중도·보수 파벌을 아우르는 것이 숙제가 됐다. 나 역시 이런 이유로 바이든이 조기 레임덕에 처할 수 있다고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지적한바 있다. 빌드백베터 법안이 의회 통과에 난항을 겪은 건 야당의 저지뿐 아니라 여당 상원의원인 맨친(Manchin)에 반대에도 기인한다.

민주당 내 진보 쪽에선 바이든이 처음 약속과 달리 기후변화 등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이 크다. 젊은 층이 바이든에게서 돌아선 이유는 경제 문제도 있지만 이런 진보적 어젠다에 미온적인 데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등 민주당 내 중도·보수 쪽에선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이 좌편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바이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인권 문제까지 양보하면서 7월에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지만 결국 석유 증산에 실패하면서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에 직면해 있다.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아프간 철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출된 ‘미국 리더십 회의론’이 겹쳐 미국인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에 무력시위의 빌미를 줬지만 이 문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아직 바이든이 실패했다고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다. 오히려 최근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결정으로 이에 불만이 큰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재결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책과 리더십에서 획기적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은 어려울 것이다. 1·6 의사당 폭동 사태 등 등 여러 건에 걸쳐 기소 위기에 처한 트럼프가 사법적 리스크를 제거한다면 2024년 대선에 다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의 실패는 트럼프의 리턴을 가져올 테고, 이는 미국 사회와 정치는 물론 국제사회에 혼돈의 소용돌이를 불러올 것이다.

‘더 스테이츠맨’이 분석한 바이든의 위기는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팬데믹, 전쟁, 인플레이션 등의 ‘불운한’ 상황에 이어 정치적 양극화와 반대 정치세력의 무분별함 등 구조적 문제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나기에 흠뻑 젖었던 한국 민주주의’(관련 기사 ‘신동아’ 2022년 5월호 ‘문재인 5年,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는커녕 자칫 내부 분열과 무능력으로 인해 국정 동력을 잃고 지리멸렬할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세 번째)와 원내지도부 등이 7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서 윤석열 정권 경찰장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세 번째)와 원내지도부 등이 7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서 윤석열 정권 경찰장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트럼프의 레거시(legacy) 다뤄야 하는 바이든처럼 윤석열도 문재인이 남긴 레거시 때문에 억울한 대목이 있을 수 있다. 경제 불황, 정치적 양극화, 외교안보의 난맥상 등 문재인 정부가 남긴 여러 난제를 이어받은 받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전 정권 탓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로 끝났고 이제는 윤석열의 시간이다.

더구나 윤석열은 바이든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바이든은 그 자신이 오랜 정치 경험을 갖고 있고, 지난 오바마 행정부에서 함께 손발을 맞췄던 주요 참모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여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윤석열은 여전히 정치 초년생 처지고, 국회는 야당이 장악한 상태일 뿐 아니라 이제 겨우 원 구성을 마쳐 정부 입법을 뒷받침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취임 2개월 만에 20%대로 급강하한 지지율은 분명 위기의 신호다. 같은 파고가 몰아쳐도 상대적으로 작은 배가 더 흔들린다. 지금 한국 상황이 그렇다. 윤 대통령 말대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여론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국민의 경고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국정 운영에 여론은 중요한 지렛대다.

윤 대통령이 집권 초에 빠진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법률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우선 집권세력 내의 분열과 갈등을 신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윤 대통령 역시 바이든처럼 정권교체의 최적임자로 선택돼 그 목표는 이루었지만, 그 역시 반(反)이재명 연합군의 사령관 성격이 강했다. 이렇다 보니 집권 세력 내에 여러 세력이 할거해 있고, 후보의 비호감도도 높아 지지층의 결집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 간 갈등은 이미 예고된 사안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조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고, 외려 여권 내 갈등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이다”라는 한 중견 언론인의 칼럼 제목처럼 집권 세력의 난맥상을 가져온 데 대해 깊이 성찰하고 좀 더 책임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고 취임식에서도 자유를 수없이 외쳤다. 정작 국민에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지 구체적 방안이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국민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부정평가의 가장 큰 요인은 인사 문제로 꼽힌다. 국민은 윤 대통령이 주요직을 임명할 때 스스로 공정과 상식을 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임 정부 탓만 하는 것이 그간 훼손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과 상식, 자유에 기반한 비전과 정책이 무엇인지 국민은 알고 싶다.

50% 중반 지지율 확보가 현실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두 번째 방편으로, 윤 대통령은 정책 지향점을 좀 더 중도적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의 정치 지형에선 누가 대통령이 돼도 70~80%대의 지지율을 기대할 수 없다. 한국 국민의 정치 지향이 보수·중도·진보 각각 3분의 1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면, 중도를 지향하는 국민 중 3분의 2를 끌어와 50% 중반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게 국정 동력을 되살릴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정치적 양극화 해소는 구조적 문제에 해당해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려 하는 교육·연금·노동개혁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소수 정권으로 출발했던 김대중 정부가 김종필(JP)과 연대해 국정 동력을 확보한 일이나, 임기 초반 위기를 맞았던 이명박 정부가 중도 서민 정책을 펴면서 국정에 필요한 지지율을 확보했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Anything but Moon(ABM)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고 단죄했던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답습해선 안 된다. 잘못된 정책은 시정해야 하고 부패나 불법은 단죄해야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된 정책마저 현재의 기준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만 강화될 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주요 부처마다 ‘적폐청산위원회’를 만들고 정책적 결정마저 정치·사법적 기준으로 단죄했던 것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르던 장본인에서 거꾸로 그 타깃이 됐던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그 폐해를 잘 알 것이다.

조만간 닥칠 ‘외교안보 쓰나미’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에도 참석했다. 기본적인 방향 설정은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북한 문제를 비롯해 대중관계 설정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조만간 시험대에 설 것이다. 북한이 도발엔 나서거나, 중국이 문재인 정부 당시 언급된 ‘사드 3불(不) 입장’을 계승하라고 요구할 경우, 더 나아가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경우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내서 힘없는 정부나 지도자는 해외에서도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치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법과 원칙’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법치주의라는 미명하에 민주주의가 훼손됐던 것을 너무 명백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민주적 규범과 가치에 대한 존중과 수호가 없을 때 자유민주주의는 성립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과 권력의 절제가 필요하다. 인내를 갖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입학 연령 변경과 같은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대 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막강한 견제와 거센 도전을 감수하려면 여론 수렴, 정치적 협상, 조정과 타협, 권력 사용 절제 등 정치적 리더십 구현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여러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내가 지난 7월호 칼럼(관련 기사 ‘ ‘검찰 슈퍼 네트워크’로 얽힌 내각 인선 우려스럽다’)에서도 지적했듯이 다양성 확보는 배려와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수행과 혁신에 필수 요소다. 검찰과 관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능력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듣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와 통로를 차단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더십 위기’ 속 尹의 길

그간 화두가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였다면 이젠 ‘글로벌 리더십 위기’를 논해야 할 때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트럼프나 문재인은 떠났지만, 그 바통을 이어받은 바이든과 윤석열은 리더십 부재로 고전하고 있다. 차기 총리 선출을 앞두고 있는 영국, 메르켈의 공백이 아쉬운 독일, 힘겹게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의 프랑스는 집권 세력이 30% 중반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권위주의에 대항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이 주도하는 권위주의에 맞서기 위해선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자유민주 진영의 리더십이 확고해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 위기의 속도와 깊이 그리고 진통은 더 크다. 윤 대통령 처지에서는, 당장 해소하기 힘든 국내외 구조적 문제의 경우 시간을 갖고 차분히 개선해 갈 생각을 할 순 있다. 다만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냉엄한 성찰은 시급하다. 임기 초인만큼 겸허한 자세로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되짚는다면 현재의 위기는 되레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리더십의 위기 속에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의 길을 갈지, 아니라면 자유민주 진영의 새로운 기수가 될지는 오롯이 윤 대통령 본인에게 달려 있다.


신기욱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
● 미국 아이오와대, UCLA 교수
●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 저서 :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등



신동아 2022년 9월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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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때는 ‘민주주의 위기’ 尹 때는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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