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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어공’ 급수 매길 때도 검사 직급 기준 삼아”

Maverick, 축배인가 독배인가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尹, ‘어공’ 급수 매길 때도 검사 직급 기준 삼아”

  • ● “정치도 모르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 검찰 기준으로 정무직 직급 따진다?
    ● 독립적인 사람과 독불장군 사이
    ● “옳고 그름 떠나 경찰국 신설은 패착”
    ● “대통령 지시에 앵무새처럼 말하는 참모”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 얼마 전 거물급 정치 컨설턴트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너무 모른다.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라면 폭우가 예상됐을 경우 일부러라도 가던 길을 돌려 집무실로 돌아가거나 현장으로 당장 갔을 거다.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정무 감각이 없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는데 상식적이지도 않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당헌당규를 뒤져가며 이준석 대표 해임의 명분을 찾는데, 누가 그걸 상식적이라 보겠나.” 그가 한 말의 핵심은 윤 대통령이 권력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지율이 쉬이 반등하지 못하리라는 진단이자 냉소다.

#2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기자는 대선 때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인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윤 대통령은 ‘늘공(직업공무원)’, 그중에서도 검사를 기준으로 정무직 직급을 따진다. 대통령실 인사 과정에서 국회 보좌진이나 당 사무처 출신들의 급수를 올려줘야 한다고 했더니 윤 대통령이 ‘부장검사는 3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간에는 당 출신의 경우 2급 선임행정관이나 3급 행정관으로 발탁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를 두고 “수준 이하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로 정무직 공무원을 이름)이 너무 많아 윤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본다”(여당 C의원실 보좌관)는 견해도 있지만, 일부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정세 분석 등 정무 파트에 강점이 있는 ‘어공’을 늘공 밑으로 보는 방증”이라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당·내각 존립 기반 흔들리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100일(8월 17일)을 맞기도 전에 비상 상황을 맞았다. 민심은 확연히 변심했다. 한국갤럽이 8월 9~11일 진행한 8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25%는 ‘잘하고 있다’, 66%는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어느 쪽도 아니다’ 2%, ‘모름·응답거절’은 6%였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것은 민주화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 경험이 가장 많은 정당의 경선을 뚫고 집권에 성공했다. 정작 현재의 여권이 위기에 노련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도리어 내각과 여당의 존립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나마 당 사정이 더 낫다고 볼 여지도 있다. 앞서 소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4%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25%)보다는 적잖게 높았으니 말이다.

용산과 여의도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형성된 모양새다.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등 정권의 2인자라 할 자리에 모두 ‘늘공’ 출신을 기용한 점도 당 안팎에서는 탐탁지 않게 보는 기류다. 집권 뒤 당 출신이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는 대선 때부터 이미 예고돼 있던 미래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단어가 ‘매버릭(maverick)’이다. 3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세계적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CEIP)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자.

“(한국의 차기 대통령인) 윤석열은 국내외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그는 또한 이익집단뿐 아니라 정치적 보스들이나 파벌들에 신세를 지지 않은 정치적 매버릭이다.”(While Yoon faces enormous challenges at home and abroad, he is also a political maverick unbeholden to political bosses and factions as well as interest groups.)

이 글은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신인 이정민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아시아 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 썼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 역시 대선 당일 낸 기사에서 윤 대통령을 매버릭(South Korea’s ‘maverick’ new president)이라고 칭했다.

지지층을 이완시키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찬을 겸한 주례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 총리, 윤 대통령, 김대기 비서실장.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찬을 겸한 주례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 총리, 윤 대통령, 김대기 비서실장. [대통령실]

매버릭이라는 단어는 미국 텍사스 목장주 새뮤얼 매버릭(Samuel Maverick·1803~1870)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는 다른 목장주와 달리 기르던 소에 낙인을 찍지 않았다. 이에 낙인이 없는 이 소들은 ‘매버릭의 것(Maverick’s)’이라고 불렸다. 이후 매버릭 자신도 정파에 속하지 않은 채 텍사스 독립을 추진했다. 이후 매버릭은 (좋게는) ‘독립적인 사람’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 ‘(나쁘게는) 독불장군’을 뜻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매버릭은 2018년 타계한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생전의 그는 당론과 상관없이 소신에 따라 정파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는 점에서 매버릭은 그를 수식하는 가장 합당한 단어인 셈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매버릭의 면모를 자주 보였다. 지난해 12월 23일 전남 순천시를 찾아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말해 당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이에 대해 “제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아홉 가지 생각이 달라도 정권교체의 뜻이 같으면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중도 및 탈(脫)진보층에 구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팬덤도 지역 기반도 없이 대권 도전에 나선 그로서는 충분히 선택 가능한 카드였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위험한 전략이기도 했다. 선거는 고정 지지층(집토끼)을 지키고 부유하는 유권자(산토끼)를 설득해야 이기는 게임이다. 군소정당 없이 양당 사이의 전면전으로 치러지는 선거 구도라면 특히 그렇다. 이는 산토끼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지만, 바꿔 말하면 집토끼를 단단히 잡아둬야 한다는 뜻도 된다. 한데 윤 대통령은 마치 집토끼를 무시하면서 산토끼에게 구애하는 전략을 폈다. 강고한 정권교체 여론이 아니었다면 자칫 대형 실책으로 기록됐을 만한 사건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집권 이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파를 초월하는 통합 대통령은 이상적 명분이다. 가야 할 길이긴 한데, 선언한다고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지층을 결속한 뒤 완수할 수 있는 과제다.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지지 기반이 가장 취약한 대통령이다. 정작 집권 뒤 지지층을 다지기는커녕 이완시키는 행보를 했다.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다가 내각에는 참여하지 않은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데 명분이 있다 해도, 옳고 그름을 떠나 정무적 기준으로만 봤을 때는 패착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전직 경찰 그룹이 우리 쪽을 많이 도왔다. 상당히 조직화돼 있어 노력에 따라 우리 당 고정 지지층으로 만들 동력도 있었다. 그런 그룹조차 일순간에 반대편으로 돌려버린 거다. 집권하자마자 굳이 그랬어야 했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독불장군과 대통령실 참모들

윤 대통령은 2013년 ‘항명 파동’으로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그 뒤 대전고검 검사로 발령받는 등 박근혜 정부 내내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잘나가던 특수통이 한직을 도는 수모를 당하면서 조직에 남았다. 이것은 분명 인내심의 발로다(신동아 4월호 ‘여덟 가지 키워드로 읽는 윤석열의 모든 것’ 참조). 이와 동시에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뜻도 된다. 결국 검찰총장이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성공 문법이었다고 여겼을 만하다.

윤 대통령은 정계에 와서도 단 한 번의 도전으로 대권을 쟁취했다. 이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공했다. 그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건넨 두 가지 조언(국민의힘 입당 대신 야권 단일화, 선대위 개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립이 강한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하고 홀로서기를 택해 종국에는 대권을 거머쥐었다. 취임 한 달도 안 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압승했다. 윤 대통령 처지에서는 자기 방식이 옳다고 확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전 정권과의 비교를 언급하는 배경에도 자신의 방식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료(黨僚)와 보좌진으로 잔뼈가 굵은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윤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더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오랜 검사 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판단으로 계속 성공해 왔고, 그 방식으로 대통령까지 됐다. 그렇다면 자기 확신이 강할 수밖에 없다. 참모들에게서 정무적 판단을 조언받기보다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 것을 참모들이 실행하길 원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매버릭의 다른 뜻은 독불장군이다. 독립성과 독불장군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다. 엄밀히는 상황과 조건의 문제다. 도전자일 경우 매버릭의 면모는 독립성으로 비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이미지를 통해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때릴수록 큰다”는 ‘윤석열 스토리’를 이해할 핵심 문장이다. 여론은 대개 핍박받는 자의 편이다.

하지만 집권 초는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력할 때다. 관료 사회에 대한 장악력도 가장 큰 시기다. 이럴 때 매버릭의 면모는 독립성이나 개성보다 독불장군으로 비친다. 자칫 대통령에게 단호하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 위계 서열이 핵심인 검찰 문화에 익숙한 탓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의 진단이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나 홍보수석, 대변인이 나와서 눈높이에 안 맞는 해명을 많이 한다. 대통령의 심기 경호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화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거지.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 판단을 바로잡으려면 참모들이 ‘이건 안 된다’ ‘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조언해야 한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적절성 여부를 가리지 않고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게 참모의 역할은 아니다.”

위기는 계속된다

2024년 4월 총선 전까지 전국 단위 선거는 치러지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에는 언뜻 생각하면 기회고 곰곰이 따져보면 위기다. 여론 지형이 불리한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지면 자칫 국정 동력을 추가로 상실할 우려가 있다. 이것은 기회다. 반대로 보면 잘못된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환경이다. “선거운동하면서도 지지율은 괘념치 않았다”는 윤 대통령의 ‘매버릭다운’ 면모를 고려하면 위기 요인이다. 그리하여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거나 대통령에게 쓴소리할 수 있는 참모를 들이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된다.



신동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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