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밀착취재

北 선전선동부 vs 南 국가정보원 고려항공 女승무원 짧은 치마의 비밀

한반도 물밑전쟁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5-12 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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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한국 언론보도에 실시간 격렬 반응
    • 탁월한 선전선동 연기자 김정은의 쇼·쇼·쇼
    • 南, 헤드라인 이용해 北 흔들기 이간책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나흘 앞둔 4월 9일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집단 탈출’ 소식이 한국 언론 헤드라인에 올랐다. 4월 5일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식당 ‘류경’에서 일하던 13명이 탈출해 4월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는데, 한국 정부는 합동신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4월 8일 탈북 사실을 공개했다. 정부에 따르면 한 여성 종업원은 “대북 제재가 심화하면서 북한 체제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보고 희망이 있는 서울로 탈출하게 됐다”고 했다. 제재 ‘융단폭격’ 이후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음이 입증된 사건이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한국 입국 과정 및 탈북 사실 발표 과정엔 국가정보원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절차가 신속하게 이뤄지는 등 당국이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4월 11일 “북한식당 종사자들의 입국 사실을 공개하고 북한군 정찰총국 간부의 지난해 탈북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것은, 대북 제재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으며 북한 지도부가 불안해한다고 판단하게 유도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 이외의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보기관은 성공했든, 실패했든 공작에 대해 밝히지 않는 게 원칙이다.

    여성 종업원들과 ‘북한군 대좌’의 탈북 사실 공개는 정부가 ‘신변안전 우선 고려’라는 원칙까지 깨며 대북 제재 효과를 홍보한 것이다. 한 탈북 인사는 “이젠 북한 사람이 한국으로 오겠다고  연락해오면 미국대사관으로 가라고 해야겠다”며 언짢아했다.

     ‘북한군 정찰총국 대좌’의 탈북 사실이 공개되자마자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망명한 인사들 사이에서는 망명 인사의 계급이 과장됐다는 말이 나돌았다. ‘동아일보’는 4월 13일 “계급은 대좌가 아니라 상좌”라고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상좌는 국군의 중령과 대령 사이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고위 인사’라고 보긴 어렵다.





    ‘신동아’ 협박한 北 매체

    정보 관계자 A씨는 “남북이 벌이는 ‘헤드라인 전략’을 머릿속에 두고 뉴스를 읽으면 남북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양날의 칼이다. 한국 국민을 향해 정책의 효과를 홍보하는 게 하나라면, 김정은 체제가 해외에서부터 흔들린다는 사실을 북한 사람들에게 알려 평양을 흔드는 게 또 하나다.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간부들은 한국 언론을 접한다. 한국 언론에 보도된 소식은 북한 내부로도 전해진다. 동요하지 않던 이들도 ‘해외 거주 북한 인사들이 동요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흔들리게 마련이다.”

    A씨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한국 언론 보도에 반응하는 속도가 실시간에 가깝다고 할 만큼 빨라졌다”면서 “김정은이 집무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 언론을 직접 모니터링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언론이 한미 연합상륙훈련을 두고 ‘평양 진격 훈련’이라고 보도하면 곧바로 북한 매체가 ‘서울 해방 작전으로 대응한다’고 보도한다. ‘김정은 참수작전’ 보도가 한국 언론에 나오자마자 ‘노동신문’은 ‘청와대 타격 훈련’ 사진을 공개하면서 ‘청와대 선제 타격’을 협박한다.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이 같은 헤드라인 전략 또한 북한 주민과 한국 국민을 모두 겨냥한 것이다.  

    북한 매체가 한국 언론에 직접 대응하는 일도 잦아졌다. ‘신동아’는 지난해 5월호에서 북한 당국이 작성한 ‘원산-금강산 개발 총계획’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해 평양의 청사진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취지로 보도했는데, 북한 당국은 통일전선부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즉각적으로 이에 대응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신동아’가 우리가 추진하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 대개발 사업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망발을 마구 줴쳐댔다”면서 “무엄하게 우리의 최고존엄을 걸고드는 자들을 그가 누구든 첫 번째 징벌 대상으로 단호히 처단할 것이라는 것을 한두 번만 강조하지 않았다.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선전·선동을 통해 이뤄졌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능란한 선전·선동가였다. 북한 노동당의 선전선동부는 조직지도부와 함께 체제 유지의 양대 축이다.



    김정은의 배우급 연기력 


    선전선동부는 최근 수장고에 감춰둬야 할 전략무기 사진까지 공개하는 파격적인 전략을 선보였다. 김정은이 핵폭탄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어루만지는 연출까지 했는데, 북한 주민에겐 핵 능력을 알리고 한국 국민에겐 핵 공포를 심어주려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쇼 오프(show off, 과시) 전략’이기도 하다.

    3월 9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구(球)형의 핵폭탄 및 기폭장치로 추정되는 물체의 사진은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같은 날 노동신문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 혹은 KN-14를 조립하는 듯한 격납고 내부  사진도 공개했다. 김정은의 모습 뒤로 흐릿하게 처리한 설계도까지 노출했다.

    3월 11일에는 김정은이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타격 계획이 담긴 사진 속 지도를 확대해보면 비행 궤적까지 나와 있다. 군사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북한은 3월 15일에도 김정은이 “탄도 로켓 대기권 재돌입 모의실험을 현지지도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매년 봄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는 시기에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실제 작전이 가능한 미군 장비와 병력이 한반도에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최고지도자의 동선을 외부에 숨기는 게 일반적이다.



    3월 14, 15일 평양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낮 최고기온이 10℃를 넘었다. 3월 8, 9일은 5℃ 안팎, 3월 10, 11일은 4℃ 안팎이었다. ①핵무기 병기화 사업 지도 ②탄도미사일 발사 훈련 참관 사진 ③ICBM 대기권 재진입 모의실험 사진 속 김정은의 옷차림이 똑같다. 털모자를 쓰고 옷깃에 털이 달린 방한복을 입었다. 안경과 장갑을 쓰거나 벗는 방식으로 다른 날 촬영한 것처럼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털모자와 방한복은 북한의 그즈음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기가 있던 어느 날 연출해 찍은 사진을 적합한 날을 골라 하나씩 공개한 듯하다.

    김정은이 선전선동부에 소속된 연기력 좋은 배우 노릇을 한 셈이다. 평양의 선전선동 책략은 한국의 총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한국 국민은 북한의 겁박을 상투적인 일로 여겼다. 그나마 김정은 사진이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점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음은 A씨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 사진들을 보면서 ‘미제와 남조선의 전쟁 위협에도 김정은 원수님이 군을 틀어쥐고 지도하면서 대비하고 계시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한국 국민에게는 핵 공격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에는 군사작전을 벌일 경우 탄도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하겠다고 암시한 것이다.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미군 장비가 한반도에 전개된 한미연합훈련 때 한국 언론에 등장한 참수작전 등의 표현에 김정은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연출 사진에 나타난 동선(動線)과 김정은의 실제 활동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NK○○○’이라는, 북한 소식을 다루는 한국 인터넷 매체가 있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북한 전문 통신사’라고 소개한다. 한국에서 인터넷 접속이 금지된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한 보도를 비롯해 다양한 북한 소식을 다룬다. 이 매체만 읽으면 북한은 ‘날로 발전하는 나라’ ‘살 만한 나라’다. 한국 언론에 보도된 북한 관련 내용을 뒤집는 뉴스를 평양발(發)로 보도하는 일도 잦다.



    ‘짧아진 치마, 왼쪽 가슴엔…’

    4월 14일 ‘NK○○○’ 메인 화면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중국엔 문 닫은 북한식당 없어…의혹의 집단탈북 사건’ ‘대북 제재? 평양마라톤 해외 참가자 1000명 돌파’ ‘北, 평양 메기 양식장 현대화로 생산량 2배’ ‘무인자동화된 금컵체육인 종합식료공장’ ‘만리마 시대에 맞춰 제시한 첨입식 정치사상사업이란?’…. 이 매체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운영하는데 ‘좋아요’ 숫자가 적지 않다. 선전선동부의 선전·선동은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국민에게 노출된다.

    ‘북한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5인방, 짧아진 치마, 왼쪽 가슴엔…’ 지난해 9월 한국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화제가 된 기사 제목이다. 7월 평양공항 신청사 개관 이후 선전선동부가 유포한 고려항공 승무원 사진이 한국에서 ‘빛의 속도’로 전파됐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입술에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승무원들은 ‘북한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다. 선전선동부는 남측의 인터넷 반응을 보면서 흐뭇했을 것이다.



    ‘김씨 왕조 끝나고 장씨 왕조…’

    선전선동부는 현대식으로 변화한 평양의 스카이라인 등 김정은 집권 이후 ‘발전상’을 한국과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노력해왔다. 헬기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초고층 건물의 야경 사진을 유포한 적도 있다. 인도적 지원 협의로 북한을 방문해 미래과학자거리를 둘러본 한 남측 인사는 “멀리서 봤을 때는 초고층 건물이 그럴듯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전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한 한 인사는 “북한에 ‘100m 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건물을 두고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렇듯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를 때가 있다.   

    한국의 정보기관도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이용해 북한에 영향을 미치는 공작을 해왔다.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주영대사, 주일대사를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최근 출간한 ‘장성택의 길-신정(神政)의 불안한 경계인’에는 장성택 숙청과 관련된 일화가 실려 있다.

    “장성택의 심경을 어지럽게 하는 보고도 있었다. 남한에서 날아오는 전단 하나를 측근이 가져다 보여준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곧 김씨 왕조가 끝나고 장씨 왕조가 시작된다.’ 더욱이 2013년 벽두 남한의 국방부 정보본부는 특별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올해 들어 장성택이 김정은 제1비서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자주 식별되어 북한 내 실질 권력자가 김정은이 아니라 장성택이라는 소문이 지속적으로 들린다’, 장성택이 김정은이 주관하는 국가 안전 및 대외 일꾼 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과 제4차 당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의 연설 때 그를 주시하지 않았고 자세도 바르지 않고 비스듬했다는 점 등이 인용됐다. 국방부가 공개한 두 사진에는 김정은이 연설을 하는 사이 장성택이 비스듬하게 앉아 있거나 정면이 아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이런 것들은 북한 내부의 당 조직지도부나 국가안전보위부의 신경을 건드렸다. 남한의 군 당국 정보본부가 이런 보도자료까지 냈다는 것은 장성택 반대파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김정은도 이것이 남한의 심리전이나 북한의 집권층 내부에 불안과 갈등을 조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254~256쪽)

    라종일 교수가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신뢰할 만한 증언인으로부터 확보한 정보에 근거해 작성한 글이다.

    신동아도 2014년 11월호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북한 붕괴 공작 내막’ 제하의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남재준 전 원장과 국정원에서 함께 일한 복수의 국정원 전 고위 인사로부터 “장성택, 최룡해와 관련한 공작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국정원은 ‘김정은과 장성택을 분리하려는 이간책’을 구사했는데, 장성택 숙청에 공작이 실제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전직 인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서로 달랐다.  



    무심코 읽은 뉴스의 이면 

    국정원은 국내 언론의 헤드라인을 이용해 김정은과 최룡해를 분리하려는 공작도 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 한국 언론에 북한의 적통(嫡統)과 관련한 기사가 잇따라 실렸는데, 다음과 같은 제목이었다. ‘김일성보다 항일운동의 정통성을 지녔던 최현’ ‘북한 통치 적통은 김정은 아닌 최룡해’ ‘혁명 적통 최룡해 위협적, 숙청 가능’ ‘北 항일투쟁 적통은 최현의 아들 최룡해…김정은이 숙청할 가능성’ ‘항일무장투쟁 정통성 김일성·최현 중 누구에게 있나’…. 이러한 기사의 소스(source)에 국정원이 관계돼 있다. 최현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 최룡해의 아버지다.

    요컨대 독자가 무심코 읽은 북한 뉴스 한 줄에서도 한국의 국정원과 북한의 선전선동부가 불꽃 튀는 ‘지하(紙下)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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