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응이 좋아 1년 뒤에 다시 친구들을 찾아 공연 표를 사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티켓을 10장씩쯤 사주면서 여전히 호의를 보였지만, 삼겹살 파티 약속은 없었다. 나도 좀 어색해서 이번엔 3년 뒤에 찾아가 표 좀 팔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 “너 아직도 그거 하냐!”….
그때 나는 개미와 베짱이를 떠올렸다. 친구들은 개미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일하는데 나는 어떤가. 연극한답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고 놀다가 겨울이 되니까 개미한테 구걸하러 가는 신세가 아닌가. 연극을 한다, 문학을 한다, 미술을 한다는 소위 문화예술인은 당시 한국에선 소외된 존재였고, 국외자였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던 것은 경제개발이었지 문화예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개미와 베짱이의 역학관계가 달라졌다. ‘개미와 베짱이 시리즈 2탄’의 탄생이랄까. 개미는 여름에 너무 열심히 일해 허리 디스크에 걸렸고, 베짱이는 나무그늘 밑에서 부르던 노래가 히트해 수십억원을 벌었다. 베짱이는 옛날의 은혜를 갚으려고 개미를 병원에 입원시켜 디스크를 고쳐줬다.
우리 사회는 쓸모 없는 존재인 줄 알았던 베짱이가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깨닫고 있다. 베짱이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던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현대자동차 100만대 판매 수익보다 많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나는 줄곧 스스로를 ‘소외된 베짱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쓴 ‘Homo Nomad(유랑인, 유목민)’라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탈리는 유목민이 인류문명을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유목민으로 꼽은 직업은 예술가, 레저산업 종사자, 연구원, 프리랜서 등이다. 이들은 한 가지 직업에 안주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며 떠돌아다닌다.
21세기 들어 유목민은 급증하는 추세다. ‘자발적 유랑민’뿐 아니라 ‘비자발적 유랑민’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유랑민은 어쩔 수 없이 떠돌이가 된 사람인데, 이주노동자, 노숙자, 방문판매원, 정치 망명객, 퇴직자가 여기에 속한다. 자발적 유랑민은 새롭게 탄생한 창의적인 직종에 근무하면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다. 아탈리의 주장은 나의 ‘개미와 베짱이론(論)’과 비슷하다. 정착민은 개미, 유랑민은 베짱이다. 문제는 급증하는 유랑민과 정착민이 갈등을 겪고 충돌하면서 21세기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란 점이다.
나는 교사 1년, 잡지사 기자 1년의 정착민 생활 이후 줄곧 유랑민으로 살았다. 친구들은 정착민으로 살았다. 그런데 6년 전 국립극장장이 되면서 나는 정착민으로 돌아갔고, 친구들은 어느새 유랑민이 되었다.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던 친구들이 지금은 비자발적 유랑민이 되어 주말만 되면 “등산 가자” “국립극장에 좋은 공연 없냐”고 묻는다.
유랑민을 꿈꾸는 아이들
고령 유랑민도 증가한다. 기업에선 50대만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고, 공무원도 예전처럼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떠나야 하는 압력은 더해진다. 40대 중반 이후의 정착민은 유랑민으로 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이젠 청년 실업률이 높아 20대 젊은 유랑민도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