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춘향가는 안숙선이 부르고,돈은 프랑스 감독이 벌고…”

  • 김명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입력2005-12-28 11: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내가 가난한 연극쟁이로 소극장에서 활동하던 1980년대, 대학 동창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때깔 좋은 직장인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들을 찾아가 “공연 티켓 좀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야∼ 명곤이 멋있는 일 한다, 내가 티켓 30장 사줄게, 그리고 연극 끝나면 소주에 삼겹살 파티, 그거 내가 해줄게”하며 진짜 근사하게 저녁을 샀다.

    반응이 좋아 1년 뒤에 다시 친구들을 찾아 공연 표를 사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티켓을 10장씩쯤 사주면서 여전히 호의를 보였지만, 삼겹살 파티 약속은 없었다. 나도 좀 어색해서 이번엔 3년 뒤에 찾아가 표 좀 팔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 “너 아직도 그거 하냐!”….

    그때 나는 개미와 베짱이를 떠올렸다. 친구들은 개미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일하는데 나는 어떤가. 연극한답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고 놀다가 겨울이 되니까 개미한테 구걸하러 가는 신세가 아닌가. 연극을 한다, 문학을 한다, 미술을 한다는 소위 문화예술인은 당시 한국에선 소외된 존재였고, 국외자였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던 것은 경제개발이었지 문화예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개미와 베짱이의 역학관계가 달라졌다. ‘개미와 베짱이 시리즈 2탄’의 탄생이랄까. 개미는 여름에 너무 열심히 일해 허리 디스크에 걸렸고, 베짱이는 나무그늘 밑에서 부르던 노래가 히트해 수십억원을 벌었다. 베짱이는 옛날의 은혜를 갚으려고 개미를 병원에 입원시켜 디스크를 고쳐줬다.

    우리 사회는 쓸모 없는 존재인 줄 알았던 베짱이가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깨닫고 있다. 베짱이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던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현대자동차 100만대 판매 수익보다 많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나는 줄곧 스스로를 ‘소외된 베짱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쓴 ‘Homo Nomad(유랑인, 유목민)’라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탈리는 유목민이 인류문명을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유목민으로 꼽은 직업은 예술가, 레저산업 종사자, 연구원, 프리랜서 등이다. 이들은 한 가지 직업에 안주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며 떠돌아다닌다.

    21세기 들어 유목민은 급증하는 추세다. ‘자발적 유랑민’뿐 아니라 ‘비자발적 유랑민’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유랑민은 어쩔 수 없이 떠돌이가 된 사람인데, 이주노동자, 노숙자, 방문판매원, 정치 망명객, 퇴직자가 여기에 속한다. 자발적 유랑민은 새롭게 탄생한 창의적인 직종에 근무하면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다. 아탈리의 주장은 나의 ‘개미와 베짱이론(論)’과 비슷하다. 정착민은 개미, 유랑민은 베짱이다. 문제는 급증하는 유랑민과 정착민이 갈등을 겪고 충돌하면서 21세기를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란 점이다.

    나는 교사 1년, 잡지사 기자 1년의 정착민 생활 이후 줄곧 유랑민으로 살았다. 친구들은 정착민으로 살았다. 그런데 6년 전 국립극장장이 되면서 나는 정착민으로 돌아갔고, 친구들은 어느새 유랑민이 되었다.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던 친구들이 지금은 비자발적 유랑민이 되어 주말만 되면 “등산 가자” “국립극장에 좋은 공연 없냐”고 묻는다.

    유랑민을 꿈꾸는 아이들

    고령 유랑민도 증가한다. 기업에선 50대만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고, 공무원도 예전처럼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떠나야 하는 압력은 더해진다. 40대 중반 이후의 정착민은 유랑민으로 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이젠 청년 실업률이 높아 20대 젊은 유랑민도 늘고 있다.

    자발적 유랑민도 급증한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전교에 한 명 정도, 그것도 공부 제일 못하는 ‘날라리 학생’이 ‘연극배우’라고 써냈다. 연극영화과는 대충 뒷문으로 들어가는 학과로 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등학생 절반이 게임 프로그래머, 영화감독, 패션디자이너를 꿈꾼다. 뒷문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던 연극영화과의 문턱은 엄청 높아져 요즘 들어가려면 꽤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학과에 들어가려면 서울대 입학 수준의 수능 점수가 필요하다.

    유랑민처럼 살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 어마어마하게 등장하고 유랑민을 꿈꾸는 학생도 폭증하지만, 학교 교사는 정착민 출신이다. 교사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하며, 어떤 학과에 지원해야 하는지 모른다. 부모도 대부분 정착민 출신이라 자녀에게 길을 보여줄 수가 없다. 학교와 집에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아이들은 선배나 친구를 찾아가지만 엉터리 학원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잘못 배워 장래를 망치기도 한다. 게다가 유랑민에게 적합한 일이 정착민이 보기엔 불안하기 마련이어서 소외를 당하기도 한다. 수많은 아이가 유랑민의 삶을 지망하지만 실패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좀더 큰 틀에서 한국 문화산업의 앞날에 대해 얘기해보자. ‘문화의 세계화’란 말이 있듯 세계화는 각 영역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그러나 세계화 때문에 문화정책에 혼선이 빚어졌다. 우리 문화가 세계화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세계와 교류하면서 우리의 문화상품을 해외로 진출시켜 돈도 벌고 국가 이미지도 올려놓자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세계화란 어떤 것이냐 하는 점에서 그동안 세계는 심각하게 충돌했다. 세계화 흐름을 타고 각국의 문화가 초강국인 미국의 문화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에 반발해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제정한 것이 ‘문화 다양성 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각 나라 혹은 각 민족이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하게 지원할 수 있고,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강제 조항을 만들 수 있다. 문화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각국이 보호막을 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이 협약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섰다.

    아리아 팬이 판소리 전문가로

    협약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사례 중 하나는 스크린 쿼터 제도다. 이 제도는 모든 극장이 한국 영화를 연 146일 동안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극장을 무섭게 잠식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이 제도가 자유무역 정신에 위배된다며 폐지하거나 상영일수를 줄여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때로는 다른 무역협상과 연계해 보복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문화 다양성 협약의 정신에 비춰보면 스크린 쿼터는 정당하다. 어린이 프로그램 중 일부는 자국에서 제작한 것을 방송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강조하고 문화와 언어 그리고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놓고 여러 나라가 논쟁을 벌였다. 협약을 지지하는 나라는 프랑스·캐나다·중국·인도 등이고, 반대하는 나라는 미국·이스라엘·일본·호주·영국 등이다. 양 진영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가운데 2005년 10월21일 프랑스에서 유네스코 총회가 열렸다. 이곳에서 154개국 대표가 문화 다양성 협약 찬반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미국과 이스라엘만 반대, 기권한 네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찬성이었다. 전세계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로 협약이 총회를 통과한 것이다. 한국은 어디에다 표를 던졌을까. 찬성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 눈치 보느라 공식 방침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그동안 정부는 스크린 쿼터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영화인과 문화예술인은 당연히 스크린 쿼터에 찬성했지만, 경제나 외교 관련 정부부처는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는 이렇다.

    “지금 한국 영화는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산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뭐가 무섭다고 보호를 해야 되는가. 모든 부분을 개방하고 자유경쟁체제로 바꾸고 있는데 왜 영화만 유독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가. 한류(韓流) 붐을 봐라. 우리 문화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 문화도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그와 같은 보조로 보호정책도 없애야 한다.”

    나는 스크린 쿼터는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것이지, 국내 영화산업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일국의 문화 정체성이 세계화라는 명분에 밀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론 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철학적·문화적 관점이 너무나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나는 1973년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판소리를 들었다. 우연히 어느 시골 국악원에서 얼굴이 예쁜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열광적인 베토벤 숭배자여서 베토벤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음악은 사라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오페라 팬이었고, 누님들도 성가대 합창을 도맡아 한 덕분에 우리 가족은 모두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나도 이탈리아 민요, 오페라 아리아만 불렀다. 음악적으로 워낙 엄격한 집안이어서 한번은 셋째누님이 남진의 노래를 불렀다가 집안에서 쫓겨날 뻔했다.

    “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소”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2004년 영화인과 제작자들이 스크린 쿼터를 지키자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내게 판소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나는 판소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혼자 레코드를 듣고 책을 보며 공부했다. 오페라, 아리아의 열광적인 팬이던 내가 판소리에 빠져든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말 서울 종로 부근을 지나가다 ‘박초월 국악학원’을 발견하고는 무작정 쳐들어갔다. 처음 배운 노래가 ‘진도 아리랑’이었는데, 내가 노래를 부르면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선생님이 나중에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내가 판소리를 소프라노로 노래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벨칸토 창법으로 판소리를 했다.

    학원에 들어간 지 두 달째. 학원비가 없어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자네는 공짜로 다니소. 서울대생이니께” 하며 배려하셨다. 몇 달이 더 지나자 선생님께서 “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소”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한식구가 되어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동안 판소리를 공부했다.

    가르침을 받는 동안 나는 광대와 명인(名人), 그리고 명창(名唱)의 세계를 깊이 알게 됐고,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 탈춤, 풍물, 굿에도 관심을 쏟았는데 그게 1970년대 문화운동과 연결됐다. 그 흐름이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으로 연결됐고, 우리 사회에 전통문화를 재창조하고 현대화하자는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전통은 묵은 옛날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모 신문에 게재된 ‘미스 킴 라일락과 수수꽃다리’라는 칼럼에서 나온 얘기다. 우리나라에 수수꽃다리라는 라일락 계통의 꽃이 핀다고 한다. 6·25전쟁 때, 원예를 공부한 한 미군 병사가 그 꽃의 씨앗을 채집해 키우면서 품질을 개량해 예쁜 라일락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유일한 단어 ‘미스 킴’으로 꽃 이름을 지었다. 그 라일락이 현재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했고, 미군 병사는 억만장자가 됐다. 한 나라의 들꽃이 때로는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3년 파리 음악축제에서 특집으로 판소리가 공연됐다. 프랑스의 한 예술감독이 한국의 판소리 다섯 마당을 들여와 파리에서 공연하도록 했다. 공연 당시 한국의 명창들은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파리 시민 사이에 판소리 붐이 일어났다. 그 뒤 미국의 링컨센터에서 파리에서 했던 공연을 그대로 재현해달라며 초청했고, 에딘버러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두 공연 모두 대성공이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데는 이때의 성공이 한몫 했다.

    신화 속 인물 역사화하는 중국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당시 프랑스 예술감독이 내게 찾아와 자문했을 때 내가 “외국인에게는 판소리 가사를 자막으로 번역해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관광부에 가서 번역료 지원을 부탁했고, 결국 지원을 받았다. 그러고는 자기 앞으로 저작권을 설정했다. 안숙선의 춘향가 등에 저작권을 설정해놓은 덕분에 그는 링컨센터와 에든버러에서 공연할 때 짭짤하게 돈을 벌었다.

    얼마 전 튀니지에서 2006년에 안숙선의 춘향가를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국립극장으로 들어왔다. 또 자막을 써야 하는데, 그 프랑스인에게 저작권료를 줘야 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공연담당팀에 “우리가 돈을 들여 다시 번역하고, 국립극장 앞으로 저작권을 설정하자”고 건의했다.

    국내 어느 기획자도 판소리 가사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저작권을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판소리를 공부한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럽의 기획자는 알고 있었다. 이들은 남미·아프리카·인도·중국·일본 등의 전통예술단을 초청하고, 그 뒤에서 저작권료로 돈을 번다. 문화상품을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데 도사들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단계다. 아직도 ‘판소리는 세계문화 시장에 내놓아도 돈벌이가 될 문화상품이다, 저작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다. 우리 것을 다 뺏기고 나면 우리의 탈춤과 풍물을 공연해도 돈은 외국에서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수수꽃다리만 외국 업체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우리 토종 꽃 종자도 대부분 외국업체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1년에 로열티로 나가는 돈만 1000억원이 넘는다. 전통예술에도 그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문화관광부는 2004년 10월 문화의 달 행사의 캐치프레이즈를 ‘전통이 미래다’로 정했다. 내가 총감독을 맡았는데, 전통은 회귀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가꿔 나가는 핵심 키워드다. 전통과 IT산업, 전통과 영상산업. 언뜻 합쳐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런 과제 속에 국가 이미지 제고의 방법과 국가의 미래 전략이 나온다.

    한 가지 사례만 더 들어보자.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얘기다. 동북공정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쪽 변경(邊境)지역의 역사에 관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비단 동북공정뿐 아니라 ‘서북공정’ ‘북부공정’ 등이 사방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중원공정’이다. 이 공정의 핵심 산업이 ‘신화공정(神話工程)’인데, 중국 정부는 여기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신화공정은 중국 고대 신화에서 중국을 건국한 3황5제(三皇五帝)를 복원하는 사업이다. 3황은 황제, 염제(신농씨), 복희씨인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옛 판소리에 등장하는 중국 신화 속의 인물이다. 이 공정의 핵심 목표는 신화 속 인물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황제씨(黃帝氏)’다.

    황제씨와 치우천황의 대결

    이런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중국의 역사는 5000년이라고 하는데, 황제가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면 1만년 역사로 확대된다. 그러다 보면 중국의 주변 국가는 전부 중국 역사에 귀속된다.

    황제씨의 역사화 작업에서 중국이 가장 고민하는 인물이 ‘치우’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염제씨를 보좌하는 장군으로 나온다. 염제씨는 황제씨와 싸워 패하자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 베트남 민족의 조상으로 등장한다. 치우는 염제씨에게 다시 한 번 황제씨와 싸우자고 건의했으나 염제씨가 이를 거부한다. 이에 치우가 홀로 황제씨와 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중국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이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황제씨와 치우가 수십번 전쟁을 했으나 결국 황제씨가 승리했고, 치우가 죽은 자리에 붉은 안개가 치솟았다.

    치우는 우리나라 신화를 통해 다시 부각됐다. 월드컵 때 붉은악마들이 치우의 형상을 마스코트로 삼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를 다룬 ‘한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이서(異書)로 취급되는데, 여기에 치우가 등장한다. 단군은 이 책의 가장 끝에 나오는 인물이고 단군 위의 환웅 시대, 환인(한인) 시대가 역사적인 시대의 왕조로 기술되어 있다. 환인은 7대, 환웅은 17대, 단군은 42대 마지막 왕검이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1만6000년이 되고 선조의 영토는 중국 전반에 걸쳐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이 책이 발간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민족주의 열풍이 일었다. 이 책에 따르면 환웅시대 14대 임금인 ‘자오지 환웅’이 중국의 황제라는 인물과 싸워 수십 차례나 그를 물리쳤고 황제는 멀리 도망갔다. 장수, 천수를 누린 이 환웅이 ‘치우천왕’이다.

    중국 신화에서 치우는 패배했지만, 우리 신화에서는 치우가 이겼다. 중국에선 치우를 황제가 지배한 세계에 등장한 반란군으로 묘사했다. 이 같은 묘사에 반발한 우리 젊은이들이 “치우천왕을 복원하자”며 응원단의 마스코트로 썼고, 치우천왕을 그린 만화와 판타지 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신화는 문화자원의 보고

    말도 안 되는 신화가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전통이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신화야말로 핵심 전통이다. 그리스 문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 독일 문화는 게르만 신화, 중국 문화는 중국 신화로부터 시작한다. 신화에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철학, 예술 등 모든 것이 농축돼 있다. 이런 이유로 나라마다 자기네 신화를 통해 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려 노력한다. 만일 중국의 신화공정이 마무리되면 베트남 신화, 티베트 신화, 몽골 신화가 모두 중국 신화에 복속된다. 주변국의 신을 자기네 중원의 부속 신으로 만들려는 속셈이다. 이것이 지금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작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신화 전쟁’ ‘신화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은 엄청나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를 위시해 ‘트로이’와 같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판타지 소설은 전부 신화를 소재로 한다. 젊은이에게 신화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신이나 전사들이 젊은이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앞으로 문화산업에서 신화는 자원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각 나라가 고유한 신화를 확장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이웃나라와 신화의 정통성을 놓고 싸우는 ‘신들의 전쟁’을 벌일 것이다.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나라 신은 어디에 있는가. 너무나 초라한 변방에 있다. 신화를 복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전통을 미래로 연결할 수 있을까. 앞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에너지로 삼을 수 있을까. 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유랑민의 성격을 띤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 정착민의 태도에서 벗어나 유랑민의 사고(思考)를 가진 인물을 키워야 한다. 자크 아탈리는 한국이 인터넷 이용률 세계 1위라는 사실을 들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유랑민적 인재가 많이 배출돼 한국 사회를 이끌 것이며 나아가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정보의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행위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에 유랑민적 감각과 사고를 지닌 인재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중국에서 인기를 끈 MBC 드라마 ‘대장금’.

    둘째, 문화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 세계화를 수입하는 쪽이 아니라 우리가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는 쪽에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얼마 전 폐막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은 주빈국으로 활동하며 한국 문학을 세계무대에 널리 소개했다. 그때 박맹호 위원장이 “너무 문학 쪽에 치우친 행사가 되어 아쉽다”며 “전반적인 한국 문화를 소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주엑스포 또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경주엑스포는 해마다 관람객이 줄어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경주에서만 하니까 신라의 처용설화, 천마의 꿈 등 테마로 다룰 만한 소재가 고갈된 탓이다.

    이런 현실에서 2006년 경주엑스포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앙코르와트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정글 속에 있는 고대 사원이다. 이 아이디어가 좋아서 문화관광부와 외교통상부에서 지원하기로 했고 캄보디아에서도 환영했다. 이런 발상이 문화 네트워크를 확대시킬 수 있다.

    세계와 대등하게 교류한다는 관점에서 문화의 세계화를 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 중 하나가 ‘반(反)·염(厭)·혐(嫌)·항(抗)한류’가 급속하게 번지는 현실이다. 중국의 국민배우가 우리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의학은 우리나라가 만든 것인데 ‘대장금’에선 마치 한국이 만든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저런 것을 보는 사람은 매국노다.”

    배우 청룽(成龍)은 “중국 배우가 한국에 가면 한국 신문은 두부 한 모만큼밖에 써주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이류, 삼류 배우가 중국에 오면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써준다. 이것이 매국이 아닌가”라고 흥분했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발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비방하고 깔보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럴 때 문화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한류로 돈벌이하자, 우리 문화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단선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품질을 개량해야 한다. 전통을 발굴하고 가공해서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시장에 내다팔려면 시장조사도 하고 광고도 해야 한다. 품질을 개량하지 않은 전통은 박물관의 전시품이나 무형문화재가 된다.

    “한의학은 중국이 원류인데, 감히…”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국악 음원사업’이라는 게 있다. 선진국들은 자국의 음악을 음원(音源)으로 분리,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 국악을 음원화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몇 사람밖에 없다. 국악인들이 사재를 털어 집에 실험실을 만들고 낙후된 기자재를 들여와 작업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데, 하도 안타까워 모 통신회사의 한 임원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국악 음원사업은 가치 있는 일이고 돈벌이도 되지만 혼자서 하기엔 힘들다며 지원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이 완성된다면 그때 매입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휴대전화 벨소리로 각종 서양 음악이 이용된다. 우리 국악이 그렇게 쓰인다면 아마 대히트할 것이다. 개발비용이 문제지만 최대 100억원은 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투자할 기업이 없다. 정부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가 미국에서 이 사업을 도맡아 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의 한 음반회사가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교수에게 투자 의사를 내비쳤다는 얘기도 언뜻 들었다. 미국 업체가 하지 않으면 일본 음반회사가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린 어마어마한 돈을 눈뜨고 뺏기는 꼴이 된다. 휴대전화 벨소리로 ‘아리랑’을 쓰고 싶어도 미국 업체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거액의 사용료도 지급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이 토종 문화를 개량하는 데 전폭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것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구상했던 것 중 하나는 동북아시아의 신화를 10∼15분짜리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1000편을 제작하는 것이다. 몽골, 만주, 티베트, 베트남 신화를 모으면 가능하다. 성공 작품도 나올 수 있고, 실패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놓은 콘텐츠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소설에도 나올 수 있고, 연극으로 공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 역시 아무도 관심이 없다. 언젠가 내가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세계신화총서’ 제3권이 발간됐다. 세계신화총서는 영국의 세계적 출판사가 2038년까지 세계 각국의 신화 300편을 세계 최고의 작가들에게 의뢰, 새롭게 구성한다는 기획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프로젝트 속에 우리나라 신화는 단 한 편도 없고 작가 또한 한 명도 없다. 일본과 중국도 참여하고 있는데 말이다.

    전세계가 문화 콘텐츠를 확보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국가뿐 아니라 온라인 매체나 통신사업자들은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린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 여러분이 각자 하는 사업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백화점과 구멍가게의 싸움

    [토론]

    질문자: 스크린 쿼터와 프랑스가 주도하는 문화 다양성 협약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스크린 쿼터가 할리우드 문화의 한국 지배를 반대하는 논리로 이용되면 저급한 민족주의나 반미주의로 확산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쿼터 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밥그릇을 지키려는 편협한 행동은 아닌가.

    극장장께서 서두에 유목민의 가치에 대해 말했는데, 이 관점에서 보더라도 스크린 쿼터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DJ 정부가 한일 문화교류를 제안할 때 국내 영화인들은 일본 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지배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일본 영화는 맥을 못 췄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일본에 침투해 번창했다. 문화 역시 시장이 평가하는 것이지, 영화인들이 평가해선 곤란하다. 이런 식으로는 미국 문화를 뛰어넘지 못한다.

    김명곤: 나도 문화개방에 찬성한다. 한일 문화개방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개방하자고 반대편을 설득했다. 개방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수적 문화정책으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쟁을 하려면 동등한 처지에서 해야 하는데, 승자의 법칙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케냐가 영화시장을 놓고 경쟁한다고 가정하자. 우선 제작비면에서 게임이 안 된다. 자유경쟁을 믿고 한국이, 베트남이 미국의 영화산업에 덤빈다면 결국 밀릴 수밖에 없다.

    파리에서 문화 다양성 협약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각국의 통상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협약은 자유무역 정신에 위배되며,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했다. 또 이것을 추진하는 세력에 휘둘려 악용될 우려가 있으니 결정을 보류하고 기다려달라고 썼다.

    그러나 각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거부했다. 공정한 경쟁을 해보자는 것이 협약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 대형 백화점과 그 옆에 붙은 구멍가게가 경쟁이 되겠는가. 대형 백화점측에선 “그러면 너희들도 거대 자본을 투자하고, 고객 서비스 잘 하고, 품질 개발에 나서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영화시장 개방을 요구하면서 내세우는 논리와 똑같다. 미국이 주도하는 문화의 세계화 탓에 소수 민족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이를 보호하려는 유네스코의 지원은 중요하다.

    공연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150억∼200억원을 들여서 브로드웨이의 ‘오페라의 유령’ 같은 작품을 들여온다. ‘노트르담의 꼽추’에 이어 앞으로 디즈니의 ‘라이온 킹’ 같은 대형 뮤지컬이 들어올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작품들이 들어오면서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했고 관객이 늘어났다. 하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은 죽어가고 있다.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은 관객이 없다.

    ‘스테이지 쿼터’도 필요

    미국 작품 한 편을 들여오는 데 100억원이 들었다면 제작비는 수백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은 고작 10억∼20억원으로 제작된다. 연극은 1억∼2억원, 작은 소극장은 2000만∼3000만원 가지고 연극 한 편을 만든다. 이런 규모로는 브로드웨이와 경쟁할 수 없다. 따라서 ‘너희들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만들면 되지 않냐’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스크린 쿼터뿐 아니라 스테이지 쿼터도 만들어야 한다. 국·공립극장은 연중 며칠이라도 창작극을 공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내 창작극은 영영 사라진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레퍼토리를 보자. 오페라, 발레, 음악 콘서트 등 외국 유명 브랜드 공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물이 숨이라도 쉴 수 있겠는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본 사람은 창작 뮤지컬이 눈에 차지 않는다.

    질문자: 우리 문화가 적어도 동북아에서는 충분히 소프트 파워를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류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몽골이나 베트남처럼 한국에 우호적인 나라에서 일본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문화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이라면 어떤 것이 있겠는가.

    김명곤: 제국주의의 시각보다는 문화교류의 시각으로 한류를 봐야 한다. 우리는 동남·동북아 문화를 너무 모르고 있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문화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아 호감도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국 문화에 대해 알려고 한다. 우리도 이들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문화를 들여와야 한다. 국립극장과 문화관광부가 함께 벌이는 사업 중에 동북아, 동남아의 예술가를 초청해 1년간 연수를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나라에서는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초청해 국립극단이나 한국의 다른 예술가와 함께 작업도 한다. 그러면 이들이 돌아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나라의 문화에 정통한 전문가가 나올 것이다. 베트남 문화 전문가, 인도 연극 전문가, 라오스 음악 전문가 같은 사람들이 배출돼야 진정한 한류가 실현될 수 있다.

    질문자: 극장장께서는 유랑민 생활을 하다가 정착했다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명곤: 정착민으로 사니까 제일 좋은 것이 월급이다. 집사람이 나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 직장을 쓰라고 하면 으레 ‘백수건달’로 썼는데, 지금은 국립극장장이라고 쓰니까 너무 좋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나는 곧 임기가 끝나 유랑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들에게 “아빠 직업란에 다시 백수건달이라고 써야겠다”고 하니까 “그것 좀 안하면 안 돼요?”라고 눈살을 찌푸리더라. 집사람은 한술 더 떠 ‘굶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땅을 치고 후회한 KBS, MBC

    예술계, 연예계 종사자는 스타로 대접받고 돈을 잘 번다 해도 언제나 실업과 취업을 반복한다. 슈퍼스타 안성기씨도 한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을 계약하기 전까지는 실업자다. 미국의 명배우 폴 뉴먼도 다음 작품 섭외가 안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한다. 그만큼 유랑민 생활은 힘들다. 가족도 힘들다. 그런데 나는 재미있다. 꿈이 있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있고, 구상하는 작품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으니까 신이 난다.

    정착민으로 살다 보니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정착민 생활 6년째인데, 얼마 전 술집에 가서 예술인들과 술을 한잔 하는데, 옆자리의 만취한 변호사가 나더러 “예술가세요?”라고 묻더라. “저도 옛날에 예술했어요”라고 했더니, 나더러 공무원 같다고 했다. 어느새 공무원 틀이 생긴 모양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더 있다가는 이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아 2004년 초부터 공개적으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질문자: 한류 붐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저작권협회와 우리 저작권협회는 아직 저작권 상호협정도 맺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저작권협회는 상호협정을 맺자고 수차례 요청하는데, 우리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다. 저작권을 상호 이용했을 때 수수료율에 대한 의견차가 크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실제 협정이 맺어지면 우리가 일본 저작권협회에 청구할 금액이 엄청나다. 또 일본 방송국이나 영화제작업자들도 한류에 편승해 한국에 투자를 하고 싶어하지만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 장치가 없어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정리해줘야 할 것 같다.



    김명곤: 동감한다. KBS는 ‘겨울연가’ 저작권을 잘못 팔아 일본 NHK에 돈벌이 해줬다며 땅을 치고 후회한다. MBC는 ‘대장금’ 계약을 잘못해서 중국에 47개의 ‘대장금’ 저작권이 설정됐다고 한다. 대장금 음식점, 대장금 목욕탕, 대장금 약방 등을 만들어 돈은 중국 사람이 벌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산업 토대는 미약하다.

    [이 글은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이 2005년 10월24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원장· 현인택 교수)의 ‘일민 미래국가전략 최고위과정’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김 극장장의 임기는 2005년 12월31일까지 입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