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는 결혼식에서 국수가 부조 노릇을 했다고 한다. 혼주는 하객이 가져온 국수를 삶은 후 뜨거운 육수와 갖은 고명을 얹어 손님을 대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금이 국수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런 풍습의 흔적은 관용적 표현에 남아 있다. 결혼 적령기 남녀에게 건네는 “국수 좀 먹여주세요”라는 인사말에는 “빨리 결혼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부조금은 준조세나 다름없다. 직장인들은 부조금을 아예 다달이 납부하는 세금쯤으로 여긴다. 직장생활 20년차에 접어든 모 대학병원 진료협력팀장 박모(43)씨는 자신의 용돈으로 직장 내 부조금을 충당한다. 타부서 직원의 경조사나 적당히 예를 표시하는 정도의 관계라면 3만원을, 같은 부서이거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5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10만원을 부조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경우 1만원짜리 10장을 준비한다.
부조금 액수는 물가가 오르면서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껑충 뛰었다. 1998년 한국소비자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인당 평균 경조사 금액이 2만8800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5만원이 대세다.
“어차피 나도 한 번은 받으니까”
부조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의 지갑을 홀쭉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는 경조사비 문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취업포털 파인드잡이 지난해 12월 리서치 전문기관 엠브레인과 함께 직장인 1354명을 대상으로 ‘경조사비를 내는 문화에 찬성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6.3%의 직장인이 ‘찬성’ 의견을 밝혔다.
경조사비 지출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전통적인 품앗이를 대신하는 현대적인 문화라서’라는 답변이 40.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어차피 나도 한 번은 받으니까’(25.1%)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 설문조사에서 ‘경조사비 문화에는 찬성하지만 액수는 축소됐으면 한다’는 응답이 33.1%에 달해 한꺼번에 경조사가 몰리면 부담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 부산 동래구 모 병원 영안실. 시어머니상을 당한 김모씨와 고모씨가 자정이 넘어 조문객의 발길이 끊어지자 부조함에서 봉투를 꺼낸 후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동서 간인 이들은 봉투 속에 담긴 현금을 헤아린 후 겉봉투에 금액을 기재했다. 부조금은 커다란 가방에 차곡차곡 쌓였다.
손아랫동서인 김씨는 고씨에게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기에 망정이지, 퇴사한 뒤라면 부조금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겠냐”면서 “남편이 20년 넘게 직장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뿌린 씨앗을 거둘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씨도 “남편이 현직에 있을 때 상을 당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남편들도 ‘직장 그만두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