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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⑪

‘밥보’ 되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가기

사춘기처럼 방황할 것을 권하다

  • 이기동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밥보’ 되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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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여삐 여기는 마음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착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런 것을 몰라 방황하는 일은 절박한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지만, 자기처럼 방황하는 사람을 만나면 예외다. 살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방황하다가 강가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말기 환자는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자기 옆에 와서 자기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환자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두 달밖에 살 수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면 바로 친근해진다.

동병상련(同病相憐). 병이 같으면 서로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에게 매력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도 자기처럼 방황하는 고통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면 어떨까.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에게서 ‘약을 만들어 먹고 나았다’는 말을 들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는 자기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생명수로 다가온다. 그에게 매달려 어떤 약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절박하게 방황하면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과거에도 절박하게 방황했던 사람이 무수히 있었다. 방황하다가 진리의 길을 발견한 사람도 많다. 이른바 세계 4대 성인도, 원효대사나 퇴계 선생도 그런 사람들이다. 방황 끝에 다가오는 그런 사람은 나를 구해주는 생명수다. 그런 사람은 부모처럼 그립고 부모처럼 고맙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만 하고 있어서는 의미가 없다. 그들과 만나고 그들처럼 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들과의 만남은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 가능하다. 경전 공부와 고전 공부가 그래서 중요하다. 경전을 읽고 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것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절박한 환자가 약을 구해 먹고 낫는 것과 같다. 세상에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공자가 “배우고 때맞게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토로한 것이 그 의미다.

밥만 챙기는 바보들



배움의 내용은 무엇이고, 배워서 도달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배움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남에게 이긴다 하더라도 늙고, 죽어야 하는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세상이 행복하다 해도 의미가 없다. 배움은 나를 아는 것이고,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가장 쉽게 다가오는 것은 몸이다. 몸이 없이 내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몸은 중요하다. 그러나 몸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몸은 마음이 들어 있을 때만 구실을 한다.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몸은 의미가 없다. 배움이란 몸의 한계를 아는 것이고, 몸보다 더 중요한 마음을 찾는 것이다.

몸이란 ‘모음’을 의미한다. 몸은 여러 가지 물건이 ‘모여서 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70%의 물과 콩나물, 쇠고기, 돼지고기, 시금치 등이 잔뜩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몸이 ‘모음’이란 뜻이라면 그것은 집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집은 본래부터 있던 공간이 아니다. 집은 다른 물건들, 말하자면 나무, 흙, 돌 등을 모아서 얽어놓은 것이다. 집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은 가치가 없다. 그러한 집은 흉가(凶家)라고 한다. 집이 가치 있는 까닭은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집 자체보다 그 속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기준이 전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 가꾸는 데 열중한 나머지 사람 사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말에 ‘몸집’이란 말이 있다. 몸을 집으로 보는 것이다. 몸을 집으로 본다면 이미 그 속에 몸보다 더 귀중한 것이 들어 있어야 한다. 몸속에 들어 있는 몸보다 귀한 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몸의 알맹이다. 마음은 삶을 이끌어가는 실체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안 되지만, 둘 중에서 가치를 따진다면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은 의미가 없듯이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몸집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흉물(凶物)이다. 우리가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속에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몸만을 가꾸는 사람은 바보다. 몸 가꾸기에 열중하는 사람은 밥을 챙긴다. 몸 가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 가꾸기에만 주력하는 사람을 밥 챙기기에 주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밥보’라고 했다. 나중에 ‘밥보’에서 ㅂ이 떨어져 나가 ‘바보’가 되었다. 우리말의 바보는 몸 가꾸기에 주력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변하는 마음, 변치 않는 마음

몸 가꾸기에 치중하는 사람은 밥을 차지하려 끊임없이 경쟁한다. 경쟁을 할수록 사람은 긴장한다. 방심하면 패배하고 말기 때문이다. 긴장하는 삶은 피곤한 삶이다.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늙어야 하고 죽어야 한다. 인생이란 ‘경쟁을 하느라 긴장된 상태로 피곤하게 살아가면서 쓸쓸하게 늙어가고 절망으로 마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은 비극이다. 인생이 이렇게 비극이 된 원인은 사람이 바보로 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바보처럼 살 수는 없다. 지금까지와 같은 바보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보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몸에서 마음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완전히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충 먹고 입고 자면 된다. 그리고 마음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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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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