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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처첩들은 귀해지고 자식들은 살이 찐다

‘절대권력’의 위험한 유혹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처첩들은 귀해지고 자식들은 살이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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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첩들은 귀해지고 자식들은 살이 찐다
이렇게 보면 황제는 도적만 못하다. 도적은 훔치고 죽이면서 늘 죄책감을 어느 정도 갖는다. 더러 부득이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황제는 천하의 백성을 죽이고 쥐어짜고 부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 그렇게 해놓고도 태연자약이다. 이런 상태가 한 해, 두 해 계속되면 황제 된 자는 갈수록 교만해져 아무런 구속도 없고 법도 하늘도 없이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오랜 세월 억압당해온 백성들은 마지못해 억압을 견디다보니 노예 근성이 생겨 무슨 일이든 겁을 먹어 소심해지고, 구차하게 편안함만 추구하고, 진취적인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호 영향과 악순환이 2000년 넘게 지속됐으니 백성의 우매함, 빈곤함, 낙후의 진정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비판은 명 왕조가 이민족 만주족에게 멸망당하는 위기 속에서 비롯됐다.

王侯將相이 따로 있나

사마천은 3000년 중국 통사 ‘사기(史記)’를 효율적으로 저술하기 위해 ‘기전체(紀傳體)’라는 서술 체계를 창안했다. 주로 제왕들의 기록인 본기(本紀), 연표에 해당하는 표(表), 국가의 제도와 문물을 전문적으로 다룬 서(書), 제왕들을 보좌해 천하대세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을 주로 다룬 세가(世家), 수많은 보통사람에 대한 기록인 열전(列傳)이 그것이다. 기전체는 본기의 ‘기’와 열전의 ‘전’을 따서 만들어낸 단어다.

사마천은 제후나 공신들의 기록인 세가 편에 특별한 두 사람을 포함시켰다. 춘추시대 유가 사상가로서 고대 문화를 집대성한 공자(孔子)와 진섭(陳涉)이란 인물이다. 평민 출신으로서 제후나 공신 반열에 오르지 못한 공자를 세가에 편입시킨 의도는 그의 문화적 업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유가사상이 훗날 국가의 배타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수용되면서 공자의 세가 편입을 둘러싼 시비는 그다지 없었다. 사실 사마천은 본기나 세가에 꼭 제왕과 제후만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은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본기에 항우도 넣고, 심지어 여태후(유방의 부인)까지 포함시켰다.



문제는 진섭이었다. 진섭이 누구인가. 신분상으로는 평민보다 못한 농민이고, 정치적으로는 최초의 통일왕조 진(秦)나라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농민 봉기군을 일으킨 인물이다. 진 왕조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역적이다.

진섭의 봉기는 진 왕조가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사마천은 진섭의 농민 봉기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사마천은 ‘진섭세가’를 지은 동기에 대해 이렇게 썼다.

걸(桀)과 주(紂)가 왕도를 잃자 탕(湯)왕과 무(武)왕이 일어났고, 주 왕실이 왕도를 잃자 ‘춘추’가 지어졌다. 진이 바른 정치를 잃자 진섭이 들고일어났다. 제후들도 따라서 난을 일으키니 바람과 구름이 몰아치듯 마침내 진을 멸망시켰다. 천하의 봉기는 진섭의 난으로부터 발단됐으므로 제18 ‘진섭세가’를 지었다.

사마천은 진섭의 봉기를 탕과 무왕의 역성(易姓)혁명에 비유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고, 그래서 당당히 세가에 편입시킨 것이다. 백성들을 위하지 못하는 정권이나 왕조는 무너져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사마천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더란 말이냐”는 진섭의 외침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누구든 부당한 권력에 대한 견제와 항거는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처첩들은 귀해지고 자식들은 살이 찐다
21세기 제왕적 권력체제

‘좌전(左傳)’은 진나라 통일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책이다. 당시에는 훗날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왕조체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미 수백 년 전에 옛사람들은 훗날 벌어질 일을 우려한 것일까. ‘좌전’ 양공 14년 조항에 보면 진(晉)의 악사 사광(師曠)이 이런 말을 한다.

하늘이 백성을 사랑하시니 어찌 한 사람이 온 백성의 머리에 올라타고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하게 하겠는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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