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정부 비판 ‘빈 댓글’로 집단공격 ‘親文 커뮤니티’의 실체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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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리앙, 오늘의유머, 뽐뿌 등에서 유행

    • 정부 방역 허술 글 올리자 빈 댓글 우르르

    • 소송 위험 없이 반대의사 표출 방법으로 확산

    • “다른 견해 가진 이용자 따돌리는 파시즘” 비판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서 한 회원이 쓴 글 아래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서 한 회원이 쓴 글 아래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다음 상황을 가정해보자.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주류 의견과 반대되는 견해를 밝히는 글을 썼다. 해당 게시물 아래 댓글 수십여 개가 달렸다. 대다수가 아무 내용 없는 ‘빈 댓글’이다. 당사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기성세대 상당수는 빈 댓글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어 ‘그게 뭐냐’고 되물을 것이다. 반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최근 빈 댓글 문화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징계와 소송 위험 없는 반대의사 표출법

    빈 댓글은 내용 없는 댓글을 일컫는 말이다. 댓글을 써야 할 자리에 점 하나만 찍은 ‘점댓글’도 넓은 의미에서 빈 댓글로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빈 댓글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7년 8월로 전해진다. 당시 정보통신(IT) 및 정치관련 글이 활발히 올라오던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의 한 이용자가 특정 게시물 내용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빈 댓글 달기를 제안했다. 클리앙에는 마음에 드는 글을 추천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반면 ‘비추천’ 기능은 없다. 이를 보완할 방법으로 빈 댓글을 창안한 것이다. 

    클리앙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는 회원 징계권한을 갖고 있다. 게시글이나 댓글을 쓸 때 거친 표현, 욕설 등을 사용하면 활동을 정지당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 올린 글 때문에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의 혐의로 피소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빈 댓글은 이런 위험을 피하면서 특정 게시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금세 인기를 끌었다. 

    클리앙은 문재인 정부 지지자가 다수 활동하는 친문(親文) 커뮤니티로 통한다. 이곳에서 시작된 빈 댓글 문화는 이후 유사한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오늘의유머’ ‘뽐뿌’ ‘82쿡’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글 아래 빈 댓글이 줄줄이 달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 댓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빈 댓글을 통해 특정 게시물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어그로(aggro·관심을 끌기 위해 악의적인 글을 올리는 행동)꾼이나 댓글 알바를 솎아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어그로꾼’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에 관심을 가져줄수록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빈 댓글은 그들을 아예 상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만큼 어그로꾼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주류와 다른 견해 가진 사람 따돌리는 파시즘”

    최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류 의견과 다른 견해를 밝힌 회원에게 집단적으로 빈 댓글을 달아 공격하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GettyImage]

    최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류 의견과 다른 견해를 밝힌 회원에게 집단적으로 빈 댓글을 달아 공격하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GettyImage]

    반면 빈 댓글의 역기능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용자도 있다. “빈 댓글이 애초 취지와 달리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용자를 낙인찍고 괴롭히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적잖다”라는 이유에서다.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정부를 비판하는 글에도 빈 댓글을 다는 것은 글쓴이를 어그로꾼으로 몰아세우면서 소수 의견을 틀어막는, 일종의 ‘왕따 놀이’와 다르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동부구치소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논란이 된 1월 5일, 클리앙에는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을 칭찬하는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작성자는 “두말할 나위 없는 방역, 경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주가 3000 돌파 등 문재인 대통령이 능력으로 압도해버린다”며 국정운영 성과를 치켜세웠다. 이에 한 누리꾼이 문재인 정부 방역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을 달면서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를 보도한 기사 웹페이지 주소 링크를 덧붙였다. 그 아래로 항의성 빈 댓글 40여개가 우르르 달렸다. 

    이 같은 빈 댓글 문화에 대해 김은영 문화평론가는 “마음에 안 드는 게시물 아래 욕설이나 악성댓글을 남기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점잖은 방식이라 할 수 있지만 왜 빈 댓글을 다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냉소적 불통 문제를 유발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빈 댓글을 “아이돌 팬덤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단체 행동을 선보이는 ‘총공’(총공격의 줄임말)과 흡사한 부분이 있다”며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을 주도하는 이용자들이 세(勢)를 과시하고자 빈 댓글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회원이 과거에 쓴 글 이력을 검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 번 빈 댓글 공격을 받은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정치와 무관한 글을 써도 빈 댓글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82쿡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한 누리꾼은 “빈 댓글이나 점 댓글이 인터넷 공간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작은 비판조차 못하게 재갈을 물리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강신업 변호사는 “빈 댓글은 주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용자를 집단으로 따돌리는 파시즘”이라고 정의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용자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의견을 도출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빈 댓글은 주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고 거칠게 배격하는 행위다. 대세 의견에 반대하는 이용자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그 의견에 시위성 댓글을 남기는 것 자체를 현행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비민주적이고 비인격적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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