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쌍둥이 임신 허위진단서까지? 아파트 부정청약 백태

“자녀 수 불리려 위장 이혼 후 위장 결혼 밥 먹듯”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4-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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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인척·지인 거주지나 관내 고시원 위장전입

    • 불법 은폐하려 허위 임대차계약서 경찰에 제출

    • 일반인 범행은 갈수록 대담, 브로커 수법은 날로 교묘

    • 브로커와 결탁한 아줌마부대, 맘카페서 청약통장 매도자 물색

    • “‘로또 청약’ 만든 부동산 정책이 부정 청약 양산”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시내 풍경. 최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리고 부정 청약을 꾀하는 이가 늘고 있다.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시내 풍경. 최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리고 부정 청약을 꾀하는 이가 늘고 있다. [뉴스1]

    부동산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김지혜(32) 씨는 지난해 1월,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30대 A씨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게 중요하다. 부정 청약 사실이 드러나도 법원에 가면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벌금액도 분양권을 되팔아 얻는 이익보다 적다”고 말한 것. 

    A씨는 자신의 부정 청약 성공 사례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김씨 전언에 따르면, A씨는 서울 강동구에 살면서 지인이 거주하는 건물로 주소를 옮겨 2017년 4월 경기 수원 신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이후 주택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 수원지방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아파트 분양권을 되팔아 얻은 차익이 1800만 원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800만 원의 이익을 봤다. 

    김씨는 “A씨 얘기를 듣고 주변에 좀 알아보니 다들 알음알음 부정 청약을 알아보고 있더라. 아파트 분양 시장이 A씨 같은 사람들에게 농락당하는 사이, 나는 신도시 청약에 당첨되겠다고 경기 안성시 집에서 서울 강남구 직장까지 ‘지옥철’ 타며 오가고 있다. 나만 바보인가 싶어 속이 타들어간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근 전국 각지 집값이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아파트 청약을 노리는 이가 늘고 있다. 이들은 위장전입뿐 아니라 주택청약종합저축통장(청약통장) 매매, 청약자격 양도, 위장결혼 및 위장 이혼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한다.

    부정 청약 의심 197건 적발

    1월 4일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해 상반기 분양된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정 청약 현장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국토부가 관계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의심 사례는 총 197건으로, 유형별로는 △위장전입 134건 △청약통장 매매 35건 △청약자격 양도 21건 △위장결혼 및 위장 이혼 7건이다. 국토부는 또 3개 분양사업장에서 사업 주체가 가점제 부적격자를 고의로 당첨시키거나 부적격 또는 계약 포기에 따른 잔여 물량을 임의 공급하는 등 총 31개 주택을 불법 공급한 정황도 적발했다. 



    현행 주택법에는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주택을 공급받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부정 청약으로 얻은 이익이 1000만 원을 초과하면 이익의 3배까지 벌금을 낼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청약과 관련한 위법·탈법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는 이유를 ‘부동산시장 과열’에서 찾았다. 심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아파트값이 치솟으면서 최근에는 청약 당첨이 곧 ‘로또’로 여겨지고 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안감, 그리고 청약 분양권을 되팔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이들의 기대감이 부정 청약을 부추기는 것 아니겠나”라며 씁쓸해했다. 

    그렇다면 부정 청약자는 어떤 방식으로 아파트 청약 당첨을 노릴까. 전형적인 수법은 위장전입이다. 주택 분양 시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점을 노리고 허위로 주소를 이전하는 것이다. 유철호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 수사지원팀장은 “현재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을 분양받으려면 해당 지역에 2년 이상 계속 거주해야 한다. 이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친인척이나 지인의 거주지, 또는 고시원 등으로 주소지를 옮긴 뒤 청약에 당첨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인척 집에 고시원까지? 위장전입 사례 빈번

    3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4년, 서울 아파트 시세변동 분석결과’ 기자회견에서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이 집값 폭등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3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4년, 서울 아파트 시세변동 분석결과’ 기자회견에서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이 집값 폭등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는 국토부 부동산 거래 분석기획반과 공조해 최근 1~2년 새 청약이 진행된 수도권 지역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약 당첨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통신 기록과 신용카드 거래 내역, 병원 및 상점 이용 기록, 구글 지도에 나타나는 타임라인 등의 자료를 토대로 실제 거주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위장전입이 의심되는 사람은 주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의뢰해 수사를 진행한다. 

    최근엔 이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나타나는 상황이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사무실이 있는 변호사 P씨는 최근 “경찰이 주택법 위반 혐의를 포착했다며 출석요구서를 보내왔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고 묻는 전화를 매일 두세 통씩 받는다고 밝혔다. P씨는 “처벌을 피하려고 청약 전부터 해당 지역에 살았다는 걸 보여주는 허위 서류를 만들어 제출했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경우도 여러 건 봤다”고 했다. 

    실제로 B씨는 전북 전주시에 살면서 위장전입 수법으로 2018년 5월 25일 경기 하남시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주택법 위반 혐의로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수사를 받게 되자 2018년 3월 16일 체결된 경기 화성시 오피스텔 임대차계약서와 2018년 3월 이후 화성시내 마트와 식당 등에서 발급받은 간이영수증 11장을 경찰에 소명자료로 제출했다. 

    해당 아파트는 입주자 모집 공고일인 2018년 4월 26일을 기준으로 서울시 또는 경기도에 거주한 사람만 청약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B씨가 해당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B씨가 제출한 임대차계약서는 공인중개사와 짜고 작성한 허위 서류임이 드러났다. 간이영수증 11장도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다. 결국 B씨는 지난해 12월 수원지방법원에서 주민등록법 위반, 주택법 위반, 증거위조교사, 증거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위장전입에 의한 부정 청약 수법은 그나마 단순한 편에 속한다. 신혼부부나 다자녀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당첨을 노리는 사람들은 명의 도용과 청약통장 매매, 서류 위조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한다. 관련 수사관 전언에 따르면, 신혼부부나 다자녀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 당첨을 노리는 사람 상당수는 불법 브로커와 손을 잡고 있다. 이들은 대개 분양 예정 아파트 모델하우스 부근에 있는 이른바 ‘떴다방’을 이용한다.

    브로커 연계 ‘아줌마부대’+행정팀+섭외팀 = 떴다방

    떴다방은 보통 3개 팀으로 구성되는데, 한 팀은 브로커에게 청약통장 매도자를 소개해 주며 수익을 챙기는 이른바 ‘아줌마부대’다. 그 외에 청약통장이나 분양권 이전 관련 서류 작성 등의 업무를 맡는 ‘행정팀’, 확보한 청약통장을 부동산중개업자 등에게 양도하는 ‘섭외팀’ 등이 있다. 이들은 청약 당첨 확률이 높은 사람의 청약통장을 매입해 분양권을 확보한 뒤 이것을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높은 가격에 전매해 이익을 본다. 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은 ‘당첨 가능한 청약통장 확보’다. 

    청약통장 거래 업무에 관여한 적 있는 업자 T씨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길거리 전봇대나 공공화장실 내부에 ‘청약통장 매매’ 전단지를 붙였다. 요즘은 아줌마부대가 지역 맘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청약 지역 2년 이상 거주자, 세대주, 무주택자, 자녀수 1~2명 등의 요건을 충족한 사람을 찾아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대상자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때 청약통장 매도자는 본인 명의 청약통장·인감도장·인감증명서·주민등록등본 등 아파트 청약에 필요한 서류를 브로커에게 넘긴다. 그 대가로 받는 금액은 적게는 30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런 브로커에게 청약통장이나 자기 명의를 내주는 사람은 누굴까.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이들은 부정 청약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 공공주택 입주 자격이나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그럼에도 “용돈이나마 벌겠다”며 청약통장 매매에 뛰어드는 이가 적잖다고 한다. 일부 젊은 부부도 청약통장 매매에 가담한다. T씨는 “아파트 특별공급에 청약할 자격이 있지만 소득수준이 낮고 은행 대출 한도가 적어 당장 입주할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 있지 않나”라며 “이들이 ‘통장을 묵혀둘 바엔 그걸로 돈이나 벌자’ 하는 마음으로 통장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쌍태아 임신부 이용해 허위 임신진단서 발급

    T씨 설명에 따르면 자녀 없는 부부가 다자녀 특별공급에 당첨되도록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청약 신청자 가운데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청약 가점 제도를 널리 사용한다. 청약 가점은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결정된다. 신혼부부나 다자녀 특별공급 때는 자녀가 많은 순으로 당첨자를 결정한다. 현행 제도에서 다자녀 기준은 태아를 포함해 미성년 자녀 3명 이상이다. 이에 착안해 브로커들은 허위 임신진단서를 만들어낸다. T씨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허위 임신진단서를 작성한 뒤 의료기관 명칭란에 특정 산부인과 이름을 적고 가짜 도장을 날인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좀 더 교묘한 수법도 활용된다. 자신을 청약 브로커라고 소개한 또 다른 업자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등으로 쌍태아 임신부를 모집한 뒤, 그 사람이 청약통장 명의자로 위장해 임신진단서를 받도록 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의 신원 확인 절차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임신부가 청약통장 명의자 신분증을 갖고 가면 그 이름으로 임신진단서를 받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청약통장 명의자가 남성인 경우, 그의 아내 신분증으로 임신진단서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허위 임신진단서 발급에 협조한 임신부가 받는 대가는 1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로또 청약’ 만든 부동산 정책이 부정 청약 양산”

    이외에 위장결혼으로 부양가족 수를 늘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후 이혼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아이 둘을 데리고 동거남과 살고 있던 C씨는 아이 셋을 둔 남성 D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D씨와 그의 세 자녀가 C씨 주소지로 전입해 수도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C씨와 D씨는 그 직후 이혼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다자녀 가점을 받으려고 자녀가 많은 사람과 위장결혼하는 수법이 요즘 자주 보인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당첨된 부부가 가족구성원 내 재당첨 금지 조항을 피하려고 위장 이혼을 한 뒤 다시 청약 신청을 넣는 사례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면서 “요즘 부정 청약으로 적발된 사례를 살펴보면 일반인의 범행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브로커의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배경에 청약 당첨자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는 현실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부정한 수법을 동원해 청약 당첨을 노리는 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택시장을 옥죄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청약에 당첨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과도한 기대감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상한제가 무주택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토대가 되지 못하고 소수 청약 당첨자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는 발판이 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법청약 #부동산 #아파트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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