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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에 흔들리는 박원순 사건 여론? 대화 맥락 보라”

김재련 변호사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사랑해요에 흔들리는 박원순 사건 여론? 대화 맥락 보라”

  • ● 노랑머리 변호사가 꼬셨다? 중요한 건 원칙대로 하는 것
    ● 국가인권위 결정도 무시, 개싸움 부추기나
    ● 진영 논리에 좌우되는 권력형 성범죄
    ●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책임 물어라
    ● 성폭행한 친부에게 “밥은 잘 먹고 있는지…”
    ● “아빠 저도 보고 싶어요”와 학대순응증후군
    ● “예뻐서 그랬다잖아” 성범죄에 대한 오래된 편견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피해자에 대한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뒤 일단락됐던 사건이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 것은, 10월 16일 박 전 시장과 비서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 일부가 공개되면서부터다. 비서가 보낸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꿈에서는 돼요”에 박 시장이 “꿈에서는 마음대로 ㅋㅋㅋ”라고 답한 내용과, 박 시장이 “빨리 시집가야지 ㅋㅋ” “내가 아빠 같다”에 대해 비서가 “ㅎㅎㅎ 맞아요 우리 아빠”라고 대답한 부분이었다.

김재련 변호사. [김도균 객원기자]

김재련 변호사. [김도균 객원기자]

“여비서의 선 넘은 접근” 반복되는 2차 가해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내용을 공개한 정철승 변호사는 다음 날 다시 “상사에게 선을 넘는 접근을 하는 이성 직원은 아무리 충실해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면서 “고(故) 박원순 시장은 시민단체 활동만 오래했기 때문에, 이 사건 전까지 상사에게 선을 넘는 접근을 하는 이성 부하 직원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박 시장의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같은 날 ‘비극의 탄생(박원순 사건의 진상)’을 쓴 손병관 씨도 자신의 SNS에 ‘사랑해요’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이 대목을 지적했다.

“많은 분들이 경악했겠지만, 그 대화 내용에서 가장 뜨악한 부분이 여비서의 ‘사랑해요’였습니다. 처음에는 박 시장이 여비서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고 ‘이래서 인권위가 성희롱으로 판단했구나’ 싶었습니다. 찬찬히 다시 보니 그 말을 꺼낸 것은 여비서였습니다.”

다시 시선은 박원순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김잔디(가명) 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50)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에게 쏠렸다.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해 달라”는 요청부터 “문자 속 ‘사랑한다’는 표현에 판단이 흔들린다”는 반응까지 사건 발생 초기 상황과 비슷했다. 김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의혹 제기에 애초 대응 자체를 안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원순 지지자들이 마치 새로운 사실이 나온 것처럼 득의양양하게 퍼뜨리고, 그것이 기사로 양산되고, “피해자가 먼저 선을 넘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2차 가해 “착잡하다 못해 참담하다”

10월 20일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공동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에 의한 국가인권위 성희롱 결정 취소 소송에 제출된 피해자 자료를 정철승 변호사가 SNS에 유포한 행위에 대한 입장’이라는 긴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아니다. 둘째, 성폭력 판단에서 상황과 맥락이 삭제돼서는 안 된다. 셋째, 피해자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은 안 된다. 10월 24일 만난 김재련 변호사는 “착잡하다 못해 참담하다”고 했다.

“지지자들이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언론이 그대로 실어주고 다시 반론하면 실어줄게라고 하는 것은 개싸움을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된다. 피해자에겐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사망한 상태에서 국가인권위가 수개월에 걸쳐 피해자를 조사하고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을 조사했다. 그 참고인들 중에는 피해자에게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객관적인 증거가 얼마나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지 면밀히 검토한 다음 최종적으로 성희롱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가해자가 사망해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이라고 결정한 사안인데 또다시 문제 제기를 하고,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포렌식해서 최초로 제출한 자료를 마치 자기들이 숨겨진 보물을 얻은 것처럼 공개해서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믿었던 게 경솔했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현상 자체가 참담하다.”

문자 대화에서 ‘사랑해요’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한 말인가.

“각계각층 사람들이 박원순 시장에게 인사를 할 때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사랑해요 시장님’ ‘사랑해요 원순 씨’였다. 피해자도 4년간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를 지지하고 고양하고 응원하는 차원에서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사랑해요’가 남녀 간 애정 표현으로만 사용된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한동안 상담원들이 자주 쓴 말이 ‘고객님 사랑합니다’였다. 그렇다면 상담원들이 전부 선을 넘은 건가. ‘사랑해요’는 전체 맥락과 어떤 상황에서 이 대화를 주고받았고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피해자가 박 시장에게 ‘사랑해요’라고 한 것이 대단한 반전인 것처럼 호도하고, 심지어 피해자가 ‘먼저’ 그런 말을 했다고 허위 주장을 하는데 그 자료는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포렌식해서 수사 당국에 제출한 것이다. 피해자는 왜 그런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가해자의 휴대폰을 신속히 확보해서 포렌식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휴대폰은 포렌식되지 않았고 유족에게 반환됐다. 만약 그 휴대폰을 포렌식했다면 어떤 맥락인지 따로 해명할 필요도 없이 확인됐을 것이다.”



‘꿈에서는 돼요’ 성적 대화를 끝내려는 시도

‘꿈에서는 돼요’ ‘꿈에서는 마음대로 ㅋㅋㅋ’는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나.

“밤늦게 박 시장이 계속 성적 제안을 하는 대화를 하니까 피해자가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 컨디션 관리하려면 주무세요’라고 달래듯 대화를 끝내려 했다. 박 시장이 ‘그러면 꿈에서는 돼?’라고 하니까 ‘꿈에서는 돼요’라고 했다. ‘꿈에서는 맘대로 ㅋㅋㅋ’는 박 시장이 보낸 문자다.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거절해서 안 됐지만, 꿈속에서는 박 시장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미다. 이 문자의 포인트는 ‘꿈에서는’에서 ‘는’이고, ‘꿈에서는 맘대로에서’는 ‘맘대로’에 있다.”

피해자가 좀 더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힐 수는 없었나.

“그것이 우리 사회의 견고한 가해자중심주의다. 오랫동안 모신 상사고 자기 조직의 수장인데 대놓고 ‘변태야, 그만해’라거나 ‘이렇게 문자 주고받는 거 너무 짜증 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에서 진술할 때 거절을 하면서도 이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하는 게 너무 비참했다고 했다. 가해자중심주의는 계속 피해자에게만 해명을 요구한다. ‘너 왜 시장한테 이런 문자를 보냈어’. 이게 피해자에게 물을 일인가. 시장한테 물어야지. ‘왜 자정 가까운 11시 48분에 부하 여직원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으로 초대하셨습니까.’ ‘왜 부하 여직원에게 한밤중에 혼자 있는지 문자를 보내셨습니까’라고 물었어야 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피해자는 고소를 했을 뿐인데 그것도 가명으로 고소하고,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원치 않았는데, 피소 사실을 알자마자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 가해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지지자들은 무책임하게 죽어버린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흔들어댄다. 언론은 그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하고 사람들은 방관하고만 있다.”

박 전 시장의 사망이 알려지자 피해자가 ‘나 때문이야. 내가 사람을 죽였어’라고 한 이유는 뭔가.

“피해자들은 참고 참다가 더는 견디기 힘들면 문제를 제기하고 고소를 한다. 그다음에는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구속되거나 재판받는 과정에서 가족이 무너지게 생겼으니 합의해 달라거나 하면 나 때문에 저 가족이 깨졌다는 자책감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합의해 주면 저 사람이 나올 수 있는데,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구나 자책하는 거다. 친족 성폭력이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경우 더욱 그렇다. 나는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가 고소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처벌받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저지른 행위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고, 그 사람의 가족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피해자가 고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가 가족의 신뢰를 저버리고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도 박 시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처음엔 ‘죽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계속 참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라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피해자가 가해자 빈소에 조문을 가려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피해자중심주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피해자가 문제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다양하다. 고소해서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본 피해에 대해 배상을 받고 잊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너무 우울해서 자기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잊기 위해 친구들과 놀며 고통을 잊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가해자를 평생 두려워해서 못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상황을 직면하기 위해 가해자를 만나겠다는 사람도 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피해자의 성향이나 의지에 따라 다 다르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더는 자기에게 그러지 않기를 바랐고, 그것이 자기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알게 해주고 싶어서 고소를 했다. 그런데 가해자가 사망했다. 더는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는 원망스러운 상황이 된 거다. 장례식장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항의할 수 있는,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연결고리다. 나는 피해자가 장례식장에 가고 싶다면 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을 한들 피해자의 아픔이 해소될 수는 없다. 어떤 죽음은 최종적 가해라고 하지 않나.”

2020년 7월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재련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2020년 7월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재련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죽음이 최종적 가해일 수 있다

박 시장의 죽음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나.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시민도 잘못하면 수사 받고 영장 청구돼 구치소 가고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법치주의 국가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일이다. 그런데 법을 아는 사람, 엄청난 지지자를 가진 사람이 이런 일이 생기자 죽음으로 증거를 인멸했고 죽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면했다. 적어도 박원순은 그래선 안 됐다고 생각한다.”

정철승 변호사는 SNS를 통해 “박원순 시장이 여비서였던 고소인에게 ‘남자를 가르쳐 줄게’ 등의 역겨운 추행을 하고, 샤워하면서 속옷을 가져오도록 시키고, 시장실 침대에서 껴안아 달라고 요구했다는 주장은 경찰과 국가인권위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며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촉구했다.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각 사실을 나열한 뒤 마지막에 ‘국가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위 내용이 전부 인정되는 사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라고 적었다. 경찰은 사건을 송치하면서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제출한 자료, 확보한 참고인의 진술, 목격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피해자를 상담한 법무법인 온세상의 상담일지 기재 사실 등을 수사한 결과 범죄 혐의 정황이 인정되어 피의자의 휴대전화, 컴퓨터, 노트북 내 이 사건 관련한 전자정보는 이 사건의 중요한 증거물이므로 관련성이 있어 피해 진술을 종료한 2020.7.9. 압수수색 검증영장 신청을 위한 서류를 작성했으나 7.10. 피의자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영장을 신청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검사 불기소처분 이유서, 경찰 공소권 없음 송치 의견서 어디에도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바 없다. 오히려 경찰은 검찰로의 송치의견서에 ‘범죄혐의 정황이 인정된다’고 기재했다. 말도 안 되는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반론해야 하는 것이 어이없을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사기관 이외의 대중에게 공개하는 경우가 있었나. 다시 말하는데 피해자는 자신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수사기관 및 국가인권위에 제출했고, 그런 자료를 종합해 국가인권위 결정이 나온 것이다.”

박 전 시장의 유족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성희롱 취소 소송이 선고를 앞두고 있다.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를 했다 해도 그 사람의 가족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박 전 시장의 부인이 추모의 의미로 ‘나의 남편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손편지를 쓴 것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러한 가족들의 생각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유족의 편지글을 SNS에 공개하고 그 편지글 내용에 편승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이 사건을 재점화한 데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나.

“권력형 성범죄는 폭력에 대한 문제이고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진영 논리를 걷어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성적으로 괴롭힌 사건이다. 가해자가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엄중하게 비판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 만약 박원순 시장이 국민의힘 소속이었다면 오히려 피해자가 일사불란하게 보호받고 영웅이 됐을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건이 그랬다.”

권력형 성범죄는 인권의 문제, 진영 논리 걷어내야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현직 검사가 방송에 나와 미투를 한 다음 날 민주당 의원들이 흰 꽃을 들고 응원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현직 검사가 자신이 당한 피해를 용기 있게 말한 것에 응원해 주는 것을 보니 우리 사회가 깨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후 터진 안희정 사건과 그다음 박원순 사건 때에는 아무도 그런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주장을 한 무리에는 여성운동가 출신이 있었고, 전직 여성가족부 장관이 있었다. 같은 논리라면 서 검사 때는 확인된 게 있어서 꽃을 들고 응원을 했나. 이것은 명백한 모순, 이중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인권의 문제, 폭력의 문제로 보지 않고 진영 논리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참한 비교 사례다.”

김재련 변호사는 서지현 전 검사의 미투, 박원순 전 시장 사건 등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모두 피해자 측 변호를 맡았다. 때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위협에 시달렸지만 피해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권력형 성범죄라고 해서 지난 20년 동안 해온 성범죄 사건들과 유형이 전혀 다르지 않다. 가해자가 얼마나 많은 지지자를 두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가해자가 어느 진영 사람인지에 따라 그들의 해석과 그들의 행동이 다른 것이지, 내가 피해자를 대하고 사건을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는 변호사로서 피해자가 나를 찾아와서 피해를 보았음을 밝히고 법적으로 고소해서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으니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힘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다. 가해자를 봐가면서 사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변호사의 책무나 직업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제일 황당했던 것은 내가 피해자를 꼬드겨서 고소하게 했다는 거다. 서울시청 직원들이 피해자를 평가할 때 ‘그렇게 착하고 상냥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조직에 이럴 수 있나. 필시 저 노랑머리 변호사(김 변호사는 한동안 짧은 커트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다녔다)가 꼬셔서 그랬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맡을 때 우리 사무실 변호사와 직원들은 내게 안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가해자가 너무 힘이 센 사람이어서 나는 못 하겠다고 할까요’라고 물었다. 내가 정무적 판단이 부족한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원칙대로 한다는 거다. 그 원칙은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하는 것이 변호사의 소임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구조 변호사, 김재련이 간다

김 변호사는 많을 때에는 한 해에 100건 가까이 ‘구조 사건’을 진행하기도 했다. ‘구조 사건’이란 성폭력피해자가 무료로 변호사를 통해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제도다. 구조 변호사들은 여성가족부 혹은 법무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다. 구조 사건이 들어오면 김 변호사는 누구보다 먼저 경찰서로 달려갔다. 피해자의 진술을 돕고 놓치기 쉬운 증거를 챙겨주고 수사에 필요한 사실들을 정리해 줬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가서 진술할 때 초창기에는 구조 변호사가 배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나는 다 따라갔다. 변호사가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다. 지금은 별도의 진술실이 마련돼 있지만 예전에는 뻥 뚫린 공간에서 옆자리 형사들도 다 듣고 있는데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는 건 충분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머뭇거리고 말을 더듬기도 한다. 수사관이 ‘왜 말을 제대로 못하느냐’고 다그치면 더욱 위축돼 입을 닫게 된다. 그럴 때에는 오히려 ‘힘든 결정을 하고 나와줘서 고맙다’거나 ‘천천히 생각하고 말해도 된다’라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김 변호사의 ‘구조’ 대상에는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2012년 60대 여성이 진료 중 성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꽃뱀으로 몰렸다가 자살한 사건(2021년 이 사건을 토대로 영화 ‘69세’가 만들어짐)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도 있었다. 진행하는 사건이 늘수록 성폭력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편견에 그의 분노도 쌓여갔다.

김재련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래된 편견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도균 객원기자]

김재련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래된 편견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도균 객원기자]

“성폭력 범죄는 성적자기결정권-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고 하면 ‘정말 피해 본 거 맞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방화범이 불을 질러 집이 다 타버리면 ‘진짜 불난 거 맞아’라고 묻지 않는다. 피해의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공감한다. 피해의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의심한다. 성폭력 피해 결과는 볼 수 없지만 피해자가 말을 하면 알 수는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말을 안 한다. 왜 안 하나. 편견 때문이다. 어느 날 직원이 ‘부장님, 어제 교통사고 당해서 반차 내고 병원 가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면 ‘큰일 날 뻔했네. 잘 다녀와’라고 한다. 그런데 ‘어제 동창들 만났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모텔이에요. 옷이 다 벗겨져 있고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 같아요. 경찰서에 가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면 부장이 겉으론 ‘그래 잘 다녀와’ 하겠지만 속으로는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저렇게 떠들고 다니나’라고 생각할 거다. 교통사고 피해는 자랑이어서 얘기하나.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편견이다. 이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이 말을 못 하는 것이고 오래된 성폭력 피해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입을 열기까지 몇십 년이 걸린 거다. 피해자들이 더는 참지 말고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동료들이 지지하고 연대해서 피해자가 아닌 문제 행동을 한 가해자가 조직에서 배제되도록 해야 한다.”

여중생 은하(가명)는 부모의 이혼 후 친척 집에 맡겨졌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주말에 오면 딸과 한방에서 잤다. 그리고 성폭력을 했다. 은하는 이 문제로 학교 선생님에게 상담을 했지만 신고하기를 원하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싫다”고 했다. “아빠가 감옥에 가고 콩가루 집안이 될까 두렵다”는 이유였다. 선생님은 상담일지에 이 내용을 적고 “아빠가 왔을 때에는 다른 방에 가서 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성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자 은하는 사촌오빠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았다. 사촌오빠의 신고로 이 사건은 법정으로 갔지만 가해자인 아버지는 전면 부인했다.

법률조력인 1호 사건 친부 성폭력

법정에서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조리 있게 증언하지 못하자 검사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은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밥은 잘 먹고 있는지”라고 했다. 그 순간 국선변호사가 벌떡 일어났다. “증인, 증인을 보호해 줄 사람은 결국 가족밖에 없어요. 지금이라도 양심선언을 하세요.” 1심은 무죄였다.

김재련 변호사는 ‘법률조력인’으로 이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했다. 법률조력인 제도란 성범죄 피해를 당한 19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에게 무료로 변호사를 지정해 주는 것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한 국선변호사와 구별하기 위해 법률조력인이라 부른다. 검사 직권 또는 피해자의 신청, 성폭력 피해 상담소 등의 협조 요청에 따라 법률조력인으로 지정되면 피해 상담과 자문, 고소장 작성에서부터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참여해 법률적 지원을 제공한다. 2012년 3월 16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의 1호 법률조력인으로 활동한 김 변호사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양가감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성적 괴롭힘과 착취를 당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싫지만, 가해자가 아버지일 경우 자신을 키워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해 준 사람이기에 존경하거나 고마워하는 상반된 감정을 갖는다. 특히 친족 간 발생하는 성폭력에는 이러한 양가감정이 개입돼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만나고, 밥을 먹고, 여행도 가는 등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행히 항소심에선 유죄 판결이 났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이라고 생각하지만 무려 18년간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도 있다. 명문대를 나왔고, 현직 교사이고, 친부지만 성폭력 가해자라는 것도 사실이다. 가해자는 딸이 미성년자일 때에는 추행만 하다가 성인이 되자 본격적으로 성폭력을 시작했다. 집 근처 모텔 방을 잡아놓고 휴대전화 문자로 딸을 호출했다. 201개, 305개라는 문자는 모텔방 201호, 305호로 오라는 일종의 암호였다. 아버지의 성적 괴롭힘을 더는 견디지 못한 딸이 경찰서에 신고하고 피해자 진술을 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아버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305개.’ 형사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가해자를 구속했다.



“딸이 먼저 유혹했다” 근거 된 문자메시지

첫 공판에서 아버지는 판사에게 “성관계를 한 건 맞지만 딸이 나를 유혹했다. 딸과 주고받은 휴대폰 메시지를 꼼꼼히 봐달라. 정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실제 딸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아빠 저도 보고 싶어요. 빨리 갈게요. 아빠 5분 늦을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 변호사는 “피해자는 너무 늦게 왔다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간 적도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문자를 보낸 것”이라면서 “딸을 성폭행한 날은 아버지가 성질을 안 부렸다. ‘나 하나 희생하면 가족이 편하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어머니조차 합의를 강요하자 결국 피해자는 처벌불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신감정을 하기로 했다. 진단 결과는 ‘학대순응증후군’.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아버지의 폭력과 가족들이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아버지의 성관계 요구에 대한 판단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으로 퇴행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20년간 이처럼 말도 안 되지만 엄연한 현실 속 사건을 수없이 마주했다. 피해자들과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린 중학생이 친아빠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한 사건이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경찰이 자꾸 빨리 말하라고 재촉했다. 조사를 마치고 운동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그 순간 어린 피해자에게 너무 미안했고, 존중받지 못하는 피해자 앞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기소된 이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는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증인신문을 마친 후 판사가 피해자에게 말했다.

“증인은 여자이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남자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건데 아빠를 고소한 사실을 평생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판사의 질문을 들으며 김 변호사의 눈에서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법정에서 그런 질문을 들어야 하는 피해자가 너무 가엽고 미안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판사가 피해자에게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피해자는 여자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남자친구를 사귈 것이고, 결혼하고 애도 낳을 것이다. 아빠를 고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들이밀며 어린 피해자의 마음에 상처를 줄 필요가 있었을까. 재판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와서 이 어린 친구가 김 변호사에게 건넨 말은 다시 한번 변호사로서의 소임과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

“변호사님, 저는 아빠가 저를 성폭행한 것보다 판사님이 방금 저한테 저런 얘기를 한 게 더 마음이 아파요.”

판사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판사는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오랫동안 피해자의 가슴에 상처로 남게 될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판사, 검사, 변호사, 수사관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일깨워준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이라면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판사님, 검사님, 수사관님.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어린 피해자는 발가벗은 몸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맨몸을 감싸는 옷이 됩니다. 당신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그의 맨살을 찌르는 송곳이 됩니다.”

성인지감수성, 성적자기결정권, 피해자중심주의. 말로는 다 이해한 것 같지만 성범죄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언제든 ‘퇴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지적이다.

“예뻐서 그랬다잖아. 좋아서 그랬다는데. 어차피 결혼하면 성관계 할 건데. 그게 뭐 대수라고 잊고 넘어가면 되지. 가해자 쪽에서 합의를 요구하고 안 해주면 야박하다고 ‘못된 년’이라고 욕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년 가까이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해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그 안에는 피해자들이 만나야 하는 변호사, 경찰 수사관, 검사, 판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오래 전 단둘이 있었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증거가 부족해서 인정받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어렵사리 용기를 내서 법적 소송에 들어가는 이유는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해자에게 알려주고 그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지기 원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결과보다 그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훨씬 더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관이 이런 말을 하면 더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구나, 판사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지만 이렇게 질문을 하면 피해자가 위축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구나, 비록 내 가족은 아니지만 SNS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올리면 피해자가 위안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알게 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12월호 표지.



신동아 2022년 12월호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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