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위기의 전력산업, 해법은?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3-01-23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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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파에 전력이 휘청거린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전력 수급을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신동아’는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정책과 관련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 전력 부족 사태는 잘못된 정부 정책 탓
    • 시장논리 도입(26.5%)보다 공공성 강화(63.9%) 필요
    • 발전사 민영화 반대 71.3%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경기 안산시 시화호에 늘어선 송전탑 뒤로 여명이 붉게 빛나고 있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57분 영흥 화력발전소 2호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으로 정지됐습니다.”

    1월 10일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 위기대응 훈련장. 한 직원이 고장 보고를 전달했다. 한파에 따른 전력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해 예비전력이 140만kW까지 추락했다. 민방위 재난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재난방송이 시작됐다. 2011년 9·15 정전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실시된 훈련 상황이다.

    훈련 하루 전(1월 9일) 지식경제부는 1월 14일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4.0% 올린다고 밝혔다. 오피스 상가 등에서 쓰는 일반용 요금 인상률이 4.5%로 가장 높고, 산업용(4.4%), 교육용(3.5%), 농사용 순으로 인상률이 높았다.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률은 2.0%. 요금 인상 명분은 전력 수급 안정이다.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전력수요가 최대 75만kW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전력 수급 사정이 아슬아슬하다. 발전량보다 소비량이 더 많아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 상황이 발생하면 전기가 다시 들어올 때까지 국가 및 산업 기능의 상당 부분이 마비된다. 일부 산업시설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는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이렇듯 전력 수급을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뭘까. 2월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는 전력산업 정책을 어떻게 손봐야 할까.

    기형적 전력산업 구조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신동아’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정책과 관련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력 부족 사태에 대한 국민 인식과 전력산업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조사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 ±3.1%p다.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기에 앞서 한국 전력산업의 현주소를 들여다보자.

    정부는 1999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독점 전력회사인 한전의 분할 및 민영화가 골자였다.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 회사로 나누고 전력거래소를 설치하는 1단계 구조 개편을 2001년 4월 완료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등 6개사가 한전 자회사 형태로 출범했다. 한전 자회사 중 민간에 매각된 곳은 지금껏 없다. 배전부문도 지역별로 분할한 뒤 민영화할 방침이었으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구조개편특별위원회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은 기대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다고 결론짓고 배전 분할을 중심으로 한 2단계 전력산업 구조 개편 중단을 건의했다. 정부는 이 같은 요구를 수용했다. 시장 원리를 도입했다가 부작용 때문에 고생한 영국과 정전사태를 겪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력가격 급등을 경험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사례가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으나 공공요금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는 사실상 접었다.

    오는 2월 새 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에서 전력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시장론자와 과거처럼 한전 중심의 일원화한 구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재통합론자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성 vs 효율성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2012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교보타워 일대에 정전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민영화를 목표로 구조 개편을 한 뒤 시장 논리 도입을 중단함으로써 기형적 형태를 띠고 있다. 민영화, 시장화가 이뤄진 것도 아니고 과거처럼 한전 중심으로 전력 공급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전력거래소가 계통운영(SO)을 책임지고, 한전이 송전망 운영(TO)을 맡는다. 발전은 한전의 발전 자회사와 민간자본 발전소가 한다. 2012년 5월 기준으로 한전 자회사들은 전체 발전 설비의 81%를 담당하고 있으며 민자회사들은 8.5%를 맡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뇌’, 발전사들이 ‘심장’, 한전이 ‘핏줄’ 노릇을 하는 것.

    시장론자들은 전기라고 해서 시장 원리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만큼 2004년 중단한 민영화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전 자회사들을 시장에 내놓고, 민간자본을 발전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시키자는 것이다. 시장론자들은 배전과 판매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는 게 옳다고 본다. 시장 논리를 도입하면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데다 경쟁을 통해 전기요금 또한 떨어져 소비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다.

    전력거래소와 발전사들을 한전으로 다시 통합해 ‘원 켑코(One KEPCO·하나의 한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재통합론자들은 필수재를 시장에 맡기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본다. ‘뇌’와 ‘심장’ ‘핏줄’이 따로 노는 기형적 전력산업 구조가 전력 수급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재통합론엔 “전력산업을 민영화하면 대기업 배만 불리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따라붙는다. 재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한전이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형태로라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론조사 결과 국민 대부분(96.4%)은 전력이 부족하다는 보도 등을 접한 경험이 있어 실제 위기를 체감하지는 않더라도 전력 수급이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 전력 부족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소비자에게 어느 정도 책임(34.2%)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전력 정책(53.4%) 탓에 야기된 문제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공공성 중심으로 운영해야”

    전력산업 민영화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우세했다. “공공성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응답(63.9%)이 “시장 논리를 도입해 효율성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26.5%)는 응답보다 많았다. 또한 ‘대기업이 발전사업에 뛰어드는 민영화보다는 한전이 중심이 돼 발전사업이 이뤄져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한 국민이 79.1%로 대다수 국민은 한전 중심의 전력 공급체계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의 발전 자회사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71.3%에 달했다. 전력산업 민영화는 현 상황에서 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전력거래소), 심장(발전사), 핏줄(한전)로 나뉜 현재의 전력산업 관리체계를 한전 중심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68.5%,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22.0%로 나타났다. 국민 여론은 재통합론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 여론은 이렇듯 효율성을 강조하는 민영화보다 국가 중심의 전력산업 체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선 분야별로 나눠진 관리체계를 한전 중심으로 통합하는 게 낫다고 여겼다. 2004년 중단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다시 시작하거나 한전의 발전 자회사를 민간에 매각하는 정책은 반대 여론이 많아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수요관리·발전·송배전, 한전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기록적 한파와 원전 이상으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2012년 12월 21일 서울 삼성동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절전을 위해 난방을 하지 않아 직원들이 덧신, 담요, 장갑으로 몸을 감싼 채 일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올려야”

    국민은 현행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 필요성에 공감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동의한다(58.9%)는 응답이 동의하지 않는다(36.6%)는 응답보다 많았다. 산업계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비교해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등 14개 경제단체는 1월 10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 상승과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에 대폭 인상을 지양해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현재 가정용 전기요금은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크게 늘어나는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 생활 안정화를 위해 누진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누진제 개편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국민은 69.8%,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국민은 27.0%다.

    정부는 현재 저소득층을 상대로 일정액의 전기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가구 소득, 전력 사용량 등을 고려해 차등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국민(85.9%)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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