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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거래법은 핑계? 금융위·한은의 ‘밥그릇’ 싸움

[금융 인사이드]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이 끝장토론 해라”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3-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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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브라더’ 아니다 vs 맞다

    • 與 윤관석 ‘전금법 개정안’이 단초

    • 금융위의 금융결제원 지배력 놓고 신경전

    • 주택금융공사 부사장 자리로 확전?

    2020년 3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20년 3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은행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빅브라더’라고 한 건 오해(때문이)다. 조금 화가 난다.” (2월 19일 은성수 금융위원장) 

    “빅브라더 법이 맞다. 정책기관끼리 상대방의 기능을 이해해 주는 게 중요한데 (금융위가) 그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2월 23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금융정책을 이끄는 금융위원회와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이 세게 맞붙었다.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두고 엇갈린 의견을 내놓으면서다. 실무자끼리 쟁점 사안을 두고 논쟁하는 수준을 넘어선 분위기였다. 양측 수장이 직접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정도로 갈등의 수위가 높았다. 대체 어떤 개정안이기에 두 기관이 얼굴을 붉히며 다퉜을까.

    ‘청산’ 둘러싼 논쟁

    이번 갈등은 지난해 말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됐다. 이 개정안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이른바 빅테크(Big Tech·대형 정보기술 기업) 기업이 금융업에 원활하게 진출하도록 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이 중 개정안에 포함된 ‘청산’ 업무가 쟁점이 됐다. 청산이란 쉽게 말해 금융거래를 하면서 발생하는 채권·채무 관계를 계산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씨가 ㄱ은행을 통해 B씨에게 100만 원을 송금하고, 반대로 B씨가 ㄴ은행을 통해 A씨에게 50만 원을 송금했다고 치자. 이 경우 두 은행이 서로 100만 원과 50만 원을 주고받아야 하지만, ‘청산’을 거치면 ㄱ은행이 B씨에게 50만 원만 주면 되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 

    청산 업무를 하는 기관은 금융결제원(금결원)이다. 금결원이 청산에 필요한 계산을 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면서 실제 돈을 송금하는 역할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맡는다. 



    개정안에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 내부 결제 내역을 외부 기관인 금결원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는 카카오페이 이용자가 카카오페이의 다른 이용자에게 송금한 내역은 내부에서 처리하고 말았지만, 앞으로는 이를 외부 기관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측은 내부 거래 정보까지 청산 대상에 포함하면 ‘빅브라더’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금결원을 통해 모든 거래 정보를 별다른 제한 없이 수집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금융위는 외부 청산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내부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해당 업체가 파산할 경우 등을 대비해 거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지금 제도로는 업체가 도산하면 이용자에게 돈을 돌려줄 길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빅테크 내부 거래 과정에서도 금융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건설적인 논쟁이다. 개인정보 보호냐 소비자 보호냐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논의하고, 점차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은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 2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연 전금법 개정안 공청회에서도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빅테크의 내부 거래도 청산 기관에 보내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중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경우 “자금 이체업자 등이 파산하면 관리기관이 고객에게 이용자 예탁금을 반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자금 내역을 파악하고 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예탁금을 반환하는 구조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금결원·주금공 놓고 기싸움?

    이처럼 양측 의견 모두 어느 정도 합리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갈등만 놓고 두 기관을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두 기관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이 논쟁이 사실 양 기관이 각자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기관은 지난해 말 전금법 개정안이 한국은행의 고유 기능을 금융위가 침해하는지를 놓고 대립했다.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본래 중앙은행에 있다. 하지만 전금법 개정안에는 금융위가 금결원을 외부 청산 기관으로 두고 빅테크 업체의 거래를 관리·감독하도록 돼 있다. 결국 금융위가 빅테크 업체에 대한 외부청산 관리를 이유로 중앙은행의 지급결제 관리 기관인 금결원에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금융권은 이번 갈등을 다른 밥그릇 싸움과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간 금결원 원장은 대부분 한은 출신 인사가 맡았다. 금결원은 법적으로 비영리단체다. 지난 1986년 중앙은행 기능인 청산을 담당하기 위해 한은과 시중은행 10곳이 함께 출자해 설립했다. 이후 한은이 금결원에서 일종의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한은이 보내려 했던 인사가 금결원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결국 금융위 출신인 김학수 현 원장이 임명됐다. 이에 양 기관 사이에 생긴 긴장감이 이번 갈등으로 터져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갈등이 또 다른 자리로 확전하는 양상도 감지된다. 바로 주택금융공사(주금공) 부사장 자리다. 주금공 부사장 자리는 통상 한은의 임원 자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지난 1월 31일 만료된 부사장 자리의 후임자 임명이 확정되지 않자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사장은 주금공 사장이 임명하는데, 현 사장은 최준우 전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이다. 두 기관이 여기에서도 기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금융위와 한은이 권한을 두고 갈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에는 지급결제제도 감독 법안을 두고 충돌했다. 당시 한은은 금융사에 대한 직접 조사 기능을 보유하려 했지만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국회 정무위원회 등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일련의 정황을 고려하면 두 기관의 이번 갈등은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소비자 보호냐 개인정보 보호냐를 놓고 심도 있게 협의할 시간도 모자란 데, 양측의 기 싸움으로 논의의 초점만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 논리 내세우니…”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자 두 기관이 만나 아예 끝장토론을 하라는 웃지 못 할 조언까지 나왔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금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금융당국과 한은이 언론을 통해 설전을 벌이는 형국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라며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이 실무진을 데리고 끝장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각 정부 부처가 당연한 듯 산하기관 임원 자리를 차지하는 관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런 식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은 채 두 기관이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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