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람들은 천심을 거역했다. 노리개 표적, 일회용 표적이 사수들을 꼬드기고, 사수는 사수대로 이웃집 표적을 향해 연습사격, 과외사격을 서슴지 않았다. 그야말로 탄환이 난무하는 무서운 세상이 된 것이다. 총기 난사, 오발 사고에 의한 총신의 오염, 표적의 파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호구의 출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19세기 중엽, 이들 사수가 사선(射線)에 오를 때 착용하는 ‘스포츠웨어’가 개발되었다. 양질의 스포츠웨어는 착용이 간편하고 활동에 무리가 없어야 한다. 선수의 기록을 방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두께가 얇아야 하고 경기 도중 구멍이 나지 않을 만큼 내구성을 요구한다.
기실 스포츠웨어의 역사는 유명한 사격선수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찰스 2세(영국)의 총기 난사 습성에서 출발했다. 여타의 제왕, 군주만큼이나 잡기화한 사격 경기에 흠뻑 젖어 살던 찰스 2세. 그의 충성스러운 주치의 콘돈(Condon)이 왕의 총신(銃身)을 덮는 아담한 자루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한 것이 그 효시로 알려져 있다.
“왕이시여! 사선에 오르실 때에는 꼭 그 옷을 착용하소서.”
“그것이 무엇인가? 생김새가 마치 장화 같구려.”
“폐하의 로열 총기를 덮는 덮개이옵니다.”
“덮개?”
“그러하옵니다. 폐하의 총기를 탐하는 여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바라옵건대 그 옷을 끼워 입고 사선에 드시면 경기 감각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황실의 가계(家系)가 온전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왕자가 많으면 집안싸움이 잦아지는 법 아닙니까.”
“어허! 경은 무엇으로 그걸 만들었는가?”
“염소 맹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염소의 맹장을 취해 수시간 물에 담가뒀다가 그것을 뒤집어서 엷은 알칼리액에 적시면 유연해집니다. 이 상태에서 점막을 밀어내고 근육질의 피막만 남긴 다음 유황의 연소증기에 넣었다가 비눗물로 씻어 말린 후 18~20cm 길이로 절단하고 주둥이 쪽을 리본으로 붙잡아 매어 만든 것입니다.”
그날 밤 찰스 2세는 콘돈이 시킨 대로 염소 맹장주머니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 결과는 매우 흡족했고, 그 다음날 콘돈은 기사 작위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 스포츠웨어, 콘돔(condom)은 리넨이나 견사 제품으로 변천됐지만 고무공업의 발달과 함께 라텍스 제품으로 개선됐다. 전체 길이 17cm, 직경 5~5.5cm의 라텍스는 실온에서 좌우로 잡아당기면 80cm까지 늘어나 5분 이상 견딜 수 있고 물을 부어넣으면 2ℓ까지 들어가는 기막힌 신축성을 자랑하게 됐다.
한때 ‘여자를 울리는 도구’ ‘본성을 숨기는 새침떼기’ ‘여자를 만족시키는 애인’ 등으로까지 격상된 사격 경기용 스포츠웨어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수가 즐겨 찾는 준(準)생활 필수품으로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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