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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지혜의 숲’과 벼룩시장의 오후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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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교차하는 미로에서의 산책

동묘 인근 벼룩시장 좌판.

현대의 초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최초로 가시화한 것은 1893년 미국 시카고의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그 도시가 이른바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으로 급속히 변모한 것을 들 수 있다. 낙후한 도심지 건축이나 공간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백색의 고전주의 대형 건물이 200채 넘게 건설되는 과정을 ‘백색도시(White City)’라고 부르는데 한때 이 도시미화운동은 19세기 산업혁명기에 발달한(동시에 산업혁명의 갖가지 모순이나 도시 문제를 포함한) 거대한 공업도시를 탈바꿈하게 하는 운동으로 평가받았다.

이 도시미화 프로젝트의 21세기 버전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도심지가 낙후하고 중상류층은 대도시 외곽의 전원주택 단지나 신도시로 이주한다. 그러다가 21세기 들면서 도심지 재개발이 시도되어 도시 바깥의 중상류층이 다시 귀환하는데, 이때 낙후했던 도심지는 쾌적한 주거환경과 높은 경제력의 고학력 시민으로 채워지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는 머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은, 이를 주도하는 정치인과 자본의 이해뿐만 아니라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주거 환경과 부동산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삶을 동경하는 한 시대의 욕망이 뒤엉켜 진행된다는 점이다.

런던, 시애틀, 베를린, 브뤼셀, 프라하, 도쿄, 베이징, 케이프타운 등 21세기의 대규모 도시가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우리의 경우 최근 몇 년 사이에 광화문과 종로 일대, 그리고 무엇보다 용산에서 이러한 급변을 보게 된다.

도시사학자 박진빈은 ‘1970년대 이후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이러한 급변이 단지 외형상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의 질서, 재정 질서, 부의 편재 등을 변화시킨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의 “도시는 재정, 회계 분야의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국제적 수요를 염두에 둔 관광 사업에 알맞도록 경관을 바꿈으로써 국제적 자본과 직접 연결된다. 더 이상 지역적 요구나 지역민의 특성을 고려한 개발이라기보다는 자본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기 위한 변화”가 되는 것이다.

빨간 비디오의 추억



이렇게 하여 중상류층의 이해 및 그들의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에 기초한 방식으로 도심지가 재구성된다.

동묘 앞에 가봤다. 내가 사는 곳이 일산이라 주말에는 서울에 나갈 일이 없다. 그런데 일부러 틈을 내어 가봤다. 그곳에 일요일이면 벼룩시장이 서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서지 않는다. 동묘 앞 일대의 상가가 평일에는 장사를 하기 때문에 벼룩시장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일요일에는 상가가 문을 닫고 가게가 철시하기 때문에 벼룩시장이 선다. 그래서 일부러 가봤다.

이 벼룩시장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젠트리피케이션, 즉 야심 찬 청계천 복원사업이 ‘뜻하지 않게 거둔 성과’다. 엄밀히 말하여 그의 성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청계천 복원 사업에 의해 떠밀린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찾아낸 공간이 동묘 앞 벼룩시장이다. 저 20세기에 청계천 일대는 ‘이쑤시개에서 항공모함까지’ 다 만들어낸다는 곳이었다. 광교 지나 청계천 2가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끄트머리 7가, 8가 즉 ‘황학동 벼룩시장’까지 온갖 세상만물이 만들어지고 거래되던 곳이다.

나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고등학생 때 종로에서부터 청계천을 지나 을지로까지 가로지르는 세운상가를 걸었다. 걷다보면, 특히 아세아극장 부근을 걷다보면, 검은 점퍼 차림의 아저씨들이 “좋은 거 있는데, 보고 가라”고 했다. 그 은밀하고 끈적거리는 시선을 피하기가 때로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관심은 오디오였고 음반이었다. 글 쓰는 동네의 어느 선배도 그 무렵에 그 아저씨들 유혹에 이끌렸다고 했다. 갔더니, 예닐곱 명을 한 조로 하여 맨 앞과 뒤에 건장한 인솔자가 바짝 붙어 서서 다시 종로 쪽으로 하여 낙원상가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그 허름하고 음침한 낙원상가의 한구석으로 들어가니 사내 대여섯 명이 ‘빨간 비디오’와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더란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나오고, 이 선배가 동참한 조가 들어가서 40분가량, 화질도 좋지 않은 ‘빨간 비디오’를 봤더라는 추억이다. 다 보고 나서 흩어지는데, 검은 점퍼의 인솔자가 이렇게 덧붙였대나. “아무리 급해도 이 건물 화장실 쓰지 마. 영업 방해로 죽여버릴 거야. 딴 데 가서 흔들어.”

그 지점을 시작으로 하여 평화시장 부근의 헌책방을 거쳐 황학동에 이르면 또다시 별천지가 펼쳐졌는데, 역시 나의 관심은 황학동 벼룩시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음반 가게, 즉 돌레코드와 장안레코드가 최종 목표였다. 그 길고도 복잡한 길 위에 리어카에 작은 의자 하나 놓고 장사하던 사람들이 청계천 공사 때문에 오갈 데가 없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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