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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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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구로공단은 진한 땀 냄새가 밴 산업화의 시발점이다. 전성기이던 1977년, 10만여 노동자 대부분은 여공이었다. 그들의 삶을 극명하게 나타낸 노래가 ‘사계’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벌집’에서 살던 그들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느끼며 예의를 차려야 한다.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넘 슬퍼.”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오래전 일이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사계’를 틀었고, 옆에 있던 철부지 ‘초딩’은 그렇게 슬퍼했다.

그렇다. 사계는 슬프고 비장미 넘치는 노래다. 그럼에도 운동권 가요치고는 곡조가 지나치게 발랄하고 감각적이어서 일부 운동권으로부터 배척받았다. 그렇지만 그 발랄함 속에 숨은 페이소스(애상감)에, 사람들은 이다지도 경쾌한 노래를 들으면서 외려 깊고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그 답은 ‘노찾사’에서 찾아야 한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이 땅의 중년에게 노찾사는 하나의 상징이다. 노래는 역사에 청춘을 내던진 사람들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 시절, 학과 MT나 직장 단합대회 끝 무렵이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던 노래들이 있다. ‘사계’가 있고, ‘광야에서’가 있고, 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있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대학생들의 구로공단 일대 노동현장 투신은 한국 사회의 특이 현상이자 시대정신(Zeitgeist)의 상징이었다. ‘학출’(학생운동 출신) ‘학삐리’로 불리던 그들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던지고 가리봉 오거리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들을 ‘위장취업자’로, 노동현장에서는 ‘먹물’로, 정권에서는 ‘불순세력’ ‘좌경용공세력’으로 불렀다. 그 시절, 기업에선 위장취업자 색출 지침까지 배포되고 학습됐다.



자발적 ‘공돌이’ ‘공순이’

‘이력서의 필체가 기재된 학력에 비해 좋거나, 안경을 쓰고 대학생들이 잘 입는 복장을 한 근로자, 대학가의 속어를 무의식적으로 쓰는 경우, 글 쓰는 손마디에 굳은살이 박인 경우, 노동법 등에 지식이 많은 자, 이유 없이 동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

그들은 자발적 ‘공돌이’ ‘공순이’였다. 부모가 뼈 빠지게 일해 ‘우골탑’ 대학에 보낸 그 잘난 아들딸들이 고시 공부, 취직 공부는 안 하고 제 발로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가난한 부모의 기대와 눈물을 모질게 외면한 채 노동현장으로 뛰어든 청춘들. 어찌 보면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무모함 그 자체였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지금의 20, 30대에게는 1980년대를 추억하는 선배들의 낭만쯤으로 비치겠지만, 청춘을 바쳐 민주화를 부르짖던 그들은 이제 꽃다운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허름한 역사의 뒤안길에 들어섰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중반은 ‘혁명의 시대’라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군부독재, 대학생 시위, 노동운동,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그리고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최루탄 냄새 등이다. 최루탄 냄새의 한가운데에 민주화를 향한 노동자, 대학생들의 핏빛 저항이 있었고, 그 몸부림에는 민중가요가 함께했다.

이 시기 운동권 학생들이 주동이 된 노동운동은 노동자 집단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1960~1970년대 학출의 경우 멀리는 러시아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 가까이는 심훈의 상록수 같은 다분히 계몽적, 낭만적 감성으로 노동현장과 농활(농촌활동)에 뛰어들었지만, 1980년대부터는 집단적 · 조직적으로 투신했고, 노동자 스스로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 목표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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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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