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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국민고추 ‘말라게따’ 통각을 홀리다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브라질 국민고추 ‘말라게따’ 통각을 홀리다

잘 마른 말라게따 고추.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잘 마른 말라게따 고추.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언제부터인지 밤 10시만 지나면 꾸벅꾸벅 존다. 그 덕분에 하루가 짧아져 집밖에서 거나하게 자리를 갖는 일은 줄고, 초저녁의 조촐한 ‘쥐맥’이 부쩍 늘었다. 통통한 쥐포를 말랑하게 굽고 길게 찢어 차가운 맥주와 번갈아 먹는다. 충분히 짭짤한 쥐포이지만 나는 고추장에 찍어 먹길 즐긴다. 그날도 잘 굽힌 쥐포 끄트머리에 고추장을 묻혀 손에 쥐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 ‘이슬이’가 쏜살같이 달려와 쥐포를 낚아챘다. 어릴 때부터 쥐포 굽는 냄새만 나면 ‘냥냥’거리며 쫓아다녔는데, 좀처럼 주질 않았다. 하필 잠깐 눈 돌린 틈에 고추장 묻은 쥐포를 날름 먹고 만 것이다. 이슬이는 쥐포를 뺏을 때보다 더 빠르게 물그릇 앞으로 달려갔다. 가슴팍이 흠뻑 젖도록 실컷 물을 먹고 돌아와 내 앞에서 한참 울었다.

매움은 맛 아닌 아픔

 매운 맛이 고스란히 우러난 말라게따 오일.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매운 맛이 고스란히 우러난 말라게따 오일.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매운맛은 43℃가 넘는 어떤 것이 혀에 닿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한다. 물을 마시러 다급히 뛰어간 이슬이의 행동으로 보아 맵다는 것은 감각 중에도 참기 어려운 통증의 한 종류가 맞나보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즐긴다. 즐기는 걸 넘어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전 세계인으로 평균을 내면 1년 동안 1인당 고추를 5㎏ 먹는다(인덱스박스, 2018). 고추 개수로 치면 한 사람당 250개를 먹는 것인데, 아예 먹지 않는 지역과 우리나라, 터키, 멕시코처럼 아주 많이 먹는 지역으로 나뉘니 우리는 훨씬 많은 고추를 먹는 셈이다. 색다른 시각으로 음식과 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요리사 사민 노스랏(Samin Nosrat)이 쓴 책 ‘소금 지방 산 열’에는 다섯 대륙을 식문화가 비슷한 26개 국가 스타일로 분류한 다음 주로 먹는 양념재료를 써 놓은 표가 있다. 그중 15군데에서 자주 사용하는 양념으로 고추(칠리)가 등장한다. 나머지 9군데에서는 고추 하나 달랑 빠지는 대신 엄청난 종류의 향신료가 길게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 표를 보고 있자면 고추는 수많은 허브와 향신료를 대신할 만한 힘이 있는 것처럼 해석된다.

스트레스 해소에 직방

감칠맛을 더한 말라게따 소스.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감칠맛을 더한 말라게따 소스.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고추의 매운 맛은 캡사이신(capsaicin)이라는 식물영양소가 낸다. 캡사이신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신진대사를 좋게 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땀을 빼 체온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매움이라는 통증을 우리 뇌에 선사하므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엔도르핀까지 분비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고추는 물론, 고추로 만든 다양한 양념을 즐겨 먹는 이유는 교감신경이나 엔도르핀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고대의 사람들처럼 매운 음식은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먹는 것도 아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움은 속도와 스릴이 있다. 게다가 ‘맛’이 아니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맛있다.

고추는 매운 맛도 있지만 단맛도 가지고 있고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어디선가 구수함과 감칠맛이 비집고 나온다. 가지에 매달려 익어가고, 햇볕과 바람에 말라가는 정도에 따라 변하는 풍요로운 향도 지녔다. 색깔은 또 얼마나 예쁜가. 싱그러운 초록부터 숨겨진 매움을 과시하듯 짙은 검붉음까지. 고추는 매움이라는 감각의 주머니 안에 다채로운 맛과 향, 색을 꽉 채워 넣고 있다. 씨앗처럼 가득 차 있던 풍미와 색은 다양한 문화와 요리법을 만나 ‘통증’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맛’의 지배자로 나선다.

다채로운 변신, 폭넓은 스펙트럼

고추는 싱싱한 그대로, 바싹 말려서, 조금 덜 말려서, 기름에 담가서, 짜고 달고 신 것에 절여서, 삭혀서, 곱게 갈아서, 빻아서, 끓여서, 쪄서, 씨도 껍질도 심지어 이파리도 먹는다. 고추의 매움은 감각이라 그런지 어떤 요리 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가 시리게 차도, 펄펄 끓게 뜨거워도, 아무리 기름져도 매운 맛은 살아 있다. 극한의 단맛도, 오만상을 짓는 짠맛 가운데서도, 코를 틀어막고 싶은 강한 향속에도, 심지어 알코올에 담가도 짜릿한 날이 그대로 서 있다. 이런 특징이 매움에 매료된 이들의 혓바닥을 더욱 자극한다. 한식의 드넓은 매움 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 건너온 다채로운 매운 요리들, 동남아시아의 산뜻하면서도 짜릿하게 매운 것들, 매움이 슬쩍 다녀간 듯 부드러운 자극을 주는 유럽 스타일의 맛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간혹 맛을 넘어 자신과의 싸움처럼 매움이라는 통증과 맞서는 이들이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대신 색다른 매운 맛을 찾아 늘 두리번거리기는 한다.



‘말라게따’의 쓸모

말라게따 오일로 만든 볶음밥.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말라게따 오일로 만든 볶음밥.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매콤하게 볶은 조개 파스타.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매콤하게 볶은 조개 파스타.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최근에 발견한 것이 남미의 묵직하고도 기름진 매움이다. 브라질에서 국민고추로 불리는 ‘말라게따(Malaguetinha)’를 기름에 우려 만든 오일과 소스를 찾았다. 말라게따는 스코빌지수(SHU, Scoville Hot Unit)가 5만~10만 사이의 거물이다. 세계에서 제일 매운 고추인 캐롤라이나 리퍼(Carolina Reaper)의 스코빌지수는 220만(먹을 수 없다), 청양고추는 1만 정도이니 매운 맛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2.5~5㎝ 내외로 자그마한 말라게따 고추를 말려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우린 매운 기름은 쓸모가 아주 다양하다. 매운 맛이 둥글둥글한 편이고, 색이 진하지 않다. 생선을 구울 때 살짝 넣고, 버섯이나 호박, 가지 등을 볶고 구울 때 넣으면 은근하게 매운 맛을 낼 수 있다. 볶음밥을 할 때, 파스타를 볶을 때, 달걀부침이나 말이를 만들 때, 누룽지탕이나 탕수육소스의 마지막에도 살짝 곁들인다. 말라게따 고추에 마늘 등을 넣고 가볍게 양념해 만든 소스는 나초, 토르티야, 샌드위치 소스 등으로 쓸 수 있다. 이 소스에 꿀, 마요네즈, 케첩, 요거트 등을 섞으면 활용도는 몇 배 늘어난다. 튀김을 찍어 먹거나, 구운 고기에 곁들여도 좋다. 소시지나 참치 등이 듬뿍 들어간 기름진 샐러드를 만들 때 사용해도 잘 어울린다. 단, 오일과 소스 모두 보기보다 매운 맛이 강하니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말라게따 오일과 소스.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말라게따 오일과 소스. [가토에즈노비 코리아]



신동아 2022년 9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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