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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정수기 강송식 사장

좋은 물, 건강한 세상 꿈꾸는 옥탑방 사장님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한우물정수기 강송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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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정수기는 역삼투압방식을 사용하는 대기업 제품들과 달리 전기분해식 정수기이다. 전기분해과정을 거쳐 수소이온의 농도(pH)가 서로 다른 세 가지 물을 만들어낸다. pH 7.4~8.5인 약알칼리수와 pH 9~10의 강알칼리수, pH 4~5의 약산성수가 그것(pH 7이 중성으로, 보통 수돗물이 pH 7을 띤다).

이 세 종류의 물은 각각 용도가 다르다. 약알칼리수는 마시는 물이고 강알칼리수는 야채나 과일을 씻거나 세탁을 하는 데 사용하는 물이다. 약산성수는 피부를 씻는 데 쓰인다.

한우물정수기로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은 이 세 종류의 물 중 약알칼리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약알칼리수란 전기분해를 통해 음(-)극에 모인 물로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등 양이온과 수소이온이 풍부하다.

알칼리성과 산성이 만나면 중성이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과학상식이다. 즉 약알칼리수가 우리 몸 속에 들어가 노화의 원인인 활성산소와 결합해 물이 되면서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약알칼리수가 우리 몸 속의 나쁜 노폐물들을 모두 가지고 몸밖으로 나가는 셈이다.

일본의 물 전문가인 의학박사 하야시 히데미쓰는 자신의 저서에서 “물을 전기분해해서 나오는 전해 알칼리수에는 활성수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이 활성수소가 만병의 근원인 활성산소를 없애준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연세대 김현원 교수(생화학과)는 “전해 약알칼리수의 기능성은 활성수소가 많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전기분해 과정에서 생기는 전자 때문일 수 있다”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약알칼리수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산성화된 신체를 알칼리성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점차 인정되고 있는 추세다.



교직생활 그만두고 ‘물장사’에 투신

이렇듯 몸에 좋은 물을 만드는 법을 개발한 강사장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약알칼리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간에는 그가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약알칼리성을 띤 약수를 마신 덕분에 간염과 동맥경화 등이 완치됐고, 그를 계기로 교사직을 그만두고 알칼리수를 만드는 정수기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 그는 부황의 효능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뒀다.

“제가 술을 좋아합니다. 1978년 결국엔 간염과 동맥경화, 고혈압 때문에 분필조차 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어요.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어서, 집에서 식이요법과 부황으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일 만에 완치가 된 거예요. 제가 영어교사였는데, 영어야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에 미련 없이 20년 교직생활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부황의 효능을 알리는 일에 나섰죠.”

전남 군산의 가난한 집안 출신인 강사장은 어렵사리 교사가 됐다. 군산고교에 입학하고 사흘이 지났을 때, 홀어머니에게 ‘둘째아들 서울 올라갑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아십시오’란 당돌한 내용의 쪽지를 남기고 상경했다. 대한인쇄공사 견습공으로 취직해 낮으론 일하고 밤으론 공부를 하다 배가 고파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박찬종 한나라당 상임고문이 그의 동기.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주과외지도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고, 졸업 후엔 건축회사와 미군 PX 등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했다. 그리고 2년 후 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그가 교직생활을 정리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부황이 지금처럼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그는 교직에 있을 때 폴란드의 노동운동가 바웬사를 본딴 ‘강웬사’란 별명과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를 본딴 ‘강스탈로치’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좀 부당하다 싶거나 학생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교육청이건 교장실이건 찾아가 시정을 요구하는 등, 고분고분한 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돌연 사표를 내자 여기저기서 그 이유를 궁금해했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황이 고혈압이나 당뇨에 좋다는 것을 경험에 비추어 설명하고 다녔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전기분해식 정수기 개발에 나선 것은 1985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전부터 약알칼리수를 만드는 정수기를 개발하고 있는 한 연구가를 알고 지냈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그와 동업을 시작했지요. 1985년 12월엔 드디어 정수기 개발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정수기 개발 후 사업은 더욱 악화됐다. 모양새부터 촌스러운 정수기를 몇십만원씩 내고 사줄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떠맡기다시피 팔러 다녔지만 사업비는 늘 쪼들렸다. 집도 날릴 뻔하고 16부나 되는 사채를 쓰기도 했고, 이혼 위기도 겪었다. 동업하던 연구가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시간제 교사와 학원 강사로 나서면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강사장은 “날뛰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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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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