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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진정한 연기 정신 일깨워준 거목 - 이해랑

“끼와 열정이 아니라 기와 에네르기가 필요해!”

  • 장두이 연극배우, 인덕전문대 방송연예과 교수 du-yee@hanmail.net

진정한 연기 정신 일깨워준 거목 - 이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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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연극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서울예전에 들어가 연극과 무용을 공부한 나는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과에서 이해랑 선생님을 만났다. “연기는 영혼의 폭발이지만 절제의 미가 있어야 한다” “연기뿐 아니라 연출과 희곡에도 매진하라”는 선생님의 조언은 내 연극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다.
진정한 연기 정신 일깨워준 거목 - 이해랑

예술원 회장을 지낸 이해랑 선생. 후배 연극인들은 그의 이름을 딴 ‘이해랑 연극상’을 제정해 연극계에 끼친 그의 공을 기리고 있다.

오는 12월6일부터 17일까지 나는 지난 3년 동안 가슴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연극 ‘황금 연못’을 무대에 올린다. 원작이 있긴 하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작품으로, 연출도 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누가 보면 ‘욕심도 많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지난 연극 인생 36년간 줄곧 해온 작업이다. 일련의 연극 작업은 내게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일깨워준 이해랑 선생님 덕분이다.

1974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온 나는 곧바로 남산에 있는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그때만 해도 4년제 정규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연극을 깨치려는 집념에 새로운 선택을 한 것이었다. 사실 어머니께서 앓던 병이 도져 세상을 떠나신 데에는 이런 연유도 있었다.

전문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공부한다는 이유로 나는 명동의 한 술집에서 고려대 연극동아리인 고대극예술연구회 선배들에게 심한 욕설과 비난의 술 세례를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연극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수 없었다. 수색 근처 단칸 셋방에서 홀로 되신 아버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연극 인생을 걷겠다고 거듭 맹세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이라는 화두는 나로 하여금 급기야 무용과에 입학해 무용까지 공부하게 만들었다. ‘한국 연극을 하면서 어찌 한국의 몸짓을 외면할 수가 있으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만난 또 한 분의 평생 스승이 도살풀이춤 인간문화재 김숙자 선생이다.

셰익스피어처럼 되어라



우여곡절 끝에 서울예전 연극과와 무용과를 졸업한 나는 당시 서울예전 학장이시던 유덕형 선생님의 배려로 연극과 조교 생활을 하면서 강의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나는 이미 또 하나의 학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 입학이었다.

당시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는 우리 연극계와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분들이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해랑, 이진순, 유현목 감독, 그리고 장한기 교수님 등이었다. 특히 이해랑 선생님은 내게 연극의 새로운 길을 일깨워주신 분으로 내 맘속에 남은 영원한 스승이시다.

1916년 서울에서 나신 선생님은 1938년 일본대학 예술과를 졸업하고 극연좌, 현대극장, 신협, 국립극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배우와 연출가로서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내셨다. 오늘날 선생님의 뜻을 기린 ‘이해랑 연극상’이 제정돼 후학들에게 그 정신을 전해주고 있지만, 이해랑 선생님의 연극에 대한 가르침은 남달랐다.

1977년 가을이었다. 장충공원에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어느 날, 우연히 선생님과 마주쳤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장충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학교로 올라가던 나의 습벽을 들켜버린 그날, 선생님은 다른 수업을 마치고 국립극장으로 올라가시던 중이었다.

“학교 올라가니? 요즘 연습은 잘돼?”

그다지 짙지 않은 색의 선글라스를 낀 선생님의 모습은 늘 그랬지만 멋있는 황혼의 가을빛이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 대답이 시큰둥했던지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공원벤치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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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연극배우, 인덕전문대 방송연예과 교수 du-y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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