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노력해야 헛고생, 차라리 다 같이 죽자…”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5-05-24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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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 없는 목사 100차례 방화…소방관, “잡으면 죽여버리겠다” 분통
    • 대구 母子 방화범, “쌀 한 가마 들여놓고 쳐다보는 게 소원이었다”
    • “‘마누라 속 썩이는 무능한 놈…’ 장모 비웃음에 휘발유 뿌렸다”
    • “범죄자 중 가장 못난 놈이 방화범”
    • 인터넷에 빠져 대화할 줄 모르는 아이들, 방화광 될 가능성 높다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강원도 출신의 A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목사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 골목에서 그를 체포한 수사관에 따르면, 그는 “촌스럽고 어수룩해 보였다”고 한다. 그를 면담한 기록에는 ‘사기 칠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사를 할 스타일도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가 무려 100여 차례나 주택과 자동차, 교회에 불을 지른 방화광(放火狂)이란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아내조차 “남편이 자주 오전 11시쯤 나가 오후 3시면 들어와 의아해했지만, 선교하러 나갔으려니 생각했다”고 수사관에게 털어놓았다. 한창 햇볕이 쏟아지던 그 시간에 목사인 남편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닌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방화범의 표적이 될 것인가’

    A씨는 자신의 중고차를 타고 하루에도 서너 차례 미친 듯이 불을 질렀다. 한 곳에서 불을 지르고, 다시 차를 몰고가 다른 곳에 불을 붙였다.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도 그는 불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몇 달째 방화범은 잡히지 않고 화재가 잇따르자, 한 소방관은 “잡히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민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자신의 집과 자동차가 방화광의 표적이 될지 모르기에 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왜, 불을 질렀을까. 수도권에서 개척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순박하지만 말 주변이 없는 탓에 그는 교인을 모으지 못했다. 불을 지르기 전까지 교인이라고는 그의 식구를 빼고 딱 한 명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겪는 시련의 시기로 여겼지만, 시간이 가도 신도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정체 모를 적개심이 그의 마음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골목을 걷다가 쓰레기더미에 눈길이 멈췄다. 그는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활활 타는 듯 묘한 해방감을 맛봤다. 이렇게 시작한 ‘불장난’은 자동차로, 다른 교회로, 주인이 없는 주택으로 타깃을 옮기면서 이어졌다.

    경찰은 수개월째 이어진 화재의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범인이 일정한 동선(動線)을 그리며 오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예상되는 지점에 잠복했다. 6개월이 지나서야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그를 덮칠 수 있었다. 체포하는 순간에도 그는 멀쩡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증거를 은닉하기 위해 몰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떨어뜨리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사건은 미궁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A씨 사건은 한국에 본격적인 방화광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단순 방화를 넘어서 습관처럼,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는 광인(狂人)이 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1974년 304건이던 방화 건수는 30년이 지난 2003년 1713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벌어진 살인이나 강도, 강간 같은 다른 강력범죄의 증가폭을 상회한다. 불이 사회 안전을 해치는 흉기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가 펴낸 ‘방화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는 대검찰청 통계보다 방화가 훨씬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예로 행정자치부가 집계한 화재통계연보는 2003년 3219건의 방화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확실하게 방화로 추정되는 경우’를 집계한 것으로 실제로는 더 많다는 것이 일선 경찰관들의 분석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전체 화재건수 중 35%를 방화로 추정한다. 이 추정대로라면 2003년 발생한 방화는 1만건이 넘는다.

    이렇듯 방화가 증가하는 이유는 경제발전과 관련이 있다. 먹고살 만할수록 화재는 줄고, 방화는 는다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화재 사고에서 방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두 건의 화재 중 한 건이 방화로 발생한 것이란 얘기다. 선진국일수록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확산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방화’가 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방화를 ‘선진국형 범죄’로 본다.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방화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소외계층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에 빈곤층 인구가 두 배나 증가했다. 노동시장이 급격하게 유연해지면서 실업자가 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다. 빈곤층 가족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자녀 보육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경쟁에서 밀린 약자들은 사회와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학)는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승자(勝者) 독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발한 결과 방화 같은 범죄가 증가하는 후유증이 나타났다”며 “정부는 말로만 분배정책을 실시한다고 할 뿐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아 불평등은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의 지적대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계층간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범죄는 증가한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방화는 살인이나 강도보다 훨씬 위험하고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크다. 한꺼번에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상의 피해 또한 적지 않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대구 지하철 참사는 방화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2003년 방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61명. 10년 전인 1994년 105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방화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수사관들은 불에 타서 숨진 사람의 형체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다고 전한다. 대부분 몸이 오그라든 채 숨져 있다. 때론 탈출하려고 창문에 매달린 채 타 죽은 경우도 있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처참한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고인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렇듯 타서 재가 되기 전에 이미 유독가스로 질식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불에 타는 끔찍한 고통은 느끼지 못하고 사망했으리라는 것.

    화재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우가 중화상을 입은 사람이다. 방화로 화상을 입은 사람은 1994년 208명에서 2003년 550명으로 늘어났다. ‘화상은 천형(天刑)’이라고 할 만큼 끔찍하다. 갖가지 합병증에 시달려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화상이다. 이런 환자가 500명을 넘어섰고, 증가 추세에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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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방화범은 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전국 9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방화범 55명을 만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대다수의 방화범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경제적으로 하류층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함께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회적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빈곤과 맞물려 방화범 자신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자폭성 폭발로 이어진다.

    지난해 연말 경찰에 붙잡힌 모자(母子) 방화범이 그랬다. 68세 노모와 24세 아들 박씨는 노인이 거주하는 단독주택만 노려 물건을 훔치고, 스무 차례나 방화했다. 박씨는 검거되기 전 경관을 흉기로 찔러 죽여 잔인한 살인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만난 범죄분석가는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면서 “박씨가 노인이 사는 주택만 노렸다는 것은 그만큼 심약하다는 증거”라며 “그는 곁에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방화범죄에 노모를 끌어들인 것도 범행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범행 장소 반경 50m 이내에 어머니를 데리고 가, “잠시 다녀오겠다”고 한 후 도둑질을 하고 불을 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 사는 이 모자의 처지는 “기막힐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이들은 쌀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기가 다반사였다. 박씨는 경찰관에게 “방에 쌀 한 가마 들여놓고 쳐다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기본적인 사회보장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박씨에게 약탈과 방화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방화범은 불을 지르기 전까지는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를 참지 못하고 무서운 가해자로 돌변한다. 쌓인 응어리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도처에 방화광(放火狂)이 숨어 있다!

    방화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범죄자를 유혹한다.

    방화죄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B씨는 이혼한 뒤 만난 남자에게서 버림받고, 끊임없이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참고 참은 억울함을 그는 불을 질러 터뜨렸다. 방화를 결심한 이유, 자신을 버린 남자의 행태에 대해 B씨의 증언은 이랬다.

    “장항에서 한 총각을 만나 동거했다.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집도 장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방 여자를 만나더니 내게 별거를 강요했다. 나중에 후회했지만, 나는 남편에게 집을 주고 나왔다. 여자가 생겼으면 멀리 떠날 것이지, 왜 내 집에서….

    둘이 살다가 혼자 사니까 우울증이 생겨서 병원에 다녔다. 이런 나를 몰라주고 남편은 여자를 끼고 내 앞을 버젓이 지나다녔다.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 약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뒷바라지 하면서 살았는데, 너무 억울했다. 괘씸해서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옷이 걸려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불에 잘 타는 옷과 라이터뿐이었다. 자동차에도 불을 질렀다.”(박형민 박사 보고서)

    B씨에게 불은 자신의 나약함을 강화해주는 도구였다. 가해자에게 물리적인 힘을 발휘해 혼내주기가 힘들 때, 정신적으로 고통을 참아낼 수 없을 때 불은 손쉬운 테러의 수단이 된다.

    울산에서 주택에 불을 지른 C씨도 보복이 목적이었다. 다만 가해자가 사회 전체였으며, 자신의 곤궁한 처지에 대한 불만이 집주인에게 투사됐다는 점이 B씨와 다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울산에 있는 선배 집에 갔다. 그 형은 요즘 돈을 벌지 못해 몇 달치 월세가 밀렸다. 주인이 형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독촉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안타까웠다. 형과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둘 다 노동을 하는데, 요즘은 일거리도 없고 사는 게 힘들었다. 괴로워서 술을 마셨고, 이래저래 부정적인 얘기만 하게 됐다. 사회가 우릴 힘들게 한다.”(박형민 박사 보고서)

    과잉보호가 낳은 희대의 엽기범죄

    불을 질러 사람을 살해하고, 남편과 오빠, 어머니의 눈을 멀게 만들어 보험금을 타낸 엽기적인 사건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엄모씨. 그는 마약 값을 대기 위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대다수 방화범의 행태에서 관찰되는 나약하고, 소극적인 심성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엄씨는 2000년 첫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핀으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케 했다. 첫남편이 합병증으로 사망하자 자해한 것으로 꾸며 보험사에서 2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탔다. 재혼한 남편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수면제를 먹였고, 눈을 찔렀다. 그도 병원에서 합병증으로 숨지자 엄씨는 사고사로 위장해 거액의 보험금을 또 타냈다.

    엽기적인 방법으로 두 남편을 살해한 그는 이번에는 오빠에게 마수를 뻗쳤다.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오빠의 눈에 염산을 뿌려 실명케 했다. 오빠가 전 남편처럼 쉽게 죽지 않자, 오빠와 남동생이 자고 있는 집에 불을 질러 화상을 입혔다. 이에 멈추지 않고 엄씨는 한때 자신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던 강모씨의 집에 얹혀살면서 그 집에마저 불을 질렀고, 이 때문에 중화상을 입은 강씨의 남편은 끝내 숨을 거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엄씨의 행동은 어린 시절 이미 잉태된 것이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곱게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의 과도한 보호 아래 자란 나머지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모자랐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겪게 마련인 사소한 갈등도 그는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득의양양한 방화범은 처음 봐”

    세상 물정을 몰랐던 엄씨는 남자를 사귀는 것에도 서툴렀다.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남자는 직업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돈이 없는 엄씨의 첫남편은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처가에 의존했고, 신혼의 보금자리도 없이 처가에서 지냈다. 이러다 보니 엄씨는 가족들로부터 냉대받고,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엄씨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날씬했던 몸이 100kg으로 불어났다. 먹는 것으로 풀리지 않자 엄씨는 마약에 손을 댔다. 마약 값을 대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과 방화를 저질렀던 것이다.

    남편과 오빠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나, 남동생이 자는 틈에 불을 지른 것은 그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반영한 행동이다. 흔히 방화범들이 술에 의존해 범행을 저지르듯 엄씨는 마약의 힘을 빌려 범죄를 저질렀다. 어렸을 때 형성된 나약한 성격이 비뚤어지면 무시무시한 폭행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목포의 노숙자 방화범 K씨는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되자 이를 참지 못하고 불을 질렀다. 그는 지난 2월9일부터 15일까지 매일 밤 11시면 거리로 나와 주택과 자동차에 열두 차례 불을 질렀다. 보통 방화범은 발화 즉시 다른 곳으로 몸을 숨기는데, K씨는 자신이 지른 불을 구경하다가 폐쇄회로TV에 찍혀 체포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체포된 뒤 그가 보인 행태다.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고, 오히려 태연했으며 싱긋 웃기까지 했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수사관을 보자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고 한다. 그 수사관은 “범죄자를 많이 만나봤지만 그처럼 득의양양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며 “수사관이 자신을 만나러 서울에서 목포까지 왔다며 그렇게 좋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누군가 인정해줬다는 만족감을 그렇게 표시하더라는 것이다.

    K씨는 불을 지르면 동네가 소란스러워지는 데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소방차는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고, 소방관들은 불을 끄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경찰관은 범인을 잡느라 분주하다. 그는 이렇듯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사회가 떠들썩하게 반응하자 마치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잡힐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불구경을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화는 그가 사회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과시적 도구다. 특정인의 재산을 해치려는 뜻은 없고, 다만 사회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그의 진짜 목적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은 방화범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눈다. 우선 방화범에겐 남다른 편집증이 있다. 툭하면 남을 의심하고, 의부증이나 의처증이 심하다. 때론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곤궁한 방화범은 가난 때문에 주위에서 괄시한다며 늘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방화는 어른의 자폐증

    주차관리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P씨가 그랬다. 그는 어느 날 옷 파는 가게를 구경하다가 행색이 추레하다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 그날 P씨는 저녁일을 마치고 자신의 힘든 처지를 털어놓으며 술잔을 기울일 상대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셨는데, 묘하게 낮에 당한 수모가 떠올랐다. 자존심을 건드린 종업원이 참을 수 없이 미워지자, 그는 휘발유통을 들고 옷 가게로 달려가 주인 차에 불을 질렀다.

    방화범에겐 분열적 장애성도 있다. 이들은 타인과 관계를 끊고 고독을 즐긴다. 남이 무슨 말을 하든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겉으론 점잖아 보이지만, 남의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숙맥이다. 문제가 생겨도 남과 대화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Q씨는 가족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방화 사건이 있던 날에도 부인과 갈등이 있었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Q씨의 얘기는 이랬다.

    “갑자기 그렇게 (불을 지르게) 됐다. 왜, 그날 집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모른다. 집사람이 ‘잠시 떨어져서 살아보자’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말해달라고 했지만 집사람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로 전화를 걸어 ‘방 얻어놓았으니 거기로 퇴근해라. 옷은 갖다놨다’고 했다. 우린 부부싸움도 별로 안 했다.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집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방화범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 중 하나는 방화 전에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열적 장애자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들은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만취할 때까지 마시지도 않는다. 불을 지를 정도의 정신은 남겨두는 것이다.

    강 과장은 “방화는 어른의 자폐증 같은 것”이라며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 자폐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타인과 대화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이 떨어지면 분열적 장애 증세를 갖게 되므로 커서 방화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가 방화범죄를 앞으로 한국사회가 겪을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빈곤층의 확대, 사회와 절연된 소외계층의 증가로 방화 건수가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방화범’마저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현실적으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방화범을 줄일 만한 적절한 대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1994년 이후 방화 전과가 있는 사람이 다시 방화하는 비율은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방화범 10명 중 한 명은 또다시 불을 지른다는 것이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수많은 미해결 사건까지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불을 지르는 사람은 10%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방화범을 특별관리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정신과 진료를 받게 하거나, 필요하다면 방화범 가족 전체가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해야 하지만 현재 이 같은 프로그램은 없다. 날이 갈수록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감정 폭발로 방화하는 범죄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방화죄를 재산침해 범죄 정도로만 보고 있다. 방화광으로 전락하는 정신적인 이유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박형민 박사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검사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도록 권유한다”며 “방화범에 대해서도 출소 조건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방화범이 언젠가 또 방화한다는 것은 일선 수사관들에겐 상식이다. 최근 서울 사당동 일대를 방화의 공포로 몰아넣은 L씨는 과거 방화죄로 구속된 사람이다.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다시 불을 질렀다.

    조용하던 사당동 일대에 처음으로 불길이 치솟은 것은 지난 3월30일 새벽 1시.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에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연달아 4건이 일어났다. 이틀 뒤 4월1일 새벽 3시엔 동네 야산에 불이 붙었다.

    방화범은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아 좀처럼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증거가 불에 타버리기 때문에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런 까닭에 경찰은 범인을 잡을 때까지 잠복해야 한다. 노련한 형사들도 방화범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언제 다시 불을 낼지 알 수 없고, 현장에서 체포해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방화범 잠복조는 최소 3명으로 구성한다.

    4월1일부터 서울 방배경찰서는 수사전담반을 편성하고, 방범순찰대와 의경 등 100명을 사건이 벌어진 지역에 배치했다. 경찰이 움직이자 이번에는 방화범이 움직이지 않았다. 초조하게 1주일이 흘러갔다. 4월8일 밤 11시30분, 사당동 일대의 야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사건을 지휘하던 방배경찰서 강력2팀장은 방범순찰대를 화재 현장으로 급파하고 자신은 일부 형사와 함께 예상되는 범인의 도주로에 잠복했다. 퇴로를 따라 역추적한 것이다.

    절망, 무능, 무관심, 스트레스…

    화재 사건이 접수된 뒤 40여 분쯤 흘렀을 때, 야산 등산로 입구에서 짙은 감색 운동복을 입은 수상한 사람이 발견됐다. 낌새를 알아챈 그는 도망치려 했지만 잠복한 형사들에게 붙잡혔고, 그 자리에서 라이터 4개를 압수당했다. 그도 다른 방화범처럼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조사 결과 당일 소주 2병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체포될 당시 그는 산불만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조사 일주일 만에 차량 방화도 시인했다.

    왜소한 체격의 L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우울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로부터 “마누라 속썩이고, 무능력하다”는 핀잔을 자주 들었고, 때론 동서들과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 불을 지르던 날은 아내에게 심한 잔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늘 술을 마셨다. 그렇다고 마땅히 울분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술로 풀다가 결국엔 말 없는 산에, 대항하지 못하는 자동차에 불을 놓은 것이다. 수사관들은 “범죄자 중에서 가장 못난 놈이 방화범”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란 얘기다.

    다 같이 못살 때는 몸은 고달파도 정신적인 고통은 적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삶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고, 노력해서 안 되는 것들이 분명해진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절망부터 하게 되며, 이웃의 무관심 속에 홀로 끙끙 앓다가 어느 순간에 불처럼 폭발한다.

    우리 사회에 방화광이 등장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사건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그늘도 짙게 드리워진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숱한 방화범을 만난 한 베테랑 수사관은 “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려면 따뜻한 사랑밖엔 없다”며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면 울면서 다 털어놓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가족이나 이웃의 관심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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