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암’잡이 의사의 깔끔한 손 맛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의 ‘영양 수제비’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2-12-03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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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직후 너무도 가난하던 시절. 피죽조차도 어렵던 그 시절. 물 반, 우거지 반에 밀가루 반죽 몇 덩어리가 헤엄치던 게 무슨 맛이 있었으랴만 그래도 수제비라, 추운 겨울 허기를 달래는데 그만이었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에겐 그때의 참상을 오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게 만드는 음식이다. 그러나 아픈 기억이 세월 속에 추억으로 변해가듯, 수제비는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별식이 됐다.
    ‘암’잡이 의사의 깔끔한 손 맛

    암센터의 기둥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이진수 병원장, 김창민 연구소장, 박 원장, 김남신 간호과장(사진 왼쪽부터)

    지난 11월4일 점심 무렵. 경기도 고양시 일산 소재 국립암센터 별관건물 4층으로 임직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여느때 같으면 1층 식당으로 몰려갈 이들이 굳이 4층으로 올라오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날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54)이 수제비를 직접 만든다는 소문이 센터 전체에 자자했기 때문이다.

    평소 어렵기만 하던 원장이, 그것도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암 환자를 다루던 ‘존엄한’ 손으로 수제비를 만든다니 적잖이 궁금했을 터. 구경도 하고 잘 하면 수제비로 점심을 대충 때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법하다.

    ‘설마’했던 이들은 밀가루를 반죽하는 박 원장의 능숙한 손놀림에 한 번 놀라고, 별것 아니지 싶어 따라 해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어서 또 놀란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대충 어림잡아 주물러보니 반죽이 되기는커녕 손가락 이리저리 엉겨붙어 밀가루 범벅이 되기 십상이다. 밀가루 한번 만져본 적 없는 여직원들도 마찬가지.

    한두 사람씩 지나다 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20여 명으로 불어났다. 임시로 마련한 간이식당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암센터 ‘드림팀 3인방’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오랜만이다.

    암센터가 개원한 것은 2000년 3월.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박 원장은 암, 특히 대장암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폐암 권위자 이진수 암센터 부속병원 병원장(52)과 국내 간암 최고 권위자 김창민 암센터 연구소장(49).



    우리나라에서 암 발병률이 높은 부위는 폐와 간 그리고 위, 장 등 소화기 계통. 박 원장을 비롯, 이 박사와 김 박사 등 3대 암 권위자들이 국내 암 예방과 퇴치를 위해 세워진 암센터를 이끄는 ‘드림팀 3인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제비 요리장으로 변한 간이식당에 김 박사가 슬며시 들어오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원장님, 진짜 집에서 해요?” 못 미덥다는 투다. “그럼.” 익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의 농도를 가늠하던 박 원장의 대꾸에 김 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삼키듯 한마디 한다. “나도 반성해야겠네….”

    수제비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리과정에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기도 한다. 민물 매운탕에 수제비를 넣은 ‘민물 매운탕 수제비’, 쟁반우동 국물에 수제비를 넣은 ‘쟁반우동 수제비’ 등 이름도 붙이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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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장님 별명 말해도 돼요?” 박 원장의 수제비 맛을 처음 본 임직원들은 이날 박 원장의 별명까지 덤으로 알았다. 그의 별명은 ‘박돼지’.

    박 원장은 자신의 수제비에 ‘영양 수제비’라 이름 붙였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소금물 대신 우유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박 원장이 우유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좀더 영양가가 풍부해지지 않을까”해서다. ‘우유는 쉽게 마시지 못하는 귀한 것’으로 여기던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이 한몫했다.

    수제비를 만드는 준비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가 밀가루 반죽 만들기다. 먼저 밀가루 큰 컵(200cc기준) 2컵과 녹말가루 2큰술의 비율로 잘 섞어 체에 1∼2번 내린다. 여기에 우유를 조금씩 흘려 넣으며 손으로 반죽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질척거려도 계속 주무르면 반죽이 부드러워진다. 밀가루 반죽이 푸석푸석하게 떨어지면 수분이 부족한 경우다. 완성된 반죽을 1시간 정도 숙성시키면 쫄깃해지고 맛이 좋아진다. 다음 단계는 야채썰기. 양파는 채썰기, 애호박과 당근은 반달썰기, 붉은고추와 대파는 어슷썰기, 감자는 애호박과 비슷한 크기로 썰어둔다. 마지막 준비단계인 국물내기 첫 순서는 다시마. 물에 넣고 오래 끓이면 국물 빛깔이 너무 검게 변하기 때문에 끓기 시작하면 곧바로 건져내는 것이 좋다. 멸치는 10분 정도 우려낸다.

    이제 준비된 밀가루 반죽과 야채를 순서대로 국물에 넣으면 된다. 쉽게 익지 않는 감자와 당근을 제일 먼저 넣고, 새우와 해감(모래나 불순물 등을 빼내는 작업)된 조개가 그 다음이다. 밀가루 반죽은 밀대로 넓적하게 편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떼 넣는다. 국물이 끓는 동안 되도록 빨리 반죽을 떼 넣는 것이 수제비 맛을 살리는 포인트.

    적당히 끓으면 간보기. 잘 다진 마늘과 국간장, 소금 등으로 간을 맞춘다. 먹을 때 양념장을 넣기 때문에 약간 싱겁게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양파와 호박, 파, 고추 등 준비된 갖은 야채를 넣으면 ‘영양 수제비’ 완성.

    ‘암’잡이 의사의 깔끔한 손 맛

    고민이 있을 땐 산에 오른다. 산은 그에게 깊은 사색과 평온함을 주기 때문이다.

    박 원장이 수제비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94∼95년경 주말도 없이 바쁘던 병원생활에 비로소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부터다.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박 원장은 1973년 서울대병원 인턴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정신 없이 바쁘게 지냈다. 서울대병원 일반외과 의사를 하던 1980년대 초 그는 일반외과학교실 전임강사, 대한면역학회 총무, 암학회 총무 등을 겸임했다. 1985년부터 88년까지는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귀국 후엔 대한암협회 총무이사, 대한암학회 간행위원장, 대한소화기병학회 학술총무, 대한대장항문병학회 학술위원장에 이어 국제위원장,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아세아대장항문병학회 사무총장 등 직함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1994∼95년경은 박 원장이 서울대 암연구센터 소장 겸 의과대 암연구소 소장이 되던 즈음이다.

    박 원장에게는 부인 오정임씨와 딸 셋 그리고 늦둥이 아들(12)이 있다. 박 원장은 주말이면 가끔,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들에게 수제비를 직접 만들어준다. 그동안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미안함과 작은 사랑의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고 요즘 박 원장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월·수요일은 암센터에서, 화·목요일은 서울대병원에서 직접 진료와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금요일은 암센터 원장으로, 토요일은 서울대암연구소 소장으로 각종 행정업무를 챙긴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하고 되도록이면 각종 세미나에도 빠지지 않는다. 남는 시간엔 아직도 공부를 한다. 보건복지정책고위과정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수과정을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것. 그래서 주변에선 그를 ‘철인’이라고 부른다.

    반평생을 암과 싸우는 일에 바친 박 원장. 그는 이제 담배와 싸우기로 했다. “금연만큼 국민들을 암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예방책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2020년까지 박 원장이 밝힌 인생의 목표는 이것이다. ‘담배판매금지법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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