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자치기 스윙’은 대한민국 특허품?

  • 글: 임택근·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입력2003-01-06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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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기 스윙’은 대한민국 특허품?
    ‘골프클럽을 휘감아 올린 후 탄성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공을 칠 것.’ 모름지기 스윙자세는 이래야 한다고 골프 교본은 열심히 가르친다. 그래야만 공이 정확하게 맞고 비거리도 많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본은 교본, 나는 나. 클럽을 거머쥐고 공 앞에 마주 서면 으레 클럽머리가 허공에서 작은 원 한 바퀴를 그리고 내려오는, 흡사 ‘자치기’ 폼 같은 더블스윙이 튀어나오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일제시대 때부터 골프를 즐기신 아버지를 따라 필드에 나간 게 근 40년 전의 일이다. 코치도 없고 이렇다 할 연습도 없이 우드 하나 둘러메고 시작한 그 시절 ‘막 골프’의 폐해가 이렇게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줄 상상이나 했으랴. 남들이 뭐라건 내 식대로 치다 보니 교과서와는 상관없는 스윙 폼이 고정되어버린 것이다. 폼이 엉망이니 스코어가 나올 리 없고, 스코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골프가 재미있을 리 없다. 처음 치는 컴패니언들은 어김없이 “그건 어느 나라 폼이오?” 하고 물어대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구력을 묻는 이들에게 “십 년 몇 백 개월”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게 습관이 됐을 정도다.

    몇 해 전 일본 로터리클럽 회장단과 라운딩을 했을 때의 일.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때의 모습이다. 한 일본 손님이 유난히 유심히 내 폼을 지켜보더니 “전세계 어느 골프장에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폼인데, 누구한테 배우셨소?” 하고 진지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한국 동료들 중 한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되받은 말. “저건 한국에서 특허를 갖고 있는 스윙 폼이라오.” 한바탕 왁자지껄 웃음이 필드를 뒤덮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 폼은 나도 모르는 새에 힘을 쓰기 때문에 나오는 듯하다. 클럽을 뒤로 제친 상태에서 “이걸 한번 잘 때려내야지” 하고 두 눈을 부릅뜨니, 내려와야 할 클럽이 순간 위로 솟아 원을 그리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영 엉성한 폼이지만 그래도 중단거리에서는 따박따박 곧잘 공이 맞는다. 사실 오비야 힘깨나 쓰는 장타자들이 내는 거지 나 같은 ‘조심성 골퍼’와는 인연도 없다. 10년 전 겨울 한양CC에서는 이 엉성한 스윙으로 홀인원을 한 뼘 차이로 놓친 적도 있었으니, 그놈의 스코어만 아니면 문제될 것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돈내기 골프를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그러나 꼬박꼬박 필드를 찾는 골퍼 치고는 영 기복이 심한 스코어가 마음에 남는다. 100을 넘은 경우는 많지 않지만 90을 기준으로 10~12타까지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필드에서 얻은 ‘경륜’으로 따라가기는 하지만 기본이 부실하니 결과도 영 부실한 셈. 나도 정확한 내 실력을 모르겠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구력 13년인 아내 역시 시작할 때는 나처럼 기본도 안 잡힌 ‘막 골프’였다. 그런데 한동안 조용히 연습장에 다니는가 싶더니, 엉망이던 폼이 말끔해져 이제는 골프 교본용 비디오 테이프에 나오는 모델마냥 완벽한 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되자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부부동반 골프에 나가면 매일 듣는 소리가 “부인은 잘 치는데 당신은 왜 그 모양이냐”는 것이니 열을 받을 수밖에.

    창피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인지,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내 손을 이끌고 연습장까지 끌고 간 게 바로 집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못 고치면 다시는 나와 라운딩할 생각 말라”는 따끔한 ‘협박’도 이어졌다. 마침 맡고 있던 일이 정리되어 당분간 한가하겠다 싶기도 해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레슨을 담당한 프로가 내 폼을 보고 6개월은 연습장에서 휘둘러야 될 거라는 진단을 내렸다.

    좋다, 한번 고쳐보자 굳게 마음먹었지만, 뜻하지 않은 해외출장이 생기고 갑자기 분주해져 석 달도 못 가 연습장에 발길이 뜸해졌다. 그래도 딴에는 이만하면 됐다 싶어 다시 필드에 나섰는데, 연습장에서는 어느 구석엔가 숨어 있던 자치기 스윙이 너른 들판을 보자마자 어쩜 그렇게 고스란히 나타나는지. 더욱이 이제는 자치기 스윙 5할에 정통파 스윙 5할이 섞인 더 묘한 폼이 되고 말았다. 이름하여 ‘짬뽕 스윙’이다.

    얼마 전 목격한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나의 상심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전혀 뜻하지 않았던 그 일은 친구들과 부담 없는 라운딩을 즐기던 어느날 벌어졌다. 앞에서 경기에 열중하고 있던 팀 가운데 유독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3부 요인을 지내신 고명한 어른이었다. 그런데 문득 보니 이분의 스윙 폼이 또한 자치기가 아닌가. 그것도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자치기 스윙이었다. 천사 머리 위에 달린 링처럼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리는 그 골프클럽을 보는 순간, 남들에게는 차마 말 못하는 안도의 한숨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비우기로 작정했다. 따지고 보면 즐기자고 치는 골프, 괜히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마 그 어른도 그런 생각이 아닐까 싶다. 골프장에서 승부에 연연하다 심장마비로 일찌감치 저 세상을 향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폼에 신경 쓰다 제 명에 못 죽으면 그보다 억울한 노릇이 또 있겠냔 말이다. 그러니 골퍼 여러분, 폼이 좀 엉성한 친구가 있어도 너무 기죽이지 맙시다. 그렇게 팍팍하게 살지 않아도 고민거리 넘치는 세상살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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