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비전센터(소장 조혁), 현대차 지원으로 386 해외연수 보내
- 영국-프랑스-인도 12일간 ‘유럽 신좌파정당과 제3의 길 연구’가 목적
- 현대차 1차 36명 연수에 4억원 지원, 2,3차 포함 10억원 예산책정 알려져
- 주변인들 “조혁, 지난 대선 때 외곽에서 노무현 당선 도왔다”
- 조혁은 반미청년회 총책, 안희정 김두수(김두관 장관 동생)와 고대 동문
- 386 재야운동권 한 관계자 “비판받아 마땅하다”
- 현대차 “참여정부 라인구축 차원 결코 아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386은 주류가 됐다. 정치·사회적 주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주류는 여전히 재벌기업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386과 재벌기업의 관계는 새롭게 재정립돼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386과 재벌기업간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된다면 같은 주류로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발전적인 동거’로 봐야 할까. 아니면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목적에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국내 재벌기업인 현대자동차(회장 정몽구)가 386 재야운동권의 대표격인 조혁(趙赫·40)씨가 조직한 ‘코리아비전센터’를 통해 386을 주축으로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해외연수를 간접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씨는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의 총책이었으며, 1980년대 초반부터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김영환씨와 함께 학생운동의 핵심이론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연수일정은 지난 6월22일부터 7월2일까지 12일간으로, 방문지는 영국과 프랑스, 인도 등 3개국이었다. 연수 참가인원은 36명이며 1인당 1000만원 안팎으로 4억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앞으로도 두 차례에 걸쳐 추가 지원키로 하고 총 1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연수는 ‘유럽의 신좌파정당과 제3의 길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유럽의 대표적인 좌파정당인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의 현황과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제3의 길에 대한 연구가 주목적이었던 것.
연수일정을 보면 6월23일 ‘영국 노동당 소속 짐 피츠 패트릭(Jim Fitz Patrick·노동당 원내부총무) 의원과의 대화’, 24일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국제사면위원회)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와 한반도 인권상황에 대한 세미나’ 그리고 25∼27일 3일간 ‘파리8대학 정치대학원 강의’ 순으로 이뤄졌다.
파리정치대학원 강의는 25일 사회당 조르주 애쉬(George Ayache·프랑스 루이벡트 외교부장관 보좌관) 보좌관의 ‘냉전종식 이후의 새로운 국제정세’, 26일 국제 정치석학인 파리8대학 장 마리 뱅상(Jean-Marie Vincent) 교수의 ‘프랑스 좌파의 역사와 현황’, 27일 파리8대학 이환식 교수의 ‘프랑스 노동과 실업’에 대한 주제로 진행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유럽 신좌파와 제3의 길을 주제로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파리정치대학원은 강의일정을 마친 참가자들에게 수료증을 수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은 일정은 인도에서 오르빌 공동체와 현대차 현지공장을 잠깐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번 연수의 주요 참가자들은 황인성(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총장) 이숭규(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 이철우(북부비전21 공동대표) 김두수(민주당 개혁특위 위원) 박홍순(커뮤니티파트너십센터 소장) 박인규(인천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강기정(개혁국민정당 광주북갑지구당 위원장) 김정원(밀양시의원) 홍진표(시대정신 편집위원) 김순이(한국청년연합회 사무처장)씨 등이다.
대다수가 시민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386 재야운동권 인사라고 볼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조혁씨와 직·간접적으로 연이 닿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또 순수 시민사회운동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현실정치 참여를 위한 범개혁신당 추진에 앞장선 이들과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할 예정자도 포함돼 있다.
황인성 사무총장은 최근 시민사회진영의 현실정치 참여에 주도적으로 나선 인물이다. 그는 지난 6월 ‘정치개혁과 참여정치를 위한 시민사회의 전국네트워크’를 준비하면서 “정치권에서 잘 해주기를 기대했으나 당내 문제에 묻혀 핵심적인 정치개혁 과제들이 실종돼버렸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힘을 모아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정치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제 여의도 정치권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진영이 나설 때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철우 대표와 강기정 위원장, 김두수 위원 등 3명은 범개혁신당 추진운동본부가 밝힌 총선출마자 명단에 포함돼 있는 인물들이다. 이대표는 경기 연천·포천에서, 강위원장은 광주북갑에서, 김위원은 경기 일산에서 각각 출마할 예정이다.
이들 중 이대표와 김위원은 조혁씨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다. 이대표는 서울시립대 출신으로 1988년 3월 조씨가 총책을 맡았던 ‘반미청년회’ 조직사건으로 구속됐었다. 자연히 함께 구속됐던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도 가까웠다.
김위원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친동생으로 조씨와 고대 동기생이다. 조씨는 노문과, 김위원은 행정학과 82학번으로 고대 83학번인 안부소장의 운동권 1년 선배들인 셈이다.
이숭규 대표와 홍진표 위원은 조씨와 함께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맡았었다. 이대표는 연대 출신인데 조씨의 8년 선배이고, 서울대 출신인 홍위원은 같은 연배다. 김순이 사무처장이 일하고 있는 한국청년연합회는 조씨가 주축이 돼 조직했던 한국청년연맹의 후신이다.
강기정 위원장은 이번 연수에 참가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혁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가게 됐다”고 밝히고 “유럽 좌파운동에 대해 배우고 싶었고, 좌파정당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강위원장은 이어 “한국사회는 과도기를 맞고 있는데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태”라면서 “이번 연수 참가자들끼리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질 예정인데 앞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발전시켜 이런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참가자도 “조혁씨와 가까운 한 선배를 통해 참석하게 됐다”면서 “연수가 끝날 무렵, 앞으로 정기적으로 모이기로 했는데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현대차, 후배 통해 조혁 소개받아
현대차 같은 국내 대기업이 이처럼 이념적인 성격이 짙은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과연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다음은 이번 연수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직접 추진했던 현대차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코리아비전센터 주최로 진행된 386 재야운동가들의 유럽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386의) 반(反)재벌 정서와 대안 없는 비판 경향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원한 것이다. 제대로 알고 비판해달라는 차원에서였다. 현대차 인도공장 견학과 유럽 선진국의 자동차 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인도공장은 해외진출의 성공사례로 꼽힐 만하다. 현대차가 100% 투자한 공장인데 현재 인도시장 점유율 1위다.”
-이 단체를 선택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후배를 통해 소장 조혁씨를 소개받았다.”
-조혁씨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인가.
“그렇다.”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했나.
“사실상 우리 쪽에서 먼저 했다.”
-코리아비전센터라는 조직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현재 4~5명 정도가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386 운동권 출신들이 연결돼 있어 그루핑(grouping·집단화)이 가능한 조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지원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코리아비전센터는 아직 미등기상태다. 조직도 갖춰지지 않았다. 센터 사무실의 위치는 마포구 공덕동의 한 오피스텔빌딩 8층. 취재결과 사무실은 27평형 오피스텔로 올해 1월28일 입주했으며 센터가 아닌 직원 개인 이름으로 월세 110만∼120만원에 계약된 상태였다. 직원은 남녀 각 1명씩 단 두 명뿐이다. 계약자로 올라 있는 직원 최모씨는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정세분석국 부장을 역임했던 인물.
최씨는 사무실 계약건에 대해 “처음 계약할 때 개인 이름으로 했을 뿐 지금은 센터 이름으로 돼 있다”며 “오피스텔 주인과 직접 계약하기 때문에 건물관리사무실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최씨는 이어 센터 설립목적에 대해 “사회 문화적으로 새로운 흐름이 일고 있다. 하지만 386 세대는 아직도 비주류로, 주류에 대한 접근이 매우 어려운 상태다. 비주류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끝에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만들었다”고 밝히고 “4월부터 준비모임을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논의단계다. 조직체계나 사업내용에 대해서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교수, 석·박사 출신 운동가들의 모임으로 만들어 ‘제3의 길’에 대해 지속적인 토론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씨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 특히 현대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지만 실무자로서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 소장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답변을 피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소재 코리아비전센터 안내 푯말과 사무실 입구.
-참여정부 이전에도 386 재야운동권 출신들을 상대로 이런 프로그램을 지원한 경우가 있는가.
“…없다(함께 자리했던 현대차 홍보팀 관계자가 대신 답했다).”
-그렇다면 왜 현 정부에 들어와서 갑자기 시작하게 된 것인가.
“그동안에는 386 운동권 세력들이 정치권에만 진출해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면서 사회 각 분야에 오피니언 리더로 진출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 386 운동권 출신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조직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단체를 통해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비공식적으로.
“…비공식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공장견학을 하는 데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공장견학은 하루였다. 대부분의 일정이 유럽 좌파정당과 제3의 길에 대한 토론과 세미나로 진행되지 않았나.
“주최하는 측에서 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일정을 잡았던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공장견학과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목적한 바는 충분히 이뤘다고 생각한다. 양쪽이 조율해서 일정을 잡았다. 만일 공장만 견학한다면 그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혁씨는 재야운동권에서 활동해온 인물이고, 참여정부 안팎의 386들과도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프로그램이 민주당 혹은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들과 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된 것은 아닌가.
“절대 아니다. 새 정부에 라인을 구축하려면 정권이 바뀌고 3개월 내에 끝내야 한다. 그 후로는 어렵다. 특히 요즘 청와대나 민주당 안팎에서 386들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다. 그런 지금 굳이 (386들과 라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그건 결코 아니다.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순수하게 봐달라.”
-이번 연수 프로그램에 총 1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안다. 이번이 1차이고, 앞으로 2,3차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일정대로 진행할 계획인가. 그리고 앞으로 386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궁금하다.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조직이나 예산 등 모든 계획에는 가변성이 있다. 1차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 평가가 진행중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뭐라 답하기 곤란하다.”
현대차측은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에 다소 물의가 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예정돼 있던 계획을 전면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왜 조혁씨를 통해 386들의 해외연수를 지원한 것일까. 여기서 최근까지 조씨의 인생행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년 7~8월, 조혁 라인 노캠프 합류
고려대 82학번인 조씨는 1988년 3월 반미청년회 조직사건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6년6개월간의 도피생활 끝에 1994년 9월5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그는 1998년 6월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전대협 의장 출신들과 함께 ‘한국청년연맹 준비위원회’를 결성,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재야운동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씨는 이 무렵부터 심각한 내재적 이념갈등을 겪으면서 반미투쟁의 길을 접고, 북한민주화운동으로 180도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출신으로 ‘푸른사람들’ 회장을 역임한 한기홍씨와 함께 1999년 10월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네트워크(NK-network·이하 NK)’를 설립한 것. 또 김영환, 이숭규, 홍진표씨 등과 ‘시대정신’을 만들어 자신의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이는 운동권 내부에서 이른바 ‘사상전향’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조씨는 이 과정에서 전대협과 한청연 출신 동지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다.
하지만 조씨는 NK 내에서도 이념적 방황을 계속했다. NK 한 관계자는 “당시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고민을 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이어진 설명이다.
“조혁씨는 북한민주화운동에 초기부터 참여했지만 한기홍, 김영환씨와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노선의 차이라기보다는 북한민주화의 실천론적 차이였다. 그는 조직이 결성된 이후 ‘과연 이런 운동이 북한민주화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일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며 깊은 회의에 빠졌던 것 같다. 차라리 현실정치에 참여해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직접 관여,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생각된다. 그로서는 오랜 기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조씨는 2000년 9월경 NK를 떠났다. 그리고 한동안 영어공부에 전념하면서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2001년 12월을 전후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씨는 현실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하는 이들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그가 노무현 캠프와 관련 있는 일을 했다는 것.
NK측 한 관계자가 전한 조씨의 지난 대선 기간 행보다.
“2002년 초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서 조혁씨와 NK 내부의 북한민주화운동의 실천론을 둘러싼 입장차이가 표면화됐다. 한기홍씨와 김영환씨 등 NK의 핵심은 대선 관여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여론을 조성하는 데 더욱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조혁씨는 NK와 명확히 선을 긋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북한민주화에 있어 ‘이회창이 되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노무현 캠프에 직접 합류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안희정씨와 함께 활동했던 것으로 안다. NK 사무국장이었던 오모씨(대외협력 전담)도 조혁씨와 함께 합류했다. NK 회원 중 3∼4명이 민주당 경선캠프부터 함께 일했고, 본격적인 선거국면에 접어든 7∼8월에는 대선캠프에 참여한 NK 회원출신이 10여 명 정도로 늘었다. 이들 대부분이 조혁, 안희정씨와 가까운 반미청년회 인맥이다.”
여기에 등장한 오씨는 고대 총학생회장 후보출신으로 현재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NK 대표 한기홍씨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조씨가 미국 유학을 위해 공부하던 중 예전부터 친했던 안희정씨로부터 현실정치 참여를 권유받고 경선캠프에 참여했다는 정도만 안다. 조씨와 함께 대선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2000년 중반 이후 우리 조직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건 개인적 선택일 뿐 우리 조직 내부와는 전혀 무관하다. 다만 조씨와 친한 사람들인 것은 틀림없다.”
안희정측, “조혁은 노캠프에 없었다”
그러나 조씨와 함께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 오씨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그는 조씨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인했다.
오씨는 “지난 대선 직전이었던 11월경에 그(노무현 캠프)쪽에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도와주게 된 것이다. 정무팀에서 잠시 일하다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인수위에 합류했다. 조혁씨와의 관계 때문에 노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조혁씨와는 NK에서 일할 때 좀 친했지만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에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씨는 이어 “(지난 대선 때) 그는 조직을 갖고 일하지도 않았고, 노 캠프의 공식적인 조직 내에도 없었다”면서 “다만 글쓰는 것과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만큼 개인적으로 일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부소장은 조씨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안부소장의 측근은 대신 “안부소장과 조씨는 학생운동 이후에 일체의 정치적 관계를 맺은 바 없다. ‘조혁’이라는 이름은 대선 전 노무현 캠프의 명단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측근은 그러나 “그런 식의 외곽조직이라면 30여 개가 넘었다. 그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외곽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조씨가 캠프의 외곽조직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겼다.
캠프의 공식적인 라인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조씨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일정한 역할도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은 셈이다.
현대차는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호의적 관계를 위해 채널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수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현대차측은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해 “절대 아니다”라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한편 386들은 이번 연수프로그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참가자는 “현대차측의 목적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면서 “기업문화와 기업의 사회투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기업이윤은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연수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한 참가자는 “현대차에서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혁씨 개인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면서 “그러나 지명도 있는 단체와 조직을 통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의 강도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러나 연수에 참가하지 않은 한 386 재야운동권 핵심 관계자는 “모든 일이 상식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당연히 비판적으로 보지 않겠는가”라고 강하게 성토하면서 “하지만 이번 일을 386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일에 관련된 특정 행위자에 대해서만 언급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다른 평가들 속에서 386 내부에 또 다른 이념적 갈등이 싹트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사회의 주류가 된 386, 그들 중 일부에게 자본은 ‘변화와 발전의 도구’일 뿐,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것이 ‘사회 주류로의 편승’일까, ‘변질’일까, 아니면 ‘발전적 변화’일까.
기자는 조씨의 입장이 궁금했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조씨는 현재 유럽 배낭여행중이다. 기자는 조씨와의 유일한 연락수단이 이메일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에 따라 질문메일을 보냈지만 그대로 반송돼왔다. 메일박스를 이용할 수 없는 주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