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공명심 수사 지양하고 인권검찰로 거듭나라”

검사 출신 함승희 의원 직격 발언

  • 입력2003-08-22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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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대야 현상으로 밤늦게까지 후텁지근하여 깊은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에 선잠에서 깨어나 늘 하던
    • 습관대로 TV 리모콘 버튼을 눌렀다.
    • TV 화면이 뜨면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 사망’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 믿기지 않았다. 다른 채널로 돌렸다.
    • 같은 내용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공명심 수사 지양하고 인권검찰로 거듭나라”

    함승희 의원은 정몽헌 회장 변사사건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경제가 몹시 어렵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치인들은 뭐 하는 거냐.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사업 하기 너무 어렵다”고 비명에 가까운 말들을 한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늘 마음이 무거운 터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 기업인 중의 한 분이 사옥에서 추락사했다니!

    이날 하루 종일 언론은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전제하에 사인 분석에 열을 올렸다. 정치권도 애도 표시와 함께 정치적 시각에서 죽음의 원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한쪽에서는 특검을 지목해 정회장이 특검 조사에 시달리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죽음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난 정권 내내 정치권에 끌려다니며 ‘대북 퍼주기’로 자금난과 사업부진에 봉착하여 자살하게 됐다고 했다.

    언뜻 보면 양쪽의 분석이 모두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재벌 회장의 죽음이라는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국회의원 생활 3년을 했으면서도 이런 식의 정치적 해석에는 아직 뭔가 본능적인 거부감이 다가온다. 10년 넘도록 몸에 밴 검사적 감각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것일까.

    정몽헌 변사사건 졸속수사

    남북경협과 현대 살리기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헌신하던 한 기업인이 하루 건너 하루씩 연 3회 몰아치기식 조사를 받고 나온 지 만 하루 만에 모두 잠든 새벽녘에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현상을 두고 막연하게 특검 수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사업부진으로 자살을 결심했다고 단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상당 기간 자살을 생각해왔다면 최근의 행적에서, 아니면 적어도 사건 당일 그가 만났던 친구, 단골 이발소 종업원, 단골 카페 종업원은 물론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심리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아내, 아이들, 기사조차도 죽음을 결심한 사람으로서의 특이한 언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회장은 죽음을 결심하고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그토록 초연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또 근시안인 사람에게는 몸의 일부나 다름없어 세수할 때와 잠잘 때 외에는 항상 끼고 있는 안경을 굳이 벗어놓고, 그러나 구두는 신은 채 성인 하나가 빠져나가기 힘든 집무실 반개폐형 환기창을 통해 기어나가듯이 나가 추락했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자살과정인가.

    어디 그뿐인가. 자살을 추정케 하는 유일한 물증인 세 통의 유서내용이 정회장의 평소 성격과 습관을 잘 아는 가족이나 측근이 볼 때 과연 스스로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최후 목소리라고 여겨지는 것인지, 또 사체에 대해서도 애착을 떨쳐버리지 못해 화장보다 매장을 원했던 유가족이 사체를 두 번 죽인다고 생각해 보통사람들은 그토록 꺼려하는 부검을 스스로 원하면서 사인규명을 촉구했던 속마음에는 스스로 결심한 죽음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어서는 아닌지.

    몰아치기식 연 3일 조사를 받고 나온 마지막 날 밤 새벽녘까지 고인과 통음을 했고, 사건 당일에도 저녁내 함께 시간을 보낸 정회장의 아주 가까운 친구 박기수씨는 왜 천리 길 멀다 않고 장례식날 달려오는 우리 풍습을 깨고, 영결식 하루 전날 가명까지 써가며 허겁지겁 미국으로 떠나버렸나. 떠나기 직전 검찰에서 무슨 조사를 받았으며, 그 속에는 정회장이 죽음을 결심하게 된 단서 같은 것이 담겨져 있지는 않나.

    의문은 꼬리를 물고 밤낮으로 머리를 혼란케 했다. 보좌관들에게 정회장 변사사건 관련 보도내용을 빠짐없이 스크랩하도록 했다. 상식을 가진 주위 사람들과 대화도 해보았다. 모두 비슷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표출할 길이 없다고들 했다.

    요즘 국민들은 검찰 중앙수사부(중수부)나 특수부에서 벌이고 있는 정치인 비자금 수사를 개탄하면서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언론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건 중에도 비자금 사건이나 권력형비리 사건이 사건 중의 사건이고, 이런 사건을 많이 다룬 검사가 검사 중의 검사인 것으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형사 사건의 백미는 강력사건, 그 중에서도 살인사건이다. 왜냐하면 국민의 생명 보호가 국가가 존재하는 제1차적 이유이고 검찰의 기본 책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나라에 우리는 세금을 내고 애국심을 갖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살인사건 수사의 첫 단추는 변사사건의 검시에서 출발한다. 변사사건이란 사인이 명쾌하게 규명되지 아니한, 자연사 아닌 일체의 사망사건을 의미한다. 변사체의 주인공이 고 정회장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사람인 경우 그 조사과정은 어떤 비자금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사건보다 중요하다. 언론의 초점을 받든 안 받든, 국민적 관심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다. 죽은 사체는 땅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만 그를 죽게 한 사회적 모순 현상은 산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공명심 수사 지양하고 인권검찰로 거듭나라”
    엊그제 검찰총장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갑작스러운 연행과 관련, “함승희 의원이 제기한 정회장 변사사건에 대한 의혹이 크게 부각될 것을 우려한 물타기 아닌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은 의혹이 있는 곳에 수사한다. 무슨 의도가 있겠는가”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 195조에 비추어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정회장의 변사사건에서 위에서 지적한 정도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아무도 이런 의혹에 대한 수사검사의 명쾌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검찰의 눈에 비자금 의혹은 유독 크게 보이고, 정회장 변사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그토록 작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경험칙상 수사를 받은 대부분의 피의자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장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종업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청탁이나 도망을 생각한다. 그러나 일단 버티기가 무너져 중요한 범죄사실을 자백한 직후에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과거 검찰청사에서 수사받던 중 목을 매거나 투신자살한 피의자들의 대다수가 그러했고, 실제 수사를 받고 나온 대부분의 기업인이나 공직자들의 솔직한 심경이 그러했다고 들었다.

    자백 직후에는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번민, 주위 사람들을 배신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수사과정에서 받은 인간적 모멸감 등이 혼재된 상태에서 가족이나 종업원들의 얼굴이 머리에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아, 나는 이제 끝장이 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유능한 검사라면, 경험이 많은 노련한 검사라면, 그리고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검사라면, 검찰에서 조사받고 나온 지 만 하루 만에 죽음에 이른 피의자 정몽헌의 변사사건에 대해 마땅히 이런 정도의 의구심은 가져야 하리라.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정회장은 7월26일과 31일, 그리고 8월2일 세 차례에 걸쳐 몰아치기식 조사를 받았다. 마지막 날 검찰청에서 나온 지 만 하루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 이상 검찰 수사와 그의 죽음에 인과 관계는 없는가, 더 나아가 자백한 범죄 사실의 상대방 또는 그 세력으로부터 어떤 강요나 음모는 없었는가,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나 인간적 모독행위는 없었는가 따위의 의심을 갖고 우선 정회장을 조사했던 대검 중수부 검사와 수사관들을 상대로 감찰조사를 벌여야 한다.

    아울러 그의 가족, 측근 등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최근 그의 행적과 언행을 조사하고, 접촉한 인물들을 탐문하고, 필적을 감정해야 한다. 또 어느 야당 의원이 제기한 것처럼 그 유서에 쓰인 종이가 평소 회장 집무실에서 쓰던 종이였는지, 펴 있지 않고 왜 접혀 있는지, 타살됐는데 자살로 위장된 것은 아닌지, 강요된 자살은 아닌지, 자살이라면 죽음을 결심하게 된 구체적 동기는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내사해야 하는 것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돼서야…

    그런데 정회장 변사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모든 의혹과 진실규명을 외면한 채 그저 ‘사업부진과 특검수사의 스트레스로 인한 추락에 의한 장기파열 사망’이라며 전형적인 자살사건으로 단정해 정회장의 시신과 더불어 그 모든 의혹을 무덤에 파묻어 버리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우선 이 사건을 서울지검에 근무하는 경력 3년차의 소년 담당 검사에 맡긴 것부터가 (나중에 경력이 조금 더 많은 검사로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의도적이다. 온 세계의 언론이 관심을 갖는 사건이면 외국에서는 검사장이 직접 현장지휘를 한다.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서울지검 강력부장쯤 되는 베테랑 검사가 최초 현장지휘를 해 단순자살로 보이지 않고 뭔가 석연치 않은 의혹이 느껴지면 바로 대검 강력부장이 총괄 지휘했어야 한다.

    게다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수사과정의 인격모독 행위 등 가혹행위 의혹이 제기되면 국회에서 문제삼기 전이라도 검찰 스스로 대검 감찰부장에게 진상을 알아보게 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검찰의 태도는 어떤가. 국회법제사법위원인 본 의원이 피감독기관인 법무장관을 통해 이러한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사의 주체를 격상해 심도 있는 수사를 할 것을 촉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검찰은 가혹행위 문제 하나에만 매달려 “그런 일 없다”는 변명에만 급급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고소하느니 마느니 하는 행태를 보였다. 분노를 넘어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 때도 처음에 경험 없는 검사로 하여금 현장지휘를 하게 했다가 현장보존에 실패해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분노한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검찰청, 경찰서로 몰려가 연일 항의농성을 할 때, 본 의원이 대구에 내려가 현지 검사장과 경찰청장을 상대로 초동수사와 현장보존의 실패 책임을 엄하게 추궁한 후, 뒤늦게 검찰총장이 현장에 다녀가고 수사지휘 책임자를 격상해 대검 강력부장에게 맡기는 등 법석을 떨고, 당시 그 지역 검사장은 좌천됐다가 끝내 검찰을 떠났던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수사검사의 명예와 소신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마음대로 날뛰게 해서도 안 된다. 정회장은 수십만 식구가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일 뿐만 아니라 국가 신인도와도 직결되는 현대그룹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책임지고 남북경협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의 변사사건처럼 예사롭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권노갑 전 고문을 서둘러 연행하면서 “의혹이 있는 곳에 수사 있다”고 강변하려면 그 의혹이 ‘자의적·선택적 의혹’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 건 하겠다’는 공명심 버려야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검찰을 군 지휘관의 법무참모쯤으로 여기고 통치권 행사의 보조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그 시절 검찰 독립은 주로 외부세력에 의해 침해당했다. 따라서 검사들은 그야말로 투사나 우국지사와 같이 사표를 써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녀야만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문민화, 민주화된 지도 어언 10년이 더 지났다. 그럼에도 검찰권의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수십 년에 걸쳐 통치권의 보조수단으로 길들여짐으로써 자생능력이 없어진 점을 들 수 있다.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파로부터의 확고한 지지가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또 다수당으로부터의 해임결의나 탄핵소추를 겁낸다. 특검법안이나 진상조사특위도 두려워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권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검사 시절 가장 강한 권력에 맞서는 것이 검사의 멋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강한 권력은 때로는 대통령으로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다수당으로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시민단체나 언론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장 무섭고 강한 권력은 바로 국민이다.

    정치권의 풍향을 살피고 여론의 향방을 의식하는 수사는 결코 공정한,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검찰권의 행사로 보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법무부와 대검이 한총련 수배학생들의 수배해제 방침을 밝힌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스스로 포기한 조치로 보인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나? 아니다. 검찰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다. 미국과 같은 동맹국들은 반미를 외치는 젊은이들보다 이를 방치하고 때로는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그런 정권, 그런 위정자들을 더 위험하게 보고 있다.

    검찰은 국가 안보와 국가 기강확립의 최후의 보루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강조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정권이 출범한 후 검찰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검사들이 과거에는 상사들의 눈치를 봤는데 요즈음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의감과 의협심이 충만해 법이 규정한 절차와 형식을 지키면서 열심히 수사하는 검사의 모습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젊은이들의 우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건 하겠다’는 공명심에서 ‘네가 뭔데’ 하는 오기에 사로잡혀 막무가내로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피의자를 몰아붙이는 것은 민주국가의 검찰상이 아니다.

    여론에 민감한 위험한 검사들

    지난번에 대통령과 검사들의 TV토론을 지켜보면서 대화를 통해 검사들을 설복하겠다는 대통령의 나이브한 발상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대통령을 면전에서 공박하는 검사들의 모습에서 섬뜩함마저 느끼며 이 나라 검찰의 앞날이 걱정됐다. 소신과 정의감 넘치는 검사가 아니라 오기와 공명심으로 똘똘 뭉친 검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50년 검찰사를 되돌아보면 양식 있고 정의감 넘치던 많은 검찰 선배들이 검찰을 지키려고 애써왔고,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며 헌신해 온 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검사 관련 독직사건이나 축소·은폐수사, 혹은 위법·부당한 수사가 문제돼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경우 과거에는 그래도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홀연히 검찰을 떠나는 분도 있었고 후배들의 올바른 처신을 당부하는 선배도 있었다.

    그런데 근래 무슨 게이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심지어는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로부터 법 집행과 관련해 잘못을 지적받고서도 구차스러운 말로 강변하거나 피의자들마냥 잡아떼기 일쑤인 검사들을 종종 목도한다.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진실이 드러나 쓸쓸히 검찰청사를 떠나는 검사들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으면서도 말이다.

    과거 내가 특수부 또는 중수부에서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을 수사할 때 검찰 간부들이 늘 하던 말은 “이 사건 수사 과정과 결과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가, 그리고 국회 국정감사나 현안 질의에서 어떤 질책이 나올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수사는 소신껏 하되 절차나 과정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떤가. 수사 담당검사, 부장은 물론이고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간부, 때로는 장관조차도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치 검찰이 그 자체로서 절대선이고 잘못된 일은 하지도 않고 할 이유도 없는 기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것은 검찰의 중립이나 독립과는 관계없다. 대단히 위험한 검찰의 독선이요 오만일 뿐이다.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정부 통제기관인 국회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검찰의 중립이나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 배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검사들의 언행이 좀더 신중하고 겸허할 때 진정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의 생리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검찰 통제’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여권 주변에서는 “검찰이 잘 통제되지 않아 걱정이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심지어 어느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요즘 검사들의 간이 부었다”고도 말했다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비록 권력 실세들이 검찰 고위층을 통제하긴 했지만, 수사검사를 직접 통제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개인적 청탁이나 민원은 별개로 하고). 오히려 검사 스스로 그 수사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먼저 읽고 수사를 자제하는 경향이 많았고(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거나 부실수사의 주원인이 돼왔다.

    요즘엔 이런 현상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일견 진일보한 것 같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험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론의 향방이나 정치적 풍향을 먼저 읽고, 그것에 맞추어가는 수법이 나 같은 초짜 정치인을 뺨칠 지경이다. 변호인이나 정치권의 정당한 지적이나 변론행위까지도 ‘수사방해를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가 무엇에 부딪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공명심과 오기는 씻어내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검사의 소신은 스스로 법과 절차를 준수하면서 누가 보아도 대체로 공정하다는 느낌이 들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공명심이 앞서거나 편파적이거나 특정 정파에 불리 또는 유리하게 수사하거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피의사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여론몰이 수사를 하는 등 정도에서 벗어나는 수사를 반복하면 정권이 바뀐 뒤 또 한번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다. 과거 역사가 그것을 실증하지 않는가.

    최근 법무부가 상명하복을 골자로 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참 잘한 조치다. 수사검사에 대한 불법·부당한 통제와 간섭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독립기관인 검사가 편파적이거나 위법·부당한 법집행 행위를 할 경우 이를 곧바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불법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즉시 바로잡지 못하고 수사가 다 끝난 후 사후약방문 격으로 뒤늦게 수습하는 기능만 있다면 그야말로 검찰 파쇼의 원성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검의 감찰부를 법무부로 옮겨 필요에 따라 즉시 감찰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때로는 수사검사의 해임이나 교체 요구를 장관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사는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이 전담하고 이에 대한 견제·감독은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권과 검찰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정부조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지금도 일생을 두고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말하라고 하면, 특수부 검사 시절 거악(巨惡)을 상대로 철야수사해 통쾌하게 무너뜨리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피의자들은 그 누구라도 이 나라 백성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다. 내 이웃이고 형제자매인 것이다. 무슨 적을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검사 시절 검찰이 내 것인 줄 착각했다.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검찰은 내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임을 알았다.



    검사들은 검사 그만두고도 “나는 검사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는 정의감과 의협심이 충만해야 한다. 그러나 공명심과 오기는 머리 속에서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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