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음란채팅·성폭력·원조교제… 위태위태 초등학생의 性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08-22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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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음란물이 초등학생들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 초등학교 4학년만 되도 인터넷 음란물을 즐겨 보고 음란채팅을 주도하며 자위행위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생의 5%가 성경험을 했다는 설문조사까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위험수위를 넘어선 초등학생 성문화의 실태와 해결책을 알아본다.
    음란채팅·성폭력·원조교제… 위태위태 초등학생의  性
    “벗어, 벗어.”“맞아, 그렇게 하는 거야. 더 가까이 붙어봐. 하하하.”

    지난 6월 중순, 충북의 한 초등학교 으슥한 창고 뒤편. 6학년 남녀 아이들 10여 명이 둥그렇게 원을 그린 채 서 있었다. 아이들 가운데에는 이민규(12·가명)군과 강지민(12·가명)양이 홀딱 벗은 채 엉겨붙어 있었다.

    강양과 강양의 친구 김모양은 그 날 교실 컴퓨터로 성인 사이트에 들어가 음란물을 감상했다. 강양은 몇 달 전 학교 야영시간에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김양이 알려준 성인 사이트를 처음 보게 됐다. 그 후로 두 아이는 종종 음란물을 보곤 했다.

    이군은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진실게임’을 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내용을 자신이 유출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다. 친구들은 이군에게 10만원이 넘는 거액의 벌금을 요구했고, 이군은 집에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강양과 이군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창고 뒤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4학년 때부터 성인 사이트 등에 들어가 음란물을 자주 접했던 이군의 친구들은 ‘벌금’을 빌미로 이군에게 음란물에서 본 대로 성행위 모습을 흉내내보라고 시켰다. 김양 역시 강양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이군과 함께 흉내내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두 아이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고 성행위 흉내를 낸 것. 두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던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이들의 ‘실연’ 장면을 충분히 즐겼다.



    그후 두 아이와 친구들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를 다녔다. 사건 직후 강양의 부모가 강양이 아이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은 학교에 알려졌지만, 일방적 성추행이 아니었음이 밝혀진 데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유야무야돼버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이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음란물을 봤을 정도로 인터넷 음란물이 무분별하게 유포됐다는 점, 그 영향을 받은 초등학생들이 별다른 수치심이나 죄의식 없이 학교 내에서 성행위를 흉내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보통 초등학생 하면 어린이를 생각한다. 하지만 신체 성장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사춘기가 일찍 오는 데다가 영화, 인터넷, 방송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요즘 초등학생들의 생각과 감성은 어린이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이는 초등학생들의 성(性)이 성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발달했음을 의미한다.

    인터넷에 알몸사진 올라도 태연

    지난 7월7일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는 ‘청소년 성문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초등학생의 4.24%가 이미 성관계를 경험했고, 성관계 경험이 있는 17.3%의 청소년 중 10.3%가 초등학교 때 첫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조사는 전국 초·중·고등학생 2370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서울가정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의 신규태 상임이사는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 S초등학교의 김미선(26)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이성친구를 사귈 정도로 조숙하다. 아직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성관계를 맺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으나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 속도로 보면 (성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우성센터의 구성애 소장은 “자위행위를 상담해오는 초등학생들이 무척 늘었고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후 임신을 걱정하는 여학생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음란채팅, 과도한 자위행위, 무분별한 성관계, 원조교제 및 성폭행. 이는 만13세 미만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도대체 초등학생들의 성경험 실태는 어느 정도 수위에 까지 이른 것일까.

    올해 초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씨는 자신에게 온 음란성 스팸메일을 열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메일에 실린 ‘초딩 컴섹’이라는 사진에 딸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 부랴부랴 딸 임모(11)양을 부른 김씨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임양은 처음에는 놀라는 듯싶더니 “나와 채팅하던 오빠가 찍어서 올렸나보다”고 태연히 말했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화상 채팅을 했는데, 상대방이 끈질기게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해 가슴을 보여줬다는 것. 김씨는 “단순히 인터넷상에서 몸을 보여준 것뿐인데 무엇이 나쁘냐”고 말하는 딸의 태도에 더욱 기가 막혔다고 한다.

    인터넷상에는 초등학교 여학생의 성기 부위를 찍은 사진과 또 다른 여학생이 알몸으로 의자에 앉아 자위를 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 사진과 동영상은 얼굴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성기를 드러낸 사진에서는 아이가 마치 포르노 배우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자위하는 동영상도 스스로의 만족보다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 음란물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www.computerlife.org)의 어기준 소장의 이야기다.

    음란성 스팸메일이나 게시물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기 때문에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한 원하지 않더라도 음란물을 접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이군과 강양의 성관계 흉내 사건은 아이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음란물을 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이나 방화벽을 설치했다고 하지만, 갈수록 지능화되는 음란 메일과 게시물들이 이런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런 음란물들은 성기 중심의 성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성의식을 왜곡시킨다. 또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자신의 몸이나 성행위 장면 등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돈받고 옷 벗는 아이들

    인터넷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여자들은 일명 ‘쇼걸’이라고 불린다. 어소장은 “음란물의 영향으로 최근 들어 쇼걸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이번 ‘초딩 캠사(PC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초등학교 여학생까지 쇼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인터넷 화상 채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심야에는 주로 채팅방에서 음란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채팅 상대가 ‘옷을 벗어라’ ‘자위행위를 해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면 여자들은 처음에 거부하다가 어느 순간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나이가 어리면 더욱 쉽게 넘어가죠. 이렇게 여러 번 옷을 벗다 보면 아이들이 돈을 요구하기도 해요. 인터넷 뱅킹으로 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후 옷을 벗는 거죠.”

    처음에는 성인이나 중고등학생들과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컴섹(컴퓨터 섹스)을 하지만 나중엔 초등학생들끼리 방을 만들어 컴섹을 하곤 한다. 어소장은 인터넷 채팅에서 음란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초등학교 4∼6학년생들이라고 주장했다. 중학생만 되면 수치심을 알기 때문에 대놓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초등학생들은 성에 대한 직접적인 단어를 써가며 음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요즘 10대들에게 최고 인기인 버디버디 메신저(www.buddybuddy.co.kr, 이하 버디). 버디는 다른 메신저와는 달리 접속을 하고 있으면 자신의 메신저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채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2년 4월 여성을 위한 공익 사이트 위민넷(www. women-net.net)의 ‘사이버지킴이’가 서울의 M초등학교 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 채팅보다 메신저 채팅을 하는 아이들이 4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초등학생들의 채팅 문화가 채팅 전문 사이트에서 메신저 채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버디에서 초등학생들이 중심이 된 초보자 채널에 들어가면 ‘다 보여줄 분’ ‘변태방’ ‘00 보고 싶어’ ‘딸딸이하실 분’ ‘성폭행 놀이 하실 분’ 등 채팅방 이름의 적나라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지킴이’가 지난 2월1일 밤 10시30분부터 버디의 초등학생 채널을 중심으로 모니터링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개설된 총 129개 채팅방 중 23.3%(30개)에서 음란채팅이 이뤄졌다. 음란채팅방 중 53.3%(16개)는 PC카메라를 이용해 서로의 알몸이나 성기, 자위행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음란화상채팅이었다. 2월25일 낮 3시에도 모니터링을 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더 심각하게 나왔다. 총 191개 채팅방 가운데 41.9%(80개)에서 음란채팅이 이뤄졌고, 이 중 38.8%(31개)가 음란화상채팅이었다.

    이런 음란화상채팅은 상대방에 의해 정지화면과 동영상으로 캡처돼 웹상에 유포될 수도 있다. 앞에 언급한 초등학생들의 사진과 동영상도 이렇게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버디에서는 사이버지킴이의 모니터링 이후 지난 3월 자체적으로 초등학생 채널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대다수 초등학생들은 버디의 초보자 채널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채널 이름만 바뀌었을 뿐 초등학생들의 음란 채팅을 막지는 못하고 있는 것.

    기자는 지난 7월초 밤 10시경 초보자 채널 중 한 화상채팅방에 들어가 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상대방 남학생은 바로 ‘옷 벗기 놀이’를 하자고 재촉했다. “PC카메라가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 학생은 “방을 나가라”고 요구했다. 기자의 신분을 밝히며 취재를 시도하자 “아유, 재수 없어” 하더니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또 채팅방에 접속해 있는 동안 남자들로부터 수많은 쪽지가 도착했다. 대다수가 ‘번섹 하실래요?’ ‘몸을 보고 싶네요’ ‘조건15(또는 알바15, 한번 성관계를 가지는 데 15만원을 주겠다는 뜻) OK?’라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초등학교 6학년이다”고 하자 반수 이상이 “상관없다” “나도 미성년자”라고 대답했다.

    음란채팅·성폭력·원조교제… 위태위태 초등학생의  性

    초등학생 성문화 왜곡의 ‘일등공신’은 인터넷이다. 적나라하게 성을 묘사하고 있는 버디의 초등학생 채널 채팅방 제목들

    이런 인터넷 음란물과 음란채팅의 영향은 온라인 세계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아우성 홈페이지(www.9sungae.com)의 ‘초딩 게시판’에는 음란물을 본 후 과도하게 자위행위를 하게 됐다는 내용의 글이 봇물을 이룬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입니다. 올해 1월부터 자위를 했죠. 지금은 매일 3번 정도 해여. 그리고 맨날 성인 사이트 같은 음란사이트에 접속해서 야한 걸 보게 되여. 참을 수가 없어서 자위를 해여. 자위를 하면 찐득찐득하고 하얀 물이 나와여. 여자들을 보면 계속 고추가 커져여. 또 성관계도 하고 싶어지고여. 왜 이러는 거져? 정상인가요?”

    아우성센터의 구성애 소장은 “인터넷 음란물이 범람하면서 초등학생들의 성 상담 수위가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보통 초등학교 때에는 주로 자신의 몸에 대한 상담을 해요. 음모가 났다거나 가슴이 커졌다거나 생리를 시작했다거나 몽정을 한 것에 대해 상담하죠. 하지만 최근에는 음란물을 보고 자위행위를 한 후 이를 걱정하는 초등학생들의 상담이 무척 늘었어요.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들도 꽤 많이 자위를 하는 것 같아요. 자위를 시작하는 연령이 점차낮아지고 있고, 하루에도 3번 이상 자위행위를 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만 되면 이성친구를 사귀는데, 분위기에 따라 키스나 진한 애무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가슴과 성기를 만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남자친구가 성기를 만져주니 기분이 좋았는데, 이상한 것이냐’ ‘남자친구가 성기를 나한테 집어넣었는데 임신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상담도 급증했다고.

    또 구소장은 “인터넷 음란물을 접한 후 초등학교 고학년인 오빠와 나이 어린 여동생이 함께 성(性) 놀이를 한 뒤 여아가 성기가 아프다며 상담해오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즉 집에서 음란물을 접한 후 가장 가까이 있는 이성(異性)인 남매끼리 성행위를 흉내낸다는 것. 특히 부모가 맞벌이여서 집에 남매만 있을 때가 많을 경우,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아우성 홈페이지 ‘초딩 게시판’에 올려진 글.

    “우연히 오빠 방을 들여다봤는데 오빠가 다 벗고 고추를 만졌어요. 컴퓨터엔 포르노가 켜져 있더라고요. ‘오빠!’ 했더니 ‘일루 와’ 하더니 ‘너 자위 안 해?’ 하드라고요. 아∼ 놀라 뒤질 뻔했어요. ‘안 해’ 했더니 ‘너 커서 창녀 해라’ 해서 ‘엄마한테 이를 거야’ 했더니 ‘말하면 죽인다’면서 협박을 했어요. 우리 친오빤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리고 그 말을 할 때 오빠 손은 제 가슴과 거기를 만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의 성적 호기심에서 끝난다면 다행일 수 있다. 몇몇 초등학생들은 또래나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강제로 성추행하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한다. 또 원조교제에 나서는 초등학교 여학생들도 있다.

    단순 성추행부터 처녀막 파열까지

    지난 6월13일 경기도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초등학교 4학년인 유정이(10·가명)는 옷을 모두 벗고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쓴 채 울고 있었다. 1년 전부터 유정이를 괴롭혀오던 형민이(10·가명)와 주한이(10·가명)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유정이를 다짜고짜 지하주차장으로 끌고 왔다. 두 아이는 유정이에게 금품을 요구했고 유정이가 “없다”고 하자 “옷을 벗으라”고 소리쳤다. 유정이가 울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했으나 두 아이는 강제로 옷을 벗게 한 후 머리에 신발주머니를 씌웠다.

    “그리고는 주차돼 있는 차 위에 아이를 눕힌 후 번갈아 가면서 아이의 몸을 만졌다고 해요. 생식기 부분을 벽에 대고 비비라고도 했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었다고 합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닦으라고 했으며 ‘똥개 훈련을 시킨다’며 발가벗은 아이를 엎드리게 한 후 기어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다더군요. 아이의 무릎과 팔목은 모두 까졌고 얼굴도 벽에 할퀴어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유정이의 아버지 노모(39)씨가 울분을 삼키며 한 말이다.

    유정이는 “내일 돈을 가지고 오겠다”며 “보내달라”고 애원했지만 두 아이는 오히려 “5학년이 될 때까지 너를 가지고 놀 것”이라며 가혹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차장으로 아파트 주민 최모씨의 차가 들어오자 두 가해 아이는 도망쳤고 유정이는 머리에 신발주머니가 씌워져 있는 채로 울먹이고 있었다. 최씨는 유정이의 옷을 추슬러 입힌 후 아이를 아파트 경비실에 맡겼고 이렇게 해서 유정이의 부모는 그동안 아이가 성추행을 비롯한 온갖 가혹행위를 당해왔음을 알게 됐다.

    “현재 아이는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두 달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지하주차장에 들어가지를 못해요. 1년 넘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성추행을 당한 것이 이번 한번뿐이겠어요.”

    그 일이 있은 후 노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가해아동이 있는 학교에 어떻게 아이를 보낼 수 있겠냐는 것. 가해아동은 ‘떳떳이’ 수업을 박고 있는데 피해를 입은 아이가 가해아동이 무서워 학교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노씨는 학교와 해당 교육청에 가해아동의 전학을 요구했다. 하지만 ‘(가해아동의) 부모가 원치 않으면 아이를 전학시킬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유정이는 방학 때까지 두 달여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고 노씨는 유정이를 전학시킬 계획이다.

    “가해아동 부모들의 태도를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학교에서 사건을 안 후 가해아동들을 불러서 조사했는데 자신이 한 일을 다 인정했어요. 그런데 그 진술내용을 보고는 한 가해아동의 아버지가 ‘어릴 때 그 정도 장난을 칠 수 있지’라고 말하더군요.”

    유정이는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 중 피해정도가 약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처녀막이나 질 파열까지 일으킨 심각한 성폭행 사례도 있다.

    원조교제에 대한 죄책감 없어

    박미진(9·가명)양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같은 특별활동을 하는 5학년 남학생 3명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왔다. 당시 미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특별활동 수업이 끝날 때마다 남학생들에게 학교 뒤뜰, 화장실 등으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했다.

    “오빠들은 옷을 벗으라고 했는데 ‘싫다’고 하자 막 때렸어요. 나는 무서워서 옷을 벗었어요. 그랬더니 내 잠지에다 손을 넣었고 오빠들 고추를 넣고 비비기도 했어요. 오빠들은 ‘엄마한테 이르면 너 죽이고 아이들에게 소문낸다’고 했어요. 너무 무섭고 많이 때려서 엄마나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미진이가 쓴 자술서의 내용이다.

    미진이는 사건 이후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갈비 8인분과 냉면 두 그릇을 혼자서 먹어치우는 등 폭식을 하며 심하게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의 송영옥 대표는 “하루 평균 걸려오는 20여 통의 상담전화 중 7∼8통 정도는 초등학생, 중학생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이미경) 통계에서도 12세 미만 어린이에 의한 성폭력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어린이 가해자에 의한 성폭력은 2001년 상담의 경우 84건(전체 성폭력 상담의 3%)이었으나 2002년에는 상반기에만 68건(전체의 5.1%)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25건의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작성한 12세 미만 가해자들에 의한 성폭력 실태 및 문제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2세 미만) 가해자의 평균 연령이 10.1세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아가 95.5%로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아가 가해자인 사례도 10건(4.5%)이나 나타났다. 그중 9개는 같은 여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피해유형은 비접촉성과 접촉성으로 나뉜다. 비접촉성 성폭력에는 성적놀이, 가해자의 성기 노출, 피해자의 성기 보기 등이 있다. 접촉성 성폭력에는 키스, 성기접촉, 성기삽입, 구강성교, 항문성교, 질내 이물질 삽입, 손가락의 항문 또는 질 삽입, 드라이 성교 등이 포함된다. 그 중 가해자가 초등학생인 경우 성폭력 유형으로는 피해자의 성기접촉(32.4%)이 가장 많았고 성기삽입(15.5%), 구강성교(11.3%) 순이었다.

    다수의 가해자가 1명의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사례도 24건이나 나타났다. 이러한 집단 성폭력은 지능이 다소 떨어지거나 동급생이라 해도 나이가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언급한 유정이도 7살에 입학해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어린 편이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김창기씨는 “아동 성폭력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이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아동을 데리고 성적 만족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12세 미만 초등학생 가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또 단순한 성추행이 아닌 성폭행의 경우는 호기심이나 모방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자신감의 결여, 우울, 분노 등 병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

    “성폭행을 당한 아동의 63.5%가 정신과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보통 적대적 반항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이 나타나죠. 아동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성적 관심의 지나친 증가로 성적 행동을 많이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반복해 행동으로 옮기려 하며 성적인 쾌감을 얻기 위해 어른처럼 성행위를 하거나 자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받았던 아동이 성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죠. 초등학생 가해자 중 여자아이들도 있었는데, 대다수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는 요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원조교제 사례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올해 초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서 조사한 ‘10대 원조교제 통계’에 따르면 만 14세 이하의 원조교제가 2001년 151명에서 지난해 207명으로 37%나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생 원조교제도 2001년 3명에서 지난해 11명으로 4배 정도 늘어, 숫자는 적지만 유의미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초등학생 원조교제 사건을 여러 번 맡았다는 경찰청 여성계의 정찬호 경위는 “어린 나이에 원조교제에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 상당수가 어릴 적에 아버지나 삼촌 등 친족, 동네 성인이나 청소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성에 대한 개념 없이 성관계를 맺는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해서 자신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수사에도 협조를 잘한다.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원조교제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편”이라고 밝혔다.

    14세 미만은 죄 지어도 처벌 안돼

    이렇듯 이그러지고 망가져버린 초등학생의 성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우성센터의 구성애 소장은 ‘정공법’을 쓰라고 조언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만 11세만 넘으면 피임교육을 시켜요. 그 나이가 되면 성욕을 가지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딸이 남자친구가 생기면 ‘피임 잘해라’라고 말할 정도예요. 사실 초등학생의 4.24%가 성경험을 가졌다는 우리나라의 통계는 일본에 비하면 전혀 충격적이지 않아요. 3년 전 일본 고베 아시아 성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초등학교 5, 6학년의 15%가 성경험자였어요. 이젠 초등학생의 성문제에 접근할 때 아이들도 충분히 성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의학적으로 보면 10대 때 섹스나 자위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위를 심하게 하면 키가 크지 않아요. 그런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아이들이 과도한 자위행위를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초등학생 자녀가 일방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난해 8월 정순미(가명)씨는 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의 지원을 받아 ‘14세가 되지 않은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제9조가 헌법에서 보장한 평등권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을 냈다. 정씨의 딸 미나(9)는 2001년 여름부터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남학생 8명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 미나는 ‘처녀막이 비정상적으로 약 0.8∼1cm 가량 확장돼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형법 9조에 따라 당시 만 14세가 되지 않았던 가해아동들은 처벌은커녕 경찰조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형법 제9조는 14세 미만의 경우 의사결정능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우는 것이 부당하다는 논리에서 규정됐다.

    “형법 9조가 규정됐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생활이 풍족해짐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무척 빨라졌고, 문화적 발달과 교육여건의 호전,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정신적으로도 무척 성숙했습니다. 실제로 만 12, 13세 아이들이 폭력서클을 조직해 폭력행위를 일삼는 경우도 많고요.

    저희에게 접수되는 성폭력 피해 사례중 14세 미만의 아이가 가해자인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14세 미만의 가해자라 해서 처벌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에게 불공평한 일입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해 가해자의 처벌 가능 연령이 만 14세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바꿔달라는 헌법소원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만 12∼13세는 ‘촉법소년’이라 불리며 형법상 저촉행위를 할 경우 6개월부터 2년까지 보호관찰처분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소년법에 의거해 사건을 처리하기보다는 형법 조항만 들어 사건을 유야무야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앞서 미나 사건의 경우도 검찰에서 형법 조항을 들어 불기소처분 해버렸다.

    하지만 보호관찰처분을 받는다 하더라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교화 효과는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법무부 소속 5급 이상 보호관찰관은 120명, 6급 이하 법무부 관찰과 소속직원을 통틀어도 460명밖에 안 된다. 그러나 보호관찰처분을 받는 사람은 1년 평균 15만명이나 되니 꼼꼼한 보호관찰이 이뤄지기 힘들다.

    “보호관찰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보장하게 돼 있습니다. 또 보호관찰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당사자와 면담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법무부 관찰과 관계자의 이야기다.

    미국의 경우 미성년자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보통 보호시설에 2년간 수용되어 치료 및 재활교육을 받는다. 미국의 몇몇 주에는 성범죄 가해자들만 따로 수용하는 시설이 있을 정도. 여성의 가슴이나 성기를 옷 위로 접촉한 ‘단순한’ 성추행의 경우에도 이곳에 수용돼 성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이나 보호시설은 전혀 없는 상태다. 아이가 아무리 심각한 성범죄를 저질러도 부모들은 사건을 묻어두려고만 하고 이러는 동안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이 성인 가해자로 커가는 것.

    초등학생의 성 문제를 대할 때는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이가 성과 관련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조그만 게 벌써’라며 윽박지르고, 성폭력 어린이 가해자를 마치 혐오범 보듯 한다면 이들의 성은 음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들 역시 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욕을 느낄 수 있으며 본능에 이끌려 ‘아차’ 하는 사이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애정을 가지고 아이의 잘못을 고쳐주려 한다면 이들의 성은 원래의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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