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적 이해가 부족한 때에 성은 신비롭고 경외로운 대상이었다. 성을 섬기고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이러한 태도 때문이다. 이는 무지몽매하게 보이는 성 숭배문화를 낳았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사고를 존속시킨 결과로 성을 해석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을 보편적으로 누리게 되면서 신성성이 거세되고 성의 세속화가 가속되면서 인류는 성 숭배는 미신이며 특정한 이념의 봉사적 도구였음을 깨닫게 됐다. 신성한 성 숭배가 사라지고, 쾌락적 성 향유로 대치되면서 이제는 누구나 즉시 임의적으로 선택하는 성 문화가 양산되고 있다.
‘섬기는 성’과 ‘누리는 성’의 접합점 모색
누리는 성이 본격화되면서 우리가 성에 관해 진실로 행복하고 즐거웠던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모르고 섬기던 성의 외경감과 신성함이, 알고 즐기는 성의 비속함과 천박함으로 변화한 데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숨가쁘고 부끄러운 성적 탐닉을 여기저기 도배하기 시작했다. 성의 과시와 육욕적 실현이 눈 뜨고 눈 감는 우리의 하루 일상을 장식하게 됐으며, 싫다거나 아니라고 해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당장 벌이가 되는 성에 관련된 일을 서슴없이 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눈요깃감이 되는 일을 가치 있다고 여겨서 예쁘고 아름답고 성적 매력이 있고 섹시하다는 말에 스스로 득의양양하는 세상이다. 성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본디의 생산적 능력에 불임성이 배태돼도 여전히 성의 복제된 단순 재생산에만 골몰하는 이 시대는 성의 저주와 죄악만이 길이 남으리라 필자는 판단한다.
신성한 성의 자취와 성의 순정한 면모를 알고 싶거든 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의 근저 ‘한국의 성 숭배문화’(민속원)를 읽어보라. 성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간 본연의 깊은 면모를 이 책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성에 관한 읽을 거리, 볼 거리, 귀기울일 거리 등이 실려 있다. 친절히 안내하는 글감이 있고, 현장에서 얻은 사진이나 그림 등이 있다. 번뜩이는 재치와 통찰은 이 책을 빛나게 한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문헌의 섭렵과 전국을 샅샅이 누빈 밀착적 현지조사의 결과는 이 책을 더욱 값지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의 오랜 천착이 이 책으로 귀결됐으며, 그만큼 끈질기고 건강한 성 문화에의 강렬한 탐구가 돋보인다.
이 책의 골자는 섬기는 성기와 성기의 교접 자체를 섬기는 요소를 한 축으로 하고 굿과 놀이로 표현된 요소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해서 이들의 결합 양상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성기의 개별 숭배와 성기의 조합 숭배를 가르고, 다시금 성교의 양상에서 모형 성기 봉납과 기우제를 가르고, 놀이에서 여성들만의 놀이와 줄다리기나 탈춤을 갈라서 기본적인 성 숭배 양상 자체를 조감하도록 했다. 섬기는 성의 문화적 분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분류는 연구사의 이정표를 수립한 결과임이 확실하며 아마도 이 책의 요긴한 성과일 것이다.
이 책은 성 숭배의 문화를 통시적으로 조망한다. 성에 관한 시대적 조감을 통해 성의 유산 차원에서 발생한 관념의 지속과 변화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원시시대와 고대에 존재한 성 숭배 유물을 흔하게 활용하면서 성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성 문화가 여전히 존속되면서 한편으로 달라졌음이 확인된다. 성은 역사적으로 달라졌는데, 그것은 성을 숭배하는 생각의 차원에서부터 달라졌으며 생각의 변화에서 유물이나 관련유적이 구현되었음이 규명된다. 또한 신성하게 숭배하던 성의 문화로부터 유쾌하게 향유하는 성의 문화로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진전되고 변형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성 숭배의 역사적 조망을 이토록 간추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룩한 셈이다.
더욱이 이 책의 학문적 기여는 현지조사에 의한 성 숭배문화의 공시적 존재 양상을 규명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성 숭배의 현지조사 보고서가 나온 바 있으나, 이처럼 본격적이고 전국적인 차원에서 핍진하고도 세밀한 현지조사로 민속학적 성과를 거둔 유례는 없다. 전혀 모르던 사실이 재발견되고 투시돼 있는 점이 새삼스럽게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에 의해서 성 숭배에 대한 일정한 조감과 전국적 전승 양상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 숭배 활동이 풍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성 숭배의 참다운 면모가 잊혀졌음을 절감하게 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성 숭배 문화유산을 우리의 문화적 망각과 일탈 속에서 일깨워준다.
한국의 ‘섬기는 성’ 양상과 표현방식 탐구
성 숭배라는 특정 분야를 집중탐구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바로 의례인 굿과 연희인 놀이에서 성의 형상화가 어떻게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다. 주술의 직접적 대상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다룬 데 이어 굿과 놀이에서는 어떻게 확대되고 재생산됐는가 하는 점을 분석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이 책은 성 숭배의 주술과 예술의 상관성을 다루면서 무엇을 이루자는 성에서 즐기자는 성으로 이동하는 전환을 밝혀주고,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성을 예사로운 차원의 성으로 끌어내려 사회적 의미 추구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굿과 놀이가 다루고 있는 주술과 예술의 면모와 집단과 개인의 성 의식을 돈독하게 다룬 것이다.
저자는 성 숭배에는 네 가지 원리가 있음을 구체적인 결론으로 제시한다. 저자가 말한 바를 정리해서 필자의 말로 바꾸자면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생식적 차원의 성 숭배, 풍요주술적 차원의 성 숭배, 상징적 차원의 성 숭배, 여성성의 양가성(兩價性) 등이 그것이다.
인간의 성은 비밀적 생명력을 갖는데, 그것은 출산에 있다. 이것이 곧 생식적 차원의 성 숭배로 귀결된다. 이와는 다르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풍요주술적 차원에서 성을 숭배하는데, 그것이 곧 다산과 풍요의 관념으로 귀결된다. 상징적 차원의 성 숭배는 양택의 풍수론으로 전개된다. 한 차원 높은 고도의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 숭배에 관련된 여성성의 긍정적 면모와 부정적 면모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성 문화의 실상과 성 숭배의 사례를 조리 있게 정리한 노력이 이 책의 가치를 담보한다. 사실에 대한 성실한 정리는 온전한 방법론으로 민속학 연구에 필요한 미덕이다. 헛된 지식을 확대하거나 복제하지 않고 치밀하게 사례를 검증하고 배치한 것은 성 숭배문화에 대한 자료 작업이 올린 개가다. 민속학은 자료학이 아니라 이론학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 책은 자료학과 이론학을 사이에 두고 방법론으로 거리를 메우려는 야심찬 시도를 담은 모험적 저작이다. 이 책의 고된 성과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은 후학들의 다음 과제다.
성 숭배문화의 현재적 의의 규정 아쉬워
성 숭배문화는 미래에도 존속될 대상인가, 아니면 배척돼야 할 대상인가. 이 책의 아쉬움은 과거의 사실 정리에만 머무른 데 있다. 성 숭배의 과거가 미래로 이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과거 자체로 단절돼야 할 대상인가. 이런 의문은 이 책의 본질과 어긋나는 것이라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적 의의가 논의되지 않는 민속학은 지적 도락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과거라는 안식처와 유일한 지식으로 위안처를 삼아야 한다면, 민속학은 현재적 의의를 논할 수 없는 허약하고 무용한 학문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오늘날 성은 쾌락 탐닉의 대상이다. 성의 신앙심과 신성성은 짓밟혀 비틀어졌다. 오늘날의 성 관념은 섬기는 성의 타락이다. 오늘날 성은 자유로운 개인의 내밀한 추구 대상이지만, 과거의 유산을 보면 성은 개방적 집단의 건전한 생산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모르고 하는 성이었기에 거기에는 경이로운 신비감이 남아 있었다. 성 숭배의 문화적 집약력은 오늘날에 성을 만끽하지 않도록 제어할 것을 요구한다. 누리는 성에서 다시금 섬기는 성으로 회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민속학에서 이에 관한 지침이나 전망을 내야 하리라고 판단된다. 이 점이 이 책의 극복되고 보완돼야 할 과제이자 후학들이 연구해야 할 숙제다.